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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군축센터    한반도 평화를 위해 비핵군축운동을 합니다

  • 칼럼
  • 2006.12.22
  • 720
코피 아난 유엔사무총장은 9월 19일 제 61차 유엔총회에서 행한 고별사에서 “유엔 사무총장의 일은 어렵고도 엄청난 도전이었지만 지구상에서 가장 멋진 이 직책에 근무했던 시절이 그리워질 것”이라고 회고하고 “희망에 찬 우리 공동의 미래를 위한 집요한 의지를 가진 사람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싶다”고 말했다.

그의 소망이 이루어질지는 미지수다. 그의 후임은 그가 ‘불법’으로 규정한 이라크 전쟁에 세계에서 세 번째로 많은 수의 점령군을 파견한 국가의 외교통상부 장관 반기문씨인 탓이다. 반기문 장관이 NSC와 외교통상부에서 한국정부의 대외정책을 조율하는 동안 한국정부가 국제사회의 평화를 위해 기여한 바는 거의 없다. 오히려 무장갈등의 악순환을 가져오는 중대한 실책에 가담했다고 평가해야 옳을 것이다.

고약하게도 한국정부는 이라크에 3000명의 추가병력을 보내면서 정부 공식문서에 ‘유엔의 요청’에 의한 것이라고 표기했었다. 첫 파병과 추가파견 요청 모두 유엔이 아닌 미국으로부터 받은 것이었지만 한국정부는 아직도 유엔의 요청으로 이라크에 재건지원부대를 보냈다고 ‘공식적으로’ 주장해오고 있다.

유엔의 요청도 없이 유엔의 이름을 앞세워 이라크 파병, 아프간 파병을 지속해왔던 한국정부에게 레바논 유엔평화잠정군(UNIFIL) 파견 요청은 한국이 푸른 유엔의 모자를 쓰고 실질적인 평화유지활동에도 기여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는데 적합한 기회였을지도 모른다. 레바논 휴전을 다룬 유엔결의안 1701호 채택 전후 한국정부로부터 한국군의 레바논 파병을 검토할 수 있다는 공식 비공식 언급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반기문 장관의 유엔사무총장 당선은 한국의 국제기여, 특히 PKO를 통한 기여의 확대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분위기에 일조했다. 반기문 유엔사무총장 내정자도 한국이 유엔평화유지군으로 파견한 군인력이 고작 31명에 지나지 않는다며 국제사회 기여의 필요성을 강조하였다. 결국 한국정부는 11월 28일 국무회의에서 이라크 파병 1년 연장 동의안과 더불어 레바논에 350여명 규모의 특전사를 유엔평화유지군으로 파견하는 동의안을 심의·의결했다. 동의안은 현재 국회에 계류되어 있다.

어쨋든 한국정부가 유엔을 통한 국제사회의 평화유지에 과거보다 더 관심을 갖게 되었다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그 관심이 얼마나 진지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적지 않은 의문이 제기된다. 한국정부는 레바논에 군대를 보내야 한다고 말하지만, 레바논-이스라엘간 무장갈등의 원인이 뭔지, 해결방안에 대한 정부의 생각은 무엇인지 전혀 밝히지 않고 있다. 더불어 정부는 바람직한 레바논-이스라엘 갈등분쟁 해소방안에 대해 국민과 적절한 의사소통을 하기 위한 최소한의 노력도 하지 않고 있다. 한마디로 정책 없이 군대가 먼저 가는 형국이다.

정부의 정책이 전혀 없다고 할 수는 없다. 정부가 이스라엘과 레바논의 무장갈등에 대해 취해온 각종 단편적인 태도를 통해서 정부의 대중동-팔레스타인 정책기조를 추론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기존 한국 정부의 입장으로 볼 때, 한국 정부는 레바논에서 무장갈등을 예방하거나 갈등의 당사자들을 공평하게 중재하기에 합당한 조건과 자격, 정책적 기반을 전혀 갖추지 못하고 있다.

