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군축센터 파병 2003-10-06   744

지구한바퀴 돌며 전하는 ‘평화메세지’

물 위의 평화마을, 피스보트에서 온 편지

2003년 9월 22일, 43번째의 평화의 배 피스보트가 출항했다. 한달 동안 세계 곳곳을 누비며 평화메세지를 전할 ‘물 위의 평화마을’에 한국의 평화활동가들 3명과 기자1인이 동참했다. 이 배에 승선한 김박태식 씨(평화박물관건립운동, 비폭력평화물결)가 피스보트의 활동을 알리는 편지를 보내왔다. 피스보트가 전하는 평화의 메세지를 들어보자.편집자 주

9월 22일 오전 11시, 토오쿄오 남동부 하루미(晴海) 항에 힘찬 뱃고동이 울렸다. 예상 밖의 태풍으로 하루가 늦추어진 출항은 주최측에서 준비한 흥겨운 음악과 “잘 다녀오겠습니다”라고 크게 외치는 참석자들의 목소리, 배웅하러 항구에 나온 사람들의 환호, 그리고 우렁찬 뱃고동과 함께 진행되었다. 아무도 제대로 가르쳐주지 않는 어제의 역사를 찾아 배우고 오늘의 할 일을 깨달아 보다 나은 내일을 꿈꾸는 ‘평화의 배’. 이에 동참한 것만으로 모두가 기쁜 표정이다. 한국에서는 강제숙(평화시민연대), 이정용(한겨레신문), 임영신(이라크반전팀)이 동승했다.

토오쿄오를 떠나 대만, 베트남, 싱가폴과 인도, 스리랑카를 들러 수에즈 운하를 통과하고 아프리카, 유럽, 대서양을 건너 북미, 남미, 그리고 태평양을 헤엄쳐 다시 일본으로 돌아오는 석 달 동안의 세계 일주는 이렇게 막을 올렸다.

“역사상 거대한 배는 우리에게 무기와 종교의 강요, 질병 따위의 몹쓸 것들만 가져다 주었다. 피스보트는 평화의 메시지를 건네주는 첫 배가 될 것이다.”

‘물 위의 평화마을’에 몸을 싣고

타히티 마오이의 토착 원주민이 쓴 표현처럼 피스보트는 세계 곳곳의 사람들과 단체들을 연결하여 평화의 메시지를 전파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피스보트에 대해 좀더 소개하면, 유엔 경제사회이사회의 협력기구로서의 지위를 가지고 있듯 단순한 여행단체가 아니다. 스스로 국제비정부기구(NGO)라고 규정하는 이들은 스스로의 목적을 평화, 인권, 지속가능하고 민주적인 발전, 환경에 대한 존중이라 표방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1982년 일본 교과서 문제가 불거지고 세계 곳곳으로부터의 비난여론이 거세게 일었을 때 몇몇 일본 젊은이들은 도대체 일본이 무슨 잘못을 했고 그것을 풀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답을 구하기 위해 배를 띄우기로 했다. 이렇게 해서 1983년 9월 열흘 동안의 태평양 항해가 시작된 이후 지금까지 10여 회의 세계일주를 포함하여 43번 째의 평화의 배를 움직이고 있다.

피스보트의 첫번째 원칙, 권력으로부터의 재정독립

영리, 정치단체나 종교단체로부터의 독립을 첫 번째 원칙으로 삼고 있는 피스보트는 독특한 운영방식을 가지고 있다. 정부나 기업으로부터 지원을 전혀 받지 않고 모든 비용을 탑승객이 내는 운임으로부터 얻고 있다.

세계일주의 비용은 방의 수준이나 선택투어에 따라 차이가 나긴 하지만 우리 돈으로 약 1200만 원에서 1500만 원 정도가 든다. 일본의 다른 여객선에 비해 저렴한 편이지만 젊은 학생들에게는 그리 만만한 돈이 아니다. 그래서 이들은 자원활동제도를 통해 운임을 할인받기도 하는데, 한 시간 자원활동에 약 1000엔(1만 원) 정도가 할인된다. 지역화폐운동을 떠올리게 하는 이러한 제도를 통해 피스보트는 엄청난 양의 업무를 자원활동가의 도움을 받아 처리할 수 있고 더불어 돈이 없는 학생이나 활동가를 구제(?)한다.

