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핵실험 1년, 경제 재건 ‘올인'(연합뉴스, 2007. 10. 8)

(서울=연합뉴스) 김두환 기자 = “경제를 살리자”

북한이 경제회복에 정책 역량을 총집중하고 있다. 중장기적으로 생전과 체제 안정을 위해선 경제회생이 필수적이라는 인식을 북한 지도부가 분명하게 갖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이 한해동안의 정책방향을 제시하는 올해 신년 공동사설에서 “경제강국 건설은 현시기 우리 혁명과 사회 발전의 절박한 요구이며 강성 대국의 면모를 전면적으로 갖추기 위한 보람찬 역사적 위업”이라며 “경제 문제를 푸는 데 국가적 힘을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한 대목은 경제회생의 ‘절박성을 드러낸 것이다.

`경제강국 건설’을 국가목표로 제시한 이 공동사설은 지금으로부터 1년전인 지난해 10월 핵실험 이후 석달 뒤의 일이다.

북한 언론매체는 이 공동사설 이후 북한이 이미 정치사상 강국과 군사강국을 실현했다며 이제는 경제강국 건설에 매진해야 한다고 수시로 강조하고 있다. 군사강국 건설은 핵실험을 일컫는다.

지난달 14일 입수된 북한의 정치.법률분야 계간지 ‘정치법률연구’는 “강력한 국가경제력을 갖지 못하고는 정치사상강국, 군사강국의 위력도 계속 강화할 수 없다”며 “제국주의의 경제적 침투를 막는 길은 바로 경제력 강화에 있다”고 경제강국 건설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남보다 힘이 약하면 자연히 남을 쳐다보고 남에게 의존하게 된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북한 언론매체는 특히 지난 1월 북.미 베를린 회동을 계기로 북핵 6자회담이 풀려가고 이에 따라 북미관계도 개선되면서 남북관계도 발전되는 등 한반도 정세가 긴장완화 쪽으로 움직이는 국면이 김정일 위원장의 핵실험 ‘결단’때문이었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북한이 핵실험이라는 초강수를 뒀기에 미국이 굴복해 북한과 대화에 나섰다는 게 북한측 주장이다.

북한의 경제 올인은 김정일 위원장이 올해 남북 정상회담 직전까지 나선 공개활동 55회가운데 경제부문 시찰이 18회로 예년에 비해 매우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데서도 나타난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과 한국은행에 따르면, 북한 경제는 1990년대 마이너스 경제성장률을 기록하다 2000년대 들어 다소 회복돼 플러스 상태를 보였으나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마이너스 성장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게다가 올해 8월 대규모 수해로 24만여 가구의 주택과 1천여 채의 공장건물 등이 파괴.침수되고 20여만 정보의 농경지가 피해를 입었으며, 9월 중순에 다시 제12호 태풍 ‘위파’ 피해까지 겹쳐 ‘제 2의 고난의 행군’을 겪는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해 북한의 국민총소득(명목 GNI)은 256억달러로 남한(8천873억달러)의 약 35분의 1 수준이며 1인당 국민총소득(GNI)은 남한(1만8천372억달러)의 약 17분의 1 수준인 1천108달러로 추정된다.

북한의 적극적인 대미관계 개선 움직임이나 남북 경제협력 확대 의지는 경제를 발전시켜 체제를 안정시켜야 한다는 절박함에서 비롯됐다는 분석이다.

사회주의 경제권이 무너진 상황에서 북한이 경제발전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남한과의 경제교류와 협력을 강화하는 것은 물론 대미 관계개선을 통해 국제사회에 편입되는 게 필수적이다.

2000년 첫 정상회담 개최 이후 남한은 북한 경제에 큰 몫을 담당하고 있다.

정부가 지난해 북한에 무상 지원한 물자가 연간 기준으로는 처음으로 2천억원을 넘어섰으며, 정부 차원에서 북한을 돕기 시작한 1995년 이후 지난해 10월 말까지 정부의 대북 지원액 누계는 1조1천718억원에 이른다.

남북 교역액도 급증 추세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2일 저녁 평양 만찬사에서 6.15 공동선언의 의의를 강조하면서 “교역액도 올해 17억 달러에 이를 전망”이라고 밝혔다.

2000년 4억2천515만달러였던 남북교역 규모는 작년 13억4천974만달러로 3.2배가 됐다.

남한을 제외한 지난해 북한의 대외무역 총액은 29억9천600만달러(수입 20억4천900만달러, 수출 9억4천700만달러)이며, 이 가운데 중국이 16억9천960만달러로 57%를 차지한다.

북한이 핵불능화 문제와 관련, “빨리 빨리, 미국이 하자는 대로 하겠다”(김계관 외무성 부상)고 말할 정도로 핵문제 해결에 속도를 내는 것은 경제재건이라는 북한의 절박한 목표를 빼고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이에 따라 김정일 위원장이 외교적 성과가 아쉬운 미국의 부시 행정부가 대북관계에 적극성을 보이는 기회를 포착, 부시 행정부의 임기가 끝나기 전에 북미관계를 진척시켜야 한다는 판단에서 미국이 주문한 ‘전략적 결단’을 내렸다는 평가도 많이 나오고 있다.

북한의 경제발전은 자력갱생만으로는 한계가 있으며 외부로부터의 투자확대가 관건이다. 그러나 미국에 의한 테러지원국 지정과 적성국무역법 적용 등 대북 경제제재 지속은 북한의 외자 조달과 국제경제질서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원천 봉쇄하고 있다.

김정일 위원장은 2000년 남북정상회담 후 그해 8월 방북한 남측 언론사 사장단과 면담에서 “테러지원국이라는 고깔만 벗겨주면 그냥 (미국과) 수교합니다”라고 말해 테러지원국이라는 멍에가 북한에 지우는 부담을 여실히 보여주기도 했다.

북미관계 개선은 자연스럽게 북일관계 정상화의 흐름으로 이어지며, 북일 국교수립이 실현될 경우 일본으로부터 예상되는 50억∼100억달러 정도의 ‘배상금’은 북한 경제재건에 필수요소라는 데 전문가들의 의견이 일치하고 있다.

막대한 자금을 군사비로 투입하고 있는 북한으로선 경제부문에 보다 많은 자금을 돌릴 수 있기 위해서도 한반도 평화를 필요로 한다.

그러나 북한 당국이 외부의 대북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선 개혁.개방을 통해 법.제도적 환경을 마련해야 하는 반면, 김정일 위원장은 개혁.개방에 함축된 체제불안 가능성 때문에 여전히 강한 거부감을 갖고 있음이 이번 남북정상회담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다.

경제재건을 위해 개혁.개방이 필요하지만, 개혁.개방은 동시에 북한 체제안정에 대한 위협요소도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김정일 위원장이 경제재건과 체제기반 공고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어떻게 잡을지 주목된다.

dhk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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