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군축센터 기타(pd) 2003-03-15   2747

[분쟁지역현황] 영원한 독립군 : 체체니아(chechnya)의 독립투쟁

다음 글은 참여연대 국제연대위원회에서 자원활동을 하고 있는 최상구씨가 정리한 글을 기초로 해서 재작성한 것이다.

뿌리깊은 반러시아 정서

체첸(Chechen : 원어는 체체니아)민족은 카스피해와 흑해 사이 카프카스(Kavkaz : 영어로는 코카서스 Caucasus)산맥 일대에 6000여 년 전부터 유목생활을 하며 살았습니다. 15세기 이후 오스만 제국과 페르시아 왕국의 영향으로 이슬람을 받아들였고, 이슬람 문화와 집단공동체 문화는 이들 체첸 민족의 근간을 이루고 있습니다. 오늘날까지도 이어지는 타입(taip)이라는 공동체 문화와 공동체 대표들의 모임인 종족회의를 통해 정치가 이루어졌습니다.

카프카스 지방은 지리적으로 동서와 남북을 이어 문화와 상품을 연결해주는 교통의 요충지이자 미국 대륙이나 북해유전과 맞먹는 180억∼350억 배럴 규모의 석유 매장량에다 천연가스까지 가득한 축복 받은 땅임에도 불구, 포화가 그치지 않는 지역입니다(체첸 뿐만 아니라 국경을 접하고 있는 그루지야,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 공화국과 터키 등에는 각 국가들간의 반목과 분쟁이 있습니다).

러시아와의 끈질긴 저항의 역사는 16세기부터 시작되었습니다. 18세기말부터 본격적인 전쟁이 벌어졌는데 특히 19세기 중반에는 뛰어난 이슬람교 지도자 이맘 샤밀(Imam Shamil)의 지휘 아래 격렬한 투쟁을 벌였습니다. 그러나 1859년 샤밀이 체포되면서 저항은 약화되기 시작하여 결국 1864년 러시아 황제에게 항복하게 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러시아는 엄청난 인적·물적 희생을 치뤘고, 체첸 민족의 강한 저항 때문에 현재의 수도인 그로즈니(러시아어로 ‘무서운’이라는 뜻)를 포함한 북카프카스지역에 30만 명의 군을 투입해야만 했습니다. 물론 체첸인들의 피해도 상상을 초월했는데, 1860년 체첸 지역의 인구는 터키 등지로의 피난과 러시아 군의 초토화 작전으로 인해 1820년대 초기의 4분의 1로 줄어들었습니다.

러시아 혁명기에는 모든 소수민족들에게 자결권과 전통 존중을 약속한 볼셰비키들과 협조하면서 반혁명 운동의 격퇴에 공헌했지만, 레닌 정부로부터 받은 것은 독립이 아닌 자치권뿐이었습니다. 1917년 ‘북카프카스 민족 산악 공화국’의 설립이 진압된 이후 1919년 다시 ‘다게스탄 공화국’을 수립하였지만 1921년 러시아 혁명군에 의해 해체되면서 구소련에 편입되었습니다.

러시아 혁명이후 민족문제는 혁명의 성패를 좌우하는 매우 심각한 문제였습니다. 레닌을 비롯한 볼셰비키들은 민족주의를 정당한 이데올로기 내지는 감정으로 받아들이기보다는 그 자신의 정치적 목표를 달성하는 수단으로 여겨 혁명초기에 소수민족의 정치적 독립과 주권국가의 수립을 적극 지지하였습니다. 하지만, 소련연방의 구성이 완료되어 가던 스탈린 시기에 제정된 당시의 헌법에 나타난 소련 연방제도의 특징은 중앙집권적 단일국가였습니다.

스탈린은 민족문제에 있어서도, 소련은 사회주의의 조국으로 약소민족의 해방자이기 때문에 소련으로부터 독립하거나 소련에 적대적이 되어서는 안되며, 사회주의를 희망한다면 소련의 노선에 충실히 따를 것을 강요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배경에서 시베리아 지역의 고려인들을 포함한 소수민족들은 국민경제의 사회주의화와 공업화 및 농업집단화 과정에서 강제 이주와 사회주의로의 통합을 위한 소수민족 말살정책 속에서 철저하게 러시아 동화정책을 강요받았습니다.


체첸은 스탈린에 의해 체첸 공산당의 지도부가 ‘분리주의’ 혐의로 강제추방되고 10만 명이 체포, 일부가 처형되었으며, 이로 인한 저항 역시 12만 명이 학살당하면서 진압되었습니다. 또한 2차 세계대전 중에는 독립을 위해 독일군에 협력하였으나 독일 패전 이후 1944년 약 40만 명이 카자흐스탄과 시베리아 지역으로 강제이주를 당하였습니다. ‘강제 이주’라고 말하지만 이 과정에서 체첸 민족 40만 명 중 약 30%가 기아와 대규모 계획적 학살에 의해 희생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1957년 흐루시초프에 의해 귀향할 수 있었지만, 이미 체첸 지역의 경제는 러시아에 지배당하였고, 당 조직도 러시아인에 의해 통제되고 있었습니다. 이와 같은 대러시아 독립전쟁이 몇 세대의 생활현실이 되어 침략자에 대한 적개심은 일상적 정서가 되었습니다. 특히 1990년대의 체첸 저항의 주요 지도자들이 이때 강제이주당한 카자흐스탄 등지에서 자란 사실은 체첸인들의 급진적인 반러 성향을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구소련의 붕괴 이후 독립운동의 전개

