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군축센터 기타(pd) 2011-02-19   2809

[후기] “안보관광명소에서 평화적으로 상상하기” -평화기행(2/19)을 다녀와서-


안보관광명소에서 평화적으로 상상하기

김성민 전쟁없는세상 활동가


빛에선 봄기운이 느껴졌지만 바람에선 아직 한창인 겨울이 느껴졌다. 2월 19일 토요일,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에서 준비한 “이시우와 함께 떠나는 민통선 평화기행”을 다녀왔다. 아침 일찍 출발하여 김포에 있는 애기봉전망대와 강화도에 있는 연미정, 고인돌, 충렬사, 광성보를 둘러보고 돌아오는 짧은 여행이었다. 토요일 아침 여덟시 반이라는 약간은 부담스런 시간에도 불구하고 지각자가 한명도 없었다. 이 놀라운 열의에 힘입어 제시간에 딱 출발했다. 덕분에 계획했던 곳을 다 방문하기엔 일정이 너무 빠듯할 거라는 예상과 달리 한곳도 빠짐없이 다 둘러보고 올 수 있었다.

사실 난 강화도에서 2년간을 살았었다. 그래서 고인돌과 광성보 등의 강화도의 유적지들은 익히 다녀봤었다. 너른 갯벌을 품은 해안도로와 나즈막한 산, 고려때 간척 된 너른 논, 그리고 곳곳에 위치한 진, 보, 돈대 등의 군사유적같은 풍경은 내게 익숙했다. 충렬사나 연미정도 그저 흔한 사당이나 정자겠거니 하고 큰 흥미는 없었다. 작년 말 계속됐던 북한과의 긴장국면에서 큰 논란이었던 점등식 때문에, 또 나름 북한이 제일 잘 보이는 전망대라기에 애기봉에 관심이 갔었다. 또한 대체 ‘평화’기행이란 무엇일까 하는 막연한 기대가 날 토요일 아침에 이곳으로 이끌었으리라. 그 ‘평화’라는 틀은 예전에 봤던 강화와는 어떤 다른 경험과 느낌을 줄까.


애기봉전망대에 오르는 길에 있는 표지판. 북한땅을 최단거리에서 볼 수 있다는  위치에 걸맞게 “우리는 조국의 총끝! 칼끝!”이라는 자극적이고 선동적이며 유치한 구호와 미감, 그리고 곳곳에 위치한 새빨간 색의 각종 표지판들을 보면 여기가 남한인지 북한인지 헷갈린다.


첫 목적지는 애기봉 전망대였다. 애기봉은 민간인 통제구역 안쪽에 위치한다. 하지만 민간인인 우리도 애기봉 입구의 청룡검문소에서 비교적 간단한 검문만을 거치고 들어갈 수 있다. 검문할 때 “경기도 재향군인회”에서 제공하는 간단한 안내 팜플렛을 받을 수 있는데 보통의 관광지에 써있는 ‘천년고도’라든가 ‘수려한 자연경관’이라든가 하는 수식어는 찾을 수 없다. 대신 “안보관광명소”라는 호칭이 눈에 들어온다. 어떻게 하면 안보를 관광할 수 있을까. 보통은 안보를 관광하러 오는 이곳에서 우리는 어떻게 평화를 관광할 것인가 하는 질문을 던지며 전망대로 오르는 짧은 산책로를 걸었다.

사실 난 애기봉이 어린아기라는 뜻이 아닌 평양감사가 아끼던 기생의 이름이었다는 것도 이날 처음 알았고 북한 땅을 이렇게 가까이에서 구경한 것도 처음이었다. 하지만 이날 가장 크게 다가온 느낌은 허망함이었다. 당연한 것이겠지만 작년 말을 뜨겁게 달군 논쟁의 현장이었던 애기봉 등탑은 정말 아무것도 아닌 철골 탑이었다. 무언가 대단한 전투의 흔적도 없었고 거창한 상징물이나 사소한 장식조차 없었다. 우뚝허니 서있는 하얀 철골 사이로 날카로운 바람이 휑하니 통과해가는 이곳에 있는 것은 유서 깊은 역사의 문화적 산물이나 수려한 자연경관도 아닌 이곳에 투영 돼 있는 많은 사람들의 증오와 분노뿐이었다. 이시우 선생님이 인용했듯이 정치가 적과 나를 나누는 것이며 정치의 연장이 전쟁이라고 할 때 애기봉이라는 장소는 적과 나를 나누는 규정을 확인하고 머리에 몸에 다시 새기는 곳으로써만 기능할 뿐이었다. 즉 전쟁의 전제를 다시 확인하고 전쟁을 준비하려는 마음가짐을 다지는 곳인 것이다. 점등식 때 안전을 위해서 설치했다는 어설픈 모래주머니들과 각종 경고/선전 팻말들이 우리에게 말하고자 하는 것은 북한이 여전히 우리의 강력한 적이라는 ‘안보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것일게다. 가까이 강 건너로 보이는 북한의 ‘선전’마을의 남루함과 하릴 없이 한강 위를 떠가는 유빙이 나의 허망함을 더했다.

