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군축센터 파병 2003-11-17   524

‘평화유랑단’을 아시나요?

전국을 떠돌아다니며 ‘평화바람’ 일으킨다

11월 15일 파병철회 범국민대회가 열린 서울 시청앞 광장 한 켠에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차 한 대가 세워져 있다. 차의 앞, 뒤, 양 옆면이 캔버스가 되어, 상처입어 울어대는 이라크 꼬마들, 누군가를 굽어보는 표정으로 “우리를 죽이지 마세요”라고 외치는 그림들을 담고 있다. 차의 앞면은 하얀 바탕에 화려한 꽃장식이다.

이 차의 정체는 “평화바람을 일으키는 평화유랑단”, 문정현 신부가 단장이다. 문 신부의 이러한 모습은 전혀 낯설지 않다. 그는 2001년에는 미 공군 폭격장으로 고통받던 매향리에서, 2002년 미군 궤도차에 의해 효순-미선이가 죽었을때는 의정부를 비롯 서울 광화문과 미 대사관 앞에서 촛불시위와 반미운동에 앞장 섰던 모습으로 이미 우리에게 “진보를 실천하는 성직자”로 각인되어 있다. 반미운동 뿐만 아니라 동생 문규현 신부와 함께 ‘새만금 삼보일배’를 했으며, 올 봄의 ‘부안 핵폐기장’ 투쟁에는 부안에 머물렀다.

문 신부는 “지난 5-6년 동안 반미운동을 해 온 것 같다. 반 10년인데… 그동안 독극물이나 오폐수 문제를 비롯해 미군범죄 등이 끊이지 않고 일어났다”며 “한국과 미국의 관계는 불평등의 연속이었다”고 지난 시절을 회고했다.

그러나 “끊임 없이 우리를 고통스럽게 만들었고, 평화를 위한 싸움은 계속 되었으나, 아무 것도 해결되지 않는 것이 바로 우리의 현실”이라고 그는 말한다. 지난해 여중생 사건이 우리 국민들의 의식을 많이 변화시켰지만, 구체적인 변화는 없었다는 것. 이런 상황의 이면에는 “우리 국민들 각자가 이 문제들을 바로 자신의 일이라고 느끼지 못하는 면”이 있다는 것이 문 신부의 생각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으로 문 신부는 전국에 “평화바람”을 일으키기 위해 평화유랑단을 꾸렸다고 한다. 지난 11월 12일 본격적으로 유랑을 떠나며, “전국을 떠돌아다니는 신부가 되어 생명을 지키고자, 평화 순례를 선포하며”라는 글을 통해 ‘평화유랑단’의 정체(?)를 밝혔다.

“거리의 전사가 아닌 평범한 사람들이 평화를 위해 만나는 마당을 열고 싶습니다. 어디든 찾아가서 먹고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려 합니다. 거리에서 만나는 낯선 사람들과 생각을 나누고 싶습니다. 이야기하다 지치거나 싫증이 나면 저마다의 재능을 모아 노래하고 춤추고 싶습니다. 유랑극단처럼….아마추어들이니 솜씨가 서투르면 서투른대로 평화를 바라는 이들의 마음을 담고 싶습니다”

문 신부는 평화유랑단의 계획을 “오라는 데 있으면 어디든 가서 며칠씩 지내면서 그들의 문제를 함께 푸는 것”이라고 말한다. ‘평화유랑단’은 일단 서울에 며칠 더 머물며 ‘럼스펠드 방한 반대투쟁’ 등 ‘이라크 파병반대 투쟁에 적극 참여할 예정이다.

아무래도 대박일 것 같다는 주변의 반응에 문정현 신부는 “걱정이 앞선다”고 한다. “사람들이 유랑단이라고 해서 기대가 큰데, 가수도 배우도 없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것. 하지만 걱정이라고 하면서도 그는 환하게 웃고만 있다. 아무래도 문 신부가 이끄는 “평화유랑단”덕분에 이 겨울 대한민국은 온통 “평화바람”에 휩싸일 것만 같다. 그들의 활약을 기대해 본다.

전국을 떠돌아다니는 신부가 되어 생명을 지키고자, 평화 순례를 선포하며

저는 민주화운동에 참여한 이래 지금까지 반미투쟁의 일선에서 살았습니다.

함께 민주화투쟁에 몸담았던 동지들이 정치를 한다, 직업을 바꾼다며 현장을 떠날 때 신부로서 군산 미군부대 우리땅찾기, SOFA, 매향리, 스토리 사격장, 노근리, 한강 독극물, 미대사관 옆 집회, 미군범죄, 이라크 파병 등 주민들이 목놓아 외치는 투쟁의 현장이라면 지팡이 하나 의지한 채 달려가 함께 싸웠습니다.

달겨간 현장마다 생명을 위협하고 평화를 깨는 것들 투성이기에, 기자회견, 대중집회에는 피할 수 없는 경찰과의 충돌이 기다리고 있었고, 그 과정에서 피가 터지도록 싸우기도 하였습니다. 때론 집회장이 외롭기도 했습니다.

그 외로운 곳을 떠나지 못하고 이렇게 살아온 이유는 가장 가난한 이들이 부당한 현실에 목놓아 싸우며 그곳에서 울부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고백하건대, 가는 곳마다 모인 집회장은 간혹 많은 사람들이 모인 적도 있긴 하지만, 그 사람이 그 사람이었습니다.