구소련연방이 해체되고 1991년 10월 체첸공화국에서도 선거가 실시되어 전민족회의를 결성하여 모든 부족 공동체를 통합한 두다예프(Dudaev)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고, 체첸공화국의 독립을 선언하면서 과거에 대한 사과와 배상을 러시아 중앙정부에 강력히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경제봉쇄 정책과 러시아의 체첸에 대한 영유권을 고수한다는 대답이었습니다. 일년에 300만 톤의 석유를 생산할 수 있는 유전을 보유하고 있는 체첸 지역에 대한 경제적 이유와 소수민족의 독립 움직임을 미연에 방지하려는 옐친 지도부의 속셈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옐친 러시아 대통령은 이 지역에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수도 그로즈니에 병력을 파견하였지만, 옐친을 견제하는 의회의 반대로 3일 만에 병력을 철수시켰습니다. 이후 러시아는 반두다예프 세력을 규합하여 친러정권을 세우려 했지만 이것이 실패하자, 1994년 12월 11일 체첸에 대한 전면공격을 시작하여 러시아군이 수도 그로즈니를 함락시켰습니다. 이 전쟁으로 희생된 사람이 약 3만 명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1996년 휴전협정을 통해 체첸의 지위 논의를 2001년까지 유보하기로 합의하면서 1차 전쟁은 막을 내렸고 1997년 선출된 마스하도프 체첸 대통령은 전후 복구에 주력하며 러시아와 유연한 관계를 유지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바샤예프(Shamyl Basayev) 등 강경파를 주축으로 한 민병대는 1998년 신생 독립국 ‘체첸-다게스탄 광화국’의 건설을 선포하였습니다. 긴장이 고조되는 가운데 러시아는 1999년 모스크바와 상페테스부르크에서의 의문의 아파트 폭발사건을 ‘체첸인의 테러’로 몰아붙여 지금까지 지속되는 제2차 침공을 감행했습니다. 이로 인하여 저항군들은 수도를 포기하고, 산악지역으로 거점을 옮겨 게릴라전을 계속 수행하고 있습니다.

2000년 2월 수도 그로즈니를 점령한 러시아는 ‘체첸 대테러작전’의 1차 완료를 선언하고 단계적 철수를 발표하였습니다. 대부분의 체첸 지역을 장악한 러시아의 군사적 성공은 1차 체첸과의 전쟁에서 손상된 ‘러시아의 자존심’을 회복하였고, 국내 정치적으로 푸틴 현 러시아 대통령의 ‘인기몰이’도 성공하여 푸틴의 당선에 많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 땅에 살기 위하여…

두 차례에 걸친 러시아의 침공과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는 소탕작전으로 러시아 군인들은 1만1천여 명의 사망자와 1만2천 명이 넘는 부상자가 발생하였고, 매일 10∼20여명의 병사들이 죽어가고 있으며, 전쟁비용으로 매달 100백만 달러를 지출하였습니다. 체첸 국가구제위원회에 의하면 1999년 이후 체첸 주민 중 2만∼4만 명이 사망하였고, 40만 명의 체첸인들이 난민과 강제 이주민으로 전락하였으며 잉구쉬 근처의 난민캠프에 18만 명이 살고 있습니다.

체첸이외의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이들 난민들은 ‘대테러 작전’에 의해 난민으로써의 지위가 유명무실할 정도로 인권침해를 받고 있습니다. 구소련지역에서 태어난 체첸 난민 아동들은 출생신고가 거부되고 있으며 교육과 의료에 대한 접근도 거의 불가능한 실정입니다. 전쟁범죄 또한 만연해 있는데, 2천 명이 넘는 민간인이 실종되었고, 대량학살에 의한 무덤이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습니다. 러시아 군에 의한 불법처형, 고문, 강간도 자행되고 있습니다.

2002년 겨울 러시아의 한 극장에 체첸 결사대가 난입하여 인질극을 벌이다 러시아의 강경진압으로 엄청난 희생을 치루었던 것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습니다. 체첸 결사대의 일부는 전쟁에서 남편을 잃은 과부들이었습니다. 무고한 시민을 희생시킨 테러는 정당화될 수 없지만 1990년대 이후에만도 15만 명 이상의 희생자가 발생한 전쟁과 200년이 넘는 러시아의 탄압과 민족말살정책 역시 용납될 수 없는 것입니다. 체첸 민족의 독립투쟁을 해결하는 첫 걸음은 바로 체첸 민족의 자결권을 존중하는 것입니다. 점령군의 철수와 평화협상은 이를 바탕으로 시작되어야 할 것입니다. 러시아는 소수민족에 대한 제국주의적 자세를 버려야 할 것이며, 국제사회는 푸틴정권의 범죄적 체첸 정책을 방관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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