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집] 이명박정부의 “글로벌 코리아” 구상에 대한 비판적 검토와 제언

이 글은 지난 2월 20일 열린 <인수위 활동 평가와 정책 제언-제 2분과 외교안보통일정책> 토론회 발제문입니다.


1. 이명박정부 외교안보정책의 개요


   2008년 2월 5일 제17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이명박정부의 국정과제가 담긴 보고서를 제출했다. 5대 국정지표-21대 전략-192개 국정과제가 담겨 있는 이 보고서에서, 노무현정부의 “평화와 번영의 동북아시대” 비견될 수 있는 국정지표가 “글로벌 코리아”다. 글로벌 코리아라는 국정지표는 “새로운 평화구조의 창출”, “실용적 통상외교·능동적 개방”, “세계로 나가는 선진안보”, “친환경 경제·에너지 구조”, “아름다운 삶과 창의문화”의 5개 전략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글은, 새로운 평화구조의 창출 및 선진안보와 관련된 인수위의 구상을 중심으로 논의를 전개한다. 


     글로벌 코리아 구상에서, 평화·안보와 관련된 “핵심과제”는, “북핵폐기의 우선적 해결”, “비핵·개방 3000 구상 추진”, “한미관계의 창조적 발전”, “남북간 인도적 문제의 해결”, “자원·에너지 외교의 강화”, “국방개혁 2020의 보완 추진” 등의 순으로 정리되어 있다. “중점과제”로는, “나들섬 구상의 추진”, “동북아 신협력체제의 구축”, “비무장지대의 평화적 이용”, “기여외교를 위한 대외개발원조(ODA)의 확대”, “국제평화유지활동(PKO 등) 강화”, “외교부 인력충원 및 해외공관 인력조정”, “북한 군사위협 대비태세 강화”,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의 적정성 평가 및 보완” 등이 제시되고 있다. “일반과제”는, “동아시아 지역 전략적 파트너쉽과 경제·안보·문화공동체 구축”, “남북협력 기금의 투명성 강화”, “인권외교 및 문화외교 강화”, “남북간 군사적 신뢰구축 및 군비통제 추진”, “국방경영의 효율화”, “방위산업의 신경제성장 동력화”, “원자력 및 전력산업의 수출산업화”, “DMZ 생태·평화공원 조성” 등이다.


     김대중·노무현정부 10년을 “지구상에서 뒤떨어진 이념 갈등”의 시대로 인식하는 이명박정부는, 글로벌 코리아 구상을 매개로 김대중·노무현정부와의 차별화를 시도하고 있다. 노무현정부의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을 ‘계승’하여 노동배제적 정책으로 완성하려는 이명박정부에게, 전임정부의 외교안보정책, 특히 대북정책은 전임정부와의 차이를 생산하기 위한 ‘마녀사냥’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명박정부 외교안보담론의 핵심적인 특징은 다음과 같이 정리될 수 있다.


     첫째, 외교안보정책의 이념으로 실용주의를 선택하고 있다. 둘째, 대북정책을 외교안보정책의 하위범주로 설정하려 한다. 보편가치 대 특수가치, “국제적 보편주의 대 한국적 예외주의”라는 이항대립을 만들고 전자에 가중치를 두고자 한다.1) 보편의 외피를 가진 포괄적 안보와 인간안보를 정책을 결정하는 개념으로 설정하려 한다. 셋째, 실용주의와 보편주의를 내세우면서, 힘과 동맹에 기초한 정책을 우선시하려 한다. “새로운 평화구조”를 전략목표로 설정하고 있지만, ‘평화체제’에 대한 언급은 없고, 한미 “전략동맹”과 북핵문제의 해결과 그것이 가능할 때의 정책인 비핵·개방 3000을 통해 평화구조를 창출하려 하고 있다. 넷째, 외교안보정책의 국내적 기초를 한국군의 힘을 강화하는 국방정책을 통해 만들려 하고 있다. “국방개혁 2020의 보완 추진”의 의미다. 다섯째, 국제사회에 기여하는 외교를 위해 ODA의 확대와 PKO에의 참여를 언급하고 있다.


     인수위에서 발표한 이명박정부의 외교안보정책은 두 가지 근본적 문제점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첫째, 담론체계 내부의 모순이다. 실용주의 요체는 두 가지다. 하나는 이익을 평가의 기준으로 설정하는 결과주의다. 다른 하나는 항상 옳음을 전제하는 독단주의의 거부다. 이명박정부는 실용주의를 내세우지만 상황에 따른 이익의 변동을 고려하기보다는 선험적으로 설정한 가치-예를 들어 한미동맹의 창조적 재건-에 기초하여 이익을 계산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힘과 동맹을 절대시하는 태도는 독단주의일 수 있다. 한반도, 동북아. 지구적 수준을 연계하는 정책구상도 보이지 않는다.


