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루토늄 4만kg의 일본이 10kg 북한더러 핵포기 요구?” (프레시안, 2006. 5. 18)

‘북한문제’, 미ㆍ일의 위선의 정치 <1>

중동의 리비아가 핵프로그램을 포기한 대가로 미국과의 관계정상화를 이루고 난 후, 북한도 ‘리비아 모델’을 따르라는 압력이 고조되고 있다. 그러나 북한과 리비아를 단순비교하는 것은 한마디로 넌센스다. 무엇보다 북한은 한국전쟁 이후 현재까지 무려 20여 차례 이상 미국의 핵공격 위협에 시달려 왔다. 더구나 냉전 종식 이후 소련의 핵우산마저 사라진 마당에 자체 안보를 위해 핵무기를 가지려는 북한의 입장은 노무현 대통령의 말처럼 “이해할 만한” 구석이 있다.

물론 북한의 핵무기 보유가 바람직하다는 얘기는 아니다. 북한의 핵무기 보유는 한국은 물론 일본, 대만 등의 핵무기 개발을 촉발해 동북아에 핵군비 경쟁을 유발시킬 것이 분명하다는 점에서 반드시 막아야만 한다. 문제는 북한의 핵무기 보유를 저지하려는 미국의 협상태도가 공정하냐는 점이다.

미국은 무려 1만 기의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으면서도 신형 핵무기 생산을 본격 추진하고 있고 나아가 비핵국가에 대한 선제핵공격 계획을 분명히 하고 있다. 게다가 핵확산금지조약(NPT)상 핵무기 보유국의 의무인 핵군축은 아예 모른 체 하고 있다. NPT 미가입국인 인도에게는 미국의 첨단 핵기술 이전을 허용하면서 가입국(비록 지금은 탈퇴를 선언한 상태이지만)인 북한에 대해서는 NPT 가입국의 권리인 평화적 핵이용권마저 한사코 부정하려 한다.

일본은 또 어떤가. 일본은 자국의 안보를 미국의 핵우산에 의존하면서 스스로 핵보유국이 될 준비를 착실히 진행해 가고 있다. 현재 일본은 핵폭탄 약 5000개를 만들 수 있는 플루토늄 4만kg을 보유하고 있다. 북한이 갖고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10~15kg에 비하면 무려 3000~4000배나 많다. 또한 일본은 비핵국가로는 유일하게 우라늄농축 및 플루토늄 재처리 시설을 갖고 있다. 반면 한국과 북한은 우라늄농축도 핵연료 재처리도 못하게 돼 있다.

호주국립대의 저명한 동북아 전문가인 개번 매코맥 교수는 핵무기에 관한 미국과 일본의 이러한 태도를 ‘위선의 정치’라고 비판한다. 한마디로 ‘내가 하면 로맨스요,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식의 이중잣대를 적용하고 있다는 얘기다. 그는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 원칙을 천명한 지난해 9.19 6자회담 공동성명 이후 미국과 일본은 범죄, 인권문제 등을 앞세워 노골적으로 북한의 체제 붕괴를 꾀하고 있다면서, 한국을 비롯한 중국, 러시아 등이 ‘협상의 축’을 형성해 9.19공동성명의 실현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매코맥 교수의 “북한문제, 미국과 일본의 위선의 정치(“The North Korean Problem”, Japan and the US: The Politics of Hypocrisy)를 번역, 5회에 걸쳐 싣는다. 원문은 동북아 관련 전문 웹사이트인 <재팬포커스>(http://www.japanfocus.org/article.asp?id=594)에 실려 있다. <편집자>

위선으로 점철된 핵무기의 정치

지난 60년간 핵무기는 지구촌 최대의 위협이었다. 그러나 핵을 둘러싼 정치는, 이론적으로는 인류의 생존을 위해 가장 절박한 과제이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그 어느 분야보다도 위선으로 점철돼 왔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모하메드 엘바라데이 사무총장은 언젠가 “어떤 나라가 대량살상무기를 가지려 하는 것을 도덕적으로 비난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핵무기에 자신의 안보를 의존하고 나아가 지속적으로 핵무기 성능을 개량하며 심지어 핵무기 사용을 계획하는 어떤 나라들은 도덕적으로 용납하는” 식의 사고방식은 결코 “통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엘바라데이는 어떤 나라들이 도덕적으로 비난받고, 또 어떤 나라들은 용납되는지를 구체적으로 밝히지는 않았다. 그러나 “핵무기에 자신의 안보를 의존하고 나아가 지속적으로 핵무기 성능을 개량하며 심지어 핵무기 사용을 계획하는” 나라들이란 기존 핵무기보유국들을 지칭하는 것이 분명하다. 또한 핵무기 개발을 이유로 기존 핵무기 보유국들로부터 비난을 받는 나라들은 북한, 이란 등을 말하는 것이 분명하다. (엘바라데이 발언의 요지는) 한마디로 미국, 그리고 일본과 같은 동맹국들의 입장은 위선적이라는 것이다.

