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병인권 심각 수위, 인권개선 위한 대책마련 시급

평화박물관·참여연대 등 ‘사병인권 개선을 위한 토론회’ 개최

최근 육군 훈련소에서 발생한 ‘인분사건’을 계기로 사병인권 개선에 대한 사회적 공론화가 본격화 되고 있다. 성공회대 평화인권센터, 평화박물관 건립추진위,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 천주교 인권위원회는 오늘(1일) 오후 2시 국가인권위원회 11층 배움터에서 ‘사병인권 개선을 위한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날 토론자로 참석한 한홍구 평화박물관 상임이사(성공회대 교수)는 “‘군인도 사람이냐’는 말이 낯설지 않을 정도로 현재 한국 사병들의 인권문제는 너무 심각하고, 특히 간부들이 사병들을 바라보는 태도에는 많은 문제가 있다”며 “이는 사람의 가치가 실현되기 어려운 현 징병제의 문제점에서 기인한다”고 밝혔다. 그는 또 현행 군형법에서 ‘항명죄’와 ‘명령위반죄’ 적용은 ‘적법ㆍ정당한 명령’에 국한되지만, 군인복무규율에는 명령에 대한 복종만 강조하고 있을 뿐 ‘적법ㆍ정당한 명령’이란 구체적 언급은 없다고 지적했다.

김삼석 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조사관은 “일본군은 상명하복의 엄정한 군기를 자랑했지만, 하급자를 상급자의 노예나 소유물 정도로 인식하는 비인간, 비민주적 시스템이 지배했다”며 “이번 인분사건은 우리 군에 여전히 일제 잔재가 남아 있다는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한두 명도 아니고 192명이나 관련되었음에도 사건 발생 후 10여일이 넘도록 훈련소 지휘부를 비롯한 군 정보 수사기관이 몰랐다는 것은 군의 정보수집 체계나 훈련소 지휘계통에 이상이 생긴 것이라고 주장했다.

서석원 군가협(군경의문사진상규명및폭력근절을위한가족협의회) 간사는 “허평환 육군훈련소 소장은 부임 뒤 ‘가혹행위 신고서’를 비밀리에 넣을 수 있도록 16개의 ‘우체통 신고함’을 설치 운영해 왔다고 했지만, 신원 공개와 이로 인해 받을 불이익으로 인해 192명의 훈련병 중 어느 누구도 이를 이용하지 않았다”며 “소원수리제도 전반에 대한 운영실태를 점검하고 이를 국민들에게 알릴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번 경험으로 피해자들은 육안으로 관찰하기 힘든 정신적 피해를 입었다며, 피해자 192명에 대한 정신과 상담과 진료를 실시하고, 그에 합당한 행정처분을 내려야 한다고 밝혔다.

표명렬 전 국방부 정훈감은 군 개혁이 어려운 이유로 △군 출신 선배집단의 영향력 △역대 정권의 무관심 △간부 훈육 및 평가의 문제 등을 꼽고, 인권존중 문화 정착 시까지 한시적으로라도 ‘사병인권법’을 제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이대훈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 실행위원장이 사회를 맡았고, 한홍구 평화박물관 상임이사, 최재경 국가인원위원회 인권침해조사 2과장, 표명렬 전 국방부 정훈감, 김삼석 전 의원사진상규명위원회 조사관, 서석원 군가협 간사가 토론자로 참석했다.

다음은 발제 및 토론문 전문이다.

사병인권 토론회 자료

‘인권선진국’ 21세기 한국과 인분사건

한홍구 (성공회대 인권평화센터 소장ㆍ평화박물관 건립추진위원회 상임이사)

– 2002년 가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사병 월급 문제(당시 월 2만원)를 처음 제기할 때 <한겨레21>의 표지이야기 제목은 「대한민국 사병은 거지인가」였다. <한겨레21> 편집진을 설득하여 사병 월급 문제를 공론화시켰지만, 막상 그 제목을 보고는 참담한 마음이 들었었다. 그로부터 2년이 넘은 시간이 흐른 지금, 「대한민국 사병은 똥개인가」를 논해야 하는 더더욱 참담한 현실을 우리는 맞이하고 있다.

– 군대에서 이런 일이 자행된다면 입영당사자나 가족들 사이에 병역기피 심리가 조성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지 않는가? 현재 병역제도의 형평성이 심각하게 손상되어 있는 상황에서 이런 일이 발생했기 때문에 현역으로 입대한 자식을 둔 부모들은 “빽없는 부모 탓”을 하며 가슴을 치고 있다.

– 참으로 참담한 심경이지만, 우리는 그동안 군이 사병들의 인권을 개선하기 위해 나름대로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요즘 군대 많이 좋아졌다”라는 말은 1960년대 이래로 계속되고 있다. 실제로 군대는 많이 좋아졌고, 또 좋아지고 있다. 그러나 이런 노력의 와중에 왜 이런 참담한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 인분 사건 뿐 아니라, 최근에 사병들의 자살이 크게 부각된 것은 그런 사고가 갑자기 집중적으로 발생했기 때문은 아니다. 한국사회의 민주화가 어느 정도 진전되면서 시민들의 인권의식도 향상되었고, 이제 군도 더 이상 시민사회의 눈길이 미치지 않는 성역으로 존재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에 과거와 같으면 쉬쉬하고 넘어갔을 일들이 드러나게 된 것이다.

