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군축센터 평화정책 2005-12-12   1288

[한반도평화보고서2005] ‘동북아 균형자’ 역할 선언, 어떻게 볼 것인가?

1장 2005 동북아 질서와 한반도 평화(3)

[##_1L|1085735088.jpg|width=”100″ height=”91″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_##]2005년 들어 노무현 대통령과 정부는 여러 차례에 걸쳐 ‘동북아균형자론’을 피력하였다. 노무현 정부의 이 같은 입장 천명은 최근 한미동맹의 재편과 관련하여 주한미군을 신속대응군으로 개편한 후 한반도 외에 동북아, 나아가 전 세계 무력분쟁에 폭넓게 개입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이른바 ‘전략적 유연성’ 구상에 대한 한미간 논의가 진행되는 한편, 한-중-일 간 과거사 및 영토 관련 논란이 증폭되고 있는 상황에서 나왔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이에 대해 구체적으로 살펴보기 위해 정부의 발언 내용을 살펴보자

노무현 대통령의 선언은 지난 2월 25일 취임 2주년 국정연설에서 “우리 군대는 스스로 작전권을 가진 자주군대로서, 동북아시아의 균형자로서, 동북아 지역의 평화를 굳건히 지켜낼 것이다”라고 밝히면서 시작되었다. 이어 3월 8일 공군사관학교 제53기 졸업식에서는 “분명한 것은 우리의지와 관계없이 우리 국민이 동북아시아의 분쟁에 휘말리는 일은 없다는 것”이라고 강조하고 “우리 군은 한반도뿐만 아니라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을 지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한-미 동맹의 토대 위에서 주변국들과 긴밀한 협력을 강화해 나갈 것”이라고 역설했다. 이에 대해 정부 관계자는 “동북아 이외의 지역일 경우엔 한-미 동맹 관계에 있는 한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인정할 수 있다”고 부연 설명했다.

이어 3월 22일 3사 제 40기 졸업식에서 노 대통령은 “우리 대한민국은 동북아시아의 전통적인 평화세력”이라며 같은 기조로 발언했고 3월 30일 외교통상부 업무보고 과정에서 다시 “우리 외교는 역내 갈등과 충돌이 재연되지 않도록 균형자 역할을 수행해야 할 것”이라고 당부하고 “이를 위해 한-미 동맹을 확고히 견지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한-미 동맹을 토대로 협력과 통합의 동북아 질서 구축을 주도해 나가 달라”고 주문했다. 이에 대해 정부관계자는 “한중일은 숙명적 동반자로서 이 3자간에 발생한 양자적 갈등 및 위험성을 우리가 조절하고 균형을 잡는 게 동북아 균형자론의 핵심”이라고 부연하고 “한미관계를 토대로 균형자 역할을 수행한다는 것이 우리의 판단”이라고 동맹을 강조했다.

이러한 노무현 정부의 잇단 입장표명을 두고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보수 여론은 드디어 노무현 정부가 한미동맹에서 이탈하여 중국과 미-일 동맹 사이에서 위험한 저울질을 시작했다면 강도 높은 비난을 퍼붓기 시작했다. 반면, 일각에서는 노무현 정부의 평화외교 자주외교가 구체화되고 있는 것으로 평가하고 이를 높게 평가하기도 했다. “우리의 의지와 관계없이 우리 국민이 동북아시아의 분쟁에 휘말리는 일은 없다”는 의지만큼은 높이 산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어느 입장에 서느냐와 상관없이 노무현 대통령이 주장한 것이 ‘과연 한미동맹에서 이탈하고자 하는 것인가?’ ‘동북아 균형자 역할을 자임할 의지와 계획을 가지고 있는 것인가”를 점검할 필요가 있다.

우선 ‘균형자’ 라는 개념이 적절한가, ‘군’을 통해서 균형을 잡는 것은 타당한가 하는 의문이 제기된다. 국제정치 개념에서 통상 ‘균형자’를 지칭하는 표현에 함의된 것은 “힘의 균형(balance of power)”을 말하는 것인데 이러한 힘의 균형 논리는 유럽에서 나폴레옹 전쟁 이후 영국이나 프랑스 등이 사용하였고 냉전시기에는 소련에 대해 미국이 주로 사용해온 개념으로서 대결적이고 군비 경쟁적이며 개입적인 인상을 주기에 충분하다. 실제로 발언 초기 ‘군’이 균형자 역할을 한다고 두 차례에 걸쳐 강조한 것은 이런 인상을 주기에 충분하다.

