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핵문제, 평화적 해법 찾기

미국의 세계전략인가, 북한의 생존전략인가

이 글은 참여사회 2003년 1월호에 실린 글입니다.(편집자주)

북한이 12월 12일 핵 동결을 해제하고 전력생산에 필요한 핵 시설의 가동과 건설을 즉시 재개하기로 하면서 우려했던 한반도에서의 제2의 핵 위기가 현실화하고 있다. 북한의 핵 동결 해제 조치 발표는 12월부터 북한에 중유 지원을 중단하기로 한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의 결정에 대한 첫 대응조치다. 북한은 미국이 요구한 ‘핵 포기 선언’ 대신 ‘핵 동결 해제 선언’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들고 나왔다.

북한이 핵 개발 포기를 선언하고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을 받는 등 미국을 비롯한 서방과의 대타협을 선택하는 대신 핵 동결 해제를 선언한 것은, 미국이 불가침조약을 통해 북한 체제를 보장하지 않은 상태에서 핵 개발 포기 선언을 할 경우 미국의 압력으로 ‘항복선언’을 한 것으로 비춰지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내부적으로 선군정치(先軍政治 : 군사선행의 원칙에 따라 군대를 중시하고 강화하는 것)를 하고 있기 때문에 군부의 의사를 무시하고 미국으로부터 체제 보장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 핵 개발 포기 선언을 할 경우 군부의 반발을 불러올 수도 있다.

북한이 대선을 앞둔 미묘한 시점에서 핵 동결 해제선언을 한 동기는 전력공급 중단으로 생길 주민들의 불만을 잠재우고 제네바합의 미이행에 따른 전력 손실을 메우기 위한 것이다. 12월부터 중유가 중단되면 일부 화력발전 시설의 가동이 중단되고 북한 주민들은 당장 추운 겨울을 보내야 한다. 북한 주민들은 지도부의 잘못으로 추운 겨울을 보내야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이러한 이유로 북한 지도부는 전력 생산을 위한 핵 동결 해제 선언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위기를 조성해 주민들의 불만을 미국 탓으로 돌리려는 것이다.

북한이 외무성 대변인 담화에서 밝힌 내용은 핵무기 개발을 위한 핵 동결 해제가 아니라 전력 생산을 위한 핵 동결 해제다. 그러나 한국을 비롯한 외부 세계는 북한의 핵 동결 해제 조치를 핵무기 개발로 받아들이고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이는 북한의 원자력발전소가 플루토늄을 생산할 수 있는 흑연 감속로 방식이기 때문이다.

북미간 제네바합의 입장편차 커

북한이 핵무기 개발 포기 선언 대신에 핵 동결 해제를 선언함으로써 한반도는 또다시 핵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됐다. 현재로서는 북한에서 시작된 핵 태풍을 잠재울 수 있는 묘안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반테러와 대량살상 무기의 비확산이라는 확고한 목표를 제시한 미국은 켈리 특사의 방북 당시 확인했다는 농축우라늄 핵무기 개발 프로그램을 포기하지 않는 한 북한과 대화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미국은 이미 북한에 중유 지원을 중단하면서 압박하고 있다.

▲최근 벌어지고 있는 북미갈등의 핵심은 제네바 북미기본합의 이행 및 북미 적대관계 해소와 관련한 것이다. 사진은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정상회담 모습.

한국과 주변 국가들 모두 북한 핵무기 개발은 용인할 수 없다는 원칙적 입장을 밝히고 북한을 설득하고 있지만 제네바합의 이행과 관련한 북미 간 입장 차이가 워낙 커 중재력도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최근 벌어지고 있는 북미 갈등의 핵심은 제네바 북미기본합의 이행 및 북미 적대관계 해소와 관련한 것이다. 북한과 미국은 서로 상대방이 제네바 합의를 이행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제네바 합의 무효화 또는 파기를 입에 올리는 단계에 이르렀다.

미국은 켈리 특사의 평양 방문을 통해서 핵, 미사일, 재래식 무기, 인권문제 등 이른바 ‘우려사항’을 북한이 먼저 해결해야 북미 관계는 물론 북일 관계와 남북 관계도 순조롭게 풀릴 수 있다는 입장을 북한에 전했다. 북한은 미국의 선 우려사항 해소, 후 대화 방침에 강하게 반발하면서 선군정치에 따라 필요한 모든 대응조치를 취한다고 밝혔다.

