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상이몽(同床異夢)과 흑묘백묘(黑猫白猫)론

23일 예정된 북 중 미 3자 대화 감상법

이른바 ‘북핵위기’로 불리는 북-미간 갈등 해소를 위한 첫 번째 틀거리로 ‘북-미-중’ 3자 회담이 발표되자, ‘남한 소외론’이 시끄럽게 일었다. 그러자 노무현 대통령은 “중요한 것은 북핵 문제의 해결”이라며 “모양새나 체면을 생각하기보다 결과가 좋아야 한다”라고 맞받았다.

3자 대화에 대한 정부의 인식과 관련해,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흑묘백묘(黑猫白猫)론’에 비유했다.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것이다. 그는 말한다. “핵문제 등 갈등을 풀기 위해 핵심 당사자인 북한과 미국이 실질적 대화를 시작하는 게 중요하다. 회담 형식을 두고 논란을 벌일 때가 아니다. 이건 명분과 실리의 문제가 아니라 민족의 생존과 국익에 관한 문제다.”

한반도 문제와 관련해 북-미-중 틀거리가 짜이기는 반세기 전 정전협상 이후 처음이다. 그만큼 전문가들도 예상치 못했던 이례적 접근법이다. 3자 대화 틀은 효율적인 쥐덧이 될 것인가?

이를 전망하기 위해선 ‘중국 변수’의 의미맥락을 잘 짚어야 한다. 이 틀은 다소 도식적으로 본다면, 내용면에선 북-미 직접대화를 주장해온 북한이, 형식에서는 다자대화를 강조해온 미국이 자신의 요구를 관철한 셈이다. 그리고 그 한 가운데 중국이 있다. 북한 처지에선 중국이 자신의 후견인이자 ‘일방적 폭주기관차’인 미국의 견제자로서 의미가 있다고 판단했을 것이고, 미국은 ‘악의 축’ 국가 북한을 묶어두고 여차직하면 대북대응의 책임을 나눠질 보증자로서 중국을 상정했을 수 있다. 중국은 개혁개방에 장애를 조성할 동북아 정세 불안을 원하지 않음은 물론 완충지대로서 ‘비핵 북한’의 존재가 필요하다. 요컨대 3자 대화 틀은 동상이몽(同床異夢)의 소산인 셈이다.

‘동상(同床)’과 ‘이몽(異夢)’의 모순적 결합은 앞길을 예측하기 어렵게 한다. 그러나 그 ‘서로 다른 꿈’의 동행자가 중국이라는 사실은, 적어도 이 대화 틀이 쉽사리 깨지지 않을 것임을 예상케한다. 중국의 자리에 남한 또는 일본, 러시아를 대체시키는 가상실험을 해보는 방식으로’북-미-중’3자 틀의 상대적 안정성을 비교해볼 수 있겠다.

중국 얘기를 좀더 하는 게 좋겠다. 중국은 지난해 10월 핵논란이 다시 불거진 이후 ‘한반도 비핵화’와 ‘대화를 통한 평화적 해결’이라는 두가지 원칙을 지속적으로 강조해왔다. 그러면서 북-미 양자협상을 촉구해왔다. 그런데 3월6일 탕자쉬안 당시 중국 외교부장은 외신 기자회견에서 묘한 발언을 했다. 북핵 문제와 관련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던 끝에 “중국은 북핵의 평화적 해결에 기여하는 한 ‘무엇이든 적극적이고 개방적인 자세’를 취할 방침”이라고 덧붙인 것이다.

탕 부장의 이 발언은, 즉각 중국은 핵문제 해결의 틀로 ‘북-미 양자협상만을 주장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뜻으로 받아들여졌다. 당시 정부 고위 관계자는 이를 두고 “중국은 상대방이 듣기 싫어하는 소리를 잘 하지 않는 나라”라며 “중국은 (북한과)채널이 많다”라고 말했다. 물밑에서 ‘의미심장한 변화’가 일고 있음을 내비친 것이다. 실제가 그랬다. 미국은 3월7일 뉴욕에서 있는 중국과의 유엔 접촉에서 “조지 부시 대통령은 절대로 양자대화에 동의할 수 없다”는 메시지를 전달했다고 4월16일 <뉴욕 타임스>는 전했다.

