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군축센터 일반(pd) 2004-01-08   536

[기고] 반민족적이기까지한 참여정부

친일진상규명특별법 제정반대에 앞장서는 정부각료

2003년의 부안사태를 통해 참여정부는 스스로 선전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대단히 반민주적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그런데 2004년 벽두부터 참여정부가 반민족적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사건’이 벌어졌다.

한국의 현대사는 식민과 독재의 역사로 만신창이가 되었다. 식민과 독재의 역사는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로 이어져 있다. 이승만 독재는 일제 부역자들을 앞세워서 민족주의자들을 죽이는 방식으로 이루어졌고, 박정희 독재는 일제의 관동군 장교로서 독립군 토벌에 나섰던 대표적인 일제 부역자인 박정희가 권력을 잡고 민족주의자들을 죽이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이처럼 독재의 역사는 식민의 역사를 되살리는 반민족의 역사였다. 따라서 우리에게 반독재 민주화의 역사적 과제는 언제나 식민의 역사를 청산하는 민족적 과제와 한 몸을 이루고 있다. 이 민족적 과제의 핵심은 일제 부역자와 친일파들을 낱낱이 기록하고 그들의 죄에 맞게 죗값을 치루도록 하는 것이다. 식민의 역사를 올바로 청산하지 않는 한, 우리는 언제까지고 식민의 역사 속에서 살 수밖에 없다. 아무리 시간이 흐르더라도 식민의 역사에서 벗어나고자 한다면, 우리는 반드시 일제 부역자와 친일파들의 청산이라는 민족적 과제를 이루어야 한다.

그러나 이 민족적 과제를 이루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일제 부역자와 친일파들이 거의 반세기에 걸친 반민족적 독재의 시대를 지나며 지배세력으로서 지위를 굳혔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일부 의원들이 2003년에 ‘일제강점하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친일진상규명특별법)의 제정을 추진한 것은 대단히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나 이 나라의 제1당인 한나라당의 반대로 말미암아 ‘친일진상규명특별법’은 제정되지 못했고, 해를 넘겨 논의를 계속하고 있지만 한나라당은 여전히 집요하게 이 법의 폐기 혹은 무력화를 시도하고 있다. 한나라당을 ‘딴나라당’으로 부르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참여정부가 ‘여당’인 열린우리당에서 주도하고 있는 이 법의 제정에 명백하게 반대하고 나섰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일제 부역자와 친일파의 뿌리가 얼마나 깊은가를 새삼 확인해준 ‘사건’이라고 할만하다.

2004년 1월 7일, 국회 법사위 제2법안심사소위원회(위원장 한나라당 김용균 의원)에서는 민족정기를 되살리기 위한 ‘친일진상규명특별법’을 둘러싸고 큰 논란이 빚어졌다. 한나라당 김용균 의원(산청/합천)과 심규철 의원(보은/옥천/영동)이 이 법을 무력화하기 위해 무진 애를 썼다. 그 결과 애초의 법안을 크게 약화시킨 잠정합의안이 마련되었다. 그런데 열린우리당 김희선 의원과 한나라당 최연희 의원을 중심으로 마련된 이 잠정합의만마저도 김용균 의원의 반대로 소위를 통과하지 못하고 말았다.

이처럼 한나라당이 ‘반민족당’의 행태를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는 상황에서 김주현 행자부 차관이 이 법에 명백히 반대하는 의견을 밝혔다. 김주현 차관이 소위에서 밝힌 반대의견의 골자는 두가지로 알려졌다. 하나는 “법안내용 중 처벌대상과 관련, 후손들이 반발해 국민적 갈등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친일반민족행위를 했던 분들이 대부분 사망했거나 연로해 증인과 참고인의 일방적인 진술을 막을 장치가 없다”는 것이다. 이 나라의 행정부 차관이라는 사람이 상식적으로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발언을 한 것이다.