     둘째, 이명박정부의 외교안보정책에는 의도의 과잉만 보일 뿐 그 의도를 실현하기 위한 방법이 보이지 않는다. 외교는 상대가 있는 게임이다. 따라서 정책의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을 설득할 수 있는 수단과 방법이 정교해야 한다. 북핵이 폐기되면 무엇을 하겠다는 이명박정부의 대북정책에는 방법론이 결여되어 있다. 실용주의 운운하면서 강압과 포용 둘 다를 고려하지 않는 것은 실용주의를 위반하는 것이다. 강압에 기초한 이른바 “전략적 상호주의”는 정책의 부재를 야기할 수 있다. 대미정책과 대북정책에서도 미국의 ‘변화’에 대한 고려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2. 이명박정부의 외교안보정책은 실용주의가 아니라 도덕적 현실주의에 기초해 있다


     외교안보정책의 철학적 기초로서 실용주의는, “결과에 특별한 중요성을 부여하면서 외교행위의 손익과 확률의 계산에 따르는 행동양식”이다.2) 이념보다 이익을 정책결정의 기초로 간주하는 실용주의에 입각한다면, 이념적 적대가 정책결정의 원천일 수 없다. 그러나 이명박정부의 외교안보정책은, 적과 친구라는 이항대립에 기초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북한은 적이고 미국은 친구다. 이 구도는 절대불변의 가치로 간주되고 있다. 즉 이명박정부 외교안보정책의 철학적 기초는 실용주의가 아니라 선험적으로 선과 악을 구분하고 힘의 우위에 입각한 정책을 실천하고자 하는 ‘도덕적 현실주의’와 유사하다.


     도덕적 현실주의에 경도되어 있던 미국의 부시1기 행정부는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했다. 2002년 10월에는 북한의 고농축우라늄을 이용한 핵개발 의혹을 제기했다. 그러나 6자회담과 북한과의 양자회담을 통해 2005년 9월 4차 6자회담에서는, 북한의 핵폐기와 북한에 대한 미국의 안전보장, 북미관계와 북일관계의 정상화, 6자의 경제협력,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과 동북아 다자간 안보협력의 증진에 대한 합의를 도출하기도 했다. 이 9·19공동성명과 2007년 2·13합의를 거치면서 북한 핵의 불능화가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이명박정부는 미국의 정책변화에도 ‘불구하고’, 부시1기 행정부의 대북인식으로, 냉전시대의 대북인식으로 회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명박정부의 대북정책은, 북한을 교정이 필요한 열등한 존재로 간주하고 본질적으로 타자화(他者化)하는 인식론에 기초하고 있다. 이 인식론은, 북한을 악의 화신으로 만드는, 폐쇄적 사유공간 속에서 순환하는 정치적 회로를 생산하는 원천이다. 미국에서 수입한 이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의 덫에 걸릴 때, 북한은 스스로 변할 수 없고 따라서 외부의 개입에 의해서만 변할 수 있는 대상으로 인식된다. 그리고 오리엔탈리즘적 인식에 기반한 이론은 오리엔탈리즘적 지식의 확대재생산을 위한 도구가 된다. 이명박정부에서 북한의 붕괴또는 내파를 예견하면서 한미양국이 북한에 군사적으로 개입하고자 하는 “개념계획 5029”를 “작전계획 5029”로 바꾸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는 것도 이명박정부가 열등한 국가이자 무법국가로 인식하는 북한을 희생제의의 대상으로 삼고자 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다. 이 인식을 이명박정부의 행위자들이 공유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이를 공개하는 것은 전략적 오류일 뿐만 아니라 이익의 극대화를 가로막는다는 점에서 실용주의를 위반하는 것이다.


     이명박정부는 보편가치 대 특수가치의 대립을 전제하면서, 국제적 차원의 보편적 기준에 입각한 외교안보정책과 대북정책을 전개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고 있다. 우리는 그것이 누구의 보편인가, 라는 질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이명박정부는, “테러, WMD의 추구, 인권탄압 등”의 “그릇된 가치를 고수하는 지역에 자유를 확산시키고 개혁개방을 유도하는 근본적 처방을 내”려야 한다는 미국적 문제제기를 보편적 가치로 수용하려 하고 있다.3) 미국의 가치와 보편가치가 등치된다. 따라서 한미동맹의 강화가 보편가치의 실현이라는 논리가 전개된다. 대북정책의 특수논리는 국제사회에서 공감대를 얻을 수 없다는 것이 이명박정부의 주장이기도 하다.


     우리가 외교안보정책에서 보편가치의 중요성을 부정하려는 것은 아니다. 특수가치만을 강조하게 되면, 국제정치의 장은 서로의 차이가 절대화되면서 권력정치가 지배하는 공간이 된다. 소통의 기준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네오콘식 보편을 국제적 보편으로 사고하는 것은 실용주의라기보다는 도덕적 현실주의에 다름 아니다. 국제사회에서는 물론 미국 내에서도 미국의 일방주의를 보편가치로 생각하지 않는 정치사회세력의 목소리가 존재한다. 전쟁을 배제하지 않는 강압외교가 국제적 보편가치가 될 수는 없다. 한반도 문제를 보편가치에 입각하려 해결하고자 할 때, 우리가 합의할 수 있는 보편은 ‘평화적 방법’으로 한반도 평화를 달성하는 것이다. 이 방법만이 국제사회의 동의를 얻을 수 있다. 평화적 방법에 의한 평화는, 한반도 평화과정을 세계평화의 길에 기여할 수 있는 한 전범으로 만드는 작업이 될 것이다.


