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자회담 재개에 즈음한 한국 시민단체의 입장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 2006. 12. 14)

6자회담이 오는 18일 베이징에서 재개된다. 북미간의 갈등이 극단으로 치닫는 상황에서 13개 월만에 재개되는 이번 회담에 거는 기대는 남다를 수밖에 없다. 특히 지난 해 9.19 공동성명 이후 미국의 대북 금융제재와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 그리고 유엔 안보리의 대북제재 결의안 채택 등 일련의 대결 국면 속에서 한반도 핵 위기가 더욱 고조되어 왔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이에 한국 시민사회단체들은 6자회담 재개에 환영의 뜻을 표하며, 이번 6자회담이 한반도 핵 위기의 근본적이고 평화적인 해결로 이어지는 단단한 디딤돌이 되기를 염원하면서 다음과 같은 우리의 입장을 밝히고자 한다.

1. 미국과 북한은 6자회담의 진전을 막고 있는 BDA(방코델타아시아 은행) 문제를 조속히 매듭짓겠다는 정치적 결단을 내려라.

미국과 북한은 6자회담의 파행을 불러온 BDA 문제를 하루 속히 종결지어야 한다. 이는 미국과 북한의 정치적 결단에 달려 있는 문제이다. 우선 미국은 BDA의 북한 계좌에 대한 조사를 신속히 끝내야 한다. 그리고 미국이 북한의 불법행위에 대해 명확한 증거를 제시할 경우, 북한은 재발방지를 확약해야 하며, 이에 미국이 BDA 동결을 해제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더 이상 이 문제가 6자회담 진전을 가로막아서는 안된다. 향후 미국이 북한의 불법행위에 대한 의구심을 해소하고자 한다면 북한이 제안한 바 있는 북미간 협의체 구성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2. 부시 행정부는 북한의 고립과 체제변형을 꾀하는 대북적대정책을 폐기해야 한다.

지난 10월 북한의 핵실험은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과 핵비확산 정책이 총체적으로 실패했음을 여실히 보여준 사건이었다. 지난 2002년 미국의 북한 핵개발 의혹 제기로 북미 핵 갈등이 재연된 이래 수차례의 6자회담과 관련국 회담이 열렸음에도 도리어 상황이 악화된 데에는 부시 행정부가 정작 ‘북의 핵개발 의혹’의 해소와 실질적인 다자간 관계개선책 마련에 집중하기보다는 제재와 압박을 통해 북한의 고립과 체제변형을 꾀하는 대북정책을 고집했던 책임이 크다. 또한 미국 스스로의 핵개발과 핵실험은 정당화하고 미국에 전략적 가치가 있는 나라의 핵보유는 용인하는 이중 잣대를 적용한 것 역시 북한의 핵 폐기와 국제적인 핵 비확산 노력을 더욱 어렵게 했음은 물론이다. 이러한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이 도리어 북한의 핵보유고를 늘리게 하고 있다는 비난이 비단 한국 시민사회뿐만 아니라 이미 미국 정치권 내에서도 강력히 제기되고 있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최근 미국이 6자회담 내 북미 양자대화에 합의하고, 북한의 핵 폐기가 이루어진다면 종전선언과 대북안전보장과 관계정상화, 에너지 지원 등 9.19성명에서 합의한 바 있는 상응조치들을 제공할 수 있다고 발언한 것에 주목한다. 하지만 미국의 대북제안이 진정성을 갖기 위해서는 북한의 핵 폐기를 선결조건으로 요구할 것이 아니라 일괄 타결 방식으로 보상하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밝혀야 하며 대북제재 조치를 유지, 강화해서도 안된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북 체제변형을 목표로 한 제재와 압박조치로는 북한의 핵폐기를 이끌어낼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대화와 설득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정책기조로 전면 전환해야 한다.

3. 북한은 핵무기 개발을 위한 핵 활동을 즉각 중단해야 하며, 구체적인 핵 폐기 방식과 경로를 제시해야 한다.

지난 10월 북한의 핵실험은 한반도 비핵화 선언을 져버리고 치명적으로 위험한 핵무기를 협상용으로 삼는 무모한 행동이었으며 남한 사회를 비롯한 국제사회의 핵군축과 핵비확산 노력에 정면으로 역행하는 것이었다. 어떤 종류의 핵실험과 핵무기도 자위수단 혹은 억지수단으로 정당화될 수 없으며, 이를 개발하거나 배치 혹은 사용해서도 안된다. 또한 북한은 핵실험과 같은 군사적 대응 위주의 경직된 태도는 국제사회의 지지와 이해를 구하기 어렵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우선 북한은 핵보유고를 늘리기 위해 현재 진행시키고 있는 핵 활동을 즉각 중단해야 한다. 북한이 핵 활동을 중단하는 것은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의지를 확인시켜주는 것일 뿐만 아니라 북한이 6자회담을 주도할 수 있는 유효한 수단이기도 하다. 또한 북한은 6자회담에서 핵폐기에 대한 상응조치를 미국 측에 요구하는 것과 함께 북한 스스로도 구체적인 핵폐기 방식과 경로를 제시하는 등 유연하고 능동적인 태도를 보여야 한다.