마침 애기봉전망대를 방문하신 민통선 평화교회 목사님께서 문제의 점등식 때의 분위기와 여러 풍경들을 묘사해주셨다. ‘사랑’을 말해야 하는 교회가 사실은 ‘증오’를 기치로 모였을지도 모른다는 것, 또 그 모인 사람들이 북을 자극하고 반격할 빌미를 줄 수도 있는 볼모로써 여겨졌을지도 모른다는 것, 또한 예수라는 상징적인 인물의 탄생일을 기념하고 축하하는 사람들의 폭력성에 대해서 곰곰히 따져보게 됐다. ‘안보’관광 명소에서 평화를 이야기하는 이상한 사람들을 불편해하고 계속 지켜보는 관리소장의 눈총을 뒤로 한 채 우리는 애기봉을 내려왔다.

간단히 식사를 하고 강화 북단에 있는 연미정으로 향했다. 애기봉과 마찬가지로 민통선 안쪽에 위치하고 있어 2008년 초까지는 민간인에게 개방되지 않은 곳이었다. 지금은 깔끔하게 단장된 돈대 안에 500년 묵은 느티나무 두 그루와 함께 세월의 무게를 드러내고 있다. 

연미정은 한강과 임진강이 바다와 만나는 거대한 해협, 소위 한강 하구를 내려다 볼 수 있는 정자이다. 한강하구는 낙동강하구, 영산강 하구처럼 막연한 지칭과는 달리 구체적인 지역을 지칭하는데 애기봉전망대 앞에서도 조망할 수 있다. 정전협정 1조에 근거해 구획되는 이 지역은 남한땅도 아닌 북한땅도 아닌 유엔사가 관리하는 중립적 비무장 지대이다.

강화북단에 위치한 연미정. 한강과 임진강의 합해진 물줄기가 하나는 서해로, 또 하나는 강화해협으로 흐르는데, 이 모양이 마치 제비꼬리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한강하구지역이 널리 내려다 보이고 건너편으로 북한땅과 가까이 마주하고 있다. 

이 구역은 정전협정조항에 따라 민간항해가 제한받지 않아야 하는 곳이다. 하지만 직간접적인 압력과 분위기 때문에 민간항해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고 한다. 이시우 선생님은 실제로 이 해역을 항해하려는 시도를 몇 번 했었는데 그 때마다 주최 측 스스로의 두려움과 유엔군사령부나 정부의 마찰 때문에 좌절 됐다고 한다. 그 외에도 중간지대에 있는 섬을 함께 사서 통행하는 방법, 갯벌을 준설하여 전쟁의 위협을 없애는 법 등의 평화를 위한 고민과 노력을 들려주었다. 양국간의 날카로운 군사적 긴장이 감도는 곳에서 그 긴장의 해소는 각 정부나 군대가 아닌 민간수준에서 일궈낼 수 있다는 바람과 희망을 전해 들으며 우리는 함께 서서 그 바람을 구체화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길들을 상상해보았다.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인 강화 고인돌. 세 개의 돌이 모두 기울어져 있지만 나름대로의 힘의 균형을 이뤄 수천년을 들판에 굳건히 서있다.

이어서 차례차례 일정대로 움직였다. 조금씩 파고들어오는 바람 때문에 우리의 몸은 움츠러들었지만 이전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평화적인 상상력을 조금씩 익혀나갔다. 상대를 나에게 맞게 세우고 바로 잡는 균형보다는 서로가 조금씩 기울어진 상태에서 함께 이루는 부조화의 조화, 즉 화이부동의 정신을 기울어진 고인돌로부터 배웠다. 병인양요와 신미양요의 유적지인 충렬사와 광성보에서는 그곳을 지키고 또 공격했던 사람들의 시각과 정신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됐다. 나름대로는 최선을 다해서 치열하게 싸웠지만 그들에게 결여됐었던 보다 큰 틀의 시각을 지금 우리는 갖고 있을까. 대몽항쟁, 병자호란, 병인양요, 신미양요 등의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강화도는 대단히 넓은 세계사적인 맥락위에 위치했었고 지금도 여전히 그러하다. 남북이 대치하고 있고 그 사이에 위치한 너른 물길 위에 배 한척 맘대로 띄울 수 없는 우리의 상황도 단지 여기 대한민국의 문제가 아니라 수많은 국가들이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유라시아적 문제인 것이다.