     우리는 이명박정부의 도덕적 현실주의는 물론 ‘무원칙한’ 실용주의도 경계한다. 노무현정부도 “균형적 실용외교”를 주창한 바 있다. 균형적 실용외교는, “대외관계에서 우리가 동시에 실현해 나갈 대립되거나 상이한 목표와 요구들 간의 균형을 취하고, 설정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외교적 유연성을 발휘하”는 것이었다.4) 노무현정부에서 실용주의는, 가치와 국익, 동맹과 다자협력을 “병행 발전”을 도모하는 외교안보정책의 이념이었다. 그러나 노무현정부의 외교안보정책과 대북정책은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산출했다. 담론과 정책의 불일치가 두드러졌다. 한미동맹의 재편과정에서는 이라크파병, 미군기지의 이전,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인정, 한미 FTA의 추진 등에서 볼 수 있듯이, 미국추수적 정책을 선택함으로써 미국이 원하는 방향으로 한미동맹을 재편했지만, 자주담론 덕택에 과도한 비용을 지불하곤 했다.5) 대북정책에서도 담론과 정책의 불일치 및 일관성의 부재가 나타났다. 경제와 사회문화부문에서는 자유주의적 접근을 지속했지만, 6·15시대의 한계로 지적되었던 군사적 신뢰구축을 위한 남북협력은 거의 이루어내지 못했다. 노무현정부는 협력적 자주국방이라는 미명 하에 군비증강을 선택했다. 협력적 자주국방은 강압적 대북정책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명박정부의 실용주의는 그 근저에 자리잡고 있는 도덕적 현실주의 때문에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실용주의는 외교안보정책의 원칙이라기보다는 그 원칙을 실현하기 위한 방법이다. 평화적 방법에 의한 한반도 평화라는 보편적 원칙 하에서 독단주의를 벗어날 수 있어야 한다. 미국적 가치를 보편가치와 등치하고, 냉전시대의 한미동맹을 복원하는데 집중하면서 강압적 대북정책을 선택하려는 이명박정부의 외교안보정책은, 실용주의의 궤도를 이탈하려는 듯이 보인다. 한반도 평화를 위해서는 한미공조와 남북공조와 동북아협력이 함께 가야 한다. 북한 핵의 불능화과정이 지체되고 있는 현 시점에서 이명박정부는 북한 핵문제의 해결을 위한 실용주의적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평화의 ’촉진자‘ 역할을 해야 한다. 이명박정부의 원칙 없는 실용주의는, 우리에게 평화 없이 살아가는 방법을 강요할 수도 있다.


     이명박정부는 한반도의 미래와 관련하여 중요한 결정을 내리게 되는 정부가 될 것이다. 한반도 평화체제로의 길이 막히게 된다면, 위기 속에서 살아갈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한반도 평화체제로의 길이 진행된다면,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미지의 길을 갈 수 있는 지도를 제시해야 한다. 대북정책을 포함한 외교안보정책을 아우르는 큰 구상이 필요한 이유다. 우리는 이제까지 그러한 구상을 가져보지 못했다. 약소국 의식이나 피해자 의식도 한 몫 했을 것이다.


     21세기 한국의 외교안보 독트린은 크지도 작지도 않은 중견국가의 정체성을 담지해야 한다. 냉전시대의 힘과 동맹에 기초한 안보담론을 평화적 방법에 의한 평화와 번영을 추구하는 평화담론으로 전환해야 한다. 친미냐 친북이냐 자주냐 동맹이냐의 이분법적 논리로 21세기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을 실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인류보편적 가치를 추구하면서 한반도 특수적 문제를 해결하려는 ‘평화국가’의 길이 21세기 외교안보정책을 관통하는 원칙으로 설정될 필요가 있다. 대북정책도 그 길 가운데 하나로 위치지울 수 있을 때, 국제적 동의를 획득할 수 있을 것이다.


 
     3. 한반도와 동북아 평화체제 건설을 위한 정책이 없다


     이명박정부의 외교안보정책의 대강이 담겨 있는 인수위 발표자료를 보면, 한반도와 동북아 평화체제에 대한 구상이 없다. 이명박당선인의 대선공약에서도 “아시아외교”가 언급될 뿐, 한반도 평화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동북아 차원의 평화와 협력을 위한 구상도 없었다. 노무현정부의 동북아시대 구상을 부정하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그러나 한반도적 수준과 지구적 수준을 매개하는 공간으로서 동북아 내지는 동아시아에 대한 구상은, 북핵의 폐기 및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21세기 한국외교의 지역정책이 되어야 한다.