– 구타와 전통적인 가혹행위가 줄어들었어도 군대생활은 여전히 ‘괴롭다’:

표나지 않고 증거가 남지 않는 가혹행위 얼마든지 있음

*** 이번의 인분사건, 또는 구타나 가혹행위에 대한 군 내부의 두 가지 인식:

1) 열심히 하다가 조금 지나쳐서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국방위 박찬석 의원)

2) 문제를 일으킨 사람이 성격이상자다 (훈련소장)

– 그런데 훈련소 당국이 주장하는 것처럼 인분 사건은 성격파탄자인 중대장 개인 때문에 벌어진 일일까? 물론 휘하 훈련병들에게 인분을 찍어 먹게 한 중대장의 정신상태는 분명 정상이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중대장 한 개인을 탓하기에는 현재 한국 사병들의 인권문제는 너무나 심각하고, 특히 간부들의 사병들을 바라보는 태도에는 너무나 문제가 많다. “군인에게 인권이 있느냐”는 말, 아니 “군인도 사람이냐”라는 말조차 우리 귀에 낯설지 않다. 한국의 국방제도 전반, 특히 병역제도는 구조적으로 사병들의 인권이 보장될 수 없도록 되어 있다.

– 한국의 병역제도는 한국전쟁 이후 한번도 근본적인 개혁을 하지 않았다. 남북관계의 개선, 민주화의 진전, 경제성장, 세계화, 개인권리의식의 신장, 무기체계의 발전과 전쟁 양상의 변화 등은 한국의 병역제도에 전혀 반영되지 않고 있다.

– 군 당국은 군대 내의 구타나 가혹행위와 관련해서는 주로 사병 상호 간의 가혹행위 근절에 주력해 왔다. 그러나 우리는 사병 상호 간의 구타나 가혹행위 뿐 아니라, 간부와 사병간에, 나아가 간부 상호 간에 구타나 가혹행위가 여전히 존재하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사병 상호 간의 가혹행위도 사실 사병이 사병을 통제하지 않을 수 없는 현행 병역제도 – 과도하게 많은 병력이 별다른 권리를 갖지 못한 채 불만에 찬 상태에서 24시간 영내생활 – 에서 기인한다. 사병 상호 간의 가혹행위는 간부 내의 가혹행위, 간부와 사병간의 가혹행위의 파장이 사병 내부로 미쳐서 발생하는 것이다. 사병 상호 간의 가혹행위, 또는 고참의 횡포란 군대의 위계 내에서 발생하는 폭력의 전가이다. 이렇게 폭력이 전가되는 구조를 그대로 두고 인성교육을 통해 가혹행위를 막아보겠다는 시도는 절대 성공할 수 없다.

– 주적 논쟁 한창일 때: 대한민국 국군의 주적은 북한이고, 대한민국 사병의 주적은 간부이다란 말이 있었음

– 한국전쟁 이후 한번도 근본적인 개혁을 하지 않은 현행 병역제도는 간부들이 사병을 인간으로, 제복입은 시민으로 대하지 못하게 만드는 주된 요인이다.

– 현행 징병제 하에서 사람의 가치가 실현되기 어려움: 월급 2-3만원 짜리, 일당 1천원 짜리 존재 // 사병들이 무제한 공급: 숫자가 너무 많고 너무 싸게 부려먹을 수 있음: 사병들은 이런 시스템에 순응하도록 훈련되어져야 함: 비합리적인 요구에 무조건 복종하도록 길들여짐

*** 군대 내의 사병들의 열악한 인권현실은 대부분 현행 징병제의 문제점에서 기인: 현행 징병제를 그대로 둔 채 행해지는 사병 인권 개선 노력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음

– 사병들의 인간으로서의 권리나 지위가 전혀 보장되지 않음:

– 사병과 간부 사이에는 조선시대의 신분제에 못지 않은 신분상의 격차 존재

– 병력의 과다: 모든 사병들이 장기간 영내 생활해야: 사병이 사병을 통제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일상화: 장관이나 총장훈령으로 사병 상호간의 음성적 통제나 규율을 금지해도 아무런 소용없음

– 간부들의 인식: 군대 내에서 폭력을 행사한 사병은 오히려 군대생활 열심히 하는 애들이다: 뺀질뺀질한 놈들 가르치려다 오버한 것이니 관대히 처리해야 한다: 이런 애들 벌주면 누가 규율 잡아가면서 군대생활 열심히 하겠는가

– 사병들의 인권이 보장되지 못하고 거의 공짜로 공급되는 상황: 간부들의 진급 상의 어려움 가중되는 현실에서 윗사람에게 잘 보이기 위한 사역과 작업에 많이 동원: 사병들로 하여금 나라를 지키고 있다는 자부심 느끼지 못하게 함

– 병사들이 군복무하는 것 자체로 인해서 얼마나 큰 불이익과 인권침해를 당하고 있는가를 먼저 따져 보아야: 인생의 가장 빛난 시기인 20대 초반의 청년들이 아무리 국방의 의무 때문이라지만, 동년배 청년 모두가 아니라 약 60-70% 정도만이 현역으로 입영하여 월급 3만여 원을 받으며, 24개월 간 20여일의 휴가 기간을 제외하고는 영내에서 생활해야 한다는 현실 자체가 중대한 인권의 제약이라는 점을 인식해야

– 국가가 사병들의 인권을 무시하고 있는 상황에서 간부들의 인성교육만으로는 절대 문제의 해결을 기대할 수 없다.

– ‘삽질’로부터의 해방이 필요: 필요한 작업이라면야 마다하지 않을 것: 그런데 왜 ‘삽질’이라는 말이 생겼나? 더구나 90년대 중반 이후 군의 진급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삽질’ 문제는 더 악화된 것으로 보임: 초급, 중급 지휘관들은 진급이나 인사고과 때문에 상급자에게 잘 보여야 하고, 그 때문에 사병들 입장에서 도저히 이해가 안되는 작업이 많아짐: 이런 부당한 지시에 군말없이 따르는 병사들이 요구되는 것:

*** 단체기합의 금지: 군대와 학교에서 널리 행해지는 단체기합은 사라져야 한다

– 단체기합은 연좌제이고 헌법위반이다

– 단체기합은 연대의식과 단결심을 고양하는가?: 부당한 행위를 시키는 상급자보다 원인제공자를 원망하게 만듬: 고문관, 왕따의 원인 (지휘관 입장에서 보면 복무부적응자)

– 나 때문에 소대나 중대가 단체기합 받는다면?: 구타와 가혹행위의 공포: 자살이나 탈영이 괜히 나오는 것 아님

– 훈련소: 민간인을 군인으로 만드는 곳: 어려움을 이겨내는 훈련이 필요하다: 그러나 엽기적인 방식이 어려움 이기는 것인가? // 히딩크에게서 배워라: 히딩크는 한국대표팀은 일반적으로 알려졌던 것과는 달리, 체력은 강하고 정신력이 약하다고 지적했다. 진짜 정신력이란 무엇인가?