유독 왜 강화도일까. 그것은 독특한 지정학적 특성 때문이다. 넓지도 좁지도 않은,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강도 아니고 바다도 아닌 곳에 의해 떨어진, 수도로 들어가는 길목에 있는, 유라시아를 향해 서쪽으로 열려있는 섬. 세 개의 큰 강이 만나고 있어 전시에 중요한 전략적 장소가 되는 곳. 그저 단편적인 역사적 사실을 서술하거나 순국선열들의 희생만을 강조한 교과서나 여느 관광 안내서와 이시우 선생님의 설명은 달랐다. 유럽과 아시아의 역사적 맥락을 넓게 설명하며 관점의 차이와 지정학적 특성들을 관련지었다. 한 곳 한 곳 돌아다니면서 선생님이 강조하는 ‘유라시아적 관점’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구체적인 현장에서 들려주는 이시우 선생님의 설명은 보다 넓은 관점과 역사적인 맥락을 담고 있었다. 재밌으면서도 해박한 선생의 설명에 지나가던 관광객들도 함께 귀를 기울이기도 했다.

평화라는 관점으로 바라본 강화도는 내가 예전에 본 그곳과 달랐다. 그곳은 단군이 하늘에 제사를 지낸 마니산이 위치한 까마득한 과거의 유적지가 아니었다. 역사 이전에 살던 사람들이 돌 몇 개 세워놓고 사라진 곳도 아니다. 몽고, 청나라에 대항해, 프랑스, 미국과 같은 제국주의에 저항하다 미명에 스러져간 사람들만의 과거가 아니었다. 그곳은 여전히 우리에게 살아 숨쉬는 현재였고 우리에게 보다 넓은 시각과 관점을 요구하는 국제적인 분쟁지역이었다.

작년에 화제가 됐던 영화중에 <인셉션>이란 영화가 있다. 남의 꿈에 들어가 생각을 훔치거나 생각을 심는다는 발상에서 비롯된 꿈에 대한 영화이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꿈들이 등장하고 서로의 꿈을 조작하려 하지만 그 모든 꿈들이 기반으로 삼고 있는 것은 구체적으로 경험된 현실이다. 꿈은 상상이고 창작이지만 꾸는 사람이 경험하고 느낀 구체적인 현실을 그 재료로 해서 구성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상상은 구체에서 나온다.

평화적으로 상상한다는 것은 어떨까. 그저 이상적인 평화로움을 꿈꾸는 것일까. 물론 이상으로서의 평화도 그 가치가 없다고 할 순 없겠지만 우리가 발 딛고 사는 바로 이곳을 조금 더 평화롭게 만들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그것만으론 부족할 것이다. 우리가 아직 경험해 보지 못한 평화라는 추상적 개념을 상상하려 할 때 우리는 구체적 재료로서 경험과 느낌을 필요로 한다. 우리에게 분쟁지역이 있음을 다시 한 번 보고 느끼는 것, 그곳의 역사를 돌아보며 넓은 관점을 가져 보는 것, 그 장소들에서 구체적인 평화의 방법을 고민해보는 것, 이것들이 모두 평화를 상상하는 재료들이 되지 않을까.

누군가는 군사전략지로서 강화도를 바라본다. 누군가는 투자대상으로서 한강하구를 바라보고 누군가는 적에 대한 분노와 증오를 확인하고 공유하는 장소로서 애기봉에서 성탄트리를 점등한다. 하지만 우리는 평화로 나아가는 길로, 평화를 이뤄내는 구체적 장소로, 적이 아닌 인간이고 친구임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계기로, 즉 평화적으로 상상하기 위한 구체적인 재료로써 강화도와 한강하구와 애기봉 등을 경험하고 느낄 것이다. 이것이 누군가는 안보관광을 하는 곳에서 평화기행을 하는 자들의 자세일 것이다. 평화로 향하는 길이 어디인지를 모색하는 모든 가능성으로의 고민, 즉 평화적으로 상상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 우리에겐 더 많은 평화기행이 필요하지 않을까. 더 많은 ‘안보관광명소’를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하고 싶다는 바람을 덧붙이며 후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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