더욱 큰 문제는 이 과정에서 은근 슬쩍 한국군의 역할을 ‘자기방어’에서 ‘동북아 평화를 지키는 것’으로 확장시켜 놓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이 한미동맹을 ‘지역동맹화’ 하자고 주장해온 터이기에 정부가 ‘말은 번드르르’하게 하면서도 결국 미국의 요구를 전폭 수용한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이 생기는 것은 자연스럽다.

문제가 커지자 정부는 ‘군’ 대신 ‘대한민국’이 그 같은 역할을 한다고 표현을 바꾸었다. 그러나 여전히 ‘독자적인 역량을 갖춤으로써 독립변수로 자리 잡기 위해 자위적 국방역량이 필수’임을 강조하고 있어 ‘군비증강’에 대한 의구심이 가시지 않고 있다. 동북아시아의 군사질서 내에서 동북아 균형자를 내세운 군비증강은 북한 및 주변국에 군사적 긴장을 유발하고 결국은 동북아 전체에 군비증강을 야기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한편, 노무현 정부는 동북아 균형자 역할을 수행함에 있어 한미동맹에 기초하겠다고 밝히고 있는 것 역시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노무현 정부는 “한-중-일 3자 간의 역학관계에서 어느 한 경향성이 지나치게 나타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한-미 동맹이 중요하다.”고 역설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의 동북아 구상 자체가 ‘중국을 전략적 경쟁자’로 상정하고 “일본을 ‘보통국가화’시켜 미-일 관계를 유럽에서의 미-영 관계와 유사한 특별한 관계로 발전시키는 것”을 그 근간으로 하고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한마디로 미국 자신이 ‘어느 한 경향성을 지나치게’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미국의 동북아 전략이 구체적으로 실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가 한미동맹을 토대로 한중일간의 갈등과 충돌을 막겠다는 것은 실현가능하지 않으며 설득력도 없다.

물론 ‘동북아균형자론’의 배경에 미일동맹과 중국과의 정면충돌을 막아보고자 하는 문제의식이 담겨 있다는 점은 인정할만한 요소이다. 그러나 마치 한미 동맹이 중국과 일본과의 분쟁에서 균형을 잡거나 제3의 입지를 형성하는데 긍정적으로 기여할 것으로 설명해서는 곤란하다.

노무현 대통령은 “우리의 의지와 관계없이 우리 국민이 동북아시아의 분쟁에 휘말리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이것은 어떤 경우에도 양보할 수 없는 확고한 원칙으로 지켜나가겠다”고 밝히고 있다. 이는 매우 중요하고도 적절한 발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동북아 외의 지역 개입을 괜찮다고 보는 정부의 태도에는 문제가 있다. 우선, 우리 동네에서는 안되고 남의 동네에서는 아무렇게나 해도 상관없다는 선언은 그 비일관성 때문에 국제사회의 동의나 공감을 얻기도 어렵고 미국과의 협상에서도 힘을 갖기 어렵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설사 동북아 개입 배제가 합의된다하더라도 문제는 심각하다. 정부는 중국-대만 갈등에 대해 주한미군과 우리가 개입하는 일만 없다면 세계 어느 곳에 주한미군이 진출하더라도 ‘군소리’하지 않겠다고 합의하는 셈이다. 예를 들어 이라크, 이란, 시리아 등 어디에 가도 괜찮다는 말이다. 이는 한국이 세계 주요 분쟁의 발진기지로 이용된다는 뜻이다. 게다가 여기에는 이미 이라크에서도 입증되었듯이 동북아만 아니라면 한미동맹의 이름으로 우리군도 미군을 돕기 위해 그곳에 갈수 있다는 전제가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또 다른 문제는 국민의 동의도 없이 ‘분쟁과 갈등을 예고하는 주한미군의 재편’이 이미 진행되어 왔다는 사실이다. 미군 제2사단의 신속대응군화, 용산 기지를 포함한 주한미군기지의 평택-오산으로의 이전 통합은 주한 미군의 이른바 전략적 유연성 확보 작업의 핵심이다. 정부는 이 이전의 의미에 대해 국민에게 일언반구 상의도 없이 이미 협정을 타결하고 서명까지 마친 상태이다. 이 과정에서 평택기지로의 통합이 주한미군의 이른바 전략적 유연성 확보의 시작이라고 강력히 반대하던 시민사회단체들의 요구를 정부는 그럴 리가 없다며 묵살해 왔었다. 이 같은 이율배반이 또 있겠는가?

