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군축센터 파병 2003-10-23   578

<파병반대의 논리> 명분 없는 ‘그들만의 파병’

각계전문가와 세계지성이 말하는 이라크 파병반대의 논리

최근 정부 내 분위기가 ‘이라크파병’쪽으로 기우는 듯하다. 반대로 일반 국민들의 의견은 시간이 흐를수록 ‘반대’쪽으로 기울고 있음이 각종 여론조사에서 드러나고 있다. 다급해진 수구 세력들은 ‘찬성’을 이끌어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국민들이 호락호락 넘어가지 않는 것 같다. 국민의 뜻과 무관하게 정부와 정치권의 기득권 세력들끼리 모여 쏙닥쏙닥 결정한 후 언론을 동원해 북 치고 장구 치기만 하면 간단히 끝낼 수 있었던 시절이 새삼 그리워지겠지만, 세상이 달라졌으니 어쩔 수 없다. 속일 수도 윽박지를 수도 없는 세상이 됐다.

파병론자들은 ‘맹방’과 ‘국익’의 논리를 내세워 열을 올린다. 그러나 ‘맹방’의 명분은 국민적 자존심에 상처를 준 과거의 크고 작은 실증적 사례들에 의해서 빛이 바랜 지 이미 오래다. 특히 5·18 민주화운동 당시 미국이 우리를 진정한 맹방으로 여겼다면 그런 참담한 대학살, 그리고 그것을 통해 들어선 독재정권의 탄생을 묵인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에 대한 아쉬움을 가슴 깊이 간직한 국민들이 여전히 많다.

‘맹방’이 국민들에게 기대만큼 잘 먹혀들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챈 수구세력과 보수언론들은 ‘국익’ 쪽으로 초점을 돌려 거품을 내뿜고 있다. 정부도 마찬가지로 국익을 들먹이며 조심스럽게 국민들의 눈치를 보는 형국이다. 문제는 이들이 주장하는 ‘국익’에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들은 우리가 가난하여 끼니도 제대로 때우지 못하던 시절에나 통하던 ‘경제적 혜택’이라는 것을 내세워 이게 마치 국익의 전부인양 호도한다. 참으로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다. 시간이 지나면 오히려 엄청난 손실을 입게 될 수도 있는, 당장의 눈앞의 작은 이익을 과연 진정한 국익이라 할 수 있겠는가.

금세기 경영학의 대가로 손꼽히는 피터 드러커는 경영의 본질은 고객의 가치창출에 있다고 말한다. 기업들간에 경쟁력은 어느 쪽이 보다 많은 고객을 감동시키고 만족시키느냐에 달려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고객의 마음을 더 많이 사로잡는 쪽이 이긴다는 말이다. 기업뿐만 아니라 개인 및 국가간 경쟁력도 이와 마찬가지다. 세계인의 마음을 얼마나 더 사로잡느냐가 곧 국제경쟁력이 되는 세상이 됐다. 이런 관점에서 유일 초강대국인 미국이 이라크를 침략함으로써 세계인의 분노와 우려를 자아낸 것은 두말할 나위 없이 큰 실책이다. 폭력, 더욱이 정의에 바탕하지 않은 폭력은 반드시 실패한다는 것이 인류 역사가 보여준 정률(定律)이다.

미국내의 양심 세력을 비롯하여 세계인의 대다수가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는 명분 없는 전쟁에 우리가 국익을 내세워 뛰어든다는 것은 정말 어리석고 무모한 짓이 아닐 수 없다. 한국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만방에 확산시킴으로써 우리 당대뿐만 아니라 후세에 이르기까지 두고두고 인류의 손가락질을 받는, 엄청난 역사적 손실을 안겨줄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1965년 베트남전에 참전하여 맹호부대 소총중대의 일원으로 수많은 전투를 치렀다. 지금도 가끔 노도처럼 밀려오는 적을 향해 아무리 방아쇠를 당겨도 적이 쓰러지지 않고 꾸역꾸역 다가오는 악몽을 꾸며 식은땀을 흘릴 때가 많다. 살점이 튀고 피를 토하며 발버둥치는 전장의 아비규환을 겪은 사람이라면 그런 전장에 우리 젊은이를 내모는 일에 결코 찬성할 수 없을 것이다. 미국의 무기상과 석유재벌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고 밖에는 달리 설명되지 않는 그들의 전쟁에 사랑하는 내 자식들을 내몰자는 주장을 그냥 보고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국민 누구에게나 고루 돌아가는 국익, 시간이 갈수록 더 확실하게 자랄 진정한 국익을 생각해,”미국의 절대 영향력 아래 있는 한국이 취할 행동은 뻔하지 않겠느냐”고 말하고 있을지도 모를 세계인들을 깜짝 놀라게 하자. 그런 자존심과 도덕적 용기가 더 큰 국익을 만들어 낼 것이다.

이 기사는 한국일보 2003년 10월 6일자 기사입니다.(원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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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명렬 (군사평론가·전 육군정훈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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