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감시센터 칼럼(aw) 2005-09-05   660

<안국동窓> 대연정론은 배신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기가 막힌 발언으로 대다수 국민들이 큰 혼란에 빠지게 되었다. 그러나 이런 혼란에도 불구하고 노무현 대통령의 기가 막힌 발언은 계속되었고, 급기야 많은 국민들이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 환멸과 분노를 느끼기에 이르렀다.

대통령이라고 해서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그러나 대통령은 말을 아끼고 가릴 줄 알아야 한다. 대통령은 국민들을 정치적으로 대표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말은 사회 전체에 큰 파급효과를 가져온다. 대통령의 말은 단순히 말이 아니라 그 자체로 하나의 정치적 실천이다. 대통령은 결코 들판에서 참새 떼를 쫓기 위해 돌팔매질을 하듯이 말을 해서는 안 된다. 노무현 대통령의 기가 막힌 발언을 보면서 급기야 많은 국민들이 환멸과 분노를 느끼게 된 까닭은 참새 떼를 쫓기 위해 돌팔매질을 하듯이 정치적 실천을 하고 있다고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대통령이라는 자리가 참새 떼나 쫓는 자리가 아니라는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왜 노무현 대통령은 그런 의혹을 받게 되었는가? 노무현 대통령은 왜 그런 식으로 말을 하고 정치적 실천을 하는가?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 중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이른바 ‘대연정론’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대연정론은 국민에 대한 배신이다. 대연정이란 무엇인가? 모든 정당이 힘을 모으자는 것이다. 딴은 그럴 듯하다. 정당의 차이를 넘어서 국가와 국민을 위하자는 목표를 내걸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물과 기름을 섞을 수는 없는 법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말대로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 사이에 차이가 없다면, 2004년 3월의 탄핵정국과 4월의 총선정국은 역사상 최악의 사기극이 되고 말 것이다.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은 그 연출자로서 역사의 심판을 받아야 할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자신의 낮은 지지율을 한탄하며 대연정을 정당화하려고 한다. 뒤집어 보자면, 여기에는 한나라당 때문에 제대로 정치를 할 수 없다는 뜻이 담겨 있기도 하다. 사실 한나라당의 ‘떼쓰기정치’야말로 개혁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바로 이런 상황을 돌파하라고 국민들이 열린우리당을 최대정당으로 만들어주었던 것이 아닌가? 이런 국민의 선택과 열망을 사실상 깡그리 무시하고 정략적 판단에 쫓겨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허송하며 지지자들이 떠나도록 한 것이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의 가장 큰 잘못이 아니던가? 문제는 한나라당이라는 상수가 아니라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이라는 변수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지역주의를 타파하지 않고는 한국 정치의 발전이 이루어질 수 없다고 주장한다. 전적으로 올바른 주장이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이 대연정을 해야 한다는 것은 완전히 잘못된 주장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권력을 통채로 내놓겠다거나 사임하겠다는 식의 극언까지도 했다. 권력은 통돼지 바베큐가 아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대통령이라는 자리가 국민이 선출한 국가기구라는 사실을 깜빡 잊은 모양이다. 대통령 자리가 인간 노무현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 노무현이 대통령이라는 직분을 수행하도록 선출된 것이다. 국민은 한나라당에게 권력을 넘기라고 노무현 대통령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한나라당을 개혁하라고 노무현 대통령을 선택했다.

자신의 무능을 인정하는 것은 그 자체로 소중한 가치를 가지는 것일 수도 있다. 비판과 개선의 길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국민은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이 무능하다고 생각하는데,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은 도리어 국민이 무능하다고 여기는 것 같다. 이런 상황에서 지지율이 떨어지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할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은 개혁에 대한 기대를 저버리고 한나라당과 ‘보수화 경쟁’을 벌이고 사상 최악의 토건국가정책을 펼치고 있다. 한나라당이 훨씬 잘하는 것으로 한나라당과 경쟁을 벌였던 것이다. ‘국가균형발전’이나 참여민주주의를 내건다고 해서 이런 사실이 드러나지 않겠는가? 똥을 비단으로 가린들 냄새가 사라지겠는가?

노무현 대통령은 지역주의의 타파를 위해 선거구제를 고쳐야 하고, 이를 위해 대연정을 추진할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 이 주장의 진정성이나 노무현 대통령의 비장한 각오 자체를 무시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은 ‘노무현 대통령 놀리기’가 ‘국민 스포츠’가 된 까닭에 대해 깊이 반성해야 한다. 한나라당이 호남에서 의석을 차지하고 열린우리당이 영남에서 의석을 차지한다고 지역주의가 타파되는 것인가? 막대한 지역주의의 수혜를 누리고 있는 한나라당이 대연정 제안을 받아들이겠는가? 현행 선거구제는 큰 문제를 안고 있다. 이 점은 이미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선거구제의 문제는 국민을 모독하고 배신하는 대연정론이 아니라 선거구제의 문제로 다루어져야 한다. 그리고 그 길은 정당 지지율을 제대로 반영할 수 있고, 직능대표를 크게 늘릴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노무현 대통령의 대연정론은 이를테면 탄핵을 막았더니 사임하겠다는 꼴로 해석될 수 있다. 대연정론은 장난이 아니면 배신이다. 손가락을 보지 말고 달을 보라는 말은 이럴 때에 인용해야 할 말이 아니다. 한나라당과 일심동체가 되어 날아가고자 하는 달은 대체 어떤 달인가? 그렇게 해서 과연 지역주의를 타파하고, 참여민주주의를 활성화하고, 국가균형발전을 이루겠는가? 천만의 말씀이다. 대연정론은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이 일관되게 추구해 온 ‘보수화 경쟁’의 결정판일 뿐이다. 권력을 통채로 넘겨주겠다고 꼬드겨서 보수세력의 지지를 받고 정권재창출을 이루겠다는 정략적 발상의 산물일 뿐이다. 그러나 보수세력에게 노무현 대통령은 어디까지나 ‘적’일 뿐이다.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은 정녕 이 사실을 모르고 있는가?

홍성태 (상지대 교수, 정책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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