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개혁, 더 늦출 수 없다.

합조단 조사결과 발표 자체가 노골적 축소 의혹

보고누락 허위보고 비일비재. 기득권보호 위해 항명도 서슴치 않아

국민 지키는데는 무능부패, 명령계통엔 해이문란, 미국에겐 저자세

1. 국방부는 오늘(23일) 서해 북방한계선(NLL)에서의 남북군간의 교신내용 정보보고 누락과 관련한 최종 조사결과발표에서 정보라인 중간 핵심간부들의 부주의가 빚은 결과라고 밝혔다. 정확한 보고체계를 무엇보다 중요시 여기는 군에서 최고통수권자에게 누락한 것은 물론이고 허위보고까지 한 것에 대해 단순한 실무자 몇 사람의 중·경징계로만 그쳤다는 것은 국민 누구도 수긍할 수 없는 결론이다. 일부 보수언론의 여론몰이에 힘입어 국방부가 조직적으로 이번 사건을 축소했다는 의구심마저 든다.

2. 서해상 핫라인 개설은 50년 만에 처음으로 남북한이 군사적 신뢰구축의 전기를 마련한 획기적 사건이었다. 그런데 이번 사건의 처리과정에서 군은 정확한 호출부호를 통해 송신된 북측 교신내용을 누락하여 경위를 보고했다. 이는 경우에 따라서는 핫라인 개설 이전보다 더욱 심각한 남북간 갈등과 군사행동을 유발할 수도 있었다는 점에서 매우 심각한 일이다. 사실 “남북 장성급 회담과정에서 군사적 신뢰조치 합의 시 양측 군부의 반발이 적지 않았다”는 지적도 있어왔다. 이번 사건이 그 같은 조직적 반발의 실체를 보여주는 것이 아닌지 철저한 조사가 필요했음에도, 군의 조사결과는 이런 국민적 기대에는 턱없이 못 비쳤을 뿐 아니라, 오히려 자기 조직 감싸기에만 급급했다는 비난을 면할 수 없게 되었다.

3. 이번 사건에 대한 조사결과 발표에서 군의 정보분야 최고 책임자인 합참 정보본부장이 남북한 송신내용을 언론에 유출하여 언론플레이를 시도했던 점이 제외되었다는 것도 도저히 묵과할 수 없다. 군은 이번 사안이 군사기밀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우리도 굳이 이 통신내용이 기밀이라고 주장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지금껏 지나치리만큼 과도하게 군사기밀을 지정하고 정보공개에 소극적이었던 군이 남북한 핫라인 송신내용을 기밀이 아니라고 강변하는 것이 옹색하다. 기밀이 아니라면 보도자료를 내거나 인터넷에 공개했어야 할 일이고, 또 그래야 마땅하다고 할 것이다. 더욱이 대통령 지시로 조사중인 사안에 대한 언론플레이는 조직적 반발이 아니라면 설명하기 힘들다. 게다가 군의 기득권을 옹호해주고 있던 일부 보수언론에만 국한해서 정보를 흘렸다는 것도 떳떳하지 못하다. 사실 이는 항명으로 비쳐질 수도 있는 행위이다.

4. 문제는 이와 유사한 사건이 국방부 주변에서 지속되어 왔다는 점이다. 군과 국방부는 민주화 이후 ‘역성역화’되어 왔다고 강변하고 있지만 여전히 관료화되고 성역화된 기득권 집단으로 존재하고 있다. 예컨대 병역비리 수사과정이나 군수물자 조달 관련 수사 등에서 군은 기득권 보호에 급급해 하는 태도를 보였다. 심지어 김창해 전 군법무관 사건 등과 같이 대통령 하명 사건에 대해서도 군 기득권 보호를 위해 철저한 조사를 해태하고 ‘물타기’를 시도했던 사례도 수두룩하다.

한편, 군은 국민에게는 기밀주의와 군의 특수성 등을 앞세워 고압적이고 관료적인 태도로 일관하면서도 정작 내부에서는 명령보고계통을 무시하거나, 허위 부실보고 등 정보를 왜곡하며, 직무상 기밀을 주고받는 등 안이하면서도 방만한 태도를 노정해 왔다. 이번 보고누락 사건이 그 단적인 예지만 이밖에도 주한미군 재배치 및 기지이전 협상 과정, 이라크 파병 협상 및 파병지 조사과정은 총체적 난맥, 허위부실보고, 정보조작 은폐 등 명령보고계통의 총체적 난맥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이다.

국방부의 중요한 특징은 미국에는 저자세로 일관하나, 국민에게는 고압적이고 무능하며, 국민이 선택한 대통령에 대해서는 기득권적 저항을 해왔다. 국방부는 이라크 추가파병부대의 성격과 규모를 정하는 과정에서 국방부 정책실장이 청와대 방침을 어기고 돌출적 기자회견을 해서 대규모 전투병을 파병하자고 주장하는 등 노골적인 항명에 나섰지만 이에 대해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이라크 현지조사라는 명목으로 미군이 불러주는 내용을 그대로 적어 와서 발표했다가 망신을 당한 지휘관이 승진하는 웃지도 못할 일이 가능한 곳도 국방부다. 일각에서 한국군의 통수권자는 대통령과 한미연합사령관이라는 냉소적 비난이 제기되는 것도 이 같은 사정에 기인한다.

5. 국방부는 여전히 개혁의 사각지대로 남아 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무엇보다 최고통수권자와 국민들을 속이는 행위에 대해서는 엄중히 문책해야 한다. 그러나 이번 사건으로 끝낼 일이 아니다. 이 사건 조사와 고 김선일 국정조사는 국방부 개혁의 첫걸음이다. 군 개혁을 위한 전면적인 인적 제도적 쇄신이 뒤따라야 한다. 참여정부 1년 6개월 동안 군을 제대로 장악 통솔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그 자신이 문제의 한 축을 형성한 조영길 국방장관의 책임을 묻는 것도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이번 기회에 국방장관의 민간인 기용을 포함한 과감한 군의 문민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전면적 개혁작업이 군의 사기를 떨어뜨린다고 하지만, 군의 사기진작을 위해서도 군의 지휘체계를 엄정히 정립하고 정보보고체계를 확고히 하는 것만큼 중요한 일은 없다. 군 일부에서 보여준 지휘계통의 해이와 정보보고의 부실 책임을 엄중히 묻고 이를 시정할 때에야 군도 본연의 임무에 충실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사건이 재발됨으로써 군에 대한 신뢰가 사라지고 군 내부의 문란이 방치되는 것만큼 심각한 폐해는 없다.

평화군축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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