지난해 5월에 열렸던 핵확산금지조약(NPT) 검토회의는 아무런 성과도 내지 못한 채 실패로 끝났다. 그것은 재앙이었고 분노할 만한 일이었지만, 결코 놀랄 일은 아니었다. 실패의 책임은 기존 핵무기 보유국들과 새롭게 핵무기를 보유하려는 국가들에게 똑같이 있다. 핵클럽 국가들은 그 위선적 태도로 핵확산금지체제의 신뢰도를 떨어뜨렸으며, 일부 국가들은 이른바 초강대국의 법칙, 즉 ‘핵무기가 없으면 안보도 없다’며 자신의 핵무기 보유 노력을 정당화했기 때문이다.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은 현재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NPT체제를 잠식시킨 최대의 주범은 미국이다. 미국은 한편으로는 이라크, 리비아, 이란, 북한 등의 핵확산 위협으로부터 지구촌을 보호하겠다고 주장하면서, 다른 한편으론 과거 스스로의 약속을 어기고 비핵국가에 대한 선제핵공격을 계획하고 있다.”

핵무기가 안보의 보증수표가 아니라는 수많은 증거에도 불구하고(특히 미국에 대한 9.11 테러가 이를 극명하게 드러냈다), 미국 영국 러시아 프랑스 중국 등 핵클럽 국가들은 30년 전, NPT 6조에 의거해 자신들이 스스로 공약했고 지난 2000년 재차 확인한 약속, “핵무기 제거의 분명한 완수” 의무를 여전히 무시하고 있다. 특히 이들 국가 중 서방 강대국들은 자신들이 편애하는 국가, 이스라엘이 비밀리에 엄청난 핵무기를 비축하고 있는 것을 모른 체 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NPT에 가입하지도 않았고, 핵확산 금지에 대해서는 코웃음을 치고 있는데도 말이다. 또한 미국은 (NPT 미가입국이며 핵무기 보유국가인) 인도에 대해 “첨단 핵기술을 가진 책임 있는 국가”라고 치켜세우면서 지난 30년간 금지돼 왔던 민수용 핵기술 교류를 허용했다. NPT 미가입국과의 민수용 핵기술 협조는 NPT의 기본정신에 정면으로 위배된다.

한편 미국은 2003년 3월 이라크가 핵무기를 개발하려 한다는 하황된 주장을 바탕으로 이라크를 침공했다. 이런 미국은 1만 기 가까운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으며, 앞으로 수백 년간 치명적 방사능을 퍼뜨릴 수 있는 열화우라늄탄을 배치해 놓고 있다. 또 탄도탄요격미사일금지협정(ABM)에서 일방적으로 탈퇴한 것은 물론, 포괄적핵실험금지협정(CTBT)도 비준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 그뿐인가. 올해 들어서는 매년 250기의 신형핵무기 생산 계획을 채택해 앞으로 사용이 훨씬 수월한 ‘미니핵폭탄’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으며, 자신의 핵무기 헤게모니를 지구에서 우주까지 확대하겠다는 야망을 숨기지 않고 있다. 미국의 이같은 태도는, 지난 60년대 미국 국방정책의 책임자였던 로버트 맥나마라의 2005년 3월 발언을 빌리자면 “불법적이며 부도덕하다”.

세계 유일의 핵무기 피해국가인 일본은 “비핵 3원칙(핵무기를 생산하지도, 보유하지도, 도입하지도 않겠다는)”을 견지하고 있으며, “평화헌법”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일본 국방정책의 핵심은 핵무기다. 물론 문제의 핵무기는 일본 것이 아니라 미국 것이다. 그러나 일본은 자신에 대해 핵무기로 공격하거나 핵무기 공격을 위협하는 국가는 미국의 핵반격에 의해 초토화될 것이라는 보장에 목을 매고 있다. 일본의 ‘비핵 3원칙’이란 것도 따지고 보면 허울에 불과한 것이다. 일본의 실제 정책은 (미국) 핵무기에 대한 절대적 의존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핵군사주의를 절대적으로 지지했던 일본은 지난 1969년 미국과의 비밀협약을 통해 자신의 비핵 3원칙을 무력화시켰다. 핵무기를 실은 미국 군함이 일본 항구에 정박하거나 일본에서 군사훈련을 할 경우, 일본정부는 이를 “모른 척 한다”는 조항을 끼워넣었다. 이 조항은 1992년까지 계속 유지됐다.