수십 년 동안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며 행렬의 대열을 따라가다 보면, 무엇인가 빠진 듯 허전한 느낌이 들곤 했습니다. 연사보다는 참석자들이 능동적으로 자기를 표현하는 자리가 될 수는 없을까 하는 아쉬움을 안고 있던 차 부안투쟁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금년 4월부터 새만금 간척사업 반대를 위한 삼보일배 65일을 거의 빠지지 않고 따라다녔습니다. 최근에는 100여일 동안 부안 핵폐기장 백지화 투쟁에 몸을 던지고 살았습니다. 이 과정에서 내 가슴을 뚫고 들어오는 느낌들, 지남철같이 나를 끌어들인 주민들의 참여와 투쟁, 그리고 눈물로 쏟아진 주민들의 절박한 꿈이었습니다.

점점 노쇠하는 몸 탓으로 피곤하기 이를 데 없었지만 현장을 떠날 수가 없었습니다. 울분이 눈물로, 감격이 채찍으로 변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참석 기간 동안 연설도 하지 않았습니다. 동참자의 한 사람일 뿐이었고, 길 위에서 먹고 마시며 함께 하였습니다. 긴 투쟁을 만들고 버티는 사람들은, 그 목표를 위해 갖가지 방법을 찾아 자기표현을 하였습니다. 함께 춤도 추고 노래도 부르고, 밤을 지새며 형제 자매의 정이 들었습니다. 이런 정은 긴 시간, 여러 날을 함께 해야 가능한 일입니다. 부안에서 만난 사람들은 모두가 이런 분들이었습니다.

부안투쟁은 그동안 이어온 반미투장에서 보면 긴시간의 외도였지만, 주민들을 통해 나의 삶을 돌이켜보며 돈 안내고 공부를 한 셈입니다. 그러나 한번도 내 마음에서 반미문제를 지워본 적이 없었기에. 이제 저는 제 자리로 돌아가 부안 주민들에게서 배운 것을 밑거름삼아 새 길을 준비하려고 합니다.

사람을 만나고 싶습니다. 주민들을 만나고 싶습니다.

거리의 전사가 아닌 평범한 사람들이 평화를 위해 만나는 마당을 열고 싶습니다. 어디든 찾아가서 먹고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려 합니다. 거리에서 만나는 낯선 사람들과 생각을 나누고 싶습니다. 이야기하다 지치거나 싫증이 나면 저 마다의 재능을 모아 노래하고 춤추고 싶습니다. 유랑극단처럼….아마추어들이니 솜씨가 서투르면 서투른대로 평화를 바라는 이들의 마음을 담고 싶습니다.

이런 생각은 오래전에 했지만 노무현 정부의 추가파병결정으로 갑자기 마음이 급해져서, 화물차 한 대를 급하게 마련하였습니다. 다행히 그동안 자주 만나온 젊은 동지들 5명이 함께 하기로 하였습니다.

차 이름을 가칭 유랑극단 ‘평화의 바람’이라 붙였습니다. 바람처럼 떠돌아다니며, 평화의 유랑자들이 되려고 합니다. 평화 유랑극단에 맞게 재담꾼, 재주꾼, 소리꾼 등이 있어야 하는데 모두들 맹탕들입니다. 아마추어로서 전국을 떠돌려고 작정한 마당에 주변 사람들로부터 자문을 받지만 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걱정입니다.

그렇지만 부족한대로, 그동안 쏟아온 평화운동의 온정을 다져서.만담과 춤과 노래가 어우러지는 마당에서 평화를 만들어가려고 합니다.

여러분에게 도움을 청합니다. 비록 미약할 지라도 전국을 떠돌 평화순례가 평화를 일으키는 작은 바람이 되어 지친 이들에게 즐거움이 되고, 전쟁을 걱정하는 어린이들에게 희망이 될 수 있고, 전쟁을 막는 주민들의 힘이 될 수 있다면, 저의 투쟁을 지켜준 지팡이 하나가 평화의 지팡이가 될 수 있도록 격려해주고 함께 평화의 새가 되어주십시오 .

내 나이 예순 중반, 살아온 날보다 앞으로 살아야 할 날들이 참으로 짧게 느껴집니다. 건강치 못한 몸으로 이런 일을 꾸민다고, 주변에서 걱정을 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제가 신부로서 살아오며 하느님 나라를 위해 한 일이 있다면, 이 땅의 폭력과 반평화가 사라지는 참민주 참평화를 위해 보낸 거리의 투쟁일 것입니다. 젊은 5명의 평화운동가와 다시 거리에서 잠자고 먹으며 떠돌아다니려는 것은 세상을 바꾸기 위해, 평화를 만들기 위해, 서민들의 눈물을 거두기 위해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 편에서 지팡이가 되어 주고 싶은 소망 때문입니다.

평화의 작은 순례를 시작으로, 전국 곳곳에서 주민들과 함께 평화를 노래하겠습니다. 어린이들이 군가를 부르며 전쟁놀이를 하지않도록 마을을 돌아다니겠습니다.

잘난 지식인들이 ‘국익’을 운운하며 가난한 국민들의 세금을 이라크 땅에 쏟아붓지 않도록 외치겠습니다. 그리하여 미국 대사관의 오만함에 눈물을 쏟는 이들이 더 이상 없는 날이 올 때까지 미국 군대의 총알받이가 되는 청년이 더 이상은 없도록 평화를 위해 남은 일생을 살 수 있다면 남루해도 행복한 거리의 신부가 될 것 같습니다.

2003. 11. 12

미국 대사관을 지키는 문지기들이 없는 세상을 꿈꾸며

문정현

최현주 사이버참여연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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