     이명박정부도 인수위 국정과제 가운데 중점과제로 “동북아 신협력체제 구축”과 일반과제로 “동아시아 지역 전략적 파트너쉽과 경제·안보·문화공동체 구축”을 포함시켰다. 그러나 이명박정부가 생각하는 신협력체제와 전략적 파트너쉽은 한미동맹의 강화를 위한 한미일 삼각동맹의 유사형태가 될 수도 있다. 만약 그렇다면, 이명박정부는 의도적으로 동북아 차원에서 다자간 안보협력보다는 냉전시대의 세력균형을 조장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인수위는 한미동맹 강화를 정책의 최우선 순위로 두면서 이를 통해 북핵문제에 공동대처하고 북한의 변화를 추동할 것임을 밝혀 왔다. 정책의 우선순위를 한미동맹, 북핵, 평화체제 순서로 둔 것이다. 그러나 평화체제의 밑그림을 그리고 정책방향을 세우는 것과 한미동맹 강화를 통해 북한을 압박하고, 그 결과로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체제가 당연히 따라 오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질적으로 매우 다르다. 평화체제에 이르고자 하는 목표와 수단이 전도되었기 때문이다. 평화체제가 아닌 한미동맹의 발전을 최우선 정책과제로 삼는 순간 실용주의는 사라지고 동맹의 가치를 절대화하는 독단주의에 빠지게 된다. 한반도 평화를 위한 한국의 역할을 한미공조의 강력한 추진으로 정리하는 것은 실용주의가 아니다. 북한의 우라늄농축에 의한 핵개발 계획과 북한과 시리아의 핵거래설 때문에 다시금 교착국면에 들어선 6자회담에 대해 이명박정부가 국면타개를 위한 어떠한 정책도 제시하지 않고 있는 것도 이 독단주의 산물인 것처럼 보인다.


     한미동맹의 창조적 재건이 강화가 북한의 핵폐기와 개혁개방을 유도할 수 있을 것이며, 한반도와 동북아 평화체제 구축에 도움이 된다고 주장하는 등 그 실현가능성과는 무관한 낙관적 전망도 여기에서 기인한다. 심지어 이 같은 정책방향은 6자회담의 합의나 미국의 대북정책 기조변화와도 배치된다. 이명박정부는 미국 부시행정부의 대북정책 변화를 외면하고 있다. 또한 한국의 외교적 지렛대 역할을 할 수 있는 대북정책을 사실상 폐기하려 하고 있다. 미국과의 공조를 강화하려면, 북의 선핵폐기를 주장할 것이 아니라 ‘행동 대 행동’의 원칙 이행을 강조하고 있는 부시행정부 대북정책을 실현하려는 중재자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이명박정부는 한반도 및 동북아 평화체제의 구축을 위해 6자회담과 북미관계와 남북관계가 선순환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도록 노력을 해야 한다. 물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이 있다. 역사적 경험을 반성하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극대화해야 한다. 한반도 평화체제의 구축은 6자회담과 북미관계와 남북관계의 선순환을 가능하게 하는 핵심고리다. 미국을 포함한 동북아국가들의 협력이 없다면, 북미관계의 개선 내지는 정상화가 없다면, 남북의 군사적 신뢰구축이 없다면, 한반도 평화체제의 구축은 불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한반도의 비핵화 또는 비핵지대화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에 선행하는 형태가 아니라 한반도 평화체제의 구축의 결과로 한반도 비핵화 또는 비핵지대화를 생각할 필요가 있다.


     한반도 평화체제의 구축을 위해서는, 한반도와 동북아에서의 군축과 군비통제, 한미동맹의 민주화, 유엔사의 해체와 평화관리를 위한 제도적 장치, 평화협정, 동북아 다자간 안보협력에 대한 고려가 있어야 한다. 복잡다단한 과제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한반도에서 평화적 방법에 의한 평화를 위해서는 반드시 검토되어야 할 과제들이다. 이명박정부가 평화체제를 의제화하지 않는다면, 한반도와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에서 냉전적 힘의 대결이 부활하게 될 것이다.


    4. 한미동맹의 민주화가 필요하다


     이명박 당선인이나 인수위가 노무현 정부와 차별성 있는 정책으로서 내세우는 것이 바로 한미동맹의 복원이다. 이명박정부는 김대중·노무현정부의 대북 화해협력정책이 북한의 핵개발을 결과했고, 두 정부를 거치면서 한미동맹의 기초가 무너졌다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이번에 발표된 국정과제를 비롯하여 그 동안 인수위 등을 통해 확인된 “한미관계의 창조적 발전”을 위한 정책과제가 무엇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한미 FTA나 대테러 전쟁에 대한 한국군 파병, 주한미군기지이전 등 실제 노무현 정부가 많은 현안에 있어 미국 측 요구를 수용했기 때문이다. 미국측에서 평가하는 것처럼 노무현정부가 한미동맹의 재편과정에서 긍정적 역할을 했다면, 이명박정부는 노무현정부의 대미정책을 부정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미국이 요구하는 MD나 PSI에의 참여하기 위한 것이 한미동맹의 창조적 재건의 내용이라면, 이는 이명박정부의 외교안보정책의 철학적 기초인 실용주의와도 부합하지 않는 것이다. 비용 대 편익계산을 하게 되면, MD와 PSI에의 참여는 명백한 손실이기 때문이다.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시기 조정 역시 마찬가지다. 미국 측 이해가 더 크게 작용하고 있고, 한미 양국 정부가 합의했다는 점에서 전작권 환수 일정을 뚜렷한 변경사유 없이 재조정하겠다는 것은 그 자체로 타당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외교적 신뢰의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무엇보다 얻을 실익은 없는 반면, 단 얼마 동안 환수시기를 미루기 위해 한국 측이 내놓아야 할 부담은 많아지는 무모한 시도이기 때문이다. 전작권 환수 시기조정에 나서는 것도 실용주의와 배치된다. 이처럼 그 내용에 있어 실제 복원할 것이 분명하지 않은 한미동맹 복원 주장은 실체는 없는 구호의 성격이 강하다고 할 수 있다.