– 군기?: 엄격한 군기를 가장한 가혹행위 // 군대 내의 모든 생활에 ‘군기’란 말을 부침: 작업군기, 휴식군기, 오락군기, 식사군기, 취침군기

* 왜 자기 권리, 이익 문제에 극도로 민감한 신세대 훈련병들이 이런 터무니없는 지시를 따르게 되었는가?

– 자대와 훈련소의 차이:

– 훈련소: 민간인을 군인으로 만드는 곳 //

– 군대생활을 오래 한 병장이나 하사들이 있었다면 이런 일 없었을 것

– 오래 같이 보아야 할 사이였다면 이런 부당한 명령 내리지 못했을 것

– 훈련병들의 특성: 극도의 공포감 / 바깥 경험과 상관없이 초등학교 1학년 정도의 의식 수준으로 만들어 놓음. 훈련병 상호 간에 연대 의식 미약: 만난 지 얼마 안된 상황

– 그래도 훈련소가 천국이다: 고참의 횡포 없음

* 명령불복종: 부당한 명령에 대한 거부는 어디까지 가능한가? // 군대는 까라면 까야 하는 곳인가?

– 현장에서 방조한 분대장(조교)들은 공범인가, 아닌가? // 광주에서 발표명령을 따른 하사관과 병사들은?

– 현재 군형법 등의 항명죄, 명령위반죄는 ‘적법ㆍ정당한 명령’에 국한됨

– 그러나 군인복무규율에는 명령에 대한 복종만 강조, ‘적법ㆍ정당한 명령’이란 언급이 없음

– 군인권과 관련된 많은 사건은 정당한 명령권자가 아닌 상급자, 상서열자 등에 의해 발생: 그러나 이번 인분사건은 정당한 명령권자의 잘못된 명령

– 만약 어느 훈련병이 중대장의 인분 찍어 먹으라는 지시를 거부했다면 어떤 일이 발생했을까? 불의는 참아도 불이익은 못참는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자신들의 권리에 민감한 신세대 훈련병들 중 어느 누구도 이런 터무니없는 지시에 저항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 군 검찰도 지휘자가 아닌 상위계급 병사의 명령이나 지시를 어겼다고 해서 하위계급의 병사를 항명죄로 처벌하지 않고 있다.

– 병사 상호간의 관계는 법률적으로 군인사법상으로는 계급 순위에 의한 상하 서열관계에 있으면서도 군형법 적용에 있어서는 대등한 수평적 관계

– 비록 계급이나 서열상의 차이가 있을지라도 중대장의 위임을 받았다거나 일직사관으로서 중대장을 대리하는 권한이 주어진 경우가 아닌 한, 소대장 상호간에는 명령복종관계가 성립하지 않는다. 병사들 상호간의 관계도 이와 마찬가지

– 병사의 계급과 서열은 존중되어야 하나 병사의 계급이나 서열만으로 명령이나 지시를 하지 못하도록 육군이 일반명령으로 금지

* 왜 이 사건이 군대 내의 공식 계통을 통해서 알려지지 않았을까?: 기간병들에게 가혹행위에 대한 보고의 의무는 없는가? // 왜 훈련병들은 소원수리 등 통해 알리지 못했는가?: 우체통이 없어서가 아니다. 소원수리를 써 내도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여기는 군대다. 군대는 어쩔 수 없다”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회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군대는 변할 수 있다. 아니, 군대가 변하지 않으면 한국에서 인권의 신장을 기대하기 아렵다. (인격이 무시당하는 경험: 남의 인격을 무시하는 경험 / 군에서의 인권침해 체험이 사회로도 이어짐)

* 문민정부가 들어선 것은 1993년: 그동안 한국군에 대한 문민통제는 얼마나 진전되었는가?: 단순히 군의 정치적 개입이나 정치농단이 차단된 것에 만족: 군대는 여전히 성역으로 남아 있음 // 한국의 시민사회는 군에 대한 문민통제를 실현할 의지와 능력을 갖고 있는가?

사병인권 개선

표명렬 (군사평론가․예비역준장)

1.인권부재 군대문화의 문제점

○ 국방력(정신전력) 약화

-사기․단결 ․필승의 신념 저하

-피동적 참여 →형식화. 도피․패배주의 조장

○국력약화

-권위주의 만연→창의력 약화

-국민적 자존감 저하→도전의식 약화

2. 인권 무시 군대문화 정착의 원인

○ 반민족 친일세력의 영향(도피 및 세력 확대 근거지화)

-민족적 자존심․애정 없는 군대 육성→민족의식 말살

-무조건 절대복종의 군기 지상주의→상관을 위한 군대

○군부 독재 세력의 존립 기반화

-대 국민 공갈․공포조성→ 민주의식 차단의 도구화

-대북 적대의식 세뇌를 통한 독재권력의 기반 구축

-국군 존립목적 도외시→ 반민족․민주 수구세력의 아성

3.개혁이 어려운 이유

○군 출신 선배 집단의 영향력

-과거 지향적 자기 변명→개혁에 대한 문제 의식 부재

-바람직한 철학과 신념 희박→출세 지향 요령 강조

○역대 정권의 무관심(특히 문민정부의 실기)

