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감시센터 칼럼(aw) 2012-07-06   1771

[칼럼] 가난한 사람들의 ‘욕망’을 건드려라

[시민정치시평] ‘가난한 민주주의’의 균열가능성

가난한 사람들의 ‘욕망’을 건드려라

 

한귀영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연구위원

 

‘가난한 민주주의’ 그 후


지난 5월 한겨레신문-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는 ‘가난한 민주주의’를 기획 보도한 바 있다. ‘가난한 민주주의’는 가난한 이들이 자기배반적인 보수적 선택을 하거나 투표에 불참하기 때문에 정당 정책에 자신의 이해관계를 반영할 수 없어 사회경제적인 혜택으로부터 외면된다는 의미와 그 결과 자신이 속한 체제도 가난해진다는 이중의 의미를 담고 있다. 사회경제적으로 불리한 지위에 있는 사람들도 어느 정도 평등한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는 체제가 민주주의다. 민주주의 아래서는 경제적 약자들도 선거를 통해 자신을 대변하는 정당을 선택하고, 정당을 통해 자신들의 경제적 불리함을 상쇄하는 방향으로 제도와 정책을 개선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 정치에서는 가난한 이들이 보수적 선택을 함으로써 사회경제적 불평등이 더 견고해지고 있다. 사회경제적 양극화 심화로 인해 경제적 약자의 고통이 그 어느때 보다 크고 변화에 대한 요구도 높았던 4.11 총선이었지만 결국 보수정당이 승리한 것도 ‘가난한 민주주의’와 무관치 않다.

 

가난한 이들이 보수적 선택을 한다는 조사 결과가 발표된 후 다양한 반응들이 있었다. 가난한 이들의 정치적 보수성이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라는 지적 외에도 가난한 사람들이 보수적이라는 것을 드러내는 조사 결과가 어떤 실천적 의미를 지니는지에 대한 비판도 있었다. 즉, 우리사회에서 가난한 사람들이 보수적이라는 것은 이들의 정치의식이 빈약함을 보여주는 것 외에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것이다.

 

부자 동네의 높은 투표율과 강력한 보수 정당 지지

 

앞서 언급한대로 ‘가난한 민주주의’는 가난한 이들이 보수적 선택을 한다는 의미와 투표참여율이 낮아 자신들의 정치적 의사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고 있다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그리고 이 두 가지 의미에는 우리사회의 복잡한 현실이 담겨있다. 먼저 지역, 공간적 측면으로 가난한 동네의 투표율이 낮다는 사실이다. 2011년 서울시장 재보선 결과는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당시 서울의 최종 투표율은 48.6%로 상당히 높았는데 서초구의 투표율이 가장 높았고, 금천구, 중랑구, 강북구 등 이른바 ‘가난한’ 지역에서 투표율이 가장 낮았다. 잘사는 동네의 투표율이 높은 경향은 동네별 집값과 투표율의 상관관계를 분석한 손낙구의 <대한민국 정치사회지도>에서도 상세히 분석된 바 있다. 그리고 부자 동네에서 보수정당인 새누리당 지지도도 높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즉, 부자동네(부유한 층)는 투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자신의 이해와 일치하는 보수 정당을 지지함으로써 정치적으로 과대대표될 가능성이 높다.

 

반면 가난한 이들은 정치적 선택에서도 보수성을 띠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겨레신문 조사에서 경제적 지위별로 지난 4·11 총선에서 어느 정당에 투표했는지를 살펴본 결과, 새누리당 지지도는 하층(46.2%), 상층(44.6%), 중층(45.1%) 순으로 나타났다. 민주통합당을 지지했다는 응답은 상층(45.3%), 하층(40.7%), 중층(38.5%) 순이었다. 그리고 통합진보당 지지는 중층(12.8%)에서 가장 높았고, 다음이 상층(8.8%), 하층(8.4%)의 차례였다. 민주 진보 정당의 정치적 기반이 빈곤층이 아니라 중산층 이상이고 보수정체성이 강한 새누리당이 하층에서 강력한 지지 기반을 갖고 있음을 보여주는 결과다. 사실, 이같은 결과는 그동안 한국의 선거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난 경향을 응집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노인 빈곤층의 강고한 보수성, 젊은 빈곤층의 급진화

 

한편, 우리사회에서 빈곤은 세대문제와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 빈곤정도가 세대별로 고루 분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노인층에 집중되어 있다. 절대빈곤층의 상당수가 노인층일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그리고 정치의식 측면에서 노인층은 한국전쟁과 급격한 산업화 과정을 거치면서 냉전 반공 이데올로기와 성장주의를 당연하게 받아들인 세대다. 민주화 이후에도 반공 이데올로기는 약해졌지만 성장주의는 오히려 강화되면서 보수의 핵심 가치가 되었다. 이같은 역사적 배경하에서 가난한 이(노인층)들과 보수 정당이 긴밀한 관계를 형성할 수 있었다.

