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군축센터 일반(pd) 2003-02-27   732

<칼럼> 노무현정권, 20세기적 세계관을 버려라!

노무현정부의 외교통일국방분야 국정비전에 대한 소고

‘평화와 번영의 동북아 시대'(국정목표 3)를 열기 위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국정과제 1), ‘동북아 경제중심국가 건설'(국정과제 5). ‘참여정부’의 외교 통일 국방 분야와 관련된 핵심 화두와 과제이다.

대통령 취임사를 통해 본다면, 평화와 번영은 노무현 정부의 국가운영전략을 꿰뚫는 기본 관념이다. 평화번영정책은 변화하는 국제정세에 대한 인식과 미래에 대한 전망을 총괄적으로 보여준다. 동북아 시대는 다가오고 있다. 이 시대를 주도하기 위해서는 한반도에 평화체제를 구축해야 하고 한반도가 지역경제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 한반도에서 평화증진과 공동번영을 달성함으로써 동북아에서 번영공동체와 평화공동체가 형성되도록 한다.

명확한 현실인식, 분명한 목표, 적절한 정책과제. 새 정부의 외교 통일 국방 분야를 포함한 전반적인 국정비전과 국정과제에 대한 일차적 평가라고 할 수 있겠다. 어려운 시기에 출발하는 새 정부에 격려를 보내는 방법이기도 하다.

지역패권을 둘러싼 미· 중· 일의 갈등을 직시해야

좀더 가까이 다가가면 다른 평가도 하고 싶어진다. 현존하는 동북아 질서의 성격이 미 일 중 러의 ‘역사적 갈등구조’라는 개념으로 정리되기에는 너무나 복잡하다. 단순한 협력과 경쟁의 긴장관계가 아니라 의존과 지배의 패권적 갈등이 동북아 질서를 압박하고 있다.

동북아는 21세기 세계사의 희망이자 불안이다. 지역패권을 둘러싼 미국, 중국, 일본의 갈등을 직시해야 한다. 중국과 일본이 안고 있는 정치적, 경제적 내부 불안 요인들에 대한 관심을 늦추지 않아야 한다. 한반도를 중심에 놓고 동북아를 바라보는 시각과 동북아를 보면서 한반도의 위치를 찾는 시각을 적절히 조화시켜야 하지 않을까.

더구나 ‘변방에서 중심으로’, ‘동북아 중심국가’라는 개념이 갖는 매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는 국제관계에 대한 20세기적 개념에 사로잡혀 있다. 힘의 논리가 작용하던 20세기 세계지도를 머릿속에 펴두고 있다면, 우리의 힘도 살펴보아야 한다. 우리의 힘을 알고 있다면, 우리에게 알맞은 세계관을 새로이 형성해야 한다.

한 미관계에 대한 정책전망의 부재

시야를 좁혀서 외교 통일 국방 분야를 바라본다면, 앞으로 5년이 분단 역사의 전환점이 될 것이라는 관점에서 그리고 북한핵문제로 현재 한반도 전체에 전쟁 위기가 고조되어 있다는 측면에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은 당면과제이다. 새 정부가 이를 12대 국정과제의 첫머리에 둔 것은 우리를 안심시킨다.

정부는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 △북핵문제 해결 △남북협력 심화 △평화협정 체결이라는 3 단계 실행전략을 짜 두었다. 또한 남북관계 개선을 통한 평화의 제도화,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한 국제환경 조성, 확고한 평화보장을 위한 국방태세 확립 등을 세 가지 세부 추진과제로 밝혀두고 있다. 가장 시급한 북한핵문제 해결과 관련해서는 북의 핵보유 불용납, 대화를 통한 평화적 해결, 한국의 적극적 역할을 3원칙으로 제시했다. 체계화된 정책구상을 갖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도 잘 짜여진 추진계획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현실의 위기를 타파할 정책수단이 보이지 않는다. 김대중 정부의 대북정책 원칙과 기조를 변용하였다고 폄하할 생각은 없다. 대북정책은 연속성 위에서 발전해 나가야 한다. 문제는 북한과 미국을 설득할 단서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북한에 대해서는 실질적으로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다. 더욱 심각한 점은 한 미관계에 대한 정책전망의 부재이다. 현재의 한반도위기가 새로운 양상으로 전개될 수밖에 없게 된 근저에는 한 미관계의 변화가 놓여있다. 게다가 변화에 대한 욕구가 참여정부가 존재하게 된 주요한 이유 중의 하나이다. ‘평화증진에 따라 한미관계의 미래지향적 발전 추구’라는 추진방향은 공허하게 울린다. 한 미 일 공조, 한미관계 재정립, 한미동맹 및 주한미군 역할에 대한 공동 협의와 확고한 공감대 형성 등은 어느 누구도 만족시켜 주지 못한다.

새로운 ‘안보’ 개념을 위해 모두가 고민해야

분명 외교에는 드러내어 놓고 추진해야 할 사안과 기본 그림만을 보여주고 추진해야 할 사안이 뒤섞여 있다. 아마 현재의 위기는 드러낼 수 없는 부분이 더 많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국민에게도, 외교의 동반자에게도, 협상의 대상자에게도 기본 철학이 확실하게 전달되지 않는다면 국정과제를 밝히지 않는 것이 차라리 나을지도 모르겠다. 침묵이 때로는 더 크게 울리기 때문이다.

끝으로, 한 마디를 덧붙이고 싶다. 평화번영정책을 내세우는 노무현 정부의 외교 통일 국방정책에는 안보에 대한 기본적인 관점의 변화가 없다. ‘확고한 평화보장을 위한 국방태세 확립’은 국가와 군을 중심에 둔 안보관을 다시 보여준다. 인간안보, 포괄안보 같은 개념들을 넌지시 흘리기도 하더니, 여전히 안보는 ‘국방’의 몫으로 돌아갔다. 국민과 함께하는 민주주의, 더불어 사는 균형발전 사회에 걸맞은 새로운 ‘안보’ 개념을 위해 모두가 고민해야 할 때이다.

박순성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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