미국은 북한이 핵, 미사일 등 대량살상 무기를 개발하는 ‘불량국가’이기 때문에 먼저 이를 포기해야 ‘정상국가’인 미국, 일본, 한국 등과 관계 개선을 추진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북한은 미국이 문제시하는 ‘우려사항’이란 바로 미국의 대조선 적대시 정책과 침략 책동의 산물이라고 하면서 미국이 불가침조약을 통해 대북 적대 정책을 포기하면 미국의 안보상 우려 사항을 해소할 용의가 있다고 맞서고 있다.

두 나라의 갈등은 협상에 대한 기본 관점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미국은 반테러와 대량살상 무기 비확산이라는 세계전략에 따라 북한을 다루고 있는 데 비해, 북한은 생존전략 차원에서 대량살상 무기 개발 카드를 활용해 북미 적대 관계를 해소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따라서 대량살상 무기 개발을 둘러싼 갈등은 쉽게 해결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북미 적대 관계가 해소돼야 북한이 생존을 보장받을 수 있고 경제 재건이 원활히 이뤄질 수 있다는 점에서 다시 불거진 핵개발 의혹은 조속히 해결돼야 한다. 따라서 미국의 ‘우려사항’ 해소 요구와 북한의 대북 강경 적대시 정책 포기와 체제 보장 요구 등 현안이 일괄타결 되도록 북미 양국과 한국, 국제사회는 노력해야 할 것이다.

북한 핵 문제 해결과 관련, 한·미·일 3국은 미국 클린턴 행정부 때 만든 ‘페리 프로세스’란 합의적 해결방안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북한의 대량살상 무기 개발 중단과 체제 보장을 단계별 일괄타결 하는 페리 프로세스를 재가동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북핵 해법이 될 것이다.

미국이 ‘북한 불량국가론’을 내세우면서 현안의 일괄타결을 모색하지 않고 북한의 무장해제 선행을 요구하는 것은 올바른 대화 자세로 보기 어렵다. 상대방이 들어주기 어려운 전제 조건을 앞세우는 것은 ‘우려사항’ 해소 이외에 미국이 또 다른 의도를 가지고 있다는 의심을 불러일으킨다. 북한과 급속한 관계 개선을 추진하고 있는 한국과 일본을 견제하는 시간 벌기용으로 오해받을 수도 있다.

북한, 불량국가 이미지 벗으려면 국제무대로 나와야

어떻든 미국특사를 받아들여 적대 관계를 해소하고 개혁 개방을 본격화하려던 북한의 의도는 우라늄 농축방식의 새로운 핵무기 개발 계획 시인 파문으로 뜻하지 않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신의주 특구 개발 등 개혁 개방 정책은 중국이 견제하고, 북일 국교정상화 등 대외관계 확장 노력은 미국이 견제하는 듯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북한의 정책변화로 촉발된 한반도 정세의 변화에 대해 그동안 한반도 문제에서 다소 소외됐던 러시아와 일본은 적극성을 보인 반면,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해왔던 미국과 중국은 우려하고 있다. 미국은 아직도 북한의 변화 의지를 의심하고 대량살상 무기의 근본적 해결을 위한 강경정책을 고수하고 있으며, 중국 역시 북한의 신의주 특구 지정과 양빈 장관 임명에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고 있다.

북미 적대 관계 해소는 북한이 안보불안에서 벗어나 안심하고 개혁 개방을 추진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 주는 의미가 있다. 또 북한은 미국의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벗어나야 경제 재건에 필요한 재원을 국제금융기구로부터 빌려올 수 있다. 북일 수교에 따른 식민지배 보상자금 50억∼100억 달러는 북한 경제난을 해소하는 데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할 것이다.

북한이 추진하고 있는 경제재건 계획이 성공하려면 서방 세계가 우려하고 있는 대량살상 무기 개발을 포기해 ‘불량국가’ 이미지를 벗어 던지고 국제무대로 나와야 한다. 최근 북한도 이를 위한 정책 변화를 적극 모색하고 있는 만큼 서방세계는 이를 따뜻이 받아줘야 한다. ‘유일체제’인 북한과의 ‘우려사항’ 해소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의 협상이 가장 빠른 방법이고 비용도 적게 든다는 점을 미국은 알아야 한다.

고유환(동국대 북한학과 교수)

고유환(동국대 북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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