○간부 훈육 및 평가의 문제

-인간 존엄의 가치관, 민족자존의 역사의식 결여

-전투적 기능 숙련 및 관리능력 치중(지도자적 자질함양소홀)

4.대안

○간부급에 대한 의식개혁

-양성 과정(사관학교)에서의 훈육 내용개혁

-고급 간부 평가의 핵심 기준화

-대대적 군대문화개혁 운동 전개(각 간부 교육 과정)

○사병인권법 제정

-인권존중의 문화 정착 시까지 한시적 운영

-국민적 관심 하에 간부의식 변화의 촉매역할

○「평화사랑 재향군인회(가칭)」구성

-군 복무에 대한 자부심 제고 활동

-인권관련 소원 활성화의 구심역할

-군대문화 개혁에 대한 시민 사회적 대안 도출 반영

5.결론

국방개혁의 대상내용을 군사작전 분야에만 국한, 군 개혁을 손놓고 있는 당국의 관점전환이 시급함.

안보환경과 무기체계의 변화에 따른 군사전략과 군사력건설 및 운영에 관련된 구조와 체계의 변화 등은 지속적으로 연구 발전 시켜야할 분야이지 개혁의 대상이 아님.

개혁은 잘못 형성된 우리 군의 성격과 모습을 혁명적으로 바꾸는 패러다임 전환 작업임. 그 핵심 대상은 군대문화임.

우리 군의 군대문화는 우리사회 조직문화의 특성에 바탕으로 우리 군이 겪어온 특수한 역사적 경험의 산물임. 프랑스 미국 등 선진국의 것을 참고할 필요가 없음.

왜? 무엇을? 개혁할 것인가에 대한 개념을 확고히 정립하여 인권중시의 군대문화가 정착될 수 있도록 관련제도를 전면 개혁 새로운 민주군대를 건설해야함.

육군훈련소는 제2의 아부 그레이브인가 : 인분 가혹행위 사건의 성격과 대안

김삼석 (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조사관․’반갑다 군대야’ 지은이)

1. “육군훈련소는 제2의 아부 그레이브인가”

2005년 1월 10일의 인분 사건이 신병훈련소에서 전시도 아닌 평시에 지휘관인 중대장에 의해 자행되었다는 것은 2003년 말, 전시상태의 이라크 아부 그레이브 교도소에서 미군이 자행한 이라크 포로 학대행위에 버금간다. 포로학대를 금지한 제네바협약에도 포로에게 인분을 먹이지는 않는다. 특히 한국의 강제적인 징병제 아래 군에 끌려가는 당사자인 젊은 장정들은 물론 자식을 군에 보내놓고 잠을 이루지 못해온 수많은 어머니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은 육군의 대국민적 폭거임에 충분하다.

2. 세계에서 가장 큰 단일 부대에서 일어난 인분사건

인분가혹행위 사건은 일반 신병교육대가 아닌 육군주력의 50%이상을 양성하는 신병교육기관에서 자행이 되었다는 데 심각성이 있다. 육군훈련소는 아무것도 모르는 한 사람의 젊은이를 전투원으로 만드는 곳이며 군은 육군훈련소를 군인의 요람이자, 명예와 의무의 전당이라고 부른다. 또 세계에서 가장 큰 단일 부대로 2만 명을 동시 수용, 훈련할 수 있는 가장 훌륭한 병영시설과 훈련장을 갖춘 부대라고 자랑하고 있다. (육군 훈련소 10대 자랑)

한편 육군훈련소 허평환 소장은 국방일보 2005.1.10일 인터뷰에서 훈련소의 목표는 세계최고의 훈련소를 만들겠다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육군 훈련소내 군 지휘관, 조교, 분대장들에 대한 부적절한 훈련과 지도력 부재, 인권의식부재, 지나치게 많은 수용 훈련병, 의료시설 부족 등이 일상적인 학대와 인분사건 등에 일조했다고 본다.

3. 인분사건은 군의 대표적인 일제 잔재 악습

인분가혹행위 사건은 대표적으로 우리 군에 아직도 일제의 잔재가 남아 있다는 사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일본군은 상명하복의 엄정한 군기를 자랑했지만 하급자를 상급자의 노예나 소유물 정도로 인식하는 비인간․비민주적인 시스템이 지배하는 인간성 말살의 조직 생리에 젖어 있다. 그래서 문제의 중대장 이모 대위(28)는 피해 훈련병들에게 사건을 외부에 알리지 못하도록 심리적 압박을 가할 수 있었다. 특히 사병(士兵)을 사병(私兵)처럼 여기는 실정에서 지휘관이 화장실 청소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192명에게 인분을 먹게 하는 ‘단체기합’은 대표적인 일제 잔재의 악습으로서 저급한 ‘한국군의 군사문화’로 자리잡고 있는 결과다.

4. 군의 정보수집 체계나 훈련소 지휘계통에 이상

‘화장실 청소가 불량하다’는 이유로 훈련병들에게 인분을 먹도록 한 날짜는 1월 10일이었으나 15일 소원수리 과정에서 전혀 이 같은 내용이 나오지 않았다. 이 사건은 17일경 한 훈련병이 친구에게 보낸 편지와 인터넷 제보 등을 통해 처음 알려졌다. 사건 발생 후 10일이 넘도록 훈련소 지휘부를 비롯한 군 정보․수사기관이 전혀 몰랐다. 한두 명도 아니고 192명이나 관련된 이 사건은 군의 정보수집 체계나 훈련소 지휘계통에 이상이 생긴 것이다. 육군훈련소내 기무부대와 헌병대는 인분사건이 난 뒤 열흘동안 무엇을 하였는가. 이는 국방부는 2004년 7월 북한 경비정의 북방한계선(NLL) 침범 때 보고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대규모 문책이 있은 뒤 철저한 군기강 확립을 약속했지만 반년도 지나지 않아 ‘공염불’이 되고 만 셈이다. 이미 똥 먹인 사건이 내부 문건을 통해 상부에 보고됐는지 밝혀야 한다.

