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군축센터 한반도 평화 2001-09-03   1184

6·15공동선언 1년, 340명의 평양길

6박7일 민족통일대축전 평양취재기 ③-쑥섬 통일전선탑에서 김포공항까지

2001 민족통일대축전 평양행사. 수많은 논란 속에 지난 8월 15일부터 21일까지 개최된 이 행사에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 소속으로 월간 참여사회 최경석 기자가 직접 다녀왔다. 6박 7일간 일정으로 평양에 머물면서 바라본 통일대축전과 평양행사 등을 세차례 나눠 싣는다. – 편집자주

1948년 4월 남북 연석회의를 기억합니까

8월 20일 평양근교의 쑥섬. 이곳에는 1948년 4월 열렸던 남북제정당사회단체연석회의 공동협의회를 기념한 ‘통일전선탑’이 세워져 있다. 필자는 우연찮게 거동이 불편한 신창균 옹(94세, 당시 연석회의 남측 대표단)을 부축해 이곳을 둘러볼 수 있었다. 그는 “6·15남북공동선언은 연석회의 정신을 53년만에 재천명한 것”이라며 “이 정신을 다시 살리는 작업을 후대가 반드시 했으면 좋겠다”고 자신의 바람을 나타냈다.

1948년 4월 모란봉극장에서 열렸던 남북제정당사회단체연석회의. 당시 남에서는 김구, 김규식 선생 등이, 북에서는 김책, 홍명희, 김두봉 등이 함께 모여 분단을 고착화시킬 단독정부 수립 반대와 통일에 대한 남북협상을 가졌다. 56개 사회단체가 참석해 분단을 막고 통일국가를 건설하려 했던 마지막 노력이 남아있는 역사의 흔적들…

이번 민족공동행사를 통해 남과 북은 지난 53년 전의 연석회의 정신을 민간에서나마 실천하려는 모습을 보였다고 할 수 있다. 남북의 갈라진 틈을 조금이나마 메워보려는 민간차원의 노력이 역사에 어떻게 평가될 지는 두고볼 일이다. 그렇지만 무엇보다 자주·평화·민족대단결의 정신을 실천하기 위해 애써던 그들의 활동을 우선 하나하나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그 속에서만이 지난 일주일 동안에 있었던 돌출행동과 민간교류의 성과, 이 두 가지가 제대로 평가될 것이다.

잇달아 쏟아진 민간교류 성과들

8월 21일 오전 9시, 고려호텔 영화관에서는 남측 대표단의 마지막 전체회의가 열렸다. 지난 6박 7일간의 각 부문별 성과를 전체가 공유하는 자리. 먼저 이현숙 여성위원회 공동위원장이 나섰다. 그는 “지난 16일, 북의 조선여성민주동맹 등과의 만남을 통해 남북여성통일대회를 빠른 시일내 열기로 했다”고 밝혔다. 박홍근 한국청년연합회 공동대표는 “올 10월 이내로 남북이 각각 600명씩 참여하는 남북청년학생대회를 금강산에서 개최하기로 어젯밤 토론을 거쳐 결정했다”고 말했다.

김동완 기독교교회협의회 총무는 종교계의 성과에 대해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문제나 신사참배 등에 대해서는 남북, 그리고 중국 종교인이 연대회의를 갖기로 했고 내년 6·15토론회의 제주도 개최도 추진 중”이라고 보고했다. 또한 불교 사찰 단청원료 지원, 향교 복원, 10월 3일 개천절 행사 등은 남북이 공동으로 추진할 것이라고 첨언했다. 이외에도 제주도를 비롯한 지역자매결연, 비전향장기수 분들에 대한 초청, 통일노동자회의 상설기구화 등이 성과로 발표되었다.