     인수위의 국정과제 보고서에서는 “한·미 관계의 창조적 발전”과 “한·미 전략동맹”을 같은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한미 전략동맹은, 군사동맹을 넘어 포괄동맹으로 전환하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동맹이 관리하는 지역을 한반도를 넘어 동북아 지역 및 세계차원으로 확대하겠다는 의미일 수 있다. 이는 한미동맹의 범위와 역할을 한반도와 태평양 지역으로 한정한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우회하여 이를 대체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이명박정부는 차기 미국행정부와 ‘한미 전략동맹 선언’을 최우선으로 추진하여 외교안보정책의 기반이자 출발점으로 삼겠다는 계획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한미동맹을 전략동맹화하겠다는 구상은 한반도 평화를 위협할 수 있다. 전략동맹화가 한미일 삼각동맹 강화로 나타난다면, 그것은 신냉전 축을 형성하고 또 다시 한반도를 냉전의 최전선으로 만드는 조치가 될 것이다. 동북아 평화형성을 위해 중요한 파트너인 중국과 러시아를 자극하는 것은 이명박정부가 역점을 두고자 하는 자원외교의 측면에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동북아 평화체제를 위해서 한국이 취해야 할 태도는 한미공조와 더불어 이들 주변국과 선린우호관계를 강화하는 것이다. 이것이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법제도적으로 제약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또한 한미동맹이 전략동맹으로 전환되면, 주한미군은 물론 한국군의 전략적 유연성이 수반될 것이 자명하다. 한국군의 역할을 국토방위에 한정한 헌법을 위반하면서 이라크 파병과 같이 미국의 대테러전에 한국군이 아무런 통제를 받지 않고 동원될 우려가 있다. 또한 한미상호방위조약에 근거해 주둔하고 있는 미군의 성격과 역할의 변경에 대한 아무런 사회적 토론이나 합의가 없다는 점도 문제다. 


     향후 5년간 이명박정부가 해야 할 일은 기존의 종속적이고 의존적 동맹관계에서 벗어나 한미동맹의 민주화를 이루어 내는 것이다. 또한 동북아 평화형성에 한미동맹이 기여하도록 하는 것이며 동시에 동북아 주변국들과의 선린관계와 조화를 이루도록 하는 것이다. 지금의 동북아 정세에서 한미일 삼각동맹으로 간다면, 그것은 그 자체로 가장 비실용적인 정책노선이 될 것이다. 무엇보다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에 따른 주한미군의 위상과 한미동맹 미래에 대한 사회적 토론과 합의를 모을 수 있어야 한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의 개정 또는 폐지를 포함한 다양한 대안을 검토하고 새로운 한미동맹의 형태를 제시하는 것이 이명박정부의 과제가 되어야 한다. 한미동맹의 민주화 없이, 미국과의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려는 시도는, 미국적 가치에 종속되는 것에 다를 바 없을 것이다.  