일본의 국방정책은 핵무기에 대한 의존, 나아가 스스로 핵무기를 보유하려는 열망에 바탕을 두고 있다. 따라서 일본은 ‘동북아비핵지대’ 같은 구상에는 냉담할 수밖에 없다.

일본은 ‘비핵 3원칙’을 내세우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핵강국으로의 준비를 착실히 진행시켜 가고 있다. 일본은 ‘비핵국가’ 중 우라늄 농축 및 핵연료 재처리 시설을 모두 보유하고 있으며, 동시에 고속증식로 개발까지 하는 유일한 국가이다. 현재 일본이 보유하고 있는 플루토늄은 40톤이 넘는데, 이 정도로는 나가사키형 핵폭탄 약 5000개를 만들 수 있다. 집요하게 핵연료사이클 완성을 추구해 온 일본은 현재 마음만 먹으면 곧바로 핵무기를 제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이는 2005년 2월, 향후 5년간 모든 우라늄 농축과 핵연료 재처리를 동결하자는 IAEA 사무총장의 호소를 정면으로 위반한 것이다.

일본이 현재 보유하고 있는 40톤의 플루토늄과 1994년 한반도를 전쟁 직전까지 몰고 갔던 북한의 플루토늄 보유량을 비교해보자. 이른바 전용 의혹을 받고 북한의 플루토늄 보유량은 기껏해야 10~15kg 정도다. 또 남한은 지난 1980년대초 겨우 0.7g밖에 안되는 농축우라늄을 은밀히 생산했다고 해서 IAEA로부터 가혹한 질책을 받았다. 오는 2007년 7월 일본의 로카쇼무라 핵단지가(아마도 세계 최대의 핵단지로 약 19조 엔의 운영경비가 소요될 것으로 예상됨) 완공될 경우, 이 단지에서는 매년 800톤의 사용후 핵연료를 재처리할 수 있다. 이는 매년 핵무기 1000기를 만들 수 있는 플루토늄 8톤이 추가 생산됨을 의미한다.

중요한 것은 이처럼 방대한 시설에서 핵분열물질 1% 정도가 사라졌을 경우, 과연 알아낼 수 있겠는가 하는 점이다. 이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일본은 또한 매년 치명적 독성을 지닌 핵폐기물을 선박에 실어 거칠고 험하고 먼 바다를 거쳐 해외로 반출하고 있다. 배 한 척에는 핵폭탄 17개에 해당하는 방사능물질이 실려 있는데, 일본은 핵폐기물 선박이 항해하는 항로 주변국가들의 항의에도 불구하고, 또한 해적이나 테러분자에 의한 탈취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핵폐기물의 해외 반출을 계속하고 있다.

한편 인도와 파키스탄의 핵실험 이후 유엔에서는 핵군축과 핵확산 저지를 보다 힘 있게 추진하기 위해 “신아젠다동맹(New Agenda Coalition: NAC)”이 결성됐지만, 일본은 극력 가입을 꺼리고 있다. 일본으로서는 NAC가 지나치게 “대결적”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미국 등 기존 핵무기보유국들에 대해 노골적으로 대결적 자세를 취하고 있기 때문에 참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일본이 미국의 뜻을 거스르고 NAC에 참여할 경우, 미국이 일본에 제공하는 “핵우산”이 약화될지도 모른다.

결국 일본은 핵확산 저지를 주장하고 북한의 핵폐기 의무를 강조하면서도, 핵군축에 대해서는 소극적 자세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미국 등 기존 핵무기보유국들의 핵군축 의무에 대해서는 애써 모른 척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의 국방정책은 핵무기에 대한 의존, 나아가 스스로 핵무기를 보유하려는 열망에 바탕을 두고 있다. 따라서 일본은 ‘동북아 비핵지대’ 같은 구상에는 냉담할 수밖에 없다.

개번 매코맥/호주국립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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