지난 20일 마지막 만찬이 열리던 묘향산 호텔에서 만난 남측 불교계 대표단 일행인 세영 스님(신륵사 주지). 그는 북의 사찰에 대한 단청 보수 지원 합의 및 남북 사찰 자매결연 등의 성과를 이끌어 냈다. 그는 “비록 일부 부작용이 있더라도 이런 민간교류는 지속되어야 한다”며 “이를 통해 6·15공동선언의 합의 내용을 하나씩 진행해 나갈 수 있다”고 밝혔다.

내년 민족공동행사 서울-평양 동시 개최

21일 오후 2시, 6박 7일간의 2001 민족통일대축전 평양행사 참가를 마친 민족공동행사 남측 추진본부 대표단 340명이 김포공항으로 들어왔다. 이들은 세관구역에서 대기하며 짐을 찾고 입국수속을 밟고 있다. 그러나 재향군인회, 베트남참전기념사업회, 활빈단 회원 1000여 명이 규탄 집회를 갖고 계란 세례까지 준비했다는 소식이 이들에게 전해지면서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아직 짐을 챙기지도 못한 채 지난 일주일 동안 꺼져있던 핸드론을 너나 할 것 없이 키고는 안부를 전하거나 언론의 보도나 주변의 반응, 그리고 공항 주변의 상황을 확인해 보는 모습들도 보인다. 이미 세관구역에는 검찰의 신병확보 대상인 16명을 연행하기 위한 사복경찰 150여명도 들어와 대기하고 있다. 간혹 열리는 세관문 밖으로 전투경찰의 삼엄한 모습도 보인다.

세관문이 열리자마자 곳곳에서 함성이 들렸다. 한반도기를 흔들며 대표단을 환영나온 사람에서부터 ‘고려연방제 지지자들’이라며 고함을 치는 사람들까지…. 대표단 일행은 전경들이 막아서며 트인 좁다란 통로를 따라 공항을 빠져나갔다. 서울에서의 ‘남남갈등’을 눈으로 목격한 사람들은 불안과 안타까움의 눈빛을 감추지 못했다. 대표단은 남북 화해와 협력·교류의 물꼬를 틀 여러 성과에도 불구하고 ‘남남갈등’이 번져나가는 것에 큰 우려를 나타냈다.

남인순 한국여성단체연합 사무총장은 “이런 모습은 우리 사회가 아직도 상호존중과 이해를 위한 교육이 안 되어 있음을 보여준다”며 “서로간의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작업이 필요한 때”라고 진단했다. 또한 “서로가 ‘다름’에 대해 대화를 할 수 있도록 시민사회가 평화, 통일문제에 개입하고 합리적 구조를 만드는 역할을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추진본부는 김포공항에 도착한 후 곧바로 기자회견을 갖고 성명서를 발표했다. 주된 내용으로는 내년 광복절 남북공동행사 개최, 이를 위해 북측이 서울 행사에 참여할 것 등이 명시되어 있다. 또한 비무장지대에서 남북, 세계 작가 예술인들이 함께하는 ‘평화촌 개최’가 합의되었음을 밝혔다. 평화촌은 경의선 개통에 맞춰 한반도 평화를 세계에 알리기 위한 행사로 지난 97년 대인지뢰금지운동을 벌여 노벨평화상을 받은 조디 윌리엄스 등 평화운동가는 물론 남북, 세계 문화예술인들이 함께 모여 평화캠프를 만드는 것이 주 내용이다. 이 성과는 소설가 황석영 씨를 비롯한 남측 문인들이 20일 밤 게까지 북측과 토론을 벌여 이뤄낸 큰 성과다.

조성우 추진본부 사무총장은 이번 행사 전반에 대해 “3대헌장 기념탑 앞의 개·폐막식 갈등이 있었지만 각 부문간 만남을 통해 실질적인 교류협력의 장을 열었다”고 자평했다.

