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주한미군 감축 가시화에 관한 논평 발표

주한미군 감축, 군비증강 아닌 평화군축의 계기로 삼아야

해외주둔 미군의 재배치계획(GPR)의 일환으로서 추진될 예정이던 주한미군 감축이 주한미군의 이라크 차출결정과 맞물려 가시화되고 있다. 이 같은 미국의 일방적인 주한미군 감축계획을 놓고 일각에서는 이를 우리사회 내의 지나친 ‘반미감정’이나 정부의 ‘안일한 동맹 관리’ 탓으로 돌리는 등 낡은 냉전적 공세의 강도를 높여가고 있다. 그러나 낡은 시대에 안주하고자 하는 일부 보수언론과 논객들이 씌워놓은 색안경을 벗고 상식의 눈으로 본다면, 주한미군의 이라크 파견과 단계적 감군은 미국의 이라크 침공의 실패, 나아가 일방주의적 군사주의의 실패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자, 한반도에서도 미국과 한국의 이해관계가 같을 수 없음을 보여주는 의미심장한 사건이다.

때마침 노무현 대통령이 집권 2기를 맞이하고 있다. 그리고 반세기만에 이루어진 정치적 역학 구도의 변화 속에 17대 국회가 개원을 앞두고 있다. 그러나 국민이 만들어 낸 새로운 정치적 여건에도 불구하고 노무현 정부와 집권 열린우리당은 한반도의 미래를 좌우할 당면한 외교안보 현안에 대해 진취적 비전도 새로운 선택도 보여주지 못한 채 머뭇거리고 있다. 이라크 추가파병, 주한미군 감축, 북핵 협상, 남북경협 등은 고착된 냉전적 대결자세와 일방적인 대미의존정책을 탈피하지 않고서는 평화적으로 해결되거나 좋은 성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것들이다.

우리는 한반도와 국제정세가 급변하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새로운 독립적 외교안보 비전과 전략이 가시화되어야 할 중대한 국면임을 직시하며, 참여정부에 다음과 같은 외교안보정책의 전환을 촉구하고자 한다.

첫째, 한미동맹에 모든 것을 거는 냉전적 안보관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점이다. 안보환경이 급변할수록 전략과 비전을 분명히 해야 한다. 미국의 길과 한반도의 길은 다르다. 주한미군 감축의 근간이 되는 이른바 GPR에도 나타나듯, 미국은 장기적으로 동북아에서의 전력증강과 한미일 지역군사동맹을 도모하고 있으나 이는 우리의 평화번영 전망과는 어긋나는 길이다. 중장기적으로 미국이 제안하는 한미일 지역동맹의 배타적 틀에서 벗어나 미일 외 역내 국가들과 경제·군사적 협력을 적극적으로 강화하고 상호의존을 심화시켜 나가는 협력안보를 추진해야 한다. 동북아에서 체제를 달리하는 국가들의 대결적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적극적 협력안보’야말로 한반도의 평화와 안보를 위한 길이라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이러한 거시적 전망 하에서 우선 한미동맹을 기존의 일방적인 관계에서 상호적인 관계로 재조정해 나가야 한다. 정부는 당면한 주한미군 감축에 의연하게 대처하는 것은 물론이고, 주한미군 감군 대신 군비의 확장을 요구하는 냉전적 강박증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둘째, 남북관계의 획기적 개선이 필요하다. 남북교류협력 사업의 진전을 통해 남북 긴장완화와 북미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분명한 입지를 구축해야 한다. 특히 3대 경협사업을 통한 대북경제지원은 북한의 경제재건을 위한 재원 확보에서 높은 비중을 차지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남한이 한반도 정세를 적극적으로 관리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 무엇보다 현재와 같은 북미 교착상태에서 더욱 그러하다. 우선 북핵협상 추이에 따라 남북경협의 속도를 맞출 것이 아니라 북핵협상 진전여부와 상관없이 현재 추진하고 있는 3대 경협사업을 실질적으로 발전시킨다는 원칙을 세우고 이를 통해 북핵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도록 해야 한다. 부시 행정부의 대북압박정책이 실질적으로 핵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북한의 핵무장을 가속화시킬 수 있다는 미국 내부의 비판을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북한의 완전한 핵폐기(CVID)를 핵협상의 전제조건으로 주장하는 미국과 공조하기보다는 동시행동원칙을 유연하게 수용하도록 미국을 설득하고 대북 에너지 지원을 통해 남북관계 개선을 도모하는 것이 핵문제를 해결하는 데 훨씬 바람직하다.

셋째, 남북화해협력의 국가전략적 기조를 명확히 할 법적, 제도적 장치를 구축해야 한다. 지난 6.15 남북공동선언 이후 유래 없는 남북간의 교류활동은 한반도 긴장완화를 가져오고 상호간의 이해를 증진시켜왔다. 그러나 대북정책의 투명성이나 법적 실효성의 문제 등 여전히 많은 부분이 미흡한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남북기본합의서의 정신과 규정들을 포함하는 남북관계기본법을 제정하여 대북정책의 투명성과 국민적 합의기반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남북교류협력법의 개정을 통해 민간 대북지원 단체들이 정부 정책결정과정에 참여하도록 하고 승인절차 간소화, 남북협력기금 운용 등을 정비해 나가야 한다.

