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군축센터 군비축소 2021-04-23   1447

[GDAMS 연속기고②] 다이옥신에 노출된 350만명,…’그런 전쟁’은 계속되고 있다

4월 10일부터 5월 17일까지 한국을 비롯하여 필리핀, 미국, 이탈리아, 스페인 등 전 세계 각지에서 2021 세계군축행동의 날(GDAMS) 캠페인이 진행됩니다. 세계군축행동의 날 캠페인은 매년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의 세계 군사비 지출 보고서 발표에 맞춰 군사비를 줄이고, 평화를 선택할 것을 각국 정부에 촉구하는 국제캠페인입니다. 올해에는 코로나19 장기화로 전 세계가 심각한 경제위기와 인간 안보에 대한 도전에 직면하고 있는 상황에서 군사비를 줄여 공공의료 확대, 사회안전망 구축,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비용으로 사용할 것을 제안하는 연속 기고를 진행합니다. 한국에서는 오는 4월 26일 용산 전쟁기념관 앞에서 세계군축행동의 날 기자회견과 퍼포먼스를 진행할 예정입니다.

 

① 군사비와 코로나 확진자 수, 세계 군사 강국의 민낯 / 이용석 (전쟁없는세상 활동가)

다이옥신에 노출된 350만 명… ‘그런 전쟁’은 계속 되고 있다 / 배보람 (전 녹색연합 활동가)


다이옥신에 노출된 350만 명… ‘그런 전쟁’은 계속 되고 있다

[2021 세계군축행동의 날 ②] 기후위기의 시대, 우리에게 필요한 건 비싼 전쟁이 아니다

 

배보람 (전 녹색연합 활동가)

 

한여름 장대비가 쏟아지고 나면, 꼭 한 번씩 읽게 되는 기사가 있다. 철원이나 파주, 임진강 주변의 접경지역 어디에서 지뢰가 발견되거나 이로 인한 사상자가 났다 사건 보도다. 나는 그저 전쟁이 끝나지 않았음을 상기할 뿐이지만, 지뢰에 더 가까이 있는 이들은 여전히 ‘전쟁의 사상자’가 될 처지에 있다.

 

어떤 이들은 여전히 전쟁 속에서 산다. 지난 3월, 1980년 광주에서 계엄군으로 총을 쏘아 사람을 죽인 ‘가해자’가 이를 사죄하며 ‘피해자’에게 용서를 구했다. 무릎을 꿇은 이가 자신을 늘 괴롭혔던 죄를 사죄하고 피해자를 부둥켜안고 울었지만, 이 발포의 명령자는 나타나고 있지 않다. 그리고 어떤 이들은 ‘그런 광주’는 없었다 한다.

 

‘그런 광주’가 없었던 것처럼 ‘그런 베트남’도 없다. 전쟁은 무려 50여 년 전에 ‘끝’났지만, 여전히 전쟁의 폐허를 삶으로 끌어안고 사는 이들이 있다. 응우옌티탄(Nguyễn Thị Thanh)씨는 8살에 눈앞에서 이모가 한국군의 칼에 찔려 죽는 것을 목격했다. 자매와 형제, 어머니가 전쟁에서 죽은 후에 벌어진 일이다.

 

전쟁의 참상을, 전쟁에서 얻은 총상을 평생의 고통으로 새기고 사는 그녀는 한국 정부를 상대로 베트남 전쟁의 민간인 학살 ‘진상규명’과 배상을 요구하며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전쟁이 끝났다고, 누군가는 말한다. 아니다. 전쟁은 여전히 수십 년을 이들과 함께 흘러갈 뿐 멈추지 못하고 있다.

 

전쟁은 무엇을 책임지는가

 

 ▲  베트남 호치민시에 있는 전쟁박물관에 걸려있는 사진으로 알려져 있다. 고엽제가 완전히 파괴해 버린 베트남 시골에 아이가 서 있다.ⓒ Claire Ewert Fisher

 

미국은 베트남 전쟁을 치르면서 ‘에이전트 오렌지(Agent Orange)’로 불린 고엽제를 생화학무기로 사용했다. 베트남의 울창한 활엽수림을 파괴하여 적의 은신처를 없애겠다는 목표로, 10여 년간 대략 7200만 리터를 공중에서 살포했다.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국의 과학자들은 미국 국방부에 무차별 살포와 같은 방식의 생화학 무기 사용 중단을 촉구하는 서한을 보내기도 했다.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이 출간되어 살충제인 DDT가 생태계에 미치는 악영향이 미국 사회에 충격적으로 소개된 해가 1962년, 베트남 전쟁이 시작되어 고엽제가 뿌려지기 시작한 바로 그다음 해이다.

