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군축센터 칼럼(pd) 2006-12-07   599

<안국동窓> 레바논 파병이라니

이라크에 가 있는 자이툰 부대의 철군 여론이 높아지고 여당에서도 처음으로 철군 일정 제시를 요구하는 가운데 한국정부는 또다른 파병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유엔의 요청에 따라 특전사 대원을 중심으로 400여명의 평화유지군(PKO)을 레바논에 파병하려는 것이다. 이번 파병 병력을 특전사 중심으로 구성하는 것은 레바논 남부가 전투지역인 점을 고려했기 때문이라고 국방부는 전하고 있다.

이라크 파병에 이어 원칙도 논의도 합의도 없이, 더구나 당사자의 요청도 없이 외국에 전투부대를 보내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군대란 다른 나라에 결코 쉽게 보내져서는 안되는 것인데 한국정부가 이번 파병에 어떤 원칙이 필요한지를 신중하고 깊이있게 검토한 흔적은 찾아보기 힘들다. ‘평화유지’를 내세우는 이번 파병은 언뜻 허위 명분으로 이라크를 침공한 미군을 도운 이전과 다르다 할 수도 있으나, 전투부대 파병이 꼭 필요하며 적절한지의 문제는 마찬가지로 남아 있다.

복잡한 상황에서 벌어지는 국제 평화유지활동에 엄격한 원칙이 따른다는 점이 너무 쉽게 무시되고 있다. 군대가 간다고 평화가 유지된다면 세계 평화는 벌써 이루어졌을 것이다. 전투부대가 외국에 제멋대로 보내지면 사태악화에 기여할 뿐이며 혹시라도 강대국의 사주를 받고 간다면 용병으로 전락하기 십상이다.

이 때문에 오래전부터 유엔 평화유지활동에 대한 여러 원칙들이 검토되어왔다. 예를 들어 바람직한 국제 평화유지활동은 인도주의의 목적으로, 인도적 접근으로, 당사자와의 상호소통을 바탕으로, 일관된 방법으로 수행해야 한다. 또 평화유지군은 모든 활동에 대해서 현지 당사자들과 국제사회에 책임을 질 것을 요구받는다. 그러나 한국군의 레바논 파병은 이러한 원칙들에 무엇 하나 부합하지 않는다. 한국군이 어떤 인도주의적 목적과 접근방식을 취하며 레바논에 간다는 것인지 매우 불투명하다.

무엇보다도 이번 파병의 근거가 된 유엔 안보리 결의안 1701호는 중립적이지도 평화유지를 위한 것도 아니며, 분쟁의 한 측인 이스라엘과 미국의 이해가 주도적으로 반영된 좋지 못한 결의안이다. 여기에는 이스라엘에게 ‘공격적’ 군사행동의 즉각 중단만을 촉구하는 내용만을 담고 있어서 ‘방어적’ 군사행동은 사실상 허용한 셈이다. 반면 헤즈볼라에게는 무장해제를 촉구하고 있다. 때문에 휴전 이후 이스라엘의 공격을 정당화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었다. 그러므로 이 결의안에 따라 파병된 군대는 지역의 평화유지가 아니라 이스라엘의 대리자 역할을 하게 될 공산이 크다. 중요한 것은 이스라엘과 미국이 아니라 현지인들에게 그렇게 인식된다면 상상하기 싫은 후과가 따르게 될지 모른다는 점이다.

이런 탓에 국제 평화유지군이 현재의 휴전상태를 유지하는 제 역할을 해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결의안이 이스라엘군의 공격행위 제어보다는 헤즈볼라에 대한 견제 역할을 우선시하기 때문이다. 지난 7월 이스라엘의 공격 이전에도 유엔 임시군이 레바논 남부에 주둔하고 있었지만 이스라엘의 공격을 막는 데는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했다. 과거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한국군은 이렇게 수십년 동안 누적된, 레바논 인들을 지키는 데 무능한 유엔군의 전통 속으로 파병되는 것이기에 결코 현지에서 중립적인 지위로 인식되지는 못할 것이다. 결의안이 촉구한 대로 헤즈볼라의 무장해제를 시도한다면 상당한 저항이 따를 수도 있다.

게다가 한국군의 파병 예정지인 레바논 남부는 몇몇 정부 당국자의 설명과 달리 전혀 안전하지 않다. 지난 7월 이스라엘 군 지휘부가 “시계를 20년 전으로 돌려놓겠다”고 공언하며 대대적인 파괴를 목적으로 감행한 공습도 여기에 집중되었다. 헤즈볼라의 핵심 근거지이기 때문이다. 헤즈볼라 본부가 있던 지역은 모든 시설이 완전히 파괴되었다. 더구나 레바논의 내정은 시리아와 이란, 이스라엘과 미국이 모두 개입하고 있어서 점점 더 불안하고 복잡한 국면으로 빠져들고 있다. 정부는 지난 10월 초 현지에 조사단을 파견하려다가 상황이 나빠지자 조사일정을 연기한 바도 있다.

파병 논란과 관련해 지난 7월 사태의 정치역학을 다시 짚어볼 필요가 있다. 특히 이스라엘의 대규모 집중 공습이 대규모의 민간인 피해만 남겼지 헤즈볼라의 주력과 지도부를 타격에는 실패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이에 비해 헤즈볼라의 반격은 전문적이고 치밀했으며, 휴전 후 복구과정에서도 놀라운 정치적·대중적 지도력을 보였다. 실제적인 피해와 함께 자존심에도 상처를 입은 이스라엘, 사실상 승리를 거두었다고 평가되는 헤즈볼라는 숨을 고르며 앞으로 벌어질 일대 결전을 준비하는 태세다. 더구나 이번 헤즈볼라의 승리에 고무되었을 중동의 많은 반미 저항세력들이 이스라엘 손을 들어준 유엔 안보리 결의안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불보듯 뻔하다.

이렇듯 레바논 사태는 레바논의 문제가 아니며 한국군은 레바논만을 위해 가는 것도 아니다. 레바논과 팔레스타인은 미국-이스라엘이 한편으로, 이에 저항하는 중동의 반미세력이 다른 편이 돼 한판 대결을 벌이는 곳이다. 그리고 지난 7월 이스라엘군을 충격에 빠뜨린 헤즈볼라의 정치적 부상에서 본 바대로 현재는 반이스라엘 저항세력들이 새로운 주도권을 행사하고 있다. 편향된 안보리 결의안을 근거로 파병되는 한국의 전투부대는 한국을 제외한 많은 이들에게는 미국과 이스라엘을 지원하는 전투력일 뿐 평화유지군이 아니다. 우리가 원해도 그런 역할을 해내기 힘든 상황이다. 이러한 처지는 이라크 파병 때와 너무나 흡사하다.

바로 몇달 전에 잔혹한 파괴가 벌어진 현장에서, 또 반세기 동안 이스라엘과 미국에 대한 분노가 누적된 곳에서, 그것도 특전사 대원들이 어떤 인도적 임무를 수행할 것인지, 그를 위해 어떤 소양을 쌓고 기술을 익혔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 만약 한국군이 장기분쟁 지역에 파견되어 수렁에 빠지는 것을 전문으로 하는 군대가 아니라면 이라크에 이은 레바논 파병은 아무런 이유가 없다. 지속적으로 공격당한 레바논에 현재 가장 필요한 것은 인도적인 지원이다.

* 이 글은 창비 주간논평(2006. 12. 5)으로 발표된 글입니다.

이대훈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 실행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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