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군축센터 핵없는 세상 2008-10-13   1461

[칼럼] 대북 테러지원국 해제, 비핵화 진전에 따른 한국의 역할






대북 테러지원국 해제, 비핵화 진전에 따른 한국의 역할
 – 남북관계의 전략적 의미를 생각함




        서보혁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 실행위원, 이화여대 학술원 연구위원)


미국이 이달 11일 북한을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삭제함으로써 9.19 공동성명 2단계 조치가 완료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북한은 12일 미국의 조치를 환영하였고 일본을 제외한 6자회담 대부분의 참가국들도 지지와 환영 의사를 표시했다. 북한은 미국의 테러지원국 명단 삭제 직후 “영변 핵시설의 무력화(불능화)를 재개하며 미국과 국제원자력기구(IAEA) 감시 성원들의 임무 수행을 다시 허용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북한과 미국은 북한이 신고한 핵 목록을 검증하는 방법에 타협을 봄으로써 쌍방이 체면을 손상하거나 손해를 보지 않는 가운데 비핵화 프로세스를 다시 추진할 수 있게 되었다. 9.19 공동성명을 원형으로 하는 한반도 비핵화 이행은 6자회담 참여국들 간 입장 조정과 타협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따라서 특정 국가가 비핵화 방안을 일방적으로 관철하려는 태도는 비핵화 이행의 장애요인임을 9.19 공동성명 채택까지 진행된 6자회담이 보여주었다. 오직 동시행동 원칙에 입각하여 참여국들의 이해관계를 조화시켜 나가는 것이 비핵화를 진전시키는 길임을 이번 미국의 대북 테러지원국 명단 삭제 조치와 북한의 상응 조치 확인이 웅변해주고 있다.


비핵화 이행을 촉진할 미국의 이번 조치는 그러나 순차적인 검증방식에 따라 서서히 진행될 전망이다. 북한이 제출한 영변 핵시설을 중심으로 한 핵신고 목록에 대한 검증을 먼저 하고, 우라늄농축프로그램이나 미신고시설 검증은 북한과의 협의를 통해 그 후에 진행될 것이다. 그리고 미국의 대선 일정 및 새 행정부 취임 그리고 북한의 분할전술도 완전한 핵 신고 검증 시간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이런 가운데 북한 외무성은 12일 성명에서 “앞으로 10.3합의(핵 불능화를 비롯한 9.19 공동성명 이행 2단계 조치를 말함)의 이행이 완전히 마무리되는 것은 미국의 테러지원국 명단 삭제 조치가 실제적 효력을 발생하며 (6자회담 참여) 5자가 경제보상을 완료하는 데 달려 있다”고 밝힌 점도 유의할 대목이다. 이에 대해 북한은 같은 성명에서 “이것(불능화 작업)은 우리가 10.3합의의 완전한 이행을 전제로 해 핵시설 무력화 대상들에 대한 검증에 협력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는 북한이 핵 신고 검증에 대한 협력을 (10.3합의에서 밝힌) 5개 6자회담 참가국들의 중유 100만톤 상당의 경제․에너지․인도적 지원 완료와 대미 교역 및 국제금융기구의 대북 차관 공여 개시와 연계하고 있음을 강력히 시사하고 있다. 그리고 우라늄농축프로그램과 미신고 시설에 대한 검증을 북한과 협의하는 과정은 별도의 타협을 요구하는 대목이다.


이럴 경우 5개 6자회담 참여국들은 우선 중유 100만 톤 상당의 대북 지원과 북한과의 교역 개시(일본의 경우 대북 경제제재 중단 포함) 혹은 확대, 특히 미국은 국제금융기구의 대북 차관 제공을 주선하는 역할을 할 필요가 있다. 이때 6자회담 경제·에너지 협력실무그룹 의장국인 한국은 대북 지원을 촉진하는 역할을 취하는 한편, 개성공단 2단계 분양 등 남북 경협에 적극적인 자세를 취할 필요가 있다.


미국과 북한의 이번 상호 조치는 비확산 차원에서 북핵문제가 불능화 및 신고 단계에서 폐기 단계로 진입할 가능성을 열어 놓았고, 정치적 차원에서는 북미, 북일 관계 개선 논의가 탄력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이 둘은 서로 맞물려 진행될 것이다. 가령 북핵 불능화 및 핵신고 검증 과정에서 북미간 논의는 미국 대선 이후 관계개선 논의에 힘을 불어넣을 것이다.


금번 북미간 상호 조치와 관련하여 일각에서는 한국이 소외되었다고 말하지만, 핵신고 검증에 핵 비보유국 등 6자회담 모든 회원국들이 참여하도록 하는데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정작 문제는 비핵화 진전을 남북관계 개선,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전략이다. 이제 한국정부의 대북정책은 비핵화와 남북관계, 평화체제 구축을 선순환적 관계로 인식하는 발상의 전환을 필요로 한다.


정부의 ‘비핵,개방,3000’은 비핵화 진전 단계에 따라 대북지원 및 남북경협의 범위와 수준을 조절하고 있다. 이런 소극적인 정책 마인드는 노태우 정부의 북방정책 이후 역대 정부의 대북정책이 연속선상에서 전개되어온 점을 무시하고, 전임 정부의 대북정책과 달라야 한다는 강박관념의 산물이라는 지적이 많다. 이런 접근으로는 비핵화 진전 과정을 남북관계 발전 및 평화체제 구축으로 연결 짓지 못하는 전략적 오류를 초래할 수 있고, 나아가 비핵화 이후 한반도 질서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할 우려마저 있다.


일부에서는 대북 테러지원국 명단 삭제 조치로 전략물자 반출에 대한 규제 완화로 개성공단 사업 활성화 등 남북경협이 활기를 띨 것으로 본다. 그러나 그런 희망적 사고는 정부의 적극적인 대북정책 의지와 결합할 때 현실화 될 수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9월 민주평통 국내지역회의 개회사에서 “남과 북은 남북기본합의서, 한반도비핵화선언, 6.15공동선언과 10.4선언 등 그간의 모든 남북간 합의의 정신을 존중”한다고 밝히고 합의 이행을 위해 “남북한 당국의 전면적인 대화”를 제안하였다. 북한이 이명박 정부에 요구해온 6.15공동선언과 10.4선언 존중을 대승적으로 수용한 것이다. 이제 북한의 긍정적인 반응과 또 한번 우리 정부의 대승적인 조치가 필요한 때이다. 정부는 10.4 선언의 이행방안을 포함한 조건 없는 남북 당국간 대화를 제의할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비핵화 진전과정에 남북이 협력하면서 상호 신뢰를 쌓고 남북관계 발전 방안을 새롭게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한반도 비핵화 과정에 남북한이 당사자로서 참여하고 미래 한반도 질서를 상생과 공영의 길로 만들어나가는 출발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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