5. 군대 안에서는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 일 없는 것처럼 군대 안에서는 이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다. 더더욱 군의 전국 일간지인 국방일보만 보는 사병들의 처지에서는 인분사건은 일어나지 않은 것, 국방일보는 1월 20일 인분 사건이 드러난 ‘사실’조차도 보도하지 않았다. 그나마 1월 24일자 특별기고에서 일부 언급한 게 유일하다. 대표적인 군의 보도통제와 폐쇄성이다. 이것은 인분사건을 사병인권 강화의 계기로 삼기보다는, 중대장 개인의 한번의 실수로 몰아가고 있다는 반증이다.

육군훈련소도 마찬가지다. 아무 일이 없었다.

육군훈련소 홈페이지(http://www.katc.mil.kr)에는 인분사건과 관련한 공지사항이나 부대소식하나 없다. 자유게시판은 아예 없다. 육군만 홈페이지에 2005. 1. 21자, 육군본부 정훈공보실장명의로『육군 훈련소 중대장 가혹행위』후속조치의 하나로 훈련병 부모들에게 사신을 발송하고, 참모총장이 지휘서신을 내렸다는 소식만 생색내기용으로 올렸을 뿐이다.

이번 인분사건은 인터넷을 통해 알려졌지만 많은 경우 군의 폐쇄성으로 인해 일반국민들에게 군 인권실태가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있다. 사병들의 초보적인 의사표현조차 철저하게 막혀있다. 이번 인분사건을 통해서 소원수리는 형식일 뿐이라는 것이 드러났다. 정당한 의사표현조차 징계대상이며 외부에 알릴 수 없다. 사병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강제로 규정하고 있는 국방부 훈령인 군인복무규율에는 이러한 징계를 정당화하는 조항(‘군인은 군 외부에 군에 관한 사항을 함부로 알릴 수 없다’)때문에 군대 안에서 제2, 3의 아부 그레이브 사건이 터져도 밝혀지기 어려운 철저히 폐쇄적인 집단이다.

6. 육군 훈련소의 인분사건은 이미 예고되었다.

군과 육군 훈련소의 사병인권 침해행위는 이미 예고되었고, 그 후유증은 제대 후까지 영향을 미친다. 지난 2005년 1월 15일 사망한 육군2사단 고정현 일병은 ‘여자친구와의 잠자리를 재현해 보라’며 옷을 벗기고, 입에 총구를 들이대며 협박을 하는 등의 상사의 인격모독을 견디지 못해 목을 맨 것이라고 밝혔다.

또 육군훈련소에서는 며칠 전 내무실 2층에서 추락, 사망한 훈련병에 대해 그 부모에게 “자살사망임을 인정한다”는 인정서를 작성할 것을 강요하여 분을 이기지 못한 아버지로 하여금 헌병대건물에서 투신하게 하는 사태까지 불러왔다. 육군의 그 어떤 규정에도 부모한테 군에서 사망한 자식의 사인에 대해 수사가 종결되기도 전에 헌병대의 예단에 따라 자살 인정서를 작성하도록 강요하였다.

군 사상자 유가족연대에 따르면 일부 지휘관 및 간부들이 병사들에게 총구를 병사의 입에 넣고 자살할 것을 강요하거나, 며칠동안 잠을 재우지 않고 일을 시키는 등 상식을 벗어난 인권침해행위가 계속되어져왔다.

부산 서부경찰서는 1월 25일 길을 가다 우연히 만난 군 복무시절 고참병을 마구 폭행한 혐의(폭력행위 등)로 허모(25)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군 복무시절 자신을 괴롭힌 고참병을 제대 후에 폭행하는 일이 벌어진 것.

7. 육군훈련소의 허평환 소장의 책임을 물어야.

1월 26일 허평환 육군훈련소장은 윤광웅 국방장관에게 이번 사태와 관련해 자신이 훈련소장으로 부임한 뒤 가혹행위를 당한 훈련병들이 ‘가혹행위 신고서’를 비밀리에 넣을 수 있도록 16개의 ‘우체통 신고함’을 설치해 운영해 왔고 앞으로 더 설치할 계획이라고 보고했다. 그러나 신원 밝혀질 게 뻔한 우체통 신고함이 대안이 될 수 없다. 아울러 육군훈련소내 헌병대에 대한 지도감독 소홀의 책임을 물어 허평환 소장과 훈련소 기무․헌병대장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피해자 192명에 대한 정신과적인 상담과 진료를 실시해야 한다. 이와 함께 정신적 고통 등 후유증에 시달리는 훈련병들의 국가 상대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지원해 주어야 한다.

8. 국방부와 육군본부의 개혁은 공염불

국방부는 올해를 국방개혁의 원년으로 삼고 최근 다양한 개혁방안을 내놓고 있다. 또 남재준 육군참모총장은 2003년 4월 취임후 ‘장교단 정신혁명’을 주창하면서 ‘전투적 사고를 견지한 장교’와 ‘언행일치 및 솔선수범을 행동으로 실천하는 장교’로 거듭나라는 주문한 바 있다. 남 총장은 세부 실천지침까지 전 육군에 지시했다. 무려 40여개에 달했다. ▲비전을 갖고 근무하기 ▲욕설 및 거친 언사 금지 ▲군사서적 탐독하기 ▲부대문제 외부제보 금지 ▲폭탄주 금지 ▲전출입시 상관숙소 방문 안하기 ▲관용차량 공적업무에만 사용하기 ▲회식비 공동 부담하기 ▲차량 선탑 잘하기 등이다. 장교로서 당연히 지켜야 할 항목들이다.

