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DA는 주범 없는 공범? (서재정, 코리아연구원, 2007. 4. 25)

북핵 2.13합의 이행 등 6자회담 프로세스가 방코델타아시아(BDA)의 북한 자금과 관련한 ‘기술적 문제’ 때문에 지연되고 있다. 현재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북한과 미국을 포함한 모든 당사국들이 2.13합의를 이행하겠다는 의지를 계속 확인하며 ‘말 대 말’의 원칙을 견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말’을 넘어서서 ‘행동 대 행동’의 과정으로 들어서지는 못하고 있다. ‘행동’의 단계로 넘어가는 데 장애물로 남아 있는 것은 BDA와 관련한 ‘기술적인 문제’라는 것은 잘 알려진 바다. 그러면 과연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라는 중대한 과제를 가로막고 있는 BDA의 ‘기술적 문제’란 도대체 무엇인가?

미국의 유화책?

BDA와 관련해 재미있는 점은 미국이 계속적으로 ‘유화책’을 제시하며 인내심의 필요성을 되풀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언론에 보도된 것과 같이 미국은 북한 자금의 동결을 처음에는 조건부로, 나중에는 조건 없이 해제했다고 ‘말’하고 있다. 북한이 자신의 돈은 언제든지 찾아가라는 것이 미국의 ‘말’이다.

그뿐만 아니라 BDA 문제를 이유로 북한의 2.13합의 이행이 지연되고 있어도 북한에 대한 비난을 자제하고 있다.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는 10일 서울을 방문해 “비핵화의 모든 과정이 어려웠다”면서 “이번에도 예외가 아니며 더 많은 인내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버웰 벨 주한미군사령관도 24일 오전 미 의회 상원 군사위 청문회에서 “북한은 국제금융시스템에 경험이 적기 때문에 자신의 돈에 접근하는 방식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시간을 좀 더 주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부에서는 이러한 유화적 발언을 미 행정부가 6자회담과 2.13합의를 이행하려는 의지가 있음을 반영하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그러나 밑에서 보겠지만 이러한 미국의 ‘말’과 미국이 구체적으로 취한 ‘행동’은 엄격히 구분해 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

‘미 재무부와 국무부의 힘겨루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BDA 문제가 시원하게 해결되지 못하고 6자회담의 암초로 작용하고 있는 현상에 대해서 일부는 미 재무부와 국무부의 힘겨루기로 해석하고 있기도 하다.

미 재무부는 BDA를 ‘돈세탁은행’으로 지명하며, 여러 가지 특별제재조치 중 단속조치를 발표함으로써만 취할 수 있는 다섯 번째 특별제재조치, 즉 미국 금융기관과의 거래를 전면 중단하는 조치를 선택했다. 이 상황에서 ‘돈세탁은행’ 낙인을 지우는 것이 현 경색국면을 타개하는 방법이 될 수 있지만 재무부가 반대하고 있다는 해석이다.

이러한 해석은 한걸음 더 나아가 국제금융범죄를 담당하는 스튜어트 레비 재무 차관과 BDA 문제를 직접 맡고 있는 다니엘 글레이저 부차관보 등이 2.13합의 이행을 통한 북핵 해결을 최우선적 목표로 삼고 있는 라이스 국무장관과 크리스토퍼 힐 차관보에 맞서 조지 부시 대통령을 설득하고 있다는 주장으로까지 확대된다.

‘관료정치모델’을 떠올리게 하는 이러한 주장은 개연성은 있으나 실질적으로 확인되는 부분은 거의 없다. 특히 미 은행비밀법의 관련 조항에 비추어 보면 이런 가능성은 극히 낮은 것으로 보인다.

이 법에 따르면 재무부 산하 금융범죄차단망 담당 “과장(FinCEN Director)은 외국 기관을 주요 돈세탁우려 대상으로 지명하기 전 국무장관 및 법무장관과 상의할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합의할 의무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일개 과장이 국무장관과 법무장관을 상대로 상의한 후 이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어떤 조치를 취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쉽지 않다.

북한의 ‘위조지폐’?

지금까지 BDA와 관련해 미국이 취한 ‘행동’은 두 가지다. 첫째는 2005년 9월 BDA가 돈세탁 우려대상이라며 이에 대한 조치를 ‘제안’한 것이다. 이 ‘제안’에 따라 미 재무부는 18개월간 BDA의 금융행위에 대한 조사를 실시했다.

