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군축센터 핵없는 세상 2010-04-15   2095

[논평] 핵안보정상회의, 과연 핵비확산과 핵테러 예방에 기여했나?



 











상응하는 핵군축 노력과 이중기준 개선 없이 ‘핵안보’ 주장 먹힐까?
 
준비 안된 이명박 대통령 발언들, 의제 벗어나 민망하고 생뚱맞아

한국정부, 북핵 폐기 위해서라도 국제 핵군축 노력에 앞장서야
 





“핵무기 없는 세계”를 만들자고 호소한 오바마 미 대통령이 주재한 핵안보정상회의가 워싱턴에서 이틀(4/12~4/13)에 걸쳐 개최되었다. 그러나 핵 테러의 위험으로부터 핵물질을 안전하게 관리하자는 ‘핵안보’를 의제화하려는 이 야심찬 국제적 논의는 초반부터 균형감각을 잃고 있다.

‘무기용 핵물질’이 폐기나 동결의 대상이 아니라 안보의 대상으로 의제화 되었다는 것 자체가 부자연스럽다. 물론 ‘핵안보’라는 표현에 현실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새롭게 등장하는 핵테러 위협에 대한 공동대응이 시급한 것이 사실이고, 오바마 대통령 스스로 고백한 것처럼 “핵무기 없는 세상이 그의 생전에 도래할 지도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핵안보론이 성립하려면 적어도 핵보유국의 적극적이고 공정한 핵군축 및 비확산 노력이 병행되어야 한다. 핵안보정상회의에서 드러난 현실은 과연 그런가?


우선, 참여국가의 구성에 문제가 있다.

이번 핵정상회의에 참여한 47개국 중에는 핵확산에 책임이 있는 주요 당사국(행위자) 중 일부가 선택적으로 초청되거나 배제되었다. NPT(핵무기비확산조약) 미가입국인 이스라엘, 파키스탄, 인도는 초청되었고 이 중 이스라엘은 초청받고도 의도적으로 불참했다. NPT 가입국인 이란, 시리아와 탈퇴국인 북한은 초청조차 받지 못했다.

어떤 기준이 작동한 걸까? 포용(engagement)을 의도했다고 말하기에는 북한과 이란에 대해 공평하지 않다. 배제와 압박을 시도한 것이라고 정당화하기에는 이스라엘, 파키스탄, 인도 등을 초청한 이유가 납득하기 힘들고, NPT 질서를 근본적으로 부정해왔고 지금도 무기급 핵물질을 생산하고 있는 이들 정부들에 대해 아무런 유효한 대책도 제시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공감을 얻기 힘들다. 이 점에서 핵안보정상회의는 그 시작부터 이들 나라들에게 핵군축·비확산의 동기를 부여할만한 공정하고 엄격한 잣대를 제시하는데 성공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둘째, 미국을 비롯한 NPT 가입 핵보유국들의 핵군축 의지가 ‘핵안보’ 드라이브만큼 강력한지 여전히 의문이다.

오바마 행정부의 미국이 핵 패권주의를 노골화했던 부시 행정부 때와는 달리 ‘핵억지력이 차지하는 비중’을 줄이려 노력하고 있다는 점은 인정할 만하다. 핵무기 없는 세계를 만들자고 호소한 지난해 4월의 프라하선언, 그리고 오바마 대통령이 직접 주재한 안보리 결의안 1887호 채택, 그리고 최근 성사된 미-러 전략핵무기 감축협정(New START) 체결 등이 그 예이다. 핵분열성물질생산금지조약(FMCT),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CTBT) 등에 대해 미국이 과거보다 적극적인 것도 평가할만하다.

하지만 미러가 전략핵무기 감축 약속을 온전히 이행하더라도 양국은 여전히 전세계 핵무기의 90%를 보유할 것으로 추정된다. 지금까지의 조치들만으로는 미러 핵독점체제에 근본적 변화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기 힘들다. 안보리 결의안 1887호도 NPT회원국 중 핵보유국의 군축의무에 대해서는 전향적이지만 추상적인 조항을 담고 있는 반면, 핵비보유 회원국들의 비확산 의무 불이행에 대한 제재조항은 매우 구체적이고 실질적이어서 균형을 잃고 있다는 비판에 직면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 4월 6일 발표한 핵태세보고서(NPR 2010)에서  도리어 미국이 ‘효과적인 핵 억지력은 유지’하겠다고 공언하고 있고, 이른바 ‘불량국가’에 대해서만큼은 설사 비핵국가라 할지라도 핵으로 선제타격 할 수 있다는 부시 행정부의 구상도 계승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상대 핵보유국에 대해서 핵으로 먼저 공격하지 않겠다는 핵선제공격배제(No First Use) 정책 역시 끝내 채택하지 않았다. 게다가 오바마 행정부는 미국 안보에서 핵무기가 차지하는 비중이 줄어드는 만큼 다른 재래식 무기와 미사일방어체제(MD)를 강화하겠다고 밝히고 있어 국제적인 핵군축·비확산 의지를 얼어붙게 만들고 있다.


