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감모니터] ‘서울 함락설’ 및 2급 군사기밀 공개논란에 대해

참여연대 입장 “국가기밀정보 체제에 근본 대책 마련해야 한다”

지난 10월 4일 국방위 국정감사장에서 박진 의원은 2급 군사기밀인 국방연구원의 ‘전쟁여건변화 모의분석’ 결과 중 일부 내용을 공개했다. 같은 날 정문헌 의원 역시 통외통위 국정감사장에서 2급 군사기밀로 분류된 북한 급변사태 대비 정부 비상계획 ‘충무 3300’과 ‘충무 9000’을 공개해서, 기밀 공개를 둘러싼 사회적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이번 사안과 관련해서 열린우리당은 한나라당 대표의 사과와 두 의원의 국회 윤리위원회 제소까지 요구하고 나서, 일부 국감이 파행되는 등 정쟁으로까지 번져가는 양상이다.

박진,정문헌 의원, 독점한 정보를 정쟁에 악용하려 해서는 안돼

우선 우리는 한나라당의 두 의원이 국회의원의 직위를 이용해서 독점한 정보를 정쟁에 악용했다는 측면에서 우려를 금할 수 없다. 박진 의원은 ‘한국군 단독으로 적 침략을 막을 경우 서울 방어선이 보름만에 붕괴되고, 북한이 장사정포 공격으로 한 시간 만에 서울의 3분의 1이 파괴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한국의 이미 자체적으로 30여문의 다련장 로켓포(MLRS), 16기의 대포병레이더(AN-TPQ), 사거리 40km에 달하는 K-9 자주포 등의 장사정포 대응 무기체계를 구축해 놓고 있다. MLRS 보유대수는 미 2사단이 보유한 것과 비슷한 규모이고, K-9 자주포는 미군이 보유한 팔라딘 포에 비해 우수하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이다.

박진 의원은 국방위원이어서 누구보다 이런 정보를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내용은 전혀 도외시한 채, 현실적으로 발생할 수 없는 상황까지 들먹여서 국민의 안보불안만을 조장하려한 점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통외통위 간사인 정문헌 의원의 경우에도 남북관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안에 대해 부적절한 언행을 한 것이다. 특히 정문헌 의원의 폭로행위는 이를 공개할 납득할만한 문제의식 내지 목적의식도 찾아볼 수 없는 지극히 정파적이고 맹목적이라는 점에서 더더욱 비난을 자초하고 있다.

정부의 기밀보호 강조 방침, 반민주적이고 위헌적 발상

그러나 한나라당 의원들이 국가기밀을 악용한 것도 문제지만, 이에 대응하는 정부와 열린우리당의 모습도 실망스러울 따름이다. 정부는 논란이 빚어지자 국회의원들에게 국가기밀을 제출하는 것을 일체 거부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국무조정실은 “국가안위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국가기밀 사항에 대해서는 주무장관이 소명을 하고 제출을 거부기로 했다.”고 밝혔다. 게다가 ”국가안위에 관련된 국가기밀 사항에 대해 관행적으로 문서 대신 구두로 해오던 설명도 하지 않기로 했다“고까지 덧붙였다. 그러면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국가기밀은 과연 누가 판단하는가? 그 자의적 적용은 누가 막는가? 이는 결국 국가기밀 해석권한을 정부가 독점하겠다는 것이다. 또 국민의 대표이자 헌법기관인 국회의원들에게마저 기밀을 제출할 수 없다는 것은 반민주적일 뿐 아니라, 국민의 알권리를 침해하는 위헌적 발상이다.

정부는 국회의원들의 헌법적 권한을 제한하는 반민주적 발상을 앞세울 것이 아니라 어떻게 국가적 중대성을 갖는 정보에 대해 여야의 책임성을 높일 것인지를 고민해야 마땅하다. 정부 관계자는 또 ‘기관의 비밀 판단을 존중 하는 것이 국제적인 관례’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이는 우리처럼 기밀의 정의가 모호하지 않고 기밀 지정의 엄격한 가이드라인의 통제를 전제로 하는 것이다. 오히려 세계적 추세는 기밀의 등급을 일정 시간이 지나면 낮추고, 추후에는 일괄적으로 공개하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도 클린턴 행정부 시절부터 기밀의 체계적인 재분류 작업은 물론이고, 일괄적으로 기밀을 해제하는 조치를 취해왔다.

이번 사안과 관련해서 열린우리당 이부영 의장은 “국가기밀 유출에 대해 해당 부처들이 한나라당 의원들을 고소하지 않으면 책임을 묻겠다”고 했고, 안영근 의원은 박진 의원을 ‘스파이’로 몰아붙였다. 본질을 회피했을 뿐 아니라 열린우리당도 한나라당과 마찬가지로 정쟁의 소재로 활용하겠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열린우리당도 이번 사안을 정치쟁점화 하여 지금까지 국가기관들의 보여 왔던 자의적 기밀지정을 옹호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사실 이번 사태가 표면적으로는 국가기밀을 폭로하는 모양을 취하고 있지만, 그 본질에서는 국가가 과도하게 많은 정보들을 기밀로 묶고 있는 조건에서 이에 접근 가능했던 일부 정치인들이 그 독점을 악용하여 그 일부를 정략적으로 부분과장 왜곡해 공개한 것이 그 본질이라 할 것이다.