화해와 협력, 교류는 계속돼야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2001 민족통일대축전’ 행사가 끝났다. 이번 행사를 통해 우리가 얻은 것은 무엇일까? 갑작스런 방북결정, 미비했던 의견조율, 일부 인사들의 돌출행동 등으로 여러 문제가 발생했음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것들이 이번 행사의 전부라고 말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민간교류를 통해서만 이뤄낼 수 있는 크고 작은 성과들을 놓칠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소위 관변단체 인사에서부터 재야·진보적 통일운동단체까지 매우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진 사람들이 6박 7일간의 행사를 통해 서로가 터놓고 대화할 수 있는 공간을 함께 만들어 낸 것도 소중한 결과가 아닐까 한다.

대표단의 한 인사는 “이번 기회를 통해 북에 대한 냉전적 편견을 일부 고칠 수 있는 계기”였다고 말했다. 혹자는 “남북 정부당사자 외에 민간교류를 통해 함께 할 수 있는 사업들이 참으로 많고 이를 통해 화해 분위기를 조성할 수 있는 여건마련이 충분히 가능한 것 같다”고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기도 했다. 새로운 세기, 남과 북이 ‘더불어 사는 우리’를 만들 수 있는 기본적인 토대를 이번 기회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제 남과 북 사이에 더 많은 화해·협력, 교류가 이뤄져 지난 50여 년 동안 지체되어 온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의 구체적 상이 그려지길 기대해 본다.

<인터뷰> 가수 이정렬 – 통일염원 콘서트 열고파

– 이제 서울로 돌아가게 됩니다. 6박 7일간의 소감을 우선 부탁드립니다.

평양 순안비행장에 도착했을 때는 두근거리고 떨리는 마음뿐이었어요. 너무 기쁘기도 했었고. 그런데 어느덧 일주일이 지나고 평양을 떠나게 되어서 조금은 아쉽기도 합니다.

– 지난 17일 공연할 때 북측으로부터 박수도 많이 받으셨는데요. 그날 느낌은 어땠나요?

정말 긴장되더군요. 무대 뒤에서 보면 사회자와 제 거리가 몇 걸음도 안 되는데 소개를 받고 나가기 직전까지 별의별 생각이 다 들더군요. 아마 제 노래에 대해 북의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까 걱정했던 것 같아요. 첫 곡부터 모두들 진지하게 쳐다보는 것 같았어요. 그래도 제 노래에 많은 호응을 보내줘서 너무 좋았습니다. 봉화예술극장에서 남쪽 노래를 불렀던 것만으로도 기뻤고요.

– 6박 7일 동안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무엇입니까?

개인적으로는 북측에서 마련한 관람 코스보다 평양근교에서 볼 수 있는 북측 사람들의 얼굴들이 인상에 많이 남아요. ‘참 꾸밈없는 얼굴이구나’ 하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들녘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우리가 지나가면 하던 일 멈추고 손을 흔들어 주는 모습은 너무 정겨웠어요. 아, 평양시민들이 아침에 서로가 너나할 것 없이 길거리를 청소하는 모습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남쪽에서는 볼 수 없는 모습들이 많았던 것 같아요.

– 여기서 해외동포들도 만날 수 있었는데 그들에게서 느낀 점이 있다면?

한반도에서 떨어져 살아가고 있지만 같은 민족으로 하나가 되고자 하는 마음은 똑같다고 느꼈어요. 우리가 좀 더 이런 재외동포들의 뜨거운 마음을 이해하고 함께 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일본 교포 3세들과 얘기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요, 그들이 가지고 있는 같은 겨레, 같은 민족이라는 자긍심은 대단하다고 느꼈어요.

– 이제 서울로 돌아가면 하고 싶은 일이 있을 것 같은데요.

이곳에서 느꼈던 것들을 노래로 표현하고 싶어요. 당장 통일가수로 일할 수는 없겠지만 이번 경험이 제 음악에 배어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제가 이곳에서 느꼈던 남북 화해의 뜨거운 분위기를 많은 사람들과 나눌 수 있는 콘서트도 구체적으로 만들고 싶습니다.

최경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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