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감시센터 국회 2003-12-19   1011

정개특위에서 무슨 일 벌어지는 지 알고나 하는 소린가?

대통령과 최 대표, 정치개혁안 정략적 접근

국회 정개특위의 정치자금법 개정 논의가 자문기구인 범국민정치개혁협의회(이하 정개협)가 내놓은 개혁안에서 크게 후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노무현 대통령과 최병렬 한나라당 대표의 정치개혁 구상이 국민적 요구와는 동떨어져 있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대선자금 검찰수사에 대한 청와대와 한나라당의 정치공방 국면에서 노 대통령은 지난 17일 국회의원들에게 보내는 공개서한을 통해 지역구도 해소를 위해 중대선구제와 권역별 비례대표제 등의 선거법 개정에 정치권이 나서줄 것을 호소했다. 최 대표 역시 대선자금 특검 추진을 밝히는 17일 기자회견에서 5대 정치개혁 과제를 한나라당이 주도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앞에서는 정치개혁, 정개특위에서는 딴 짓

노 대통령은 공개서한에서 “뼈를 깎는 고통을 감내하고서라도 이 기회를 정치자금 투명화와 현실화를 이루는 일대 전기로 삼아야 한다”면서 “이미 국회에서 저비용 정치, 투명한 정치를 위한 법개정 논의가 이뤄지고 있고, 국민의 기대를 충족하는 정치자금법 개혁안이 마련될 것으로 믿는다”고 밝혔다.

그러나 실제 정개특위에서 이뤄지는 정치자금 투명성 강화 논의는 대통령의 믿음과는 전혀 반대로 진행되고 있다. 정개특위 논의사항을 보면 정개협 안과 비교했을 때 투명성 강화 후퇴, 정치신인 진입장벽과 현역의원 기득권의 유지강화, 정치자금 및 선거법 위반 처벌 완화 등 개혁 후퇴 성향이 뚜렷하다.

정치자금 투명성 강화의 핵심 개혁사항인 고액 기부자 인적사항 공개는 개인 열람만 가능토록 하고 인터넷 공개는 일체 금지시켜 감시 기능을 어렵게 만들었다. 정치자금 영수증 선관위 제출 역시 1회 100만원, 연간 500만원 초과 기부에 한해 제출토록 했다. 또한 개별 의원에 대한 불법 로비 가능성을 막기 위한 법인과 단체의 개인 후원회 기부 금지 조항, 정치자금법 위반자 공무담임권 제한 및 처벌 강화 등도 채택하지 않았다. 현역과 정치신인의 공정한 경쟁을 위해 정치신인에 대한 진입장벽을 완화하는 개혁안도 크게 후퇴했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노 대통령은 정치권이 정치자금 투명성을 위한 획기적인 안을 만들 것이라는 근거 없는 기대만 내놓고 있는 것이다.

최병렬 대표의 정치개혁 구상도 알맹이 없이 소리만 요란하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최 대표는 17일 기자회견을 통해 △국회의원 정수 현행유지와 지구당, 후원회 폐지, △전국구 전원 신인교체, 정치신인에 공정한 경선틀 제공 △분구지역 양성평등선거구제로 추진, 전국구 여성에 50% 배정 △불법비리 혐의 확정시 공천배제 등의 정치개혁 5대 공약을 제시했다.

그러나 최 대표가 밝힌 개혁구상은 여성정치 대표성 강화라는 것을 제외하면 별 실효성이 없다는 평이다. 정치자금 투명성 강화, 정치신인 진입장벽 완화 등 정개협 개혁안에 대한 비토와 후퇴를 다수당의 힘으로 주도하면서, 기자회견 등을 통해서는 정치개혁을 주도하겠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은 전형적인 이미지 정치라는 비난이다.

구체적으로 전국구 전원 신인 교체, 정치신인에 공정한 경선틀 제공 등은 최 대표의 ‘한나라당 물갈이’ 구상과 연계된 내부 게임의 룰 정비에 해당하는 것이지 지금 쟁점이 되고 있는 정치자금 투명성 강화나 선거제도 개혁과는 별 무관하다. 또 지구당 폐지는 민주노동당과 같이 진성당원에 의해 민주적으로 잘 운영되는 당도 있기 때문에 모든 당에 일률적으로 요구할 성격의 개혁안이 전혀 아니다. 특히 정개특위에서는 기업과 단체의 의원 개인후원회 기부 금지는 수용하지 않으면서 최 대표가 후원회 폐지를 들고 나온 것도 우스운 모양새다.

