평화군축센터 파병 2003-10-23   608

<파병반대의 논리> 한반도 평화 위협하는 전투병 파병

각계전문가와 세계지성이 말하는 이라크 파병반대의 논리

전투병 파병을 북한 핵문제 해결과 연계해 미국으로부터 대북한 안전보장 방안을 받아낼 수 있을까? ‘한국의 이라크 전투병 파병’과 ‘미국의 대북한 안전보장’을 두고 외교적 거래가 가능한 걸까?

이러한 희망 섞인 가설이 파병논의 과정에서 줄기차게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노무현 대통령은 10월 1일 국군의 날 연설에서 “파병문제 검토에서 한반도 평화와 안정에 대한 낙관적 전망과 확신이 매우 중요하다”며 “무엇보다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확신할 수 있는 더욱 안정된 대화국면의 조성이 필요하다”고 강조한 바 있다.

북한은 물론이고, 중국, 러시아 등 6자 회담 참가국들은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서는 미국이 대북한 안전보장을 구체화한 방안을 내놓은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해왔다. 노무현 정부 역시 이들 국가보다는 수위가 낮았지만, 안정된 대화국면을 조성하기 위해서는 미국의 성의가 필요하다는 점을 여러 차례 피력해왔다. 이러한 상황에서 노무현 정부는 이라크 추가 파병을 지렛대로 삼아 부시의 대한반도 정책에 변화를 꾀해보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노 정부에서 기대하고 있는 것처럼, 이라크 전투병 파병을 통해 한반도의 평화가 증진될 수 있을까? 특히 최대 현안이 되어온 북한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에 기여할 수 있을까?

우선 정부가 파병 문제를 북핵 문제와 연계시킨 것 자체가 근본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남의 강도질을 도우면서 나의 안전을 보장받겠다’는 계산법은 국제사회는 물론이고 국민들로부터도 지지를 받기 힘들다.

지난 세기 인류사에서 가장 끔찍한 전쟁을 겪은 한반도가 국제사회로부터 평화와 통일에 대한 지지와 협력을 받아내기 위해서는 ‘반전(反戰)’이라는 가치를 보편화하는데 솔선수범해야 한다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이러한 점에서 부당하고도 불법적인 미국의 침략전쟁의 부역자로 나서는 것은 한반도 평화 보장의 도덕적 기반을 스스로 무너뜨리는 것이다.

파병과 북핵의 연계전략이 갖는 문제점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이는 정부 스스로 ‘파병의 늪’에 빠져드는 것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정부 스스로도 인정하고 있듯이 북핵 문제는 ‘단기간’에 풀릴 수 있는 사인이 아니다. 1차 6자 회담이후 아직까지도 2차 회담 일정조차 잡지 못하고 있는 것은 이를 잘 보여준다.

이러한 상황에서 파병을 통해 부시의 대북정책을 유화시키겠다는 발상은 ‘확대 파병’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스스로 높이는 것이다. 파병과 북핵을 연계시킨 상태에서 부시의 대북정책을 유화시키기 위해서는 그 만큼 부시의 요구를 들어주어야 한다. 이는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이라크에서의 반미감정과 유혈사태를 ‘무력’으로 진압하기 위해서는 앞으로도 지속적인 군대 투입이 불가피하다는 것을 의미하고 이에 따라 전투병 파병은 이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2차, 3차로 계속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미국의 한 연구소가 이라크에서의 무력점령 및 치안유지를 위해서는 50만명의 병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한 것도 이를 뒷받침한다. 참고로 현재 이라크 주둔 다국적군의 수는 14-5만명 수준이다.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이라크 전투병 파병이 한반도 평화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중장기적으로 더 위험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점이다. 경험적으로 볼 때, 한국 정부는 부시 행정부의 요청에 따라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 두 차례에 걸쳐 파병을 했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는 김대중 정부의 아프가니스탄 파병 직후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는 연두교서를 발표해 한반도의 평화를 근본적으로 위협한 바 있고, 지난 4월 노무현 정부의 파병 직후에도 북한을 염두에 둔 대량살상무기 확산 방지 구상(PSI) 등 대북 제재 및 봉쇄정책에 박차를 가한 바 있다.

논리적, 정책적으로 볼 때도 문제가 있기는 마찬가지이다. 이는 “침략전쟁에 파병을 할 경우, 미국이 이라크 다음에 북한을 같은 명분과 논리로 공격하려고 할 경우 이를 막을 수 있는 명분과 논리를 상실하게 된다”는 지적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세계전략 차원에서 대 이라크, 대북한 정책을 구사하고 있는 부시 행정부에게 있어서 한국의 이라크 전투병 파병은 ‘고마운 일’이 될지 모르지만, 대북정책을 근본적으로 수정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는 없다.

특히 부시 행정부 스스로가 북한을 대량살상무기 최대 위협 국가라고 지목하면서 ‘예방전쟁’에 입각한 선제공격전략 채택을 정당화하고 이를 가능하게 하는 형태도 주한미군을 비롯한 군사력 변형에 나서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한국이 전투병을 파병했다고 해서 국가안보전략 자체를 수정할 것이라고 기대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이라크에 전투병을 파병하는 것이 중장기적으로 한반도의 평화를 위협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최근 대북정책을 비롯한 미국의 대외정책이 조금이나마 ‘유화’되는 조짐을 보이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9.11 테러이후 독주하던 ‘네오콘(신보수주의자)’이 무리한 대외정책 수행으로 발목을 잡혔다는데 있다.

잘 알려진 것처럼, 네오콘의 핵심인 딕 체니 부통령, 도날드 럼스펠드 국방장관, 존 볼튼 국무부 차관 등은 이라크에서뿐만 아니라 북한에게도 군사적 위협이나 정권교체를 선호하는 인물들이다. 이에 따라 한국의 전투병 파병이 미국의 이라크 무력점령 완수에 일조하게 되고 이에 힘입어 네오콘이 재기에 성공할 경우, 한반도는 이들의 영향력하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된다. 이들에게는 이라크 못지 않게 북한 역시 군사적 기득권을 강화시키는데 유용한 카드이기 때문이다. 한반도는 물론이고 세계 평화 문제와 관련해 가장 중대한 변수가 ‘네오콘의 영향력 회복’ 및 ‘부시의 재선’ 여부라고 할 때, 파병에 따른 중장기적 여파까지 신중하게 고려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또한 한국의 이라크 추가 파병은 미국의 이라크 점령을 반대하는 중국, 러시아, 북한 등 국제사회와의 관계를 악화시킬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한반도 평화가 단순히 대미관계 차원에서만 지켜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북한을 비롯한 주변국가들과의 관계도 중요하다는 점을 염두에 둘 때, 파병은 대미관계에서의 ‘득’못지 않게 다른 국제관계에서의 ‘실’을 동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라크 파병이 북한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에 기여한다’는 것은 성립하기 힘든 가정에 불과하다.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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