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군축센터 기타(pd) 2010-06-25   1225

[기고]‘에너미 오브 스테이트’와 참여연대

다음 글은 6월 24일자 내일신문에 실린 글입니다.
http://www.naeil.com/News/politics/ViewNews.asp?sid=E&tid=8&nnum=552569


장은주 (영산대 철학과 교수)


최근 참여연대의 안보리 서한을 둘러싼 뜬금없는 사회적 논란을 보면서 오래 전에 보았던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라는 영화가 떠올랐다.
영화는 평범하고 선량한 한 시민이 무슨 정보기관에 의해 ‘국가의 적’으로 몰려 죽을 고생을 하게 되는 내용의 이야기다.
그 정보기관은 국가안보를 명분으로 개인의 권리를 제약하는 법안을 어떻게든 관철시키려 음모를 꾸미고 있었고, 주인공은 어처구니없게도 그 과정에 장애가 되는 어떤 물건을 자기도 모르게 가지게 되는 바람에 ‘제거’되어야 하는 운명에 처하는 그런 구도였다. 상황과 맥락은 많이 다르지만, 요즘 참여연대의 처지가 영락없이 그 영화의 주인공 신세 같다.
정말 밑도 끝도 없다. 모범적인 시민단체의 지극히 정상적인 활동이 국가안보에 해가 된단다. 비국민적이고 매국적인 행위란다. 이적활동이란다. 급기야 국가보안법이라는 무시무시한 유물도 등장했다. 국가기관과 보수언론 및 극우 단체들의 세 박자가 처척 맞아떨어진다. 참여연대를 해체시키기라도 하겠다는 기세다.
학자이자 서울대 총장을 지냈다는 총리는 사상과 표현의 자유라는 헌법적 권리는 안보나 국익 앞에서는 그저 ‘종이 위의 권리’에 불과하단다.


이의 제기, 반대표명이 중요

보수주의자라는 사람들은 인권 보호와 비정부 기구들과의 협치라는 근본 원칙에 따라 조직된 유엔에 시민단체가 서한을 보냈다고 반인권적인 국가보안법을 들먹이는 게 얼마나 큰 국제적인 망신거리인지 조금도 개의치 않겠단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게 참으로 슬프다.
그러나 지금 상황에서 가장 큰 문제는 애국이라는 깃발과 함께 진행되고 있는 참여연대에 대한 이런 공격이 사실은 지극히 적반하장이라는 점이다.
참여연대의 활동은 국익에 반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애국적인’ 것으로 평가해야 하는 반면, 우리 사회 보수 블록의 인식과 행위는 ‘애국주의적’ 언어로 포장되어 있지만 사실은 대한민국의 국가정체성에 반하는 매우 ‘해국적인’ 것이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민주공화국은 모든 시민의 자유와 존엄을 평등하게 보호하고 실현한다는 도덕적 목적을 ‘공동선’으로 삼아야 한다.
이 공동선(이른바 국익)이 특정한 사람이나 세력에 의해 독점적으로 해석되거나 처음부터 주어져 있는 어떤 것으로 받아들여져서는 곤란하다. 그것은 민주공화국의 근본이념에 대한 부정이다.
시민 모두의 일치된 이해관계를 찾거나 그들 사이에 완전한 동의를 구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민주주의 제도에서 이의를 제기하고 반대를 표명하는 것이 중요하다.


민주공화국 위한 애국행위

모든 시민의 동의를 전제할 수 없다면, 이의제기와 반대표명을 통한 견제 가능성이야말로 시민들이 공동선을 함께 추구할 수 있는 최소한의 출발점이다.
이는 단순히 ‘다수의 나라’가 아니라 ‘모두의 나라’여야 하는 민주공화국에서 다수결 원칙에 따른 절차가 민주적인 것으로 용인되기 위한 필수전제이다.
참여연대가 안보리에 서한을 보낸 일은 대한민국을 더욱 더 민주공화국답게 하는 애국 행위였다. 그것은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을 위한 축복이지 저주가 아니다.
앞서 언급했던 영화는 국가안보 같은 것을 핑계로 시민을 국가의 적으로 삼는 세력이야말로 사실은 진짜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임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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