    

이 두 물질 모두, 다우케미컬이나 몬산토와 같은 우리에게 잘 알려진 회사들이 제조해 미국 정부와 군에 납품했다. 제2차 세계대전 과정에서 유기살충제가 만들어진 이후, 미국은 1950년대 이 살충제를 매미나방과 불개미와 같은 ‘해충’을 퇴치하기 위해 사용했다. 미국 농무부는 비행기를 빌려 DDT를 공중에서 살포하며 특정 지역에서의 해충 박멸을 정책 목표로 삼았다. 제초제는 때때로 출근하는 노동자나, 정원을 가꾸고 놀이터에서 노는 아이들 위로도 쏟아졌다.

 

식물과 동물들도 피할 겨를이 없었다. 살충제가 뿌려지고 난 뒤, 인근의 양봉업자들은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꽃피는 오월이 되어도 꿀벌이 날지 않아 양봉업의 피해가 막심했기 때문이다. 살충제가 뿌려진 흙에 사는 지렁이를 먹이로 하는 울새는 개체 수가 급감했다. 상위포식자이자 미국의 상징인 흰머리수리도 그 수가 줄었다. 살충제가 독수리알의 껍데기를 얇게 만들고 이것이 개체 수 감소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나중에 연구되어 알려진 사실이다. 침묵의 봄은 은유가 아니라 경험이었다.

 

매미나방과 불개미를 박멸하기 위한 살충제 공중 살포는 전략은, 그대로 베트남으로 옮겨져 고엽제로 바뀌었다. 1971년 고엽제가 미군 병사에게 미치는 영향을 우려하여 금지될 때까지 10년, 매미나방과 불개미의 자리에 공산주의와 게릴라군이 위치했을 뿐이다. 고엽제는 인간이 만들어낸 최악의 발암물질 중 하나인 다이옥신과 다른 물질을 합성하여 만들어진다.

 

공중에서 뿌려지는 비를 피할 방도가 없듯이, 전쟁 중의 베트남 사람들은 하늘에서 쏟아지는 고엽제를 피할 방법이 없었다. 숲은 황폐화 되었고 고엽제는 토양과 하천과 짐승과 사람 위에 떨어졌다. 미국 정부는, 과학자들의 경고를 듣고도 고엽제가 DDT보다 강력한 물질이라는 것을 몰랐을까.

 

2003년 아널드 섹터(Arnold Schecter) 교수는 베트남 전쟁이 끝나고 수년이 지나 태어난 아이들의 신체에서 다이옥신이 인체에 유입되어 분해되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대사물질을 확인했다. 고엽제가 다량 뿌려진 ‘핫스팟(hot spot)’에서는 토양과 야채, 오리와 같은 가축에서도 관련 물질의 높은 농도를 확인했다. 베트남의 약 350만 명의 주민들이 고엽제로 인해 다이옥신에 노출되어 피해를 받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베트남의 생태계 고리에 축적된 다이옥신은 20세기 이전의 지구에는 없는 물질이었다. 오직, 인간의 활동에 의해서만 만들어지는 이 발암물질은 전쟁을 겪으며 베트남 생태계의 순환고리를 돌고 돌아 토양에서 식물과 가축과 인간으로, 임신과 출산을 통해 세대에서 세대로 이어지고 있다. 이는 베트남 전쟁에 참전한 한국과 미국 군인들의 문제이기도 하다. 한국 정부 역시 베트남 참전 군인의 2세들의 관련 질환을 고엽제 후유증으로 인정하여 일부 구제하고 있다.

 

아무리 긴 전쟁도 참상 고통보다는 짧다. 전쟁은 ‘종전’에 대한 선언 말고는 그 무엇도 책임지지 않는다. 그 자체로 너무 많은 불가피함을 전제로 하는 전쟁의 참상은 이 때문에 길고 뼛속 깊다. 생화학무기는 생물학적 피해로 생태계와 인간의 대를 이어 남는다. 민간인 학살과 성범죄는 소문처럼, 유언비어처럼 우리에게 흘러온다. 그리고 우리는 매번, ‘그런 전쟁’이 있었느냐고 그들에게 되묻는다.

