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대만의 대체복무제도 살피고 돌아온 한홍구 교수

“한국은 아직도 머릿수로 군사력 측정하나요?”

같은 사건을 두고 유죄다, 무죄다, 구속영장 발부다, 기각이다 등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법원의 판결이 서로 엇갈리고 있다. 급기야는 국민들의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대법원이 이례적으로 헌재 결정에 앞서 사법부의 최종판단을 내놓겠다는 뜻을 비쳤다.

이런 와중에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 실현과 대체복무제도 개선을 위한 연대회의 공동집행위원장)는 지난 5월 26일부터 28일까지 대만에 가서 대체복무제 실태를 조사하고 돌아왔다.

한 교수의 바쁜 일정으로 인터뷰 시간을 잡기가 쉽지 않았다. 지난 5일 학교 수업의 일환으로 학생들과 함께 매향리 답사를 떠나는 차 안에서 어렵게 그를 만나 인터뷰를 할 수 있었다.

너 같은 새끼가 어떻게 군에 왔어?

한국사회 군 문제의 심각성은 한 교수의 개인적 체험으로부터 물꼬가 트였다.

“제가 군대에 있을 때 ‘고문관’이었어요. ‘고문관’이 뭔 줄 아나?”

‘고문관’이란 군대 생활에 제대로 적응을 못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보통 이 한사람으로 말미암아 내무반 전체가 기합을 받게 되며, “저 새끼 때문에” 전체가 기합을 받게되는 것이다. ‘고문관’으로 찍히는 사람은 제대할 때까지 고통을 겪어야하고, 심하면 탈영과 자살로까지 이어진다.

“너 같은 새끼가 어떻게 군에 들어왔냐?”라는 상관의 말에 “제 말이 바로 그거라니까요.”라는 항변은 목구멍 안에서만 맴돌았다. 그러나 한 교수가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에 눈뜨게 된 것은 개인적인 경험 때문은 아니다.

“<베트남전 진실위원회>일을 하면서 많은 것을 알게 됐어요. 우리나라는 전쟁의 상처를 가지고 있는 나라잖아요. 그러면서도 군사주의가 너무 팽배해있어요. 한국의 진정한 민주주의는 군 문제를 비롯한 군사주의를 개선하지 않고는 이루어 질 수 없다는 깨달음이었던 거죠.”

한 교수는 ‘군대’에는 선택권이 없다는 것에 주목했다.

“한국국방연구원의 자료를 보면요, 공익근무요원 중 현역과 같은 신체등급을 받았으나 학력이 고등학교 중퇴 이하라는 이유로 공익근무요원 판정을 받은 이들이 있어요. 그 중 신체등급 1-3급자의 54%가 현역복무를 희망하고 있으며, 4급자의 경우도 40%가 희망하고 있어요. 반면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 등 군 입장에서 볼 때 데려와도 아무런 쓸모가 없는 사람 또는 복무부적응자로 사고 요인이 있는 사람들은 아무런 선택권이 없이 감옥에 가거나, 군에 끌려가 사고를 쳐서 본인이나 전우의 생명과 신체에 큰 손실을 입히게 되는 거죠.”

이런 관점에서 대만의 대체복무제도의 성과는 눈여겨 볼만하다.

“2001년 1차 대만 시찰에서도 지적되었지만, 대체복무제도는 군대 내 인권문제 개선에 크게 기여했어요. 대체복무 인원 중에서는 자살자나 의문사가 1명도 발생하지 않았거든요. 군 내에서도 복무부적격자들이나 신체등급이 낮은 사람들이 대체복무로 걸러질 뿐 아니라, 일단 대체복무와 현역 중에서 일정한 선택의 기회를 준 뒤 현역에 응한 사람들만으로 군을 운용하다 보니 사병들의 복무적응도도 크게 향상됐구요. 이 때문에 군에서도 자살, 의문사, 각종 안전사고가 크게 줄어들어 지휘관이나 사병 모두 만족스러워 하고 있습니다.”

병역기피를 위해 여호와의 증인 신자가 된다고?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운동이 시작되면서, 2001년 12월 이래 불교신자이자 평화운동가인 오태양 씨에서부터 아이들에게 평화를 가르치던 사람이 총을 들 수 없다고 선언한 초등학교 교사 최진 씨에 이르기까지 (여호와의 증인 신자를 제외하고) 모두 14명의 병역거부자가 나왔다. 그러나 한 교수는 어떻게 보면 13.5명이라고 했다.

“대만에 같이 갔던 청년 이야기예요. 병역을 거부한 다른 사람들과 달리 그는 평화운동을 한 사람이 아니었어요. 친해진 후에 왜 병역을 거부하냐고 물어봤더니 과거에 여호와의 증인 신자였다는 거예요. 지금은 아니고. 그러니까 13.5명이지.(웃음)”

한 사람을 0.5명이라고 부르는 것을 꺼림칙해 하면서도 한 교수는 이야기를 계속 이어나갔다.

“그에게 왜 여호와의 증인을 포기했으며, 그런데도 감옥에 가야 하는 병역거부를 왜 하려고 하는가 물었지요. 그랬더니, 20대 청년으로서 좀 자유로운 삶을 살고 싶다고 하잖아요. 여호와의 증인으로 살자니 지켜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아 힘들었다고. 그래서 여호와의 증인으로 사는 것은 포기했지만,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만은 어릴 때부터 당연한 것으로 생각했다구요.”