     5.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한 대북정책이 필요하다


     인수위는 국정과제 중 핵심과제로 북핵 폐기의 우선적 해결과 비핵개방 3000 추진, 그리고 남북간 인도적 문제해결을 제시하고 있다. 또한 나들섬 구상의 추진과 비무장지대의 평화적 이용을 중점과제로, 남북협력기금의 투명성 강화를 일반과제로 두고 있다. 대북정책의 기본방향을 북한의 핵폐기와 개방으로 두고, 미국과의 공조와 EU국가 활용 그리고 북한의 핵폐기와 대북경협 및 지원을 연계하겠다는 것이 정책의 기조다. 북한에 차관의 형태로 지원하던 쌀을 무상으로 지원하면서 인도적 문제의 해결과 연계하겠다는 보도도 나오고 있다. 이명박정부가 포괄적 안보와 인간안보 개념에 기초하여 외교안보정책을 입안할 때, 자칫 북한과 관련한 모든 문제를 안보쟁점화하는 우를 범할 수도 있다. 이명박당선인은, “남북이 합의한 사업이라도 북핵문제의 진전 상황이나 사업의 경제적 타당성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이명박정부의 대표적 대북정책은, 비핵개방 3000이다. 비핵개방 3000 구상은, 북한이 핵폐기의 대결단을 내리면 국제사회도 그에 상응하는 대결단을 내려 북한경제의 재건을 지원하겠다는 기획이다. 비무장지대의 한강하구에 남북경제협력을 위한 ‘나들섬’을 만들어 ‘한반도의 맨해튼’, ‘동북아의 허브’로 조성하겠다는 구상도 비핵개방 3000의 구체적 실천방안 가운데 하나다. 비핵개방 3000은 매우 구체적으로 북한에 대한 지원내용을 밝히고 있다. 300만불 이상 수출기업 100개를 육성하고, 30만의 산업인력을 양성하며, 400억불 상당의 국제협력자금을 투입하고, 에너지, 기간통신망, 항만, 철도, 도로, 운하 등의 인프라 건설에 협력하며, 인간단운 삶을 위한 복지를 지원하겠다는 것이, 비핵개방 3000의 청사진이다. 이 구상이 실현되면, 북한경제는 현재 1인당 소득 500불 기준으로 매년 15-20%의 성장을 지속하여 10년 후에는 국민소득 3,000불 경제로 도약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실현가능성이다. 비핵개방 3000 구상의 몇 가지 전제조건은 이 구상의 실현에 걸림돌로 작용할 것처럼 보인다. 첫째, 비핵개방 3000 구상에 따르면 북한에 대한 경제적 지원은, 북한의 핵폐기가 이루어져서 한반도 평화체제가 정착되고 북미·북일관계가 정상화된 이후에 시작된다. 비핵개방 3000은 오랜 시간에 걸쳐 이루어질 수도 있는 한반도 평화과정에서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6자회담 이외에는 아무런 정책대안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비핵개방 3000 구상은 개성공업지구와 같은 남북 경제협력이 한반도 평화과정의 한 구성요소임을 인정하지 않고 있는 셈이다. 둘째, 비핵개방 3000은 남이 북의 경제정책을 좌지우지하겠다는 개발독재식 발상을 담고 있다. 비핵개방 3000의 실현을 위해서는 북의 체제전환이 이루어져야 할 뿐만 아니라 북이 남의 ‘사실상의 식민지’로 기능해야 한다. 비핵개방 3000은 상대방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구상일 수 있다. 이 구상의 실현가능성과 수용가능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비핵개방 3000에 이르는 과정에서 반드시 필요한 남북의 화해와 협력을 위한 정책이 제시되어야 한다. 셋째, 나들섬 구상에 대해서도 북한이 긍정적 반응을 보였다는 주장도 있지만, 경제학적으로 의미가 없는 사업이라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또한 생태적 재앙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북핵폐기를 전제로 한 비핵개방 3000의 비현실성에 대한 지적이 있자, 이명박당선인은, 북한이 핵시설의 불능화를 완료하고 핵폐기 단계에 진입하면, 남북한 사이에 경제공동체 실현을 위한 협의체를 설치하고, 남북경협의 활성화, 투자·무역의 편리화, 남북교역의 자유화를 추진하는 ‘남북 경제공동체 협력협정’을 체결할 수 있다는 견해를 밝히기도 했다.6) 그러나 만약 미국이 “북한의 핵폐기보다 핵관리를 통해 남북을 다 같이 관리하려 할 경우” 이명박정부의 실용주의적 외교안보정책은 설 공간을 잃게 될 것이다.7) 이명박정부는 대북 화해협력정책의 일관된 추진이 한국정부의 외교력을 제고하는 지렛대가 될 수 있음을 망각하고 있다. 남북한의 군사적 신뢰구축과 군축이 일반과제로 언급되고 있지만, 한반도 평화를 위해 필요한 군축방안도 제시되지 않고 있다. 북한의 선 핵폐기는 남북한의 군사적 균형을 고려할 때, 군축이 없다면 이루어지기 힘든 기획일 수 있다. 


     핵심과제의 하나로 인수위가 제시한 남북간의 인도적 문제해결은 기본적으로 바람직한 방향이기는 하다. 그러나 이명박정부가 인도적 지원을 인도적 문제의 해결과 연계하게 되면, 실제 성과를 거두기 힘들 수 있다. 또한 북한의 인권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중요한 것은 실효성 있는 방안마련이라고 할 때, 단순히 공개적인 북한 비난하기에 초점을 맞춘다면, 그것은 북한의 인권문제 개선과는 무관한 일이 될 것이다. 인권외교를 강화하고 한반도 인권대화도 시도해봄직 하지만, 전쟁과 냉전을 겪어온 한반도에서 인권문제의 해결이 무장 갈등 및 군사적 긴장의 해소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제대로 인식하지 않는 한, 그것은 실효성 없는 ‘인권의 정치화’로 귀결될 우려가 크다.


     인수위가 제출한 국정과제에서 우리는 남북관계 발전을 위한 대북정책을 찾을 수 없다. 이는 과거 정부와의 단절과 차별성에 대한 강박증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무조건적인 단절이 아니라 지난 10년간의 대북정책의 성과를 재평가한 뒤 취할 것은 취하고, 개선할 것은 개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기 위해서 기본적으로 남북이 합의한 사항에 대해서는 우선 존중하는 것이 필요하다. 불가피하게 재검토가 필요하다면 일방적으로 파기할 것이 아니라 북한과의 대화를 통해 합의 조정해야 한다.