그리고 3월 8일 중국 외교의 실력자인 첸지천 부총리가 북한의 백두산 근처 삼지연 공항에 모습을 드러냈다. 미국과의 갈등 해소 방안 마련에 골몰하고 있던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설득’하기 위한 것이었다. 첸 부총리는 김 위원장을 만나 “부시 대통령의 요구를 받아들이는 것외에는 다른 선택이 없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중국의 절충안은 ‘북-미-중 3자 회담’ 방식이었다. 결과적으로 이는 북한과 미국의 ‘서로 다른 꿈’이 만날 수 있는 절묘한 타협안이었다. 하지만 중국은 외양상 3자 대화를 제안하면서도 자신 구실을 북-미간 대화를 가능케 하는 마당을 마련하는 정도로 제한했다. 미국은 중국이 회담의 정식 참석자로 나설 것을 역제안했다. 중국이 회담 과정과 그 결과에 ‘책임’을 나눠져야 한다는 것이다. 중국은 이를 받아들였다.

후진타오 당 총서기 겸 국가주석은 3월16일 부시 대통령과 전화통화에서 중국의 더욱 적극적인 역할을 강조했다. 돌파구가 보이기 시작한 셈이다. 이를 두고 미국 부시 행정부의 한 관계자는 “새로운 것은 중국의 적극적이고 대담한 역할”이라고 평가했다고 4월16일 <뉴욕 타임스>는 전했다. 미국이 3자 대화에 나선 것은 중국이 회담에 전면적으로 참석하기로 약속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3자 회담은 중국과 미국의 상호 견제와 협력의 새로운 실험인 셈이다.

그러나 3자 회담의 확정을 위해선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더 있었다. 북한의 동의와 남한의 양해가 필요했다. 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은 3월28일 워싱턴에서 열린 윤영관 외교통상부 장관과 회담에서 이런 사태 전개를 알리며 ‘양해’를 구했다. 한국 정부는 이를 받아들였다. 남한도 회담에 처음부터 꼭 끼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모처럼 가능해진 ‘판이 깨질 수도 있다’는 판단을 했다고 정부 고위 관계자는 말했다.

북한의 태도에도 변화가 일었다. 3월 31일 한성렬 유엔대표부 차석대사는 잭 프리처드 미 국무부 대북교섭 담당 대사와 이른바 ‘뉴욕채널’ 접촉에서 미국의 다자대화 요구를 즉각 거부하지 않는 방식으로 이런 심중을 암시적으로 내비쳤다. 좀더 분명한 태도변화는 4월12일 북한 외무성 대변인의 관영 <중앙통신> 기자회견에서 드러났다. “…문제는 미국이다. 만일 미국이 핵문제의 해결을 위하여 대조선 정책을 대담하게 전환할 용의가 있다면 우리는 대화의 형식에 크게 구애되지 않을 것이다. 문제 해결의 열쇠는 미국의 본심이 무엇인가 하는데 달려 있다.” ‘북-미 양자틀’을 고집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게 이 기자회견이 전하는 핵심 메시지다.

드디어 돌파구를 열 구체적 실마리가 잡힌 것이다.

3자 회담은 4월23~25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릴 예정이다(이글은 애초 월간 <참여사회>를 위해 18일 저녁 작성한 것으로, 사이버 참여연대를 위해 22일 조금 손을 봤다).

갈등 해소를 위한 협상은 시작되게 됐지만, 아직 많은 것이 불분명하다. 우선 이번 회담의 형식과 위상에서부터 혼선이 있다.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4월18일 관영 <중앙통신>과 한 기자회견에서 베이징 회담의 개최 사실을 확인하면서도 “중국쪽은 장소국으로서의 해당한 역할을 하고, 핵문제의 해결과 관련한 본질적인 문제들을 조(북)미 쌍방 사이에 논의하게 된다”라고 강조했다.

