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군축센터 칼럼(pd) 2004-06-21   576

<안국동窓> 전쟁의 길로 가는가

전쟁인가, 평화인가 이제 한국은 이 질문에 신중하게 대답해야 한다. 대답을 강요받고 있다. 한국이 지향하는 바가, 그리고 한국이 미국에 원하는 바가 전쟁인가, 아니면 평화인가 21세기 한반도와 동북아에서 전쟁의 길로 갈 것인가, 평화의 길로 갈 것인가

이라크 추가파병과 주한미군 이라크 차출은 파병군인들의 안전만이 문제가 아니다. 이라크인의 평화재건 지원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 실체도 내용도 모호한 국익, 또는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한미동맹’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바로 21세기에 나아갈 방향과 가치를 어떻게 선택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그리고 오늘의 선택은 우리의 미래를 규정할 것이다. 오랫동안.

불행하게도 한국 정부는 전쟁의 길에 발을 밀어넣고 있다. 한국군이 미국이 주도하는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전쟁에 이미 파견되어 작전중이며, 2004년 8월이면 주한미군 일부가 이라크 전쟁에 바로 투입된다는 사실은 한미동맹의 현주소를 그대로 보여준다. 주한미군을 신속기동군으로 재편하고 한미동맹을 전세계적인 군사 소요에 대응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은 미래의 청사진이 아니라 이미 현실이다. 한국군이 미국의 해외 전쟁에 투입되리라는 것도 미래가 아니라 이미 오늘의 모습이다. 한국과 미국이 이미 2004년 2월24일 ‘한미상호군수지원협정’을 개정하여 한반도와 북미지역에 한정된 한국과 미국의 상호 군수지원 대상지역을 세계 모든 국가로 확대했다는 사실도 이를 반증한다.

한·미 국방부 당국자들은 한미연합사의 작전 반경을 지역적 내지 세계적으로 확장하고 한미동맹의 성격을 한국 방어에서 세계분쟁 개입으로 전환하려는 논의를 이미 1992년부터 진행시켜 왔다. 2000년에는 한미동맹의 역할을 “동북아 및 아태지역 전체”로 확대한다고 한미연례안보협의회의에서 합의하기까지 했다. 부시 행정부에 들어와서 미국의 군사전략이 공격적으로 변화하고 군사 변환에 힘이 실리면서 이러한 논의가 한·미 국방부 간의 합의를 거쳐 본격적인 실행단계에 들어간 것이고, 한국 정부는 이러한 전쟁의 길에 적극적으로, 능동적으로, 자주적으로 성큼 뛰어들고 있다.

이러한 한미동맹의 역할 변화와 활동범위 확대가 한미동맹의 법적 근거인 한미상호방위조약을 명백히 위배하는 것이라는 지적에 두 나라 정부는 눈도 꿈쩍하지 않는다. 전쟁의 길로 가는 마당에 이러한 조약은 무시해도 좋은 종잇조각에 불과한 것이라는 듯. 더군다나 일부에서는 한국이 일본보다 더 많은 군대를 이라크에 파병해야 한다는 둥, 미군배치 세계조정에서 주한미군과 한국군이 일본보다 더 중요한 구실을 해야 한다는 둥 일본과 경쟁을 벌이고 있기까지 하다. 전쟁의 길에 누가 더 빨리 뛰어드느냐, 군사력의 사용범위를 누가 더 확대하고 있느냐, 미국의 전쟁에 누가 더 충실히 복무하느냐, 물밑경쟁이 치열하다.

일본은 헌법은 개정하지 않은 채 ‘창조적 헌법 해석론’에 근거하여 유사법제 등 하위 법체계를 정비하여 실질적인 ‘보통 국가화’를 추진하고, 미·일 신방위 가이드라인 등을 채택하여 미일상호방위조약의 성격과 적용범위를 확대해 왔다. 한국도 미·일 안보선언이나 신방위 가이드라인 등을 채택해야 한다는 소리가 나오고 있다. 일본의 선택은 전후 일본 보수세력의 반세기 숙원사업이었다. 또한 일본은 숙원사업을 이루는 과정에 북한과 두 차례 정상회담을 가지며 챙길 실속은 챙기고 있다. 과연 한국의 선택은 무엇을 지향하고, 무엇을 챙기는 것인가 잘해야 ‘짝퉁 전쟁국’ 아닌가.

하여 전쟁의 길로 가기 위한 경쟁은 치열하고, 그 와중에 ‘동북아평화번영공동체’는 콩가루가 되고 있다. 이제 평화의 길은 잡초가 무성히 자라고, 아무도 찾지 않는, 아무도 찾기 어려운 길이 되고 있다. 오늘의 이라크 추가파병과 주한미군 차출에서 전쟁을 위한 오랜 준비를 본다. 미처 지어보지도 못한, 내일의 퇴영한 아시아 공동체의 집을 본다.

오늘 21세기 들머리, 다시 묻는다. 전쟁인가, 평화인가

* 이 글은 한겨레신문 21일자에 실린 글입니다

서재정 (코넬대 정치학과 교수, 평화군축센터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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