     또한 한나라당도 동의해서 2005년 통과시킨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에 입각하여 중장기 남북관계 발전전략을 제시하고, 이에 따라 일관되고 지속적인 대북정책을 이행하도록 해야 한다. 대북정책도, 남북협력이 전면화된다면, 정부 각 부처가 개입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대북정책에 대한 새로운 업무분장과 그 업무를 조정할 수 있는 부처로 통일부의 위상은 오히려 강화될 필요가 있다. 남북공조를 할 수 있는 국내적 토대는 한반도 문제의 해결을 위한 국제사회의 공조를 가능하게 한다. 이러한 방향이 남북관계를 후퇴시키지 않으면서 대북정책을 발전시킬 수 있는 길이다. 만약 이명박정부가 북한붕괴론에 집착한다면, 김영삼정부의 실패를 반복하게 될 것이다. 


     6. 국방개혁 2020의 보완추진은 남북 사이에 안보딜레마를 강화할 수 있다


     인수위는 “국방개혁 2020 보완추진”을 국정과제 중 핵심과제로 제기하고 있다. 그러나 구체적인 내용은 불분명하다. 국방개혁 2020 보완추진의 핵심내용은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의 적정성 평가 및 보완‘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분명한 것은 앞서 지적한 대로 차기 정부가 전작권 환수 시기 재조정을 미국에 요구하는 것은 실익 없이 한국 측 부담만 가중시키는 패착이 될 것이라는 것이다. 인수위는 그 밖에 노무현 정부가 추진한 국방개혁 2020에 반영한 바 있는 “신세대 병영환경 개선 및 복지증진”을 중점과제로 두고, “국방경영의 효율화”, “방위산업의 신경제성장 동력화”를 일반과제로 두고 있다.


     국정과제에서는 중점과제로 “북한 군사위협 대비태세 강화”를 두면서 “남북간 군사적 신뢰구축 및 군비통제 추진”을 일반과제로 설정하고 있다. 이명박정부가 북한의 포괄적 위협에 대한 한국과 미국의 공동평가를 추진할 것이라는 보도도 나오고 있다. 북한의 핵무기와 생화학무기와 같은 대량살상무기에 의한 위협을 강조하면서 군비증강에 초점을 맞춘 국방개혁 2020의 보완이 이루어질 때, 남북 사이에 냉전시대와 같은 안보딜레마가 가속화될 가능성이 있다. 또한 이명박정부는 군의 요구에 따라 병력 감축 시기를 유예하거나 그 감축규모를 축소할 것으로 보인다. 병력감축 시기를 늦추거나 감축 규모를 축소한다면 그것은 군 기득권 논리에 따른 개악이며 다른 어떤 개혁조치도 좌초시킬 것이다. 한반도 평화를 위협하는 정책임은 물론이다. 


     이명박정부의 국방관련 국정과제의 빈곤함은 평화체제에 대비하는 장기적인 국방개혁이나 군축계획이 없다는 것에서 나타난다. 군의 문민통제 강화나 전시작전통제권의 환수, 공격적인 작전계획의 폐지, 한미연합사 해체나 유엔사 해체 등에 따른 한국군의 임무전환 등의 과제가 검토되지 않았다. 대신 이명박정부의 냉전적 인식을 반영하듯, 북한의 위협을 강조하는 반면, 신속히 구축해야 할 남북 군사적 신뢰조치나 군비통제는 그 하위 범주로 보고 있는 것도, 이명박정부가 냉전적 사고에 포획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마지막으로 “방위산업의 신경제성장 동력화”는 무기수출을 경제성장 동력화하는 것으로 평화와 통일을 지향하는 분단국 한국에서 바람직한 정책인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북한의 미사일 개발과 수출을 죄악시하면서 한국은 방위산업을 수출산업으로 육성시키겠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7. 국제사회에 기여하기 위해서는 PKO보다는 ODA를 앞세워야 한다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위상을 제고하고 세계평화에 기여하기 위한 정책으로 이명박정부는 “기여외교를 위한 대외개발원조(ODA) 확대”와 “국제평화유지활동(PKO 등) 강화”를 중점과제로, 그리고 “인권외교 및 문화외교 강화”를 일반과제로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자원, 에너지 외교”도 핵심과제로 설정되었다. 국제기구의 민주화와 같은 과제가 국정과제로 포함되지 않은 것도 이명박정부 외교안보정책의 한계로 지적될 수 있다. 인수위 국정과제에는 국제기구에서 한국의 역할에 대한 언급이 없다.


     ODA 확대를 강조하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다. 한국의 GNI 대비 ODA 비율은  OECD 국가 가운데 최하위에 속한다. 더욱 문제는 한국의 ODA 정책이 인류보편적 가치에 부합하는 것이라기보다는 단기적 국가이익에 의해 결정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의 ODA는 지구적 수준에서 빈곤을 해결하려는 것이라기보다는 국가이익의 실현을 위한 유상차관에 가깝다. 국제사회에서의 위상제고를 위해서는 무상차관을 중심으로 ODA를 확대개편해야 한다.