‘북-미 양자협상’이라는 것이다. 중국은 이번 회담의 참여 주체가 3자인지 양자인지 직설적으로 언명하지 않은 채 “형식보다 회담에 임하는 성의가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북, 미간의 회담 형식을 둘러싼 이런 명분 다툼은 일단 최근의 추이를 볼 때, 남북 당국간 회담에서 때때로 불거져온 ‘서로 편리한대로 해석’하는 방식으로 해소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이게 예정된 회담 일정을 헝클어뜨리릴 새로운 마찰의 불씨가 될 가능성을 완전 배제할 수는 없다.

회담의 위상도 논란거리다. 미국의 필립 리커 국무부 대변인은 이번 회담의 성격을 ‘예비적 단계’로 규정했다. 그리곤 “한국과 일본이 회담 초기에 참여하는 것이 우리가 추구하는 실질적 결과를 얻기 위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우선 의제와 회담 참여 주체의 폭 등을 논의하게 될 것이라는 얘기다. 하지만 “검증가능하고 역행할 수 없는 형태로의 핵개발 계획의 종결”에 논의의 초점이 맞춰질 것이라는 미 국무부 부대변인의 언급에 이르면, 이번 회담이 ‘예비회담’의 성격을 뛰어넘을 수도 있어 보인다. ‘예비회담’과 ‘본 회담’ 시작의 성격이 혼재되어 있다고 봐야 할 것 같다.

북한이 공표한 회담 성격은 명확하다.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4월 18일 “핵문제의 해결과 관련한 본질적인 문제들은 조(북)미 쌍방사이에 논의하게 된다”라고 강조했다. ‘북-미간 본질적인 문제들’을 논의하는 본 회담의 시작이라는 것이다.

회담의 성격을 어떻게 규정하든, 북-미-중 3자 회담이 핵문제 등 북-미간 갈등 증폭으로 흔들리는 한반도 정세를 안정시키는 회담체계의 처음이자 끝이 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북-미간 갈등의 폭발로 회담이 중단되지 않는다면, 논의 틀은 시차를 두고 다자적 논의와 쌍무협상이 병행되는 ‘포럼’ 방식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이 방식의 구체상을 현존하는 회담체계에 비유하자면, ‘아세안지역포럼’(ARF) 방식을 떠올려보는 것도 괜찮겠다. 이 포럼은 한국과 북한, 미국을 포함해 태평양 연안 10개국이 회원국으로 참여하고 있고, 포럼 틀 안에서 다자협의와 쌍무협의 병행해 이뤄지고 있다.

예상 가능한 논의 틀의 변화 양상은 북한과 미국을 비롯해 한국, 중국, 일본 등 관련국이 내세우는 관심사항을 짚어보는 것을 통해 유추해볼 수 있다(러시아는 1994년 핵위기 해결과정에서 배제된데 이어 이번에도 ‘왕따’될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북한은 지난해 10월25일 외무성 대변인 담화에서 자주권 인정과 불가침확약, 경제발전에 장애를 조성하는 않는 조건에서 대화에 응할 뜻이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이는 미국의 체제안전보장과 경제재건에 필요한 국제사회의 대대적 지원 등 두가지로 요약된다.