적자까지 나누는 ‘책임파트너’

운동과 수익사업을 함께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정치적 상황이나 날씨에 따른 위험요소가 많은 여객업무에 있어서는 더욱 그렇다. 실제로 지난 여름 사스가 아시아를 강타했을 때 예약을 했던 승객 중 반 정도가 여행을 취소하기도 했다. 배를 전세를 내기 때문에 일정한 돈을 지불해야 하는데 적정한 수의 탑승객이 타지 않을 경우 적자가 생기기 마련인데 이러한 조건에서 자구책으로 고안된 것이 ‘책임파트너’ 제도. 책임파트너란 말하자면 무한책임사원과 같은 의미로서 만일 적자가 발생할 경우 개인의 돈으로 그 몫을 나누어지기로 약속한 사람들이다.

어찌보면 눈물겨운 고육지책이기도 하지만 모든 것을 송두리째 걸고 하는 백 여 명의 책임파트너가 없으면 화려하게 보일 수도 있는 세계일주도 새로운 패러다임의 평화운동도 가능할 수 없을 것이다.

피스보트에는 15명의 상임 활동가를 포함하여 총 70여 명의 스탭이 있고 200명의 자원활동가들이 스스로 일을 찾아 운영을 하고 있다. 이번 항해에서는 20여 명의 상임활동가들이 배 안에 함께 타고 있다.

600여 명이 쏟아내는 평화에너지들

600여 명이 함께 타고 있는 배 안은 그야말로 ‘물 위에 떠 다니는 평화의 마을’이다. 일정표를 빼곡이 채우는 각종 강연과 토론회, 취미활동모임 등으로 배 안은 쉴새없이 북적댄다. 물론 쉬고 싶은 사람은 마음껏 잠을 자도 되고 쇼파에 앉아 책을 보거나 하루종일 장기를 두어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다. 그러나 하나라도 더 경험하려 하고 더 배우려하는 승객들은 계획된 프로그램에 참여하기도 하고 스스로 프로그램을 만들기도 하면서 물 위의 마을을 활기차게 하고 있다.

대표적인 활동은 평화교육. 피스보트에 탄 승객들을 대상으로 여러 가지 교육이 펼쳐진다. 주제에 맞는 전문가를 각국으로부터 초빙하여 여러 가지 강좌를 열고 곳곳에서 토론을 벌인다. 배 안에서의 교육활동에 투여하는 이들의 노력은 대단하다. 실제로 초청강사를 위해 쓰여지는 많은 비용과 강사들의 언어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배려, 강좌에 대한 지원을 보면 피스보트가 얼마나 승객들의 교육활동에 비중을 두고 있는지를 가늠할 수 있다.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기획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자주기획(自主企劃)이라는 방식이다. 배 안에는 참으로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타고 있다. 이들의 끼와 재능, 지식을 적극적으로 북돋아 참가자들이 스스로 만들어내는 다채로운 기획행사를 장려하고 있다. 매일 아침 갑판에서는 태극권 강좌가 열리고 역사비디오를 함께 보고 토론하는 모임, 과거청산을 이야기하는 모임, 별을 보며 이야기하는 모임, 축구를 직접 하거나 야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모임, 샌드백을 치는 모임, 술 마시는 모임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다채로운 행사가 배 안을 가득 채운다. 이런 행사를 기획하는 방식도 재미있다. 매일 오전 배 안의 한 켠 레스토랑에서는 다양한 행사를 조정하고 장소를 배정하는 기획회의가 열리는데 일본 TV프로그램을 흉내낸 이 회의에서 2-3백 명의 탑승객들은 자신의 아이디어를 거침없이 제안하고 시간과 장소를 배정받아 동참자들과 함께 계획을 짠다.