한국정부는 헤즈볼라를 ‘반미 테러단체’로 규정해왔고 노무현 정부 들어서도 각종 테러단체동향 보고서 목록에 헤즈볼라를 기재하는 것을 계속해오고 있다. 이는 레바논 정부가 헤즈볼라를 이스라엘을 레바논 남부의 불법 점령에서 몰아낸 ‘저항세력’이자 현 정부에 각료를 배출한 ‘정치정당’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과도 심각한 차이가 있다. 이같은 인식을 가지고 레바논 남부에서의 무장갈등을 중재하고 화해시키며 예방하는 작업이 가능한 지 의문이다.

이번 레바논 파병의 발단이 된 ‘이스라엘-헤즈볼라, 이스라엘-하마스 교전’에 대한 외통부의 인식 역시 매우 심각한 수준이다. 외교통상부는 이스라엘의 레바논 공격이 한창이던 2006년 7월 15일 대변인 성명을 통해 “정부는 최근 이스라엘과 헤즈볼라 및 하마스간 충돌로 인해 중동 정세가 악화되고 있는 것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명한다.”고 운을 뗀 후 헤즈볼라와 하마스의 ‘이스라엘 병사 납치 행위’에 대해서는 ‘즉각 석방을 촉구’한 반면, ‘이스라엘군의 공습으로 민간인이 희생’되는데 대해서는 ‘유감’만을 표명하는데 그쳤다.

사실, 하마스의 이스라엘 병사 납치 행위 전날, 이스라엘 병사들은 팔레스타인 의사 등 민간인 2명을 납치했었다. 헤즈볼라의 수감자 교환 시도는 이스라엘에 존재하는 비밀구금시설인 ‘1391 수용소’와 깊이 연관되어 있다. 헤즈볼라의 이스라엘 병사 ‘납치’가 레바논 영토에서 이루어졌는지 이스라엘 영토에서 이루어졌는지는 명확히 밝혀진 바 없다. 더구나 병사 2명의 ‘납치’가 과연 대량살상무기의 무차별 투하와 대규모 육상병력의 투입을 포함하는 전쟁행위를 정당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도 한국정부는 함구와 유보로 일관하고 있다. 한국 외교통상부가 레바논 사태에 대해 철저히 이스라엘의 시작에서 접근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유엔인권이사회에서도 한국정부는 레바논 문제를 진지하게 다루는데 동참하지 않았다. 2006년 8월 12일, 유엔 인권이사회는 특별회의를 열어 레바논 민간인에 대한 공격 등 이스라엘의 인권침해 여부를 다룰 조사위원회 구성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이사회 47개 나라 중 과반이 넘는 27개국이 찬성표를 던졌고 11개 나라는 반대했다. 2006년 신설된 인권이사회의 신임이사국인 한국은 다른 7개 국가와 함께 기권표를 던졌다. 조사위원회는 그 후 “민간인 및 민간 목표물에 대한 이스라엘군의 의도적이고 치명적인 공격들은 `집단적 처벌'에 해당되는 불법”이라는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한국정부는 또한 이스라엘이 레바논에서 사용한 집속폭탄이나 인 성분이 함유된 화학무기, 최근 밝혀진 공습지역의 방사능 피폭 문제, 이스라엘이 레바논 남부 점령지에 매설한 다량의 대인지뢰 문제 등과 같은 중대한 불법적 행위에 대해서도 유엔인권이사회 이사국다운 관심을 전혀 보이지 않아 왔다.

한국 정부는 또한 레바논 문제와 긴밀히 연결된 팔레스타인 문제에서도 철저히 친이스라엘적 입장을 취해왔다. 한국 외교통상부는 2003년 12월 8일 10차 유엔임시총회에서,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분리장벽 건설을 국제사법재판소에 회부하도록 의결하는 표결에서 기권하고 말았다. 이 결의안은 당시 찬성 90대 반대 8표로 통과되었다. 레바논 남부의 문제가 팔레스타인 난민들의 고통과 저항의 역사와 깊이 연관되어 있다는 점에서 정부의 팔레스타인 정책 부재는 레바논 정책의 부재의 다른 표현이기도 하다. 한국정부는 2005년 5월 이후에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와 교섭대표부를 설치했다. 예전에는 이스라엘 대사관이 이를 대신하고 있었다.