하지만 결과는 정반대다. 육군에서는 지난해만 해도 ▲상관모독 혐의로 구속된 김모 준위(7월) ▲헌혈 대가로 장교들 물품 수수(8월) ▲소대장의 대전차화기 오발(9월) ▲장교의 안전불감증으로 인한 감전사(11월) ▲육군 진급관련 괴문서 살포(11월) 등 장교들이 연관된 사건들이 잇따라 터졌다. 최근 육군훈련소의 인분사건은 정보수집 및 보고체계가 엉망이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병영폭력”과 “사병인권침해”행위가 “명령과 복종, 군사보안”이라는 그럴싸한 포장 속에서 발효되다 폭발해버린 것이다.

9. 학군단, 부사관학교, 육․해․공․3사 사관학교 등 교육개혁필요

인분 가혹행위와 같은 군의 인권침해 사건의 원인은 장교, 부사관들의 ‘의식의 문제’다. 특히 중대장은 육군방침의 실행주체라 할 수 있는 바 더욱 충격을 주고 있다. 군의 교육과정에서 장교, 부사관 예비후보들에게 아주 왜곡된 권위의식, 특권의식을 심어줘서 자신들을 무소불위의 절대선으로 생각하게 한 결과다. 학군단 교육, 군 소속 사관학교, 육․해․공․3사 사관학교, 육군대학 등 군의 교육기관은 물론 신병훈련소 등의 양성기관에서 장․사․병 교육에서부터 일제 잔재를 걷어내며, 대적관 확립교육을 시대 변화에 맞게끔 변화시키는 민족, 인권교육을 실시해야 한다.

10. 사병인권보호법 제정해야

이제 군의 개혁에 대한 총체적인 수술이 불가피하다. 군 개혁의 주체는 자식을 군에 둔 부모와 사병, 군의문사 유가족, 평화통일․시민단체, 군 인권 향상에 관심있는 예비역들이다.

국방부 마크와 육군훈련소 마크에는 별만 있다. 65만 사병은 없다. 국방부, 육군 본부 어디에도 사병 인권 보호를 책임있게 맡고 있는 담당자 한 사람 없다. 공룡이 된 국방부, 육군 본부는 정보수집 보고체계의 허점 투성이다. 사병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강제로 규정하고 있는 국방부 훈령인 군인복무규율의 전면 개정은 불가피하다. ‘병영생활 행동강령’도 사병들의 처지와 부대현실에 맞게 재조정되어야 한다.

인분사건 같은 이러한 가혹행위를 견디지 못한 병사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도 있는 불행한 사태가 늘 도사리고 있다. 이를 근원적으로 막을 수 있는 사병인권보호법이 올해 안에 제정되어야 한다. 국방부는 올 국방비로 20조 원을 먹어치우는 돈먹는 공룡하마다. 국민이 연간 1인당 20만원 이상씩 부담하고 있다. 현대 군사전략상 사병 인권보장 없는 공룡은 낭비다. 나라를 지키는 사병을 지키지 못하는 군은 백해무익하다.

안심하고 갈 수 있는 군대가 되려면

서석원 (군경의문사진상규명및폭력근절을위한가족협의회 간사)

<들어가는 말 : 상담하는 자의 무력감>

어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현재 모 부대에서 근무 중인 병사인데 몇 개월째 한 선임병으로부터 상습적인 구타와 가혹행위, 폭언 등을 당하고 있다면서 어떻게 하면 좋을지를 묻는 전화였습니다. 이런 현재진행형의 사건과 관련하여 상담을 할 때면 상당한 무력감을 느끼곤 하는데 이유인즉슨 문제해결에 뾰족한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먼저 피해자가 가해자와 대화를 통해 원만한 관계를 만들어 나가기 위해 노력하는 방법을 고려해 보았습니다. 모든 행위에는 이유가 있기 마련이므로 이를 해소한다면 문제가 해결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 사람은 일반적으로 본인의 기분을 맞춰주거나 표면적으로 호의를 보이는 사람에게 너그러워진다는 점을 감안한 방법입니다. 이 건의 경우 (개인적으로) 시시비비를 차치하고라도 피해자가 감당할 수만 있다면 어쩌면 이것이 가장 무난한 해결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피해자가 수개월 째 고통을 겪고 있고, 얼마 전 어렵사리 이유를 물었더니 그냥 네가 싫어서 그렇다, 이등병이 할 소리냐는 가해자의 답이 있었던 터라 이같은 방법을 권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군이 정하고 있는 절차와 규정에 따라 문제를 공론화하고 잘못된 일을 시정하도록 하는 방법뿐이었습니다. 흔히 말하는 소원수리입니다. 소원수리에는 두 가지 유형이 있습니다. 투서의 방법과 지휘관과 상담을 통해 고충을 전달하는 방법이 그것입니다. 그러나 두 가지 방법 모두 비밀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난점이 있습니다. 즉 피해자는 차후 불이익이 있을 수도 있다는 점을 감수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불이익이란 가해자의 보복, 집단 따돌림(일․이등병일 경우 다른 선임병들로부터 군기가 빠졌다는 소리를 듣기 쉽고, 지휘관들로부터는 골치 아픈 놈이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고, 가해자가 영창을 가거나 상급 부대에서 부대 진단 등을 나오는 등 일이 커지는 경우 이로 인해 피곤해지거나 불이익을 받는 모든 이들의 공적이 될 수도 있습니다.) 등을 말합니다. 이는 소원수리 이후 처리과정에서 많은 경우 가해자와 피해자가 격리되지 않고 지근 거리에서 다시 생활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피해자에게 투서보다 지휘계통을 존중하여 먼저 소대장에게 고충을 털어놓고 적절한 조치를 요구하는 방법이 좋겠다는 의견을 제시했습니다. 상급 부대에 투서를 쓰거나, 중대장에게 곧바로 문제제기를 하는 경우 뒤통수를 맞았다거나 물먹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생기기 마련이고 이는 고스란히 피해자의 불이익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소대장이 과연 믿을 수 있는 사람인가였는데, 피해자는 알 수 없다는 대답을 했습니다.