마지막으로 주목할만한 점은 초기 노 대통령의 발언은 주로 한미동맹에 대한 우리 군의 입장을 밝히는 형식으로 제기되었던 반면, 이후에는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에 대한 언급 대신 한미동맹을 바탕으로 통한 중일 갈등에서 중심을 잡겠다는 취지가 새롭게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나마 동북아시아에서 미군의 일방적 군사재편에 대한 문제의식은 잦아들고 중-일 갈등을 한미동맹으로 조율하겠다는 식의 황당하지만 민족적 정서에 편승하는 정치적 주장으로 변질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이상에서 지적한 여러 가지 한계에도 불구하고 동북아의 전반적 군사화와 긴장심화, 그리고 미국 위주의 일방적인 동맹재편 시도에 대해 한국정부가 독립적인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는 점은 긍정적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우리의 의지와 관계없이 우리 국민이 동북아시아의 분쟁에 휘말리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언명은 잘 발전시켜나가야 할 매우 중요한 가이드 라인을 제시한 것으로 평가될 수 있다. 그러나 정부의 선언이 진정으로 동북아 평화와 갈등예방을 위한 협력과 통합의 선언이’독트린’이 되기 위해서는 몇가지 점들이 보완되어야 한다.

우선, 동북아에서 △중국과 함께 미-일에 대한 균형 잡기를 시도하는 것, △한미일이 중국에 대한 균형 잡기를 시도하는 것, △한국이 독자적으로 중국과 미-일의 갈등을 실력으로 통제하는 것 모두 비현실적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첫째 방식 또는 두 번째 방식은 각 상대방에게 패권에 편승하는 것이라는 인상을 줌으로써 평화정착의 질서에 기여하기 어려울 것이며 세 번째 도식은 불가능하다. 이는 힘의 균형(balance of power)이라는 안보개념-냉전적 도식에 기초해서는 한국의 역할을 찾기 쉽지 않으며 동북아평화구상도 불가능함을 보여준다. 새로운 개념과 접근법, 상상력이 필요하다.

둘째, 한미동맹 관련 논의내용을 국민에게 공개하고 사회적 토론을 병행해야 한다. 지금 한미동맹을 비롯한 동북아 지역의 정치군사적 경제적 관계들은 매우 급격하고도 구조적인 변동을 겪고 있다. 그러나 정부의 안보외교담당자들이 마주하고 있는 사안들은 한반도의 장래는 물론 동북아 45년 체제의 구조적 재편과 관련된 중차대한 사안들인데 반해 사회적 공론화 작업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한미간 전략협의 내용을 가능한 한 국민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형태로 공개해야 한다. 한미동맹 등 냉전시대에 절대화되어온 사안 역시 이제는 비판적인 검토대상이 되어야 하며 공론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셋째, 한국정부가 동북아 평화와 협력, 갈등 통합을 주도하고자 한다면 무장 갈등 일반에 대한 정부의 외교 철학과 원칙부터 정리해서 공표해야 한다. 한국정부는 동북아에서만은 안된다는 소극적이고 설득력 없는 입장을 취할 것이 아니라 적어도 한국군만큼은 자국을 넘어서는 어떤 곳의 분쟁에도 개입하지 않고 오로지 유엔이 공식적으로 요구한 평화유지활동에 한해서만 동참한다는 확고한 원칙을 천명함으로써 동맹을 앞세운 원칙 없는 군사 행동 또는 갈등 유발형 군사개입 가능성을 원칙적으로 배제해야 한다. ‘침략전쟁을 부인’하는 헌법 5조를 보다 실질적으로 적용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장기적으로 정부는 ‘대한민국은 평화국가’임을 명시하고 이를 외교안보 전략의 기본노선으로 천명해야 한다.

넷째, 군비경쟁이 동북아 평화 공동체를 형성하는데 장애로 작용하며, 궁극적으로도 각 나라 시민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밝힐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한미동맹 체제의 재편구상 논의와 병행하여 동북아 다자간 협력 안보체계에 대한 논의를 본격화하고, 역내 갈등 예방을 위해서 군비확장 대신 경제협력, 민간교류 등 다차원적 의존관계를 구조화하는 ‘공동안보’전략을 실천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정부는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는 안보를 중심으로 한 동북아 균형자 역할보다, 동북아 평화공동체를 향한 교량자 역할을 표방해야 한다. 이러한 역할을 올바로 수행하는 첫걸음은 평화질서 형성에 배치되거나 분쟁을 유발할 가능성이 높은 정치적 군사적 제안 등에 대해서 국민과의 합리적 토론을 기반으로 명확한 자주적 태도와 입장을 견지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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