한 교수는 대체복무제가 도입되면 병역기피 수단으로 악용될 것이라는 주장을 한마디로 일축했다. 앞서 말한 청년과 같이 여호와의 증인 신자들은 엄격한 규율을 따라야 하고, 무엇보다 사람들의 온갖 편견과 멸시를 감내해야 되기 때문에, 병역기피를 위해 여호와의 증인 신자가 되려는 사람들은 없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또 종교적 이유가 아닌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의 경우에도 대체복무제가 병역 기피 수단으로 악용될 소지는 거의 없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대만의 국방부, 병무청, 국회 국방위원, 시민단체 관계자들은 일관되게 대만의 대체복무제도가 병역기피의 수단으로 쓰이고 있지 않다고 증언했다고 한다.

“대만의 경우 제도 도입 당시 일부에서 제기되었던 우려와는 달리 대체복무 자체가 만만치 않게 힘들고 기간도 길기 때문에 신청자가 급증하지 않았어요. 또 현재 한국에서 운영되고 있는 공익근무요원 제도를 보면, 과거 방위제도일 때는 현역보다 복무기간이 짧은 관계로 병역기피의 수단이 되곤 했으나, 복무기간이 현역보다 길어진 이후에는 병역기피의 통로로 거의 사용되고 있지 않아요.”

60만 대군보다 더 효율적 방법 찾아야

한 교수는 또 한국이 대만보다 훨씬 폭넓은 대체복무제도를 이미 30년 전부터 운영해 왔다는 점을 강조했다.

“1969년 방위병제도 도입, 1970년 전투경찰대 설치법, 1973년 특례보충역제도 도입 등으로 한국은 대만보다 30년 먼저 광범위한 대체복무제도를 운영해 왔어요. 최근까지도 공익근무요원 55,000 명, 산업기능요원 55,000 명, 전문연구요원 15,000 명, 공중보건의 4,000 명, 상근예비역 36,000 명, 전ㆍ의경 50,000 명 등 20만 명이 넘는 젊은이들이 현역이 아닌 대체복무를 통해 병역의 의무를 대신했습니다. 지난 30여 년 간 많게는 20만명이 넘는 대체복무 인원을 운용해 온 한국이 갑자기 병력자원의 부족이니 안보불안이니 하는 것은 전혀 설득력이 없어요.

한 교수는 이번 대만 시찰에서도 그러한 우려는 단지 ‘기우’일 뿐이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잇었다고 힘주어 말했다.

“대만은 대체복무를 무한정 허용하는 것이 아니라, 현역 병력수급에 차질이 없는 범위로 한정하고 인원을 탄력적으로 운용하고 있었어요. 지원자가 대체복무 예상인원을 초과할 경우 추첨으로 선발하고 남는 인원은 현역으로 입대시키기 때문에 현역병 수급에 차질이 빚어지는 경우는 상상할 수 없습니다.”

한 교수는 보다 근본적으로 우리가 과연 60만 대군을 계속 유지해야 하는가 진지하게 물었다.

“한국전쟁 때도 인해전술을 쓰는 중국군을 상대로 20만 조금 넘는 군대를 운용한 한국 땅에서, 경제력에서 우리의 1/30, 인구에서 우리의 1/2에 불과한 이북을 상대로 과연 60만 대군을 유지해야 하나요? 또한 기형적인 육상군 중심의 군대는 한국군이 전혀 독자적이지 못하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예요. 우리 군이 언제까지 미군의 시다바리 노릇을 해야되는 겁니까?”

한 교수는 인권만큼 국방이 중요하다며 대체복무제도 도입을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아주 실용적인 관점에서 이 문제를 바라볼 것을 권유했다.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 해주기 싫어서예요. 이미 30년간 많게는 20만이 넘는 대체복무 인원을 유지해 온 나라잖아요. 그들을 감옥에 보내는 것과 사회봉사를 시키는 것, 어느 편이 공동체에 도움이 되는지를 따져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대체복무제를 도입하면 현역의 복무여건도 개선되고 일선 지휘관들의 지휘부담도 줄어들게 됩니다.”

국방의 의무는 다양한 형태로 구현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대만은 실용주의적 개혁을 통해 인권문제도 해결한 좋은 사례이다.

한 교수는 “아직도 한국군은 인원수 가지고 병력을 따지나요?” 라는 따끔한 질문을 대만에서 들었다. 대만이 경제면에서 군사면에서 월등한, 그리고 급하면 인해전술까지 쓰는 중국에 대항하기 위해 고안해낸 방법은 군의 효율성을 목적으로 한 대체복무제. 그 속에서 자연히 탈영, 죽음에까지 이르렀던 군 내 인권문제까지 해결됐다고 한다.

“한국사회는 1954년 한국군을 60만 대군으로 성장시킨 이래 단 한번도 한국군의 적정 규모가 얼마인지에 대해 논의해 본 적이 없어요. 현대전 양상의 변화, 동서냉전 체제의 붕괴와 남북관계의 변화, 한국사회의 경제성장과 민주화 등의 요인을 감안하면 한국군 구조의 개편이 절실히 요구됩니다.”

“살아내는 것, 살아가는 것”

“살아내는 것, 살아가는 것을 본인들이 직접 몸으로 느끼면서 공부하는 것이 바로 역사 공부하기예요.”

일주일에 3시간. 교실에서 강의하면 편할 것을 <문화답사기행>이라는 과목을 만들어 하루를 바쳐 학생들과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는 한 교수의 지론이다. ‘양심적 병역거부’ 라는 한국사회에서 감히 꺼내놓기 힘든 화두를 던지고 실천해 온 것처럼, 그의 수업 역시도 ‘살아가는 역사’를 풀어내는 방식이다.

학생들과 함께 하는 역사기행도 양심적 병역 거부 운동도 그에게는 모두 ‘역사에서 희망 만들기’ 작업이라는 것을, 창밖으로 멀어지는 매향리를 보며 새삼 떠올렸다.

홍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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