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군축센터 기타(pd) 2010-06-24   949

[칼럼] 어느 나라 국민이냐 묻는 이가 꿈꾸는 나라



다음은 6월 24일자 경향신문 정동칼럼에 실린 글입니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006231811595&code=990308



신진욱 | 중앙대 교수·사회학


6월2일 지방선거의 결과는 놀라웠다. 2006년 지방선거, 2007년 대선, 2008년 총선으로 이어진 한나라당 연승행진이 종료되고 새로운 흐름이 시작되고 있다는 조짐이다. 2010년의 심판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그것은 ‘촛불’의 연장이기 때문이다. 단지 여당이 미워서 야당에 표를 줬다는 게 이번 선거의 전부가 아니다. 시민들이 갈구한 것은 자유의 공기였다. 더 많은 민주주의였다. 권력자와 기득권층, 우익단체만을 위한 ‘너희나라 대한민국’이 아니라, 모든 국민이 주인 대접 받는 ‘우리나라 대한민국’이었다.

참여연대를 향한 방화·폭파 위협

촛불집회에서 지방선거에 이르는 2년여간 수많은 시민들이 크고 작은 목소리로 물었던 질문은 이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국민을 기만하고, 무시하고, 겁박하고, 처벌하는 이 정부는 도대체 누구의 정부인가?” 이 목소리를 들었다면, 정부 여당과 보수 세력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보수정치,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존중하는 ‘괜찮은 보수정치’를 모색했어야 했다. 그런데 지금 이들은 오히려 자신에게 동의하지 않는 국민들에게 기괴한 반문으로 응수하고 있다. “당신들은 어느 나라 국민인가?”라고 말이다.

지난 14일 참여연대가 유엔에 보낸 천안함 관련 의견서에 대해 정운찬 총리는 “어느 나라 국민이냐?”는 도발적 발언을 내뱉었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반국가 이적행위’ 운운하는 색깔론으로 맹공을 펼쳤고, 보수언론은 참여연대를 주사파·친북단체로 매도하는 허무맹랑한 거짓 주장을 연일 내보냈다. 여기에 자극받은 극우단체들이 참여연대 건물 앞에서 방화·폭파 위협을 가하고 있고, 총살·화형 등 끔찍한 언어들이 난무하고 있다. 급기야 가스통과 화염방사기를 실은 차량을 몰고 돌진하는 테러행위까지 벌어졌다. 위험수위를 넘고 있다. 정치가 실종되고 전쟁논리가 지배하고 있다.

국민이 국가와 다른 의견을 표명했다는 이유로 ‘어느 나라 국민이냐?’고 묻는 이들. 이들이 꿈꾸는 나라는 어떤 나라인가? 그동안 정부 여당이 한 일을 보면, 단지 유엔과 같은 국제기구와 관련해서만 ‘한 목소리’를 강요해 온 게 아님이 분명해진다.

독립적인 방송인들을 이념편향이라고 내쫓으면서, 정부정책을 홍보하는 방송은 공정방송이란다. 정부와 다른 의견을 말하면 유언비어고, 정부의 거짓말은 국민이 오해한 거란다. 4대강 사업 반대 1인 시위는 연행하면서, 권총 차고 엽총 메고 협박하는 건 괜찮단다. 그렇다. 이들이 꿈꾸는 나라는 모든 국민이 통치자들과 똑같이 생각하고, 똑같이 말하는 나라다. 그렇지 않은 사람은 ‘국민’이 아니다. ‘비(非)국민’을 낙인찍는 배제의 정치, 분열의 정치다.

그런데 흥미로운 현상이 하나 있다. 참여연대에 대한 공격이 시작된 후 일주일 만에 참여연대 회원이 1000명 가까이 늘었다고 한다. 1994년 참여연대 설립 이래 처음 있는 일이 아닌가 싶다. 이 나라 보수정치가 민도를 쫓아가지 못하니 번번이 의도한 것과 반대 효과가 나는 거다.

국민 등 돌리게 하는 분열의 정치

이제 사람들은 민주주의와 자유의 소중함을 알고, 그것이 사이비 자유민주주의와 다르다는 걸 안다. 북한 체제에 동의하지 않으면서도 증오와 전쟁에 반대할 줄 알고, 나라를 사랑하는 것이 정부에 충성하는 것과 다르다는 것도 안다.

정부 여당과 보수언론은 수많은 시민들에게 ‘빨갱이’란 낙인이 찍힌 바늘을 찔러 겁주고 침묵시키는 데만 열중하고 있다. 그런 식의 이념적, 군사적, 위압적 정치가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을 등 돌리게 한다는 걸 왜 아직도 모를까? 빨갱이네, 친북이네 하는 이념공세로 난리법석을 떠는 동안, 정작 국회의 천안함 조사특위 진행상황과 국방·안보정책의 미래에 관한 건설적 토론은 완전히 실종됐다. 이게 ‘국익’일까? 국민을 ‘아군’과 ‘적군’으로 가르는 전쟁정치. 이것은 이 나라 대다수 국민들이 바라는 대한민국의 모습이 아닐 것이다. 좀 수준 있는 정치를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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