     그리고 국제평화에 대한 기여방식을 PKO와 같은 병력파견 위주로 이해하는 것을 지양해야 한다. 한국의 국제평화 유지활동 참여를 부정할 이유는 없으나 한국군의 파견은 최후의 수단이어야 하며, 파견 절차 역시 신중하게 검토해야 한다. 분쟁의 역사나 구조를 이해하지 않은 채, PKO활동의 실효성이나 안전성에 대한 면밀한 검토 없이 한국군의 파병이 이뤄져서는 안 된다 또한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네팔 등 유엔 PKO 최대 파병국들이 국제평화에 기여하는 국가라고 아무도 주장하지 않음에도 마치 대규모 PKO 파병이 국제평화 기여하는 지표인 것처럼 이야기해서도 안 된다.


     따라서 PKO 상비군을 신설하고, 국회에서의 동의절차조차 회피하면서 편의적으로 한국군을 파병하려는 PKO법 제정 시도는 중단되어야 한다. 이것은 한국군의 해외파병에 대해 국회와 국민의 통제를 전혀 받지 않겠다는 의사의 표현일 뿐이다. 그 동안 한국정부가 유엔의 이름으로, 혹은 동맹의 이름으로 한국군의 파견을 추진해왔으면서도, 정작 파병의 성과나 결과조차 제대로 평가한 적도 없고 관련한 기본적인 정보조차 차단하거나 왜곡해 왔던 것에 비춰본다면 오히려 한국군의 해외파병을 제한하는 법을 제정하는 것이 타당하다. 국제평화에 기여하는데 있어 무엇보다 갈등을 예방하고, 비군사적인 방식을 채택해야 함을 대원칙으로 삼아야 한다. 자원외교와 관련하여서도, 이라크 내 석유를 둘러싼 종파갈등을 부채질할 쿠르드 유전개발에 확대 참여한 것을 두고 외교의 성과라고 해서는 안 된다.


     문화외교와 인권외교와 관련해서는, 2005년 10월 유네스코 총회에서 합의된 ‘문화다양성 협약’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문화다양성 협약은 문화가 일반상품이나 서비스와 달리 경제적 성격뿐만 아니라 문화적 성격을 가지고 있고, 따라서 문화적 다양성을 보호하고 증진하는 것이 국제적으로 필요하다는 인식의 산물이었다. 한국 시민사회의 외교적 성과이기도 한 문화다양성 협약에 한국정부는 찬성을 했지만, 한국의 외교부는 이 협약이 세계무역기구나 FTA에 미칠 부정적 효과를 계산하면서 부정적 견해를 밝히기도 했다. 이 이중성은 한국의 국가위상을 추락시킬 수 있다. 국제사회에서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면서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문화외교, 인권외교를 추진해야 한다.  

     8. 외교안보정책의 민주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이명박정부의 외교안보정책에는 이 정책을 실현할 국내적 토대라고 할 수 있는 외교안보정책의 거버넌스에 대한 고려가 없다. 대북정책을 포함한 외교안보정책을 둘러싼 남남갈등이 진행되고 있음을 고려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서로 다른 외교안보정책의 패러다임이 소통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외교안보정책은 특정 집단의 이익을 위한 사적재가 아니라 공공재다. 외교안보정책의 민주화는 국가가 시민사회와의 대화를 통해 정책의 정당성을 획득하는 방법이다. 외교안보정책의 민주화는 우리의 갈 길에 대한 정치적,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내는 토대다. 외교안보정책의 민주화는, 한국의 시민사회가 한반도, 동북아 그리고 지구시민사회의 발전과 각 지역에서의 평화에 기여할 수 있게 할 것이다. 


     다른 한편 노무현정부에서 폐기된 외교안보정책의 전략단위를 재구성하는 작업도 시급한 과제다. 평화국가의 길에 대한 총체적 전략을 구상하면서 관료정치를 조정할 수 있는 제도적 틀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외교부, 통일부, 국방부의 부처 이익을 조정할 수 있는 전략단위의 구성을 통해 외교안보정책의 총체적 관리가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이 단위는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환경이 역동적으로 변하는 상황 속에서 어느 한 국가나 지역에 편중되지 않는 탄력적이고 실용적인 외교안보정책의 실현을 담당하는 기구가 되어야 한다. 


     핵심과제로 제시된 “외교부 인력충원 및 해외공관 인력조정”은 한국외교의 역량을 강화할 수 있는 바람직한 정책이다. 그러나 외교인력의 확충이 외교인력의 미국편중을 확대재생산하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외교정보의 데이터베이스(DB)구축, 지역별 분야별 전문화 등 국제정보의 수집, 분석능력의 향상 등은 필요한 조치라고 볼 수 있다. 외교인력의 충원에 있어서도, 민주화시대에 걸맞게 특권 엘리트를 양산하는 고시제도를 폐지하고, 개방형 인사제도를 도입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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