또 하나 눈에 띄는 것은 GET(Global English/Espanol Training) 프로그램. 이름 그대로 영어와 스페인어 강좌인데 무료강좌와 유료강좌로 나누어지는 이 어학교육에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고 있다. 지구적 사고와 행동을 위한 적극적인 노력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아시아에 횡행하는 언어열풍이 배 안에까지 크게 자리잡고 있는 것이 다소 씁쓸하기도 하다.

‘지구대학’프로그램 통한 심화과정도 운영

피스보트에서 역점을 두고 있는 것이 지구대학(Global University)이라는 프로그램이다. 공개강좌나 공개토론회에서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집중적인 강연이나 토론을 하기 어렵다. 따라서 보다 강도높은 교육을 위해 지구대학이라는 과정을 만들었다. 매번 항해마다 15명에서 20명 정도의 학생을 모집하여 특별 프로그램을 운영하는데 이들은 원화 200백 만원 정도의 추가비용을 내고 특별강사와 함께 평화에 대한 이해와 기술을 습득하는데 이러한 석 달의 과정은 대학학점으로 인정되기도 한다. 지구대학 학생들은 항해가 끝난 후 사회단체 인턴이나 해외인턴을 권유받는데 물론 비용은 스스로 부담해야 한다. 이번 항해의 지구대학의 주제는 ‘다문화이해’이며 이를 위해 인도-스리랑카 현장학습, 일본과 아시아에서의 소수자 운동에 대한 이해 등 풍성한 커리큘럼이 계획되어 있다.

배 안에서 뿐만아니라 피스보트가 방문한 곳에서도 다양한 프로그램이 펼쳐지는 것은 물론이다. 정착한 곳에서 보통 하루나 이틀 정도 머무는데 이 때에 현지의 사회단체나 주민들과 연결하여 현장체험, 교류행사를 벌이는데 보통 예닐곱 가지의 선택투어가 준비되고 참석자들은 각자의 취향에 맞게 선택할 수 있다. 그 시간 동안의 자유여행도 물론 가능하다. 이러한 현장체험이 여행자들에게 풍부한 경험과 생생한 토론거리를 주게 되어 방문을 마치고 돌아온 참석자들 사이에서 여러 가지 모임이 만들어지게 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지속가능한 세계를 위한 제3세계 구호활동도

평화교육이 피스보트 운동의 모든 것이 아니다. 이들은 스스로 무척 정치적이고 역동적인 사회단체라는 것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각종 기획프로젝트를 위해 운영되고 있는 팀을 간단히 둘러보면 대강의 모습을 그려볼 수 있다.

UPA(The United People’s Alliance)는 지속가능한 세계를 위한 제3세계 구호활동이다. 컴퓨터, 학용품 등의 물자를 모아 방문지에 직접 전달하는 활동에 많은 사람들이 매력을 느끼고 있다. 피스보트는 정치적인 문제에 목소리를 내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다. 한반도 남북 항해 때에 남한에 들러 이들에게 민감할 수 있는 일본군위안부 문제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고 정대협 등 한국 사회단체와 연대하여 일본 대사관 앞 시위를 벌였던 것은 잘 알려진 일이다. 그 밖에 캄보디아에서 대인지뢰를 철거하고 학교를 짓자는 ‘100엔 캠페인’을 벌이기도 하고 최근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했을 때에는 다른 사회단체와 연대하여 대규모의 반전운동을 펼치기도 했다.

피스보트의 장점은 정치적인 내용을 문화적으로 담아낸다는 것에 있다. SPACE(Peace through the Arts), 스포츠를 통한 평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사람들에게 다가가고 마음을 움직여 행동을 불러일으킨다.

수 백 명이 한 배를 타고 지구를 돌며 현장을 체험하고 평화의 메시지를 전파하는 평화의 배, 그 독특하고 창조적인 운동방식을 보며 풍성한 영감을 받으리라 기대해본다.

김박태식/비폭력평화물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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