 

‘그런 전쟁’은 계속되고 있다

 

그런 전쟁은 있다. 매미나방을 박멸하겠다는 계획에 울새와 흰머리수리와 꿀벌이 자취를 감추는, 수십 톤의 물고기가 배를 뒤집어 까고 강을 따라 흘러 결국 연안의 농게를 사라지게 만드는 ‘그런 전쟁’ 말이다.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아프간은 큰 가뭄을 겪었다. 9.11 테러 이후 미국은 이곳에서 대테러 전쟁을 벌였다. 전쟁은 기후변화와 잔인하게도 아귀가 딱 맞았다. 전쟁 20년을 포함한 지난 30여 년간 아프간 숲의 절반가량이 사라졌다. 향나무, 아몬드, 파스타치오 나무와 숲. 주민들의 소득원인 농업은 기반이 무너졌고, 전쟁은 기후변화에 쏟아야 할 정부와 시민들의 기력을 빼앗았다.

 

여전히 대표적인 분쟁국 중 하나로 꼽히는 아프간은, 유엔환경계획(UNEP:UN Environment Programme)에 의해 전 세계 국가 중 기후변화 대응 능력이 가장 취약한 국가로 평가되고 있다.

 

 

 

▲  아프간의 식량안보 위험성을 그린지도. UNEP은 아프간의 식량안보문제를 불러오는 기후변화의 원인중 하나로 전쟁과 내전을 꼽고 있다. ⓒ UNEP 2016

  

이 전쟁은 무엇을 책임졌는가. 아프간의 숲이 사라지고, 심각한 가뭄과 식량난에 대한 책임을 전쟁이 지고 있는가. 미군이 전쟁 동안 아프간 재건에 투자했다는 돈 대부분은 지역의 경찰과 군대를 조직하는 데 들어갔다. 그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돈, 우리 돈으로 약 1191조 원의 80%가량은 말 그대로 전쟁비용이었다. 전투기를 띄우고, 기름을 실어 나르고, 무기와 용병을 사고 도시의 기반시설을 파괴하는 데 한국 정부의 한 해 예산의 두 배가량이 쓰였다. 혹자는 이도 과소 추계 된 것이라 비판한다.

 

2019년 영국의 랭체스터와 더럼대학교의 연구진들이 발표한 논문에 의하면, 미국의 육·해·공군이 한 해 소비하는 기름의 양으로 산출한 온실가스 배출 규모는 포르투갈과 같은 나라와 같은 수준으로 추계되었다. 한국은 전 세계에서 10번째로 많은 돈을 군사비로 지출하는 국가이며, 2019년을 기준으로 환경부 한 해 예산 4조 7000억 원의 10배에 달하는 46조 7000억 원 규모이다. 그런데도 이 모든 행위가 만들어 내는 참상은 기록되지 않고 평가되지 않는다. 스톡홀름평화연구소(SIPRI)에 의하면 2000년대 이후 전 세계의 군사비 지출은 ‘급격히 증가’했다고 한다.

 

군대가 하나의 도시였다면, 도로 하나, 공장 하나가 생태계와 주변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하듯 모든 군사 활동의 환경 영향이 검토되었을 것이다. 전쟁이 하나의 국가였다면, 전 세계의 모든 국가가 그러하듯 기후변화당사국협약에 따라, 전쟁이 숲을 훼손될 때마다 도시를 파괴할 때마다 기후위기에 미치는 영향을 셈하게 되었을 것이다.

 

전쟁이 비싸지고 무기가 늘어날 때마다 전쟁이 만들어내는 기후위기는 더 커진다. 공식화되지 못한 전쟁의 참상은 제 모습을 드러내는 데 더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할 것이다. 어떤 이들이 자신의 삶으로 이를 증언하게 될 때 우리는 아마 또다시 묻게 될지 모른다. ‘그런 전쟁’이 있었느냐고 말이다.

 

기후위기의 시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비싼 전쟁이 아니다. 전쟁의 불가피함을 금지시키는 것이다. 그런 전쟁을 멈추기 위해서 우리는 무기가 아니라, 숲을 지키기 위해 돈을 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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