따라서 이번 사안과 관련된 진정한 핵심은 기밀이냐 아니냐가 아니다. 냉전시대의 유물인 위협해석의 독점을 어떻게 해소할 것인가, 그 정략적 악용을 어떻게 민주적으로 통제할 것인가, 국민의 안전과 밀접한 정보에 대한 국민의 접근을 어떻게 보장하고 이를 여하히 합리적 토론의 대상으로 만들 것인가 하는 점이다.

과도하고 자의적인 기밀체제 문제점 시정하는 계기로 삼아야

– 국가기밀기본법 제정, 기밀분류에 민간전문가 자문 등 근본대책 내놔야

국가기밀이 정쟁의 소재로 활용되는 것은 현재의 광범위하고 자의적인 국가기밀 지정의 문제점과 무관하지 않다. 일례로 ‘국방연구원 남-북군사력 비교 보고서’의 경우 2급 기밀로 분류되었다는 이유로 일체 공개가 되고 있지 않지만, 같은 보고서를 놓고 열린우리당 임종인 의원은 분석이 잘못되었다고 주장하고 있고, 한나라당 황진하 의원은 오히려 의도적으로 북한의 위협을 축소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국민들의 혼란만 부추길 따름이다. 또 국방분야의 경우에는 군사기밀 조항을 외부감사를 막는 장치로 악용하고 있어, 각종 무기도입 사건마다 비리사건이 끊이지 않고 있다. 과도한 군사기밀이 오히려 안보를 위협하고 있는 실정이다.

일부 최소한의 군사적 기밀사항을 제외하고 가능한 공개하는 것만이 이런 혼란을 막을 수 있는 길이다. 우리는 이번 기회에 현재의 기밀체제 재분류를 통해 국가기밀을 합리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본다. 한국의 국가기밀 체제는 기밀을 지정하고 보호하는 조항은 있지만, 이를 해제하고 공개할 수 있는 규정은 일체 없다. 그리고 기밀의 분류주체와 절차도 매우 편의적이고 자의적으로 규정되어 있어 광범위한 정보가 합리적 판단 없이 국가기밀로 지정되는 등 기밀지정권한인 남용되고 있다.

이번 기회에 현재의 기밀문서지정 시스템 전반을 전면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우리는 이미 작년 국감 이후, 국가기밀 지정의 자의성을 최소화하기 위한 ‘국가기밀기본법’을 제정하여 국가기밀의 지정 절차, 지정 근거, 보존과 폐기, 기밀해제 등의 법률적 기준을 엄격히 정할 것을 주장해왔다. 무엇보다도 현 보안업무관리규정에 다른 편의적 지정과 기밀의 자의적 갱신, 무단폐기에 대한 무대책 등을 시정할 것을 강력하게 주장해왔다.

특히 기밀지정과 해제 등에서 신뢰할 수 있는 민간전문가들이 참여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해왔다. 이번 논란을 계기로 기밀지정 절차에 대한 근본적인 법제개선이 이루어져야 한다. 또한 정부는 이 같은 법제개선을 추진함과 아울러 현재까지 지정된 기밀문서들에 대해서도 기밀 여부에 대해 재평가해야 한다. 아울러 정부 실무자들에게만 맡겨서는 또 다른 자의적 기밀지정을 낳을 수 없기에 민간전문가들이 참가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남북한 군사력 비교를 위한 공신력 있는 논의틀 마련해야

이번 논쟁 과정에서 대북위협 해석을 둘러싼 인식에 상당한 격차가 있음을 또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위협해석은 군사력 건설의 기초가 되고, 주한미군 조정과 재배치, 협력적 자주국방, 국방비 증액 등의 타당성을 가늠할 잣대가 된다. 하지만 지금껏 국방당국이 조사하고 보유한 내용은 종종 극히 일부만 공개되거나 왜곡 과장되어 왔기에 이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 매우 적은 게 사실이다.

현재와 같이 안보환경이 급변하고 있고, 이를 둘러싼 사회적 갈등도 증폭되고 있는 지금은 대북위협해석을 둘러싼 사회적 합의부터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 이번 기회에 대북위협을 둘러싼 소모적 논쟁보다는 국민이 납득할 수 있도록 합리적인 남북한 군사력비교를 수행할 수 있는 공신력 있는 틀을 정부와 국회는 마련해야 한다.

이 논의 틀에 민간전문가의 참여가 보장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이런 합리적이고 건설적인 논의의 틀을 만드는 것은 진정으로 보호해야 될 기밀정보에 대해서 특정정당이나 정파가 정략적으로 악용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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