셋째, 핵안보정상회의의 핵심 의제 자체가 이 회의의 미래를 불투명하게 하는 가장 취약한 고리이다.

무기급 핵분열물질인 ‘플루토늄과 고농축우라늄(HEU) 통제’를 둘러싼 형평성 논란이 논의에 가장 큰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핵의 평화적 이용과 군사적 이용의 모호한 경계 때문에 논란은 더욱 격렬해질 전망이다.

오바마 행정부는 과거와 달리 핵분열성물질생산금지조약(FMCT) 체결에 긍정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으나, 이미 현존하는 핵분열성물질은 제외하고 앞으로 생산할 핵분열성물질만을 FMCT 조약의 대상으로 한정하겠다고 고집하고 있어 FMCT 조약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이미 전 세계에는 2,100톤의 핵물질이 현존하고 이는 핵폭탄 120,000개를 제작할 수 있는 분량인데, 주지하듯이 그 상당수는 미국과 러시아가 보유하고 있다. 이번 핵안보정상회의에서도 이들 핵물질에 대한 보안이나 통합관리는 논의되었지만 폐기와 동결과 관련된 의미 있는 가이드라인은 전혀 마련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미국 정부는 일본과는 무기화 할 수 있는 플루토늄과 고농축우라늄을 생산하는 로카쇼무라 재처리 시설을 허용하는 미일 원자력협정을 맺고, NPT에 미가입국한 핵보유국 인도와는 ‘민간핵기술’을 교류하는 미인도 원자력 협정을 추진하는 등 자의적이고 편향적인 핵정책을 취함으로써 다른 핵 비보유국들의 비확산 의욕을 감소시키고 핵보유 열망을 부추긴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러시아나 프랑스 등 다른 핵보유국들의 접근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핵안보정상회의의 이러한 한계와 문제점에 비추어볼 때, 이 회의에 한국 대표로 참석한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과 처신은 생뚱맞고도 부적절한 것이었다.

핵테러를 의제로 한 회의에 참석하여 그 회의가 마치 북한, 이란의 핵개발에 초점을 맞춘 회의처럼 설명한 것도 부적절했고, 특히 이들 나라를 ‘불량국가’라고 표현한 것은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의 일방주의를 연상시켰다. 북한과 정상회담을 모색하는 남한 대통령의 발언으로는 치명적이다. 이스라엘이나 파키스탄이 초대된 것에 대한 문제제기 없이 북한과 이란이 초대되지 않은 것이 당연한 듯 발언한 것도 그 주제의 외교적 민감성을 이해하지 못했거나 개념 없는 친미/친서방 정부를 자처한 것처럼 비추어졌다.  

또한 발전용 핵물질과 무기급 핵물질의 모호한 경계 사이에서 위태롭게 줄타기하는 핵안보정상회의에서 원전 수출 세일즈를 운운하는 것은 더없이 생뚱맞았다. 여기에 한국정부가 한미원자력 협정과 한국의 핵재처리 능력 확보를 추구하고 있다는 점을 상기하면 그 생뚱맞음과 부적절함은 배가 된다.
 
핵안보정상회의와 그 이전의 행보를 볼 때, 오바마 대통령과 미 행정부는 ‘핵안보’를 핵군축·비확산·평화적 이용으로 대표되는 3대 의제와 같은 수준의 의제로 격상시키면서 사실상 핵테러리즘 예방을 ‘핵무기 없는 세계’ 구현의 우선 과제로 설정한 듯하다. 하지만 핵테러 예방체계의 정비는 시급하지만 핵군축 노력과 병행되어야 하며, 핵 통제 질서의 형평성과 공정성을 복원하는 방향에서 이루어지지 않으면 성공하기 힘들다.


이명박 대통령 역시 단지 북핵 폐기에만 집착하기보다 보편적인 국제 핵군축 논의에 주도적으로 동참하면서 한반도 비핵화와 핵무기 없는 세상을 향한 비전을 일치시켜나가는 외교적 역량을 보여줘야 한다. 또한 국제무대에서 손쉬운 대북 비방외교에 자족하기보다,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형성을 향한 구체적인 비전과 전략을 가지고 오바마 행정부와 6자회담 참가국, 그리고 국제사회가 진취적으로 대북/대한반도 평화외교에 나서도록 촉구하고 설득해야 할 것이다. 모름지기 ‘글로벌 외교’란 그래야하는 것 아닌가? ‘한반도 평화와 생존에 관련된 주요의제들을 진정성을 가지고 진지하게 논의한다는 전제 아래서만, 2012년 핵안보정상회의 한국 유치도 의미 있는 일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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