미국의 대북 관심사는 다양하지만, 그 핵심은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능력의 완전한 제거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의 대북 체제안전보장과 북한의 핵 및 탄도탄미사일 포기는 기본적으로 북-미간 양자협상을 통해 풀릴 사안이다. 때문에 이번 3자 회담에서 북, 미 두 나라가 중국을 매개로 여하히 접점을 찾느냐가 논의의 지속성과 성패를 가늠할 핵심 쟁점이다. 당장 미국은 “검증가능하고 역행할 수 없는 형태로의 핵개발 계획의 종결”이 논의의 초점임을 명확히 하고 있다. 북한이 핵개발 시도를 완전하게 포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이 미국의 이런 압박에 호락호락 머리를 숙일 것 같지는 않다.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이제는 8천여대의 폐연료봉들에 대한 재처리작업까지 마지막 단계에서 성과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라고 밝혔다. 대변인은 이와 함께 “이라크전쟁은 전쟁을 막고 나라의 안전과 민족의 자주권을 수호하기 위해서는 오직 강력한 물리적 억제력이 있어야 한다는 교훈을 주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지난해 10월 25일 외무성 대변인 담화에서 ‘협상의 방법’과 ‘억제력의 방법’ 가운데 “될수록 전자를 바라고 있다”고 강조했던 것과는 사뭇 다른 뉘앙스다. 그러나 정부는 황영수 국방부 대변인 이름으로 발표한 ‘입장’에서 “한미 정보기관의 공동 평가에 따르면 북한은 재처리 시설 가동을 위한 준비는 해왔으나 재처리 시설의 가동 징후는 현재까지 식별된 바 없다”라고 밝혔다.

국제원자력기구 기술진도 지난 1월 북한이 재처리에 들어가기 위해선 6개월 남짓의 준비 기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한 것에 비춰봐도, 북한 외무성 대변인의 발언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려운 구석이 있다. 다른 당국자는 “자기 입장을 세우고 카드로 사용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는 것으로 보인다”라며 “미국에 볼드 어프로치(대담한 접근법)을 본격적으로 꺼내라는 메시지”라고 해석했다. 북한 특유의 ‘벼랑 끝 전술’이자 ‘협상용 압박카드’로 봐야 한다는 분석이다.

회담의 양상을 좀 거칠게 도식화 하자면, 북한과 미국이 체제안전보장과 핵포기 쟁점에서 일정한 진전을 이룬다면, 3자 회담 체계는 ‘다자 속의 쌍무’ 틀로 진화하게 될 전망이다. 북한의 경제재건을 위한 국제사회의 지원 문제는 북-미간 협의 틀 속에선 만족할 만한 답을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정부 고위 관계자는 “북한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안보문제이고 이는 경제를 포함해 총체적으로 맞물려 있는 만큼 3자 회담으로 굳어지지 않을 것”이라며 “북한의 안보-경제 문제를 모두 해결하려면 (한국을 포함한)다자구도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당장 3자 회담 방식을 마뜩해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진 도널드 럼스펠드 미 국방장관은 “미국은 북한의 핵무기 개발을 막기 위해 북한에 지불할 용의가 있는 대가가 없다”라고 선을 긋고 나섰다. 그는 ‘북한에 외교, 경제 등 비군사적 지렛대를 갖고 있는 다른 나라들’로 중국, 일본, 한국을 지목했다. 북한에 대가를 지불하려면 한-중-일이 알아서 하라는 것이다.

회담의 출발 단계에서 배제된 한국과 일본으로선 이 과정에서 ‘돈만 대는 들러리’에 머물지 않기 위한 나름의 방책 마련이 필요한 상황이다. 이와 관련해 정부 고위 관계자는 “우리에겐 남북대화 채널이 있다”라며 “북-미 대화가 진행되면, 남북대화도 진행될 수밖에 없다”라고 나름의 자신감을 내비쳤다. 북한은 27~29일 평양에서 10차 장관급회담을 열자고 19일 제안했고 남한은 21일 이를 정식 수용했다. 끊겼던 남북 당국간 대화도 다시 가능해진 것이다.

3자 회담을 어떻게 평가하든, 이는 한국전쟁 이후 한반도 정세를 끊임없이 뒤흔들고 있는 북-미간 갈등을 넘어 한반도 평화, 나아가 동북아 평화 안정을 위한 귀중한 출발선의 의미를 지닌다. 이 경우 우리는 ‘시작이 반’이라는 말보다는, ‘첫술에 배부르랴’는 말을 기억해두는 게 좋겠다. 그 앞엔 수많은 지뢰를 피하며 적게는 몇 년에서 길게는 십여년 이상 걸어가야 할 ‘길고 지난한 여정’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 내용은 월간 참여사회 2003년 5월호에 게재될 예정이다.

이제훈 <한겨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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