이미 남북교류협력에 대한 지지기반은 확고히 마련되어 있다. 정부가 이를 보다 진전된 협력관계의 계기로 삼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북한 용천사고에 대한 남한 시민사회의 대대적인 대북지원 노력에서 남북화해의 국민적 공감대를 확인할 수 있다. 남북교류협력 활성화에 대한 정치권의 공감대도 형성되어 있다. 특히 지난 16대 국회에서 남북교류협력기금을 삭감하는 등 남북경협에 대해 경직된 입장을 고수해왔던 한나라당이 총선 직후 남북교류협력에 대한 초당적 협력과 대북지원 등을 약속한 것은 주목할만하다.

넷째, 주한미군 감축을 군비증강이 아닌 평화군축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주한미군 감축으로 인한 ‘안보공백’을 명분으로 대규모 무기사업을 계획하거나 국방비 증액하는 것은 한반도 주변의 군비경쟁을 가중시킬 뿐이다. 안보불안심리를 내세워 막대한 규모의 첨단무기를 사서 한반도에 배치하는 것은 동북아에서 MD 등 군비증강을 꾀해온 미국의 강경파들이 속으로 쾌재를 부를 일이지만 한반도의 평화나 안보와는 무관한 일이다. 군사안보 전문가들조차 남한의 국방력이 충분한 대북억지력을 갖추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이 마당에 대북절대억지 개념에 따라 전력증강을 꾀한다면 오히려 군사적 긴장을 불러올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주한미군 감축은 오히려 남북한 상호 군축의 절호의 기회가 될 수 있다. 남북한의 적극적 관계개선을 바탕으로 군사적 신뢰구축과 군축을 기조로 하는 새로운 군사적 판짜기를 시도해야 한다. 남북한의 군축은 정체 모를 안보불안을 해소하고 보다 많은 사회적 혜택을 낳을 수 있다. 92년 남북기본합의서를 통해 약속한 바 있는 남북간 군사대화를 이제부터라도 적극적으로 진행시켜야 한다. 우리가 이번 달 말로 예정된 남북 장성급 회담을 주목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번 장성급 회담은 꽃게잡이 철마다 반복되는 군사적 충돌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들을 마련하는 것뿐만 아니라 보다 실질적인 군사대화로 나가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그러자면 우선 주한미군 공백을 메운다는 것을 빌미로 대규모 연합군비확장을 논하는 식으로 북한을 자극하는 군비경쟁논의는 자제해야 한다.

한편, 주한미군의 감군은 군사적 측면의 자주권 회복과 연결되어야 한다. 미국 무기 도입보다 선행해야 할 것은 전시 작전통제권의 이양이다. 주한미군 감군계획의 이행과 동시에 작전지휘권 반환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게다가 미군의 재배치 목적이 한반도 전쟁억지를 넘어서는 동북아 차원의 미군 재배치 전략의 문제인 만큼, 기지이전 및 분담금 문제도 새로운 조건에 맞게 재검토하여야 한다.

다섯째, 이라크 추가파병 결정 철회로 평화자주외교의 첫걸음을 내딛어야 한다. 주한미군을 빼어갈 만큼 다급한 이라크 상황은 한국군의 전후 재건복구 임무 수행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지금 미 점령군에 대한 이라크 국민들의 대규모 저항으로 미국의 이라크 점령은 총체적인 파탄에 빠져 있다. 뿐만 아니라 가공할 무력과 폭력으로 민간인을 학살하고 야만적인 포로학대를 자행하는 미국의 이라크 점령정책은 국제사회로부터의 심각한 냉소와 혐오를 불러오고 있다. 그 결과 이미 일부 국가들이 이라크에서 병력을 철수하거나 철수 방침을 밝히고 있고 심지어 미국 대선 후보조차 철군을 주장하고 나섰다.

주한미군 이라크 파병을 두고 일부에서는 한국이 추가파병 안한 탓이라고 근거 없는 국민협박을 일삼고 있다. 그들은 미국이 요구하는 ‘전투병’을 조속히 파견해야 한다고 목청을 높이고 있다. 정부는 이들의 협박에 굴복하지 말고 대다수 국민의 뜻을 좇아 파병을 철회해야 한다. 그러나 정부는 최근 들어 파병일정 강행을 거듭 천명하는가 하면 파병철회를 주장하던 여당 내 일부 인사들도 목소리를 낮추고 있다. 이는 정부와 여당이 표면적으로는 주한미군철수와 파병은 무관하다고 하면서도 대미 저자세를 버리지 못하고 친미적 논객들의 근거 없는 파병몰이에 영향받고 있음을 간접적으로 드러내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미국의 이라크 침공은 이미 패배한 군사행동이며, 한국군의 파병은 우리 국민은 물론 이라크 국민들에게도 결코 도움이 되지 않을 재앙을 가져올 중대한 역사적 실책이 될 것이다. 정부와 여당은 단호히 파병결정을 철회해야 한다.

지금까지 한국의 대외정책은 ‘미국보다 미국을 더 생각하는’ 냉전적이고 대미추종적인 이들에 의해 주도되어왔다. 이러한 자아상실의 역사는 이제 끝나야 한다.

평화군축센터

PDe2004052400.hwp

첨부파일: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