4. 북미를 포함한 참가국들은 9.19 합의로 돌아가 ‘북한의 검증가능한 핵 폐기 vs 대북 안전보장, 관계정상화, 에너지 지원’을 일괄 타결하고 이를 동시행동 원칙에 따라 이행해야 한다.

미국과 북한은 상대방이 취하기 어려운 일방적인 선결조건을 내세울 것이 아니라 서로의 요구사항을 맞교환하고 이를 동시에 이행해야 한다. 미국이 대북제재를 강화해왔고 북한도 핵실험을 한 상황에서 문제해결의 출발점은 공히 합의한 9.19 공동성명으로 돌아가 이를 재확인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북한의 모든 핵에 대한 검증가능한 폐기와 이에 상응하는 조치로서 참가국들의 대북안전보장과 미국 및 일본과의 관계정상화, 에너지 지원 등 실질적인 보상조치’를 합의하고 이를 공식적으로 천명해야 한다. 합의 이행 역시 상대방의 우선조치를 전제해서는 안되며, 9.19 합의에 따라 ‘행동 대 행동’ 원칙에 입각하여 이루어져야 한다. 또한 미국과 일본 등은 6자회담 밖의 의제 혹은 양자가 해결할 문제를 회담에 끌어들임으로써 6자회담의 초점을 흐려서는 안된다.

5. 정부는 대북 식량, 비료 지원을 즉각 재개하고 남북대화 복원에 적극 나서야 한다.

우여곡절 끝에 6자회담이 재개되었지만, 미국과 북한 간의 깊은 불신과 복잡하게 얽혀있는 의제들이 쉽게 해소될 것으로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그럴수록 정부와 시민사회가 인내심을 갖고 북한과 대화하고 협력을 지속하려는 각별한 노력이 요구된다. 더욱이 6자회담이 재개되는 지금이야말로 남북관계 개선을 통해 핵 위기의 평화적 해결과 한반도 평화제체의 기틀을 다질 중차대한 시점이다. 이런 의미에서 정부가 생존 위기에 직면해 있는 북한 주민들에 대한 식량지원을 중단하고 다른 어떤 국가들보다 강도 높은 대북제재 조치를 취하고 있다는 것은 매우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북한 핵실험에 대한 안보리 결의안 채택을 주도하고 주변국들의 대북제재 동참을 요구했던 부시 행정부조차 대북협상을 타진하고 나섰고, 중국 역시 결정적인 중재역할을 하고 있는 마당에 정부가 남북대화 재개에 적극 나서지 않고 있는 것도 납득하기 어렵다.

지금이라도 정부는 대북 쌀ㆍ비료 지원을 즉각 재개하고 단절된 남북 대화를 조속히 복원하는데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 북한도 인도적 차원에서 이산가족상봉을 재개해야 한다. 쌀 비료지원의 재개와 이산가족상봉은 인도적 규범에도 부합하는 일이며, 북의 주민들에게도 더없이 절실한 일이다. 그리고 쌀 비료 지원재개를 통해 복원된 남북간 대화는 한반도 핵 위기 해법과 새로운 민족협력방안에 대한 남북의 허심탄회한 모색으로 이어져야 한다.

6. 6자회담 참가국들은 한반도 평화체제와 동북아 다자안보협력에 대한 논의에 즉각 착수해야 한다. 또한 한반도 비핵화를 온전히 이루기 위해서 남한에 대한 미국의 핵우산은 철거되어야 하며 남북간의 군사적 대립을 완화시키기 위한 군축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북미간의 핵 갈등 해소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거니와 핵문제가 해결된다 하더라도 분단으로 인한 남북간의 대결과 군사적 위협이 사라지지 않는다면 한반도 평화는 요원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9.19 성명에서 합의한 대로 별도의 포럼을 통해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체제에 관한 협상을 시작하고 동북아의 다자안보협력방안을 논의하는 것이 시급하다.

이와 병행하여 남북간에는 군사적 대결을 해소하기 위한 비핵 군축 논의가 이루어져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북한의 핵실험 이후 정부가 미국의 보다 확고한 핵우산 제공을 요구하고 있는 것은, 북에게는 핵폐기를 요구하면서 핵우산을 실질적으로 강화하고자 하는 모순적인 태도일 뿐만 아니라 실제 남북간 군사적 불균형을 심화시켜 북한의 핵 폐기를 더욱 어렵게 할 수 있다는 점에서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정부와 시민사회는 한반도 비핵화 원칙을 굳건히 견지하면서 남한에 대한 미국의 핵우산을 철거할 것을 요구해야 한다. 또한 북한의 군사적 위협을 이유로 정당화되었던 과도한 군비지출과 동맹에 대한 지나친 의존이 도리어 북한을 자극하고 한반도 내 군사적 대결을 초래하고 있다는 점도 직시해야 한다. 따라서 남북은 서로간의 대치와 위협을 감소시킬 수 있는 군사적 협력조치와 상호군축 논의를 조속히 개시해야 한다. (끝)

2006. 12.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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