첫째, ‘후손들이 반발해 국민적 갈등이 일어날 수 있다’는 주장에 대해. 정부는 일제 부역자와 친일파 후손들의 반발은 우려하면서 그들을 처단하고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자는 목소리에 대해서는 눈을 감고 귀를 막겠다는 것인가? 식민의 역사를 바로잡지 못해기 때문에 이완용과 송병준의 후손들마저 조상의 재산을 되찾는답시고 설치는 세상이다. 참여정부가 진정한 민주정부라면 이런 반민족적 상황을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처럼 일제 부역자와 친일파의 후손들을 감싸고 돌겠다면, 차라리 참여정부의 간판을 내리는 것이 옳을 것이다.

둘째, ‘증인과 참고인의 일방적인 진술을 막을 장치가 없다’는 주장에 대해. 김주현 차관은 우리 학계를 ‘핫바지’로 아는가? 일제 부역자와 친일파들의 일방적인 진술이 ‘정사’로 둔갑된 것이야말로 문제이다. 이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 많은 학자들이 오랫동안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쳐 애써왔다. 김주현 차관의 주장은 이런 많은 학자들의 노력을 완전히 무시하는 것이며, 결국 일제 부역자와 친일파들의 편에 서서 ‘역사바로세우기’를 가로막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서 지탄받아야 마땅하다.

결론적으로 김주현 차관은 “정부가 주도적으로 (친일진상규명에) 나설 게 아니라 학계로 넘기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것도 역시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권고’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김희선 의원 등이 ‘친일진상규명특별법’을 제정하자고 나섰을 때, 이 의원들이 ‘학계’의 연구성과를 모르고 이 법을 제정하자고 했겠는가? 김주현 차관은 김희선 의원을 비롯한 이 법안의 발의자들의 노력을 무시했다. 또한 ‘학계’에서는 이와 관련된 연구성과가 이미 많이 축적되어 있다. 김주현 차관은 이런 ‘학계’의 연구성과를 무시하고, 관련된 학자들을 다시 한번 무시했다.

김주현 차관의 발언은 국무총리실 산하 국무조정실의 의견을 대변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한 이 의견은 2003년 말에 행자-외교-국방-보훈처 등 유관부처 실무자들이 만나 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므로 이에 대해서는 마땅히 고건 총리가 책임을 지고 해명해야 한다. 무엇보다 관련 국무조정회의의 회의록을 즉각 공개해야 한다. 어떻게 해서 이런 반민족적 의견을 제시하게 되었는지를 소상히 밝히고, 주도자는 즉각 사퇴하도록 해야 한다. 민족정기를 세우기 위한 고된 노력을 무시하거나 무력화하려는 자들이 이 나라의 행정을 좌우해서는 안 된다. 이런 식으로 식민의 역사가 되풀이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일본이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는 것에 분노한다. 또한 우리는 중국이 고구려사를 자기네 역사라고 우기는 것에 분노한다. 그러나 이보다 더 분노해야 하는 것은 식민의 역사를 내버려두겠다는 정부의 몰역사적 반민족적 태도이다. 김주현 차관의 발언은 참여정부의 ‘반민족 선언’이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정부에서 대놓고 이런 ‘반민족 선언’을 하는 상황에서 외세의 이런저런 침탈행위에 제대로 대응할 수 없는 것은 너무나 분명하다. 정부가 어떻게 해서 이런 식으로 시대의 흐름을 정면으로 부정하고 거스르게 되었는가에 대해 집중적인 감사가 있어야 할 것이다.

참여민주주의의 활성화를 내세우는 참여정부가 참여민주주의는커녕 일제 총독의 망령에서조차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너무나 유감스러운 일이다. 제1당인 한나라당이 명백히 반민족적 노선을 걷고 있는 상황에서 참여정부가 한나라당과 똑같은 입장을 보였다는 사실에 대해 참으로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개혁의 온기를 바라는 국민에게 찬물을 끼얹는 지독한 배신이 아닐 수 없다. 노무현 대통령은 미국에 대해 떳떳한 외교를 펼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러나 이렇듯 일제 총독의 망령조차 시원하게 벗어버리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 누가 그의 말을 믿을 수 있겠는가?

홍성태 참여연대 정책위원장, 상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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