만일을 대비하여 사전에 부모님께 이 일과 관련하여 상의드리고 지속적으로 상황을 공유할 것을 권유했습니다. 소대장이 적절한 조치를 취해주지 않거나 상황이 더 악화되는 경우, 즉 최악의 경우에는 가해자 및 관련자를 고발조치 하는 등의 방법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보통 피해자들은 걱정을 끼치지 않겠다는 생각에 부모님께 도움 요청하기를 꺼립니다. 그러나 폐쇄적인 군 조직의 특성상 고발 국면으로 갈 경우 피해자 혼자 일을 감당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군은 지켜보는 눈이 있을 때 일을 보다 순리적으로 풀어가며, 목소리가 큰 자에게 상대적으로 약한 면모를 보이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상담을 마치기 전에 다음의 말을 덧붙였습니다. 소원수리결과가 어떻게 나타날지 전혀 예상할 수 없고 소원수리 시스템을 100% 신뢰할 수도 없다, 어떻게 할지는 당신이 결정해야 한다, 나는 이러저러한 방법이 있다고 안내를 해 줄 뿐이다, 그러나 당신이 필요로 하는 한 끝까지 돕겠다, 분명한 건 이왕 하려거든 독하게 마음먹고 확실히 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정쩡한 건 가만히 있는 것보다 더 안 좋은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라고.

이 건의 경우 피해자뿐만 아니라 가해자를 만나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단순히 사실관계확인의 차원이 아니라 근본적인 문제가 어디에 있는 것인지,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 것인지 대화를 통해 알아보고 싶었습니다. 궁극적으로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구분 아래 시시비비를 가리기보다는 두 사람이 서로를 이해하고 화해할 수 있는 접점을 찾아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지난 1월10일 육군훈련소에서는 수일 후 온 국민을 경악시키게 될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중대장 이모 대위가 훈련소 내 화장실을 점검한 결과 좌변기 20대 중 2대에서 물이 내려지지 않은 것이 확인되자 이에 격분하여 오후 4시경 중대 소속 훈련병 192명을 막사에 집합시켜 인분을 손가락으로 찍어 입에 넣으라고 강요한 사건이 발생한 것입니다.

사건의 개요가 대대적으로 알려진 이후 오늘까지 육군은 물론 국방부, 청와대, 국회가 들썩이고 있고 여론은 온라인․오프라인 할 것 없이 지대한 관심을 보이며 사태의 추이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군복무 중 인권침해 사건과 관련하여 상담전화를 운영해 오고 있는 단체의 실무자로서 이번 사태를 바라보며 곱씹고 있는 생각들을 정리해 봅니다.

<소원수리제도와 우체통 신고함>

1월26일 허평환 육군훈련소장은 윤광웅 국방장관에게 이번 사태와 관련하여 자신이 훈련소장으로 부임한 뒤 가혹행위를 당한 훈련병들이 ‘가혹행위 신고서’를 비밀리에 넣을 수 있도록 16개의 ‘우체통 신고함’을 설치해 운영해 왔고 앞으로 더 설치할 계획이라고 보고를 했습니다.

그러나 이번 사태의 경우 192명의 훈련병 중 어느 누구도 ‘우체통 신고함’을 이용하지 않았습니다. 피해자들은 ‘우체통 신고함’을 이용하지 않은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힌바 있습니다. “소원수리가 익명이라 해도 소대 단위까지 적게 돼있어 신원이 밝혀질 것이라는 두려움이 있었고, 당시 중대장 등으로부터 우리에게 불이익이 있을 것이라는 압력이 있어 하지 못했다”.

이는 구타 및 가혹행위의 피해자들이 소원수리제도를 이용하지 않는 가장 일반적인 이유이자, 군복을 한때 입었거나 현재 입고 있는 사람들에게 상식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말이기도 합니다.

소원수리제도는 육군훈련소 뿐만 아니라 각급 부대, 국방부까지 운영하고 있습니다. 국방부는 이번 기회에 소원수리제도 전반에 대한 운영실태를 점검하고 이를 국민들에게 알릴 필요가 있습니다. 막연히 ‘우체통 신고함’을 더 설치하겠다는 식의 전시적인 태도, 시스템은 잘 돼 있는데 사용을 안 하는 걸 어떻게 하느냐 식의 태도는 구타 및 가혹행위 근절에 하등의 도움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신고자에 대한 신변 보장, 신고는 비겁한 짓이 아니며 스스로 인권을 지키는 행위이자 군 발전을 위해 필수적인 요소라는 인식의 전환 등 근본적인 대책마련이 필요합니다.

<진상규명과 사과, 처벌이 다가 아니다>

육군은 1월20일 물의를 일으킨 이모 대위를 긴급 구속했고 감찰감을 단장으로 하는 조사단을 편성하여 진상 규명에 나섰습니다. 윤광웅 국방장관은 1월21일 육군훈련소에서 발생한 훈련병에 대한 가혹행위와 관련하여 훈련병과 그 가족, 국민에게 사과하는 `국방부 입장’을 발표했습니다. 이어 육․해․공군 36개 신병 양성 교육기관에 대한 전면적인 특별감사가 시작됐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1월21일 이번 사건을 직권조사 하겠다고 밝혔으며 열린우리당은 1월24일 현장조사를 나섰습니다.

하지만 피해자들을 위한 조치는 사실상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피해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당장 피해자 192명에 대한 정신과적인 상담과 진료가 필요합니다. 이번 사건으로 피해자들이 어느 정도의 정신적 상해를 입었는지, 당장 어떤 조치가 필요한지 전문가로부터 상담과 진료를 받아야 합니다. 이번의 경험으로 피해자들은 육안으로 관찰하기 힘들고 물리적으로 계량하기도 힘든 정신적인 상해를 입었기 때문입니다.

