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수로 시점공방’ 각국 입장 (연합뉴스, 2005. 9. 20)

북, 先경수로 요구..미.일.러 일축, 중은 침묵

정부 “최대치 요구일 뿐..조정 가능”

북한이 20일 외무성 대변인 담화를 통해 선(先)경수로 제공을 주장함에 따라 미국과 일본, 러시아가 정면으로 거부하고 나섰고 우리 정부는 “조정이 가능한 일”이라면서도 사태 추이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정부는 그러나 미국과 일본 등 나머지 국가와 마찬가지로 북한이 우선 핵무기비확산조약(NPT)에 복귀하고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안전조치(사찰.검증)를 이행한 연후에야 경수로를 제공할 수 있다는 쪽으로 입장을 정리한 것으로 알려져 귀추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선 경수로 제공, 또는 적어도 핵폐기와 동시에 경수로를 제공해달라는 북한 외무성 대변인 담화는 남.북한과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6개국이 북한의 모든 핵무기 및 핵 프로그램 포기와 대북 경수로 제공문제 논의를 골자로 하는 6개항의 공동성명을 타결한 지 만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아 나온 것이어서 북한이 과거 보여준 `막판 뒤집기’를 다시 시도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사고 있다.

한국과 미국, 일본 등 6자 회담 참가국들은 그러나 북한의 이날 담화가 공동성명 자체를 무산시킬 것으로는 보지 않지만 향후 회담이 이 문제로 인해 상당한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라는 점에는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 북한 =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이날 담화를 통해 “조.미 관계가 정상화돼 신뢰가 조성되고 우리가 미국의 핵위협을 더 이상 느끼지 않게 되면 우리에게는 단 한 개의 핵무기도 필요없게 될 것”이라며 “기본은 미국이 평화적 핵활동을 실질적으로 인정하는 증거로 되는 경수로를 하루 빨리 제공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담화는 이어 미국이 대북 신뢰조성의 기초로 되는 경수로를 제공하는 즉시 NPT에 복귀하며 IAEA와 담보협정을 체결하고 이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담화는 특히 “신뢰조성의 물리적 담보인 경수로 제공이 없이는 우리가 이미 보유하고 있는 핵 억제력을 포기하는 문제에 대해 꿈도 꾸지 말라는 것이 지심깊이 뿌리박힌 천연바위처럼 굳어진 우리의 정정당당하고 일관한 입장”이라고 분명히 했다.

6자회담 북측 수석대표인 김계관 외무성 부상은 이날 평양으로 귀환하기에 앞서 공항에서 기자들에게 자국이 NPT를 탈퇴한 것은 “미국의 적대정책 때문이었다”면서 “미국은 경수로를 건설함으로써 대북 적대시 정책이 바뀌었음을 보여줄 수 있다”고 말해 미국이 경수로 건설을 통해 먼저 신뢰를 보여줄 것을 촉구했다.

◇ 미국 = 애초부터 경수로 문제에 난색을 표해온 미국의 입장은 단호하다.

국무부는 19일(현지시간) 공동성명에 명시된 경수로 문제를 논의할 `적절한 시점’은 앞으로 북한의 모든 핵무기와 핵프로그램 해체, NPT 복귀 및 IAEA의 모든 안전조치를 이행한 후를 의미한다고 못박았다.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 역시 이날 뉴욕본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북한의 평화적 핵이용은 현존하지 않고 멀리 있는 문제”라면서 “공동성명에서 합의된 것은 적절한 시점에 경수로 문제를 논의할 준비가 돼 있다는 것”이라고 강조, 경수로 문제가 미래의 문제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결국 북미가 지난 해 6월 3차 6자회담에서 가장 큰 걸림돌이 된 `동시행동'(북한)과 `선핵폐기 후보상'(미국)을 놓고 다시 격돌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는 셈이다.

◇ 일본 = 마치무라 노부타카(町村信孝) 외상은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한.미.일 3국은 6자회담 마지막에 `경수로 제공 문제는 북한의 핵계획 포기와 NPT 복귀 등이 이뤄진 후 적당한 시기에 논의한다’고 발언했다”고 상기하고 북한의 이번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일축했다.

