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훈의 평화바이러스> 우리 마음 속의 남과 북

남북관계에 관한 한 대한민국 국민은 다들 ‘전문가’임을 자임한다. 그러나 막상 이야기를 길게 하다보면 사람들이 남과 북의 과거-현재-미래에 대해 많이, 오래도록 생각을 했거나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지 못할 때가 많다.

사실상 전쟁행위에 다름 아닌 서해교전, ‘시민’과 ‘인민’이 만나 한마음이 된 부산아시아경기대회, 남북 철도·도로 연결 사업 등은 모두 최근 한두 해 사이 남북 간에 있었던 중요한 일이지만 각각의 성격은 사뭇 다르다. 그 각각엔 ‘적대’와 ‘공존’, ‘통일의 열망’이 배어 있다. 남과 북의 관계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어쨌거나 사람들은 남북관계에 대해 다들 하나의 상을 갖고 있다. 남과 북 또한 이 ‘관계’에 대해 때로는 같게, 때로는 다르게 인식하고 있다. 서로가 서로를 ‘적’으로 인식하며, 북녘이 ‘미수복 지구’가 될 때도, 남녘이 ‘미제의 식민지’가 될 때도 있다. 어떨 땐 서로를 ‘독립된 주권국가’로 인식한다. 또 어떤 땐 ‘적대’와 ‘대화’를 병행해야 할 이중적 존재가 된다.

20세기 중반에 시작해 21세기까지 이어지고 있는 남과 북의 분단. 여러분은 남과 북의 관계를 어떻게 인식하는가. 그 인식에 담겨 있는 ‘평화’와 ‘통일’에 대한 비전은 또 어떠한가.

1. 헌법과 국가보안법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헌법 3조).

이 규정대로라면 휴전선 북녘 땅은 대한민국의 영토에 해당한다. 그렇다면 지난 반세기동안 존재했고, 지금도 의연히 존재하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그곳의 2300만여 인민은 도대체 무엇인가. 그러나 나라 안팎의 인권단체들은 물론 유엔인권위원회가 지속적으로 폐지를 권고하고 있는 국가보안법의 헌법적 토대로 이 조항을 원용하는 사람들이 많다. 국가보안법은 북한을 ‘반국가단체’로 인식한다.

헌법 4조를 보자.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

‘평화적 통일 추진’을 규정한 이 조항에서 문제가 되는 구절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란 부분이다. 한국사회에서는 많은 이들이 이를 시장경제질서 또는 자본주의체제와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는 개념을 정립한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는 이를 ‘인간의 존엄, 자유 및 평등을 거절하는 전체주의적 국가의 대립물’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박홍규 영남대 교수(법학)는 “여기서 ‘거절’이란 바이마르 헌법을 파괴한 극우익 과격주의로서의 나치즘, 그리고 바이마르 헌법에 반대하고 현행 헌법을 거절한 극좌익 과격주의를 말하는 것”(<그들이 헌법을 죽였다>중에서)이라고 해석했다. 전체주의(적 정당)에 반대하는 것이지 특정 사상과는 무관하다는 것이다. 국가보안법과 관련해 곰곰 되새겨보아야 할 부분이다.

2. 남과 북의 유엔 가입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1991년 9월18일 유엔에 분리, 동시 가입했다. 유엔헌장 4조를 보면, 유엔 가맹국의 자격 조건은 국제법상의 주권국가로서 유엔헌장의 의무를 수락하고 이러한 의무를 이행할 능력과 의사가 있는 ‘평화애호국’이다. 두 개의 독립된 주권국가. 그렇다면 통일은 왜 필요한 것일까. 한 핏줄을 나눈 단일민족이고 ‘조선은 하나’이며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기 때문일까. 그게 이유의 전부일까.

3. 남북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

남과 북은 1991년 12월12일 ‘남북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남북기본합의서)를 채택했다. “…쌍방사이의 관계가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 관계임을 인정하고…”. 기본합의서 전문의 남북관계 규정이다.

4. 헌법재판소의 판시

헌법재판소는 1991년 1월16일, 현재 북한은 ‘반국가단체’ ‘적’이면서 동시에 통일을 위한 대화와 협상의 대등한 주체인 이중적·모순적 법적 지위를 갖고 있다고 판시한 바 있다.

5.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조선노동당 규약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영도”(북한 사회주의 헌법 11조)한다는 조선노동당의 규약 전문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조선노동당의 당면 목적은 공화국 북반부에서 사회주의의 완전한 승리를 이룩하여 전국적 범위에서 민족해방과 인민민주주의의 혁명과업을 완수하는데 목적이 있으며 최종목적은 온 사회의 주체사상화와 공산주의사회를 건설하는데 있다”(2000년 <북한백서>중에서).

이 구절대로라면 대한민국 정부가 지배하고 있는 휴전선 이남의 한반도는 ‘미 제국주의가 강점하고 있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남반부’에 해당한다. 그렇다면, 이 구절 또한 대한민국 헌법 3조와 그 정신이나 내용이 다를 바 없다. 대한민국의 헌법 3조와 국가보안법이 그렇듯이, 노동당 규약의 전문 규정 또한 남과 북의 유엔 가입이나 남북기본합의서, 6·15남북공동선언의 근본정신과 충돌한다.

6. 정전협정

1953년 7월27일 북한과 중국, 그리고 유엔군을 대표하여 미군 장성이 서명한 정전협정(대한민국은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북진통일’을 주장하며 정전협정체결에 반대해 서명주체에서 빠졌다)을 보면, 남과 북은 국제법상 ‘종전’이 아닌 ‘정전’상태다.

전쟁 발발일은 모두 기억하지만, ‘전투행위를 중단-또는 끝낸-날’을 기억하는 이는 많지 않은 사회, ‘대북 태도’(북한은 어떻게 대할 것인가)보다는 ‘대북관’(북한을 어떻게 볼 것인가)을 중시하는 사회…. 여러분은 위의 1, 2, 3, 4, 5, 6 가운데 어떤 규정(또는 조합)이 남북관계의 역사와 현실, 미래의 비전을 잘 담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이제훈 한겨레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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