정부의 편향된 레바논 인식은 정부가 레바논 파병의 근거로 유엔결의안 1701호를 금과옥조처럼 제시하고 있는데서도 확인된다. 레바논 파병논의 1701호 결의안에 대한 비판적 분석이 없다는 점, 1701호 결의 외 레바논-이스라엘 관련 다수의 결의안에 대해 적절한 소개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은 정부 정책의 중대한 편향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1701호 결의안이 나오기까지 미국은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을 비난하고 즉각적인 휴전과 철군을 요구하는 결의안들에 대해 계속 거부권을 행사했었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심지어 공습이 진행되는 동안 라이스 미 국무장관과 부시대통령은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을 ‘새로운 중동을 위한 산고’라며 두둔하기까지 했었다. 무수한 민간인인 희생된 뒤 레바논 침공 한달만에 겨우 합의된 유엔안보리 결의안 1701호는 이스라엘이 이후 미국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전했을 정도로 친이스라엘적 내용을 다수 포함하는 결의안으로 귀결되고 말았다.

여러 분석을 통해 상세히 소개되었듯이 이 유엔결의안은 헤즈볼라에게는 모든 공격행위(attacks) 중단을, 이스라엘에게는 공격적(offensive) 군사행동 중단을 요구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자위권 차원에서의 방어(defensive) 작전은 언제든지 가능하게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 준 셈이다. 실제로 이스라엘은 헤즈볼라의 무기보급을 감시한다는 이유로 최근까지도 레바논 영공과 영해를 드나들며 위협적인 군사시위를 반복하고 있다. 1701호 결의안이 이스라엘의 즉각 철수를 요구하지 않은 채 리타니강과 레바논-이스라엘 국경사이에 완충지대를 설치하도록 한 것도 이스라엘에게 수개월간의 추가적인 군사작전 시간을 허용하였다. 이스라엘로서는 이 지역에 유엔평화유지군과 레바논군이 진주할 때까지 철수하지 않을 명분을 얻게 된 셈. 실제로 이스라엘군은 12월 4일까지 이번 침공의 점령지 중 하나인 가자르에 철수하지 않고 남아 있었다. 무엇보다도 결의안 1701은 1967년 이래 지속되어온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과 이에 대한 숱한 대이스라엘 유엔결의의 이행, 특히 불법점령지역인 ‘세바팜스’ 반환에 대한 언급을 생략한 채, 시리아의 레바논 철수와 모든 무장세력의 무장해제를 결의한 유엔안보리결의 1559호만을 인용, 헤즈볼라의 무장해제만을 언급하고 있다. 유엔결의안 1701호가 미국과 서방의 시각에 편중되었다고 비판받는 가장 결정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유엔안보리는 1967년 세바팜스를 비롯한 이스라엘의 점령지 철수를 요구하는 결의안 242호를 채택하였고, 1973년 4차 중동전쟁 이후에도 유엔 결의안 338호를 채택하여 결의를 재확인한 바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이들 결의안을 이행하지 않았다. 이스라엘은 이어 레바논 남부에 존재하던 PLO의 이스라엘 공격을 빌미로 1978년 레바논을 침공하고, 1982년, 1994년, 1996년, 1999년, 2000년 등 수차례에 걸쳐 레바논을 점령한 후 레바논 내 친이스라엘 무장세력을 도와 내전에 개입했다. 유엔은 이에 대해서도 1978년 결의안 425호를 채택, 현재의 유엔잠정군을 파견하였으나 유엔군은 아무런 중재 혹은 평화유지기능도 수행하지 못해왔다. 사실 이번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 당시에도 유엔군은 속수무책이었다. 한국군이 레바논 평화유지를 위해 파견한다는 유엔잠정군은 지난 28년간 레바논 평화에 그다지 기여하지 못한 ‘형식상의 평화유지군’인 셈이다.

