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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군축센터    한반도 평화를 위해 비핵군축운동을 합니다

  • 일반
  • 2003.11.04
  • 579
10월말쯤 되면 어김없이 예비군 훈련을 알리는 핸드폰 문자 메시지가 울린다. 이번이 내 인생 마지막 예비군 훈련이라고 생각해도 조건반사처럼 짜증이 나는 것을 어쩔 수 없다. 스팸메일보다 더 높은 강도의 짜증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예비군 훈련을 알리는 문자 메시지다. 이 총체적 짜증의 바다에서 한가지 실오라기 같은 위안을 건진다면 이번 훈련이 훈련장에 가서 받는 훈련이 아니라 동사무서가 주최하는 훈련이라는 것이다.

예비군 통지를 받고 나면 일주일 전부터 머리가 아파온다. 훈련의 고단함이 걱정되는 것이 아니라 아무런 지식가치도 없는 교육을 6시간 이상 받아야 한다는 공포감이다. 군대 제대한 적이 언제든가. 살이 쪄서 몸에도 맞지 않는 옷을 입고 훈련장으로 달려가면 도착하자마자 잔소리가 시작된다.

"선배님들 복장 단정하게 해주십시오."

"선배님들 핸드폰 꺼주십시오."

"똑바로 줄서세요."

이 소리를 7년 동안 들었는데 적응은커녕 짜증은 점점 강도를 더할 뿐이다. 등록과 동시에 훈련복 어깨에 '멸공' 이라는 글귀가 적힌 끈을 매달아 준다. 아무리 거부하고 싶어도 어쩔 수 없다. 그 짜증스러움이 대부분 예비군들의 얼굴에 잔뜩 묻어 있다.

드디어 교육을 시작한다. 동 대장의 안보에 대한 설명이 시작된다. 아무리 집중해도 무슨 말인지 하나도 알아듣기 힘들다. 아니 사실은 집중이 안된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다. 그 다음 '북한의 위험성', '9.11 테러', '가스살포 대처요령' 등에 관한 내용이 비디오로 나온다. 작년과 레퍼토리 하나 틀리지 않은 재방송이다.

예비군들은 잡담을 하거나, 핸드폰에 시선을 둔다. 그러면서 연신 하품을 하고 있다. 성능 좋은 핸드폰을 가지고 있는 예비군들은 오락 삼매경에 빠진다. 구형 핸드폰을 가진 예비군들의 눈빛으로 단언컨대 우리나라 사람들의 잦은 휴대폰 교체에 예비군 훈련이 한몫 한다.

직장에서, 사회에서 눈이 빛나던 사람들은 예비군 훈련장에만 오면 병든 닭이 된다. 1시간이 마치 사우나실에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이제 겨우 한 시간이 끝났을 뿐이다.

두 번째 시간은 적군 포획 요령. 조교들의 시범이 끝나면 예비군들의 차례가 된다. 그러나 적을 포획하러 가는 군인들의 발걸음은 거북이가 집단 소풍가는 폼이다. 아무리 빨리 움직이라고 재촉해도 걸음걸이가 떨어지지 않는다. 대기하고 있던 예비군들은 연신 담배를 피우고 있다.

동대장은 예비군들에게 계속해서 썰렁한 농담을 건넨다. 군대식 말투라 무슨 말인지 알아듣기가 힘들다. 그래서 동대장은 혼자서 얘기하고 혼자서 웃는 경우가 많다. 가끔 그 모습이 웃겨서 예비군들도 따라 웃는 일이 있는데, 그것도 동대장의 유머라면 유머에 속한다. 가히 엽기적이다. 그러나 자신도 잘 모르는 동대장의 엽기가 아무리 훌륭해도 시간이 길어지면서 여기저기서 터져나오는 예비군들의 불만과 비탄의 목소리를 막을 수는 없다. 그래서 애꿎은 현역 군인들만 예비군과 동대장의 화풀이 상대가 된다.

세 번째 시간은 '진지점령'. 60명 가까이 되는 예비군들이 동대본부에서 총을 들고 지하철역까지 한번 왕복하는 것을 일컫는 말이다. 패잔병처럼 길거리를 걸어가는 예비군을 대부분 시민들은 무시하지만, 일부는 킥킥 웃어대며 신기한 듯 쳐다본다. 또 다른 어떤 행인은 깜짝 놀라기도 하고 외국인들은 호기심이 가득한 눈으로 쳐다본다. '진지점령' 훈련이라는 것이 단지 지하철역에 한번 걸어갔다 오는 것이라니!

드디어 훈련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다. 훈련을 받을 때는 달팽이같던 예비군들이 신분증을 돌려 받을 때는 날쌘돌이가 된다. 한창 일할 시간에 젊은 직장인들이 모여 7년 동안 이런 훈련을 받아왔다.

먹고살기 바빠 예비군 훈련에 불참이라도 하게되면 고발장이 접수된다. 이렇게 양산된 전과자들이 한둘이 아니다. 평범한 월급쟁이는 그나마 다행. 자기 사업을 하거나, 영업을 주로 하는 직장인들이 치르는 대가는 당하는 사람이 아니면 모른다. 개인 사정으로 사는 곳에 전입신고라도 못하는 날이면 꼼짝없이 몇 시간을 훈련장 가는 길에 소비하기도 한다. 그런데 수백만 예비군에게 이 지겨움을 강요하는 국가는 교통비를 지급하기는커녕 한끼 식사 값도 제대로 지원하지 않는다.

이렇게 7년 동안 예비군 훈련을 치러냈지만 다시 민방위 훈련이 기다리고 있다. 내 인생에 그렇게 따분한 시간이 또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짜증이 극복되기도 한다. 짜증낼 힘을 잃고 우울해지기 때문이다. 대체 우리 사회는 이 짓을 언제까지 할 작정인가.

전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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