그는 “진짜 어려운 건 다음번 6자회담”이라면서 “더 구체적인 작업순서와 내용을 결정하기 위한 준비를 해야한다”고 말했다.

호소다 히로유키(細田博之) 관방장관도 “북한이 모든 핵계획을 포기하고 NPT에 복귀한다는 약속이 먼저 필요한 순서”라고 말했고 고이케 유리코(小池百合子) 환경상은 “비핵화가 바람직하지만 공동성명은 언제 어떻게 할지를 확실히 하지 않았다”고 지적하고 “평양방송은 우려했던 대로 아전인수 식으로 말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 러시아 = 중국이 입장 표명을 유보하고 있는 가운데 러시아의 6자회담 수석대표인 알렉산드르 알렉세예프 외무차관은 역시 19일(현지시간) 기자회견을 통해 북한이 NPT에 복귀하지 않을 경우 북한에 에너지 지원을 할 수 없다고 밝혔다.

그는 “러시아가 뭔가를 한다면 그것은 국내법과 국제의무에 따르거나 6자회담 다른 참가국과 공동으로 하는 것”이라면서 사실상 북측의 선NPT를 등을 촉구했다.

◇ 한국 = 외교통상부는 북한의 이날 주장이 공동성명에 명시된 `적절한 시기에 경수로 제공문제에 대해 논의한다’는 문구를 자기 입장에서 “최대치로 해석한 것”이라고 평가하고 “이 문제는 향후 진행될 6자협의에서 논의되고 관계국간 협의를 통해 결정될 것”이라고 밝혔다.

정동영(鄭東泳) 통일부 장관은 역시 이날 MBC 라디오와의 인터뷰를 통해 “앞으로 `적당한 시점’과 관련해 각측은 자기의 최대치를 얘기할 것”이라면서 “그러나 이것은 조정해 나갈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그 과정에서 역시 한국의 입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이 문제로 공동성명 자체가 수포로 돌아갈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는 “그럴 일은 없으리라고 본다”면서 “북핵 문제의 긴 터널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앞으로 이런저런 언덕과 산이 나올 수 있지만 긴 터널을 빠져나온 것을 다시 되돌릴 수는 없으리라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공동성명의 6개항이 여러가지를 포괄적으로 담아 서로 다 맞물려 있기 때문에 경수로 문제 때문에 좌초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얘기다.

정부는 경수로 제공에 앞서 북한이 NPT에 복귀하고 IAEA의 의무사항을 이행해야 한다는 쪽으로 입장을 정리하고 11월초 제5차 6자회담과 그 이전에 열릴 양자 또는 다자접촉을 통해 이 같은 입장을 관철시켜 나갈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태식(李泰植) 외교부 제1차관은 이날 오후 국회에서 한나라당 강재섭(姜在涉) 원내대표를 비롯한 북핵특위 의원들을 상대로 6자회담 결과를 보고하는 자리에서 “오늘 북한 외무성 부상의 발언은 사실과 맞지 않다. 북한이 핵을 폐기하고 IAEA의 핵사찰을 받고 NPT에 재복귀하게 되면, 자연적으로 평화적 핵이용권이 생기게 되고 경수로를 이용할 수 있을 것”이라며 `선 핵포기, 후 경수로 지원’ 원칙을 확인했다.

우리 정부가 다른 나라들과는 달리 `주도적 조정’ 가능성을 내비치고 있는 것은 공동성명에 포함된 `경수로 제공’이라는 표현의 `다의성'(多意性)을 감안한 듯 하다.

`경수로 제공’이라고 할 경우, 그야말로 관계국간 논의하는 것 자체를 말할 수도 있고, 또한 ▲경수로 설계의 착수 ▲경수로 공사의 시작 ▲핵심 부품의 공급 ▲경수로 완공 및 전력생산 등의 시점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정부 고위당국자는 “경수로 제공이라는 표현은 여러가지 다의적 해석이 가능하다”며 “앞으로 6개국간 협의를 통해 일단 `경수로 제공’이라는 표현을 정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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