 

이를 좀 더 상세히 살펴보기 위해 50대 이상 고연령층과 40대 이하 연령층으로 구분해서 분석해보자. 앞서 언급했듯이 고연령층에서는 가난할수록 보수화 경향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하지만 20~40세대에서는 상이한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한겨레 조사 결과, 이 연령층 내에서 경제적 하층에 속하는 유권자의 87.1%가 19대 총선에서 야권연대(민주통합당+통합진보당)를 지지했다. 새누리당 지지도는 12.8%에 그쳤다. 가장 존경하는 대통령도 노무현 44.3%, 박정희 22.9%, 김대중 18.6% 차례로 나타나 박정희 응답이 압도적으로 높게 나타난 고연령층과 차이가 있었다.

 

4.11 총선, 새누리당의 계층 기반 확대, 야권은 약화

 

이렇듯 젊은층에서는 사회경제적 지위가 낮은 가난한 층에서 오히려 진보 개혁적 정치적 선택을 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노인층과 달리 젊은 빈곤층은 냉전 반공 이데올로기로부터 자유롭고, 신자유주의와 양극화 흐름 속에서 삶의 기회가 박탈당하고 있다는 절박한 인식 속에 변화의 요구가 높기 때문으로 보인다. ‘가난한 민주주의’를 통해 필자가 보고자 했던 것은 바로 이 지점이다. 가난한 이들이 보수적 선택을 하고 있다는 안타까운 현실을 드러내는 것을 넘어 20~40세대의 젊은층은 변화하고 있다는 역동적 측면, 변화의 측면을 드러내 보이고 싶었다. 그동안 민주 진보 진영의 정치적 기반은 중산층적 성격이 강한 ‘강남좌파’로서 자신의 경제적 지위와 정치적 의식이 분리되어 있었다. 하지만 근래들어 경제적 약자들의 급진화, 즉 ‘강북좌파’로 진보의 중심이 이동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이를 통해 한국 정치의 동태적 면모, 그리고 정치가 정상화될 수 있다는  희망을 보고자 했다. 상층과 중간층 중심의 정치적 대표체제에서 벗어나 가난한 이들도 정치의 공간으로 들어와 시민권을 확보하게 될 가능성이 높아질 때, 그리고 정당들도 이들의 욕망에 주목하고 이들을 위한 정책을 경쟁적으로 내놓기 시작할 때 정치는 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4.11총선은 이같은 변화, 즉 가난한 이들과 민주 진보 정당 간 접속이 강력해질 수 있는 중요한 계기였다. 우리사회에서 나타나고 있는 세대갈등은 그 기저에 계층갈등이 있다. 20-40세대의 진보성은 이들의 사회경제적 지위 하락, 경제적 불안감으로 인해 변화에 대한 갈망이 크기 때문이다. 따라서 20-40세대의 투표참여는 그 자체로 ‘가난한 민주주의’에서 탈피하고자 하는 변화 욕구를 의미했으나 투표율은 기대에 못미쳤다. 또한 총선 전 조사와 이후 조사를 비교한 여러 자료에 따르면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은 19대 총선을 거치면서 20-40세대 내에서도 오히려 가난한 이들과의 접속이 약화되었다. 반면, 새누리당은 경제적 상층이라는 계층적 기반이 강화되었을 뿐만 아니라, 중간층까지 그 기반을 확대해가는 조짐이 나타났다. 이는 민주 진보 정당이 가난한 이들에게 절실한 삶의 문제, 즉 사회경제적 이해를 대변하고 이들의 이해를 이슈화함으로서 정치의 영역안으로 끌여들이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그 결과 가난한 이들과 민주·진보적 정당간의 연대는 여전히 ‘불안전한 경향성’에 머물고 있다.

 

한국 정치 안에는 모순, 충돌하는 다양한 현실들이 공존하고 있다. 가난한 노인층의 보수적 선택이 정태적 모습이라면 가난한 젊은층은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20-40세대, 특히 가난한 젊은층의 낮은 투표율은 암울한 대목이다. 4.11 총선에서도 드러났듯이 민주 진보 정당은 이들을 투표장으로 끌어들이지 못하면서 정당의 사회적 기반이 더 약화되었다. 변화를 욕망하는 ‘가난한 젊은 유권자’들의 요구는 꺾였다. 가난한 이들의 요구가 정당이라는 틀을 통해 쭉쭉 뻗어나갈 때 비로소 정치는 바뀔 것이다. 2012년 대선이 가난한 이들에게 민주주의를 되돌려 줄 수 있을까? 문제는 다시 정당이다.

 

* 이 칼럼은 2012년 7월 5일 프레시안 시민정치시평에 기고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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