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군축센터 파병 2003-11-11   320

[기고] 누가 비전투병은 점령군이 아니라고 강변하는가?

현재 정치권의 파병논의는 전투병이냐 비전투병이냐의 논의로 좁혀져 있다. 그러나 거칠지만 결론부터 말하자. “걸레는 빨아도 걸레”이다. 현 상황에서는 비전투병 파병도 미군의 이라크 점령에 동참하는 행위이다. 고액의 위험수당과 사망보상을 미끼로 한국 국민을 전쟁터에 밀어 넣는 행위이다.

무엇을 위해서? 미군의 총알받이가 되기 위해. 그리하여 미군 피를 흘리지 않고 미국이 이라크 점령을 영구화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그리하여 미국이 이라크 석유권을 장악하고, 중동지역 개입을 강화하고, 세계경제의 젖줄을 움켜쥘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그리하여 이라크의 평화, 중동의 평화, 나아가 세계의 평화를 건설하기 위해!

대동아공영권의 건설을 위해 황국신민으로 태평양전쟁이라는 성전에 나섰던 한민족은 역사에 빛나는 이 식민지 전통을 오늘에 이어받고 있는 것인가? 대동아공영권이 팍스 아메리카나로, 황국신민이 혈맹으로, 태평양전쟁이 이라크전쟁으로 바뀐 것 말고 무엇이 바뀌었는가? 학도병과 정신대가 ‘비전투병’으로 바뀐 것 말고 무엇이 바뀌었는가?

혹자는 이라크 평화를 위해 파병을 해야한다고 주장한다. 이라크 평화가 현재 ‘치안부재’로 위협받고 있으므로. 일제하 조선반도도 마찬가지 ‘치안부재’에 시달렸다. ‘치안부재’로 시달리던 중국과 지나반도의 평화를 위해 식민지 조선은 학도병도 모자라, 비전투병의 극치라고 할 정신대까지 파병했다. 이제 한국은 이라크의 ‘치안부재’를 심히 우려하여 비전투병을 보내려고 한다.

누가 비전투병은 점령군이 아니라고 강변하는가? 공병대이던, 의무대이던 파병되는 군대는 미군의 지휘 아래 들어간다. 파병의 근거라는 유엔안보리의 결의안 1511호에 따라서. 미군의 작전지휘권 행사에 익숙한 양국 군으로서는 지극히 자연스럽겠다. 그러나 이라크인이 보기에 한국군도, 비전투병도 미군과 같은 점령군이 아닌가?

일제의 군사점령이 식민지 백성뿐만 아니라 일본인에도 해가 되었으며, 세계평화를 위협했다는데 동의한다면 한국이 가야 할 길은 뻔하다.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 평화를 아끼고, 한민족의 일원으로 한반도의 평화를 염원하며, 미국 강단에서 미국의 건설적인 발전을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한국 정부에 호소한다. 파병결정 자체를 철회할 것을.

서재정 교수 (코넬대학 정치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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