한편 무장갈등의 또다른 당사자이며 시아파 이슬람 저항정치조직인 헤즈볼라는 1982년 이스라엘 점령군의 비호 아래 최소 수백명 이상의 팔레스타인 난민이 학살된 샤틸라 학살 사건 전후 형성되어 급격히 세를 얻었고 결국 2000년 이스라엘의 레바논 철군을 이끌어내는데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이를 계기로 헤즈볼라는 레바논에서 강력한 정치세력이자 연립정부의 일원으로 자리잡아 왔다. 전체로서 결코 ‘친이란적’이라 할 수 없는 레바논 내각이 유엔안보리 결의 1559호, 1701호에도 불구하고 헤즈볼라의 무장해제를 반대해온 것은 이같은 그들의 영향력과 대중의 지지 때문이다. 특히 지난 7·8월 이스라엘 침공 이후 헤즈볼라의 영향력은 크게 확대되었다. 이스라엘의 공습과 침공을 막는데 레바논 정부군이 전혀 기여한 바 없다는 점, 이스라엘의 군사력과 대적해 패퇴하지 않은 유일한 무장집단이라는 점, 레바논에서 국가가 제공하지 못하는 사회보장 프로그램을 시행하는 유일한 정치세력이라는 점 때문에 이스라엘에 침공의 빌미를 제공했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헤즈볼라의 지지도는 단기간에 사그라들지 않을 전망이다. 이들에 대한 무장해제를 시도한다는 유엔평화잠정군의 임무는 실현불가능한 것이며 현단계에서 올바른 우선순위인지도 의문이다.

이렇듯 유엔결의 1701호가 근원적 한계와 편향을 가진 탓에 그 결의에 기초해 파견될 유엔잠정군의 활동이 지난 28년간의 무기력을 벗어날 가능성은 희박하다. 레바논에 증파될 유엔 평화잠정군이 직면할 정치군사적 상황을 예측하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지만, 유일하게 예측가능한 것이 있다면 그들에게 맡겨진 임무를 온전히 수행할 수 없으리란 점이다.

휴전 후 헤즈볼라는 허약한 정부의 개혁, 시아파 무슬림의 내각 지분확대 등을 요구하는 대규모 군중시위를 조직하고 있다. 반면 헤즈볼라의 집권에 대한 미국-이스라엘의 우려, 그리고 레바논 내 반헤즈볼라 소수정파의 위기감은 갈등의 불씨로 작용할 수 있다. 특히 미국 등 친이스라엘 진영이 레바논의 내정에 무력으로 간섭하거나 레바논 내 정치변동에 인위적으로 개입하려 할 경우 레바논은 이라크와 더불어 중동 전체로 확대될 거대한 무장갈등의 도화선이 될 지도 모른다.

이스라엘이 세바팜스 등의 점령지를 반환하고 수감자 석방에 응하며, 미국이 이란과 시리아와의 협력노선으로 선회할 경우 레바논 내외에서의 정치 군사적 갈등은 완화될 수 있는 것으로 보기도 한다. 아마도 이러한 시나리오는 레바논에서 그릴 수 있는 가장 건설적인 시나리오라 할 것이다. 그러나 헤즈볼라를 친이란 혹은 친시리아 정당 정도가 아니라 이들의 배후조종을 받는 테러단체 쯤으로 폄훼하고 이란에서 레바논으로 이어지는 소위 ‘시아벨트’를 ‘중동민주주의’에 대한 최대위협으로 간주하는 미국과 이스라엘, 그리고 우리 정부 자신의 일방주의적 시각이 상황인식을 지배하는 한 레바논과 중동에서의 평화의 길은 험난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모든 상황들을 종합해 볼 때, 한국정부가 이러한 레바논의 역사와 정치군사적 환경, 그리고 다양한 유엔결의에 대한 균형적 판단 없이 레바논에 군대를 보내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며, 그 진정성을 의심받을 만한 일이다.

정부와 국회는 레바논과 팔레스타인에 대한 편향된 시각과 친이스라엘 일변도의 외교활동 기조를 그대로 유지한 채 군대부터 파견하려고 조바심칠 게 아니라, 먼저 국제사회에 실질적이고 건설적인 기여를 하기에 합당하도록 우리나라의 정책방향부터 제대로 가다듬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도 올바른 중동평화 방안에 대한 국민적 토론부터 차분히 전개해 나가야 할 것이다. 정부와 국회는 파병에 앞서 유엔 인권이사회 이사국답게, 유엔사무총장을 배출한 국가답게 대외정책에서의 평화적 원칙과 민주적 기준부터 분명히 세워야 한다. 이라크의 사례에서 체험했듯이 잘못된 파병은 국제사회에 기여하기는 커녕 무장 갈등을 부추기고 국민의 안전을 위협하며 국가의 위신과 가치를 실추시킬 뿐이다. (끝)

이 글은 <르몽드디플로마티크 한국판> 2006년 12월호에 게재된 칼럼입니다.

이태호(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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