두 번째는 2007년 3월 이 조사를 종료하며 BDA를 ‘돈세탁 주요 우려대상’으로 공식 지명하고 미국 금융기관과의 거래를 중단시킨 것이다. 이 조치는 발표 30일 이후 발효됐다.

북한 자금을 동결하고 해제하는 것에 대해 미국이 많은 ‘말’을 했지만 가장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행동’은 위의 두 가지로 요약된다. 북한 자금을 동결하고 해제하는 것은 미국의 소관이 아니고 마카오 당국과 BDA의 소관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BDA와 관련한 ‘기술적 문제’란 무엇인가? 애당초 미국은 북한이 미국의 100달러화를 위조한 ‘슈퍼노트’를 유통시키고 있다는 의혹을 언론을 통해 유포했고, BDA를 돈세탁 우려대상으로 지목할 때도 위조지폐의 유통에 관여했다는 의심을 받았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18개월간에 걸친 조사 끔에 나온 공식 보고서는 북한이 위조지폐를 유통시켰다는 증거는커녕 주장조차 없다. 윌리엄 베이티 재무부 금융범죄차단망 과장 대리의 명의로 발표된 38쪽짜리 보고서는 북한의 위조지폐 의혹을 두 번 언급하고 있다.

● “BDA와 거래를 하는 많은 북한 개인과 회사들이 위조지폐와 위조담배, 마약 등을 거래하는 단위들과 관계가 있었다.”

● “광범위한 위조지폐 우려 보도에도 불구하고, BDA는 위험 부담이 높은 북한 관련 대규모 현찰 예금주에게 할인 혜택을 주며 은행을 계속 이용하도록 격려했고, 다른 은행이 거래를 거절한 것을 알고 난 이후에도 그 고객의 예금을 계속 받았다.”

위조지폐를 거래하는 ‘단위’가 무엇인지 적시하지도 않았고, 이들과 북한 개인 및 회사들이 어떤 ‘관계’를 갖고 있는지도 명시하지 않았다. 다양한 의미를 가질 수 있는 ‘관계’라는 모호한 주장, “광범위한 위조지폐 우려 보도”라는 언론 보도에 대한 언급이 돈세탁 우려의 근거가 될 수 있는 것인지는 독자의 판단에 맡기겠다.

단, 북한이 위조지폐를 유통시켰고 이 과정에서 BDA를 이용했다는 주장이 없다는 사실은 이 보고서의 특징이다.

“이상하거나 의심을 불러일으키는” 북한의 행위들

물론 재무부 금융범죄차단망의 보고서는 이외에도 북한이 “이상하거나 의심을 불러일으키는 행위들”을 하고 있다며 이를 돈세탁 우려의 추가적 근거로 들고 있다.

● “거래 원주의 신분과 위치를 감추거나 제3자를 통해서 자금 이체를 하는 행위”

● “합법적 목적이 없어 보이는” 은행에 있는 구좌와 자금을 이체하는 행위

● “현금 거래의 출처와 목적에 대한 믿을만한 설명 없이 대량의 현금을 이전하는 행위.” 예들 들어 2002년 북한에 관련된 단위는 미화 5000만 달러에 해당하는 액수를 예금했다.

● 같은 은행 내의 구좌들 사이에 큰 액수의 자금이 오고가는 행위들

● “은행은 이러한 고객들이 예금한 대규모 현찰의 출처를 확인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

위조지폐 유통이라는 커다란 의혹을 제기하고 18개월에 걸친 조사 후 나온 보고서에 위조지폐 유통 혐의가 명시되지 않은 것은 무엇 때문일까?

더욱이 6자회담의 암초가 되고 있는 BDA 문제에 관한 보고서에 북한의 구체적인 불법행위를 적시하지 않은 채 BDA만 돈세탁은행으로 지명한 것은 무엇 때문일까?

북한의 불법행위를 적발하고도 정치적인 판단으로 전모를 공개하지 않은 것인가? 북한은 이러한 관대한 조치에도 불구하고 ‘배은망덕’하게 행동하고 있는 것인가?

이 보고서가 발표된 3월 이후 미국은 이 ‘행동’에서는 한 발짝도 물러설 기미를 보이고 있지 않다. 북한도 자신의 주장에서 한 치도 물러서지 않고 있다. 미국의 행위가 몽니인가? 북한의 행위가 몽니인가?

서재정/美코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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