다음은 정신적 상해를 입은 피해자들에 대한 합당한 행정처분입니다. 정신질환은 특성상 그 원인이 매우 복합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따라서 지금 이 시점에서 가혹행위와 정신질환의 인과관계를 밝혀 당국의 의무조사결과에 반영시켜 둘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 이 시기를 놓친다면 후일 정신질환발병과 이번 가혹행위간의 인과관계를 증명하기가 어려워지게 됩니다. 따라서 피해자들은 후일 필요할 수도 있는 보상 및 배상청구에 대비해 증빙서류를 갖춰놓을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물론 현재 나타나고 있는 피해자들의 상태에는 다양한 편차가 존재할 것입니다. 당장 극심한 후유증을 겪고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스스로를 치유하며 악몽으로부터 벗어나고 있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또 지금은 멀쩡해 보이지만 뒤늦게 후유증을 겪게 될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정신과적 치료는 무엇보다도 초기에 원인을 발견하고 치유하는 것이 관건입니다. 그렇지 않을 경우 평생을 두고 고생할 수도 있습니다.

현재 피해자들은 예정대로 경찰학교에서 교육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군 당국 및 국가는 당장 피해자 192명에 대한 정신과적 상담과 진료를 실시하고 그에 합당한 행정처분을 내려야 합니다. 만약 군 당국 및 국가가 이를 외면한다면 피해자들은 개인적으로라도 정신과적인 상담과 진료를 받아 둘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를 근거로 집단소송을 제기하는 방법까지도 고려해 봐야 합니다. 책임져야 할 군 당국 및 국가가 이를 회피한다면 피해자들은 스스로 나서서 이들이 책임을 지도록 싸우는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육군훈련소장의 문제적 발언과 인권교육>

이번 사태와 관련하여 허평환 육군훈련소장은 1월26일 “중대장인 이모 대위의 성격 때문에 일어난 일로 성격적인 결함 때문에 생각할 수도 없는 그런 일이 일어났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그리고 1월24일 현장조사를 나온 열린우리당 의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실제 중대장이 한 행위는 오른 손에 잔변을 묻혀서 두 차례 입에 넣었다 빼게 시킨 것이고 고지식한 사람은 실제로 손에 묻혀서 입에 넣었다고 했으나 일부는 손에 물을 묻혔고 쓰레기통이나 주변에 닦은 사람도 있다. 분명한 것은 삼킨 사람은 없는 걸로 안다”.

여기서 사례 하나를 들어보겠습니다. 병장이 내일이면 백일휴가를 나가는 이등병에게 ‘임무’를 부여했습니다. 휴가를 나가면 모 게임에 자신의 아이디와 암호를 만들고 게임 속 분신의 능력 레벨을 몇 단계까지 올려놓으라는 ‘임무’였습니다. 이등병은 입대 후 처음 나가는 휴가였음에도 불구하고, 4박5일 동안의 휴가기간 동안 스트레스를 받으며 게임에 몰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과연 이 경우 병장이 이등병에게 가혹행위를 했다고 볼 수 있을까? 당시 부대 측에서는 가혹행위가 아니라고 주장했습니다. 즉 병장은 장난삼아 이야기한 것이었고, 같은 ‘임무’를 부여받았던 또다른 이등병은 장난이라고 생각하고 ‘임무’를 수행하지 않았고, 따라서 문제는 오히려 ‘임무’를 수행한 이등병의 고지식함에 있다는 것이 요지였습니다. 그렇다면 ‘임무’를 수행한 이등병이 병장의 지시로 인해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었고, 극심한 스트레스를 겪었으며, 4박5일 동안의 소중한 시간을 고스란히 날렸다는 사실은 어떻게 해석되어야 하는 것인가.

이 사례가 시사하는 바는 병장의 행위가 과연 가혹행위였는가, 아닌가에 있지를 않습니다. 사건을 바라보는 부대 측의 자세에 있습니다. 거기에는 모든 게 낯설고 두렵기만 한 이등병이라는 시기의 특수성이 고려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또한 병장이 가혹행위를 한 것인가 아닌가를 판정하는데 집중했을 뿐 피해자가 고통을 받았는지, 받았다면 부대는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하는지 피해자 입장에서 진지하게 고민하는 자세가 없었습니다.

이는 위에 언급한 육군훈련소장의 발언들과도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습니다. 만약 그가 본인 또는 부대가 져야 할 책임에 대한 걱정보다 먼저 피해자들이 겪은 고통을 생각하고 그들의 짓밟힌 인권을 고민했다면, 면피성 발언이라고 밖에 볼 수 없는 말들을 하기보다는 뼈를 깎는 자성의 자세를 보였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이번 사태 이후 지휘관들에게 인권교육을 철저히 시키겠다고 한 국방장관의 말은 핵심을 찌른 말이기도 합니다. 만약 모든 지휘관들이 인권을 중시하고 솔선수범해서 모범을 보이는 때가 온다면 군대 내 가혹행위를 비롯한 내무부조리는 대부분 근절될 수 있을 것이고, 나아가 군대 내 인권환경 또한 한층 개선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맺음말>

결국 문제는 사람입니다. 제 아무리 좋은 시스템을 갖추고 있어도 이를 운용하는 사람이 비뚤어진 생각을 갖고 있다면 그 시스템은 무용지물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군은 사람을 목표로 생각하기보다 수단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세간의 평가를 겸허히 받아들여야 합니다. 군의 특수성을 앞세워 인권을 제한할 수도 있다는 편의주의적인 생각을 하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장병들의 인권을 보호하고 신장할 수 있을 것인지를 고민해야 합니다. 그것이 국민들로부터 사랑 받고, 안심하고 갈 수 있는 군대가 되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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