김민영 참여연대 시민감시국장은 “최 대표는 지금 쟁점과 별 관계도 없는 안을 개혁안이라고 내놓을 것이 아니라 애초 시민단체와 약속한 정개협 개혁안 수용 약속, 대선자금 수사 협조 약속이나 지켜야 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선거제도 정략적 접근만

선거제도에 대한 대통령과 최 대표의 접근 역시 정개협 개혁안의 취지와는 달리 다분히 정략적으로 접근한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어 보인다.

노 대통령은 공개서한에서 “지역구도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한 지역구에서 2∼5명의 국회의원을 선출하는 중대선구제를 도입하는 것이 최선의 방안이라고 생각한다”면서 “만약 여러 이유로 소선거구제를 도입해야 한다면 최소한 권역별 비례대표제는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대통령의 선거제도 개혁 구상은 정개협 안과도 다를뿐더러, 시민사회의 일반적인 합의와도 동떨어져 있다는 평이다. 실제로 중대선구제는 고비용 정치, 보수정당 독점 지위 보장, 파벌정치 양산 등의 이유로 시민사회에서 거의 논의가 끝난 제도다.

손호철 서강대 정외과 교수는 “중대선거구제는 정치신인, 신생정당에 대한 진입 장벽을 높이고, 한 당 내에서도 파벌정치를 강화시키는 등의 폐해 때문에 가까운 일본을 비롯해 세계적으로 사라지는 제도”라면서 “부작용은 너무 큰 반면에 명분으로 내세우는 지역구도 해소 효과 역시 회의적”이라고 밝혔다.

비례대표제를 권역별로 할거냐, 전국별로 할거냐는 정치권 상호간, 시민단체 내부에서도 이견이 존재한다. 정치개혁을 위한 320여 시민사회단체의 연대기구 정치개혁연대는 권역별을 주장하고 있지만, 정개협은 전국별 비례대표제를 채택했다. 정당으로는 한나라당이 전국별을, 열린우리당은 권역별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손 교수는 개인 견해임을 전제로 “권역별 비례대표제 역시 표의 등가성과 사표 방지라는 비례대표제의 취지에 부합하지 않을뿐더러, 지역구도 해소보다는 중대선거구제와 동일한 폐해가 나타날 것”이라며 “정개협은 국민 대표라고 볼 수 있는데 (열린우리당이) 이제 와서 말을 바꾸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정개특위는 16일 전체회의를 열러 선거구제에 대한 합의사항을 발표할 예정이었으나, 열린우리당이 중대선거구제 등 새로운 선거구제 안을 강하게 제시함으로써 선거구제 합의는 정개특위의 손을 떠나 양당 총무와 대표간의 타협으로 넘어갔다는 전망이다.

이에 대해 열린우리당 정책자문위의 한 관계자는 “원래 당론이 권역별이었는데, (정개협안이 나오기 전에) 그 안을 받겠다고 했지만 정개협이 지역구도 완화 방안을 완전히 무시했다는 판단에 따라 원래 당론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라며 “박세일 정개협 위원장이 (전국별 비례대표제에 대한) 신념이 워낙 강해서 정개협안이 그렇게 된 것 같다”고 전했다.

그는 “비례대표를 100명으로 한다면 각 당이 계파간 나눠먹기로 옛날과 똑같이 돈받고 공천장사하는 폐해로 돌아갈 것”이라며 비례대표 확대에도 정개협과 일정한 선을 그었다. 이는 정개협 안과는 물론 대통령의 비례대표 확대 주문과도 상반된다.

최 대표의 의원정수와 소선거구제 유지도 정략적이란 비판을 면치 못하고 있다. 최 대표는 국민 여론을 등에 없고 의원정수 유지를 내세우고 있지만, 선거구 통폐합으로 인한 지역구 조정과정에서 나타날 당내 갈등을 고려해 다른 한나라당 관계자들은 “소선거구제 유지를 전제로 의석을 288석까지 확대할 수 있다”는 얘기를 공공연히 흘리고 있다.

표의 등가성 확보, 사표 방지, 신생정당의 진입 장벽 완화 등 비례대표제의 취지는 비례대표 의석의 유지 또는 축소라는 반시대적 당론으로 깔아뭉개면서 한나라당에게 유리한 현재의 게임의 룰은 반드시 지키겠다는 원색적인 정략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장흥배 사이버참여연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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