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군축센터 칼럼(pd) 2003-10-20   783

<안국동 窓> 부시 재선을 위해 생명을 바치기로 한 정부

‘참여’의 가치를 강조한 정부가 마치 국민을 상대로 공작정치를 하는 듯 합니다. 이미 은밀하게 추가 파병 결정을 내린 상태에서 사회 여러 분야로부터 의견을 구하는 척 쇼를 했습니다. 그 쇼에는 “국민참여” 수석과 정무수석도 동원되었습니다. 그것도 바로 참여연대 사무실의 아래층 느티나무 카페에서 말입니다. 출범 1년도 되지 않아 일어나는 일들입니다.

그렇게 추가파병을 갑작스레 결정하고도 정부는 여전히 파병의 성격과 시기 및 규모에 대해서 “아무것도 결정된 것이 없다”고 말합니다. 누가 믿겠습니까. “인도주의적 임무”에 충실하겠다고 여전히 관심을 흐리는 방향으로 여론조작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이번 파병 결정을 가리켜 10월 20일자 한겨레신문에서 이삼성씨는 “집단적 노예정신”이라고 규정하였습니다. 스스로 알아서 제국의 종복이 되고자 하는 이들에게 우리의 외교안보를 맡겨도 되는 것인지 의문입니다. 이라크에서 미군이 처한 암담한 상황과 우리 정부내 외교안보 담당자들의 대미 식민주의 사고방식으로 볼 때 전투병을 보낼 모든 준비가 이미 은밀하게 결정되었을 것으로 보는 것이 정확할 것입니다.

정부 외교안보 담당자들과 파병 찬성론자들이 말하는 “국익” 효과는 사실로 보입니다. 추가 파병을 통해서 얻어지는 국익이 매우 클 것으로 보입니다. 문제는 그들이 ‘국익’을 상상할 때 그 국가가 미국이라는 점입니다. 과거 ‘황국신민의 서사’를 낭송할 때처럼 말입니다. 현재 제국의 ‘국익’이 한국의 파병에 따라 크게 좌우되기에 그럴 것입니다. 선거를 앞둔 제국의 시간으로 볼 때 한국 정부는 부시 대통령의 재선을 돕고 그의 초강경파들의 재집권을 돕는 부시 재선운동본부로 전락한 듯 보입니다. 이는 한국군의 전투병 파병이 부시 대통령의 재선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는 미군이 이라크의 수렁에서 헤어 나오지 않는 한 미 유권자들의 부시 일파에 대한 지지도 하락이 불가피하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조기 파병 결정은 미국이 다른 나라의 파병을 설득하는데 결정적으로 고무적인 일입니다.

미군이 이라크의 수렁에 빠진 것은 여러 면에서 확인되고 있습니다. 요약하면 (1) 무장 저항운동이 확산 및 체계화되고 있고, (2) 무리한 점령 계획으로부터 군 사기가 급격히 저하되고 있으며 (3) 실제 재건 비용이 과다한 점이 드러나면서 이것이 미국 국내정치 문제로 비화되고 부시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지고 있으며, (4) 전쟁명분을 조작했다는 사실이 미국 영국 정부의 지도력 위축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미국이 대테러전쟁의 성공사례로 내세우는 아프가니스탄에서조차 카불 이외의 지역에서 부족별 군벌지배로 여성과 소수종족에 대한 납치, 고문, 폭력 등 인권침해가 빈발해지면서 다시 야만 상태로 돌아가고 탈레반의 무장저항이 이에 맞춰 새로운 수준으로 높아지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최근 이라크 저항군의 공격의 특징으로, 점령정책을 지지하는 이라크 지도자에 대한 공격, 미 동맹국 시설에 대한 공격, 공격의 규모와 작전 체계의 발전을 들고 있습니다. 반면 미군은 교육받았던 전쟁 명분이 조작이었다는 언론보도를 매일 접해야 하는 처지에, 순찰중 어느 곳에서 공격당할 지 모르는 상황에 처했습니다. 이에 따라 미군 병사들의 사기가 급속히 떨어져, 영내 자살이 늘고 직접 미 언론에 조기귀환을 호소하는 편지를 쓰거나 아예 미국의 이라크점령을 비판하는 글을 기고하는 등 제국의 군대가 허용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미군이 이라크 치안을 동맹국 군대에 맡겨 2005년 중반까지 대부분 철수하겠다는 계획을 세운 것은 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의 이라크에 파병하되 전투병을 보내지 않을 수도 있다는 말은 또 하나의 여론 조작일 뿐입니다. 세계제국 미국이 한국으로부터 필요로 하는 것이 오직 값싼 전투병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제국의 위대한 병사들의 ‘고귀한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이고 그럼으로써 부시 및 네오콘의 재집권을 보장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라크에서의 한국군의 용도는 이처럼 간단하고 분명합니다. 침략전쟁의 대체병력으로서 ‘국위 선양’ 운운하는 것은 유치한 기만입니다.

국내에서 보도되지 않은 아랍 방송과 몇몇 영상 기록을 보면 이번 이라크 침략으로 무고한 이라크인들이 겪은 고초는 이루 표현할 길이 없을 정도입니다. 저는 미군 폭격으로 머리가 터져 나간 한 어린아이의 모습을 보고 며칠간 정신을 차릴 수 없었습니다. 무고한 비무장 민간인들이 미군의 무차별 사격으로 길거리에서 사살당하는 장면 역시 그랬습니다. 이라크와 그 주변국 사람들은 지난 3월부터 이러한 모습을 매일 눈앞에서 또는 화면에서 보면서 살았습니다. 그 고통과 분노가 현재 미군과 그 동맹군들에게 총뿌리가 되어 겨누어져 있습니다. 이제 곧 우리에게도 겨누어질 것입니다. 그들은 미국과 우리에게 말합니다. “우리 나라에서 나가라!” 라고. 이라크는 그들의 나라이며 국토입니다. 우리가 무슨 까닭으로 그들을 멸시하며 군대를 보내는지. 어디서 이런 오만방자함이 나오는 것인지. 이라크에 무장병력을 보내자는 파병 논의에서 이라크인들의 숨결과 목소리는 도대체 어디에 있습니까?

이대훈 (협동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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