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감시센터 칼럼(aw) 2005-12-29   830

<안국동窓> 나는 2007년 대선이 두렵다

2002년 3월 나는 제주MBC 방송국의 한 회의실에 앉아 있었다.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이 처음으로 치러지는 곳이 바로 제주였다. 경선에 들어가기에 앞서 시민단체의 요청으로 민주당의 대선후보들이 경선자금공개 서약식을 진행하기로 했던 것이다. 회의실에는 국내 주요언론사들의 수십대 카메라가 진을 치고 있는 가운데 박원순 변호사 등 시민사회단체 대표자들이 민주당 경선후보들이 들어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행사 10분전에 사단이 났다. 후보들이 이 행사를 거부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이미 서약서에 서명을 했으면 되었지 생방송을 통해 이를 내보낼 것까지 있느냐는 논리였다. 약속위반이었다. 그 이후 두 달여간 진행된 경선과정에서 후보들의 경선자금 내역이 제대로 공개되지 않은 것은 물론이었다.

그런데 이 약속위반을 주도한 것이 노무현 후보였다고 한다. 그 때는 그 이유를 잘 몰랐다. 상대적으로 자금도 딸리는 노후보가 왜 이런 약속위반을 선동했는지 몰랐던 것이다. 9개월 후 노무현후보는 우여곡절 끝에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역대 대선중 가장 깨끗하게 치러졌다는 평가가 이어졌지만 나는 그것에 동의하기 어려웠다. 노무현 후보가 자금문제에 자신이 있었다면 결코 자신의 경선자금 공개를 꺼려하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대선이 끝나고 채 1년이 되기 전에 불법대선자금 사건이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노무현 대통령의 측근들이 줄줄이 검찰 앞에 불려갔다. 이 와중에 노대통령은 자신의 불법자금이 한나라당의 10분 1을 넘으면 대통령직을 내놓겠다는 이야기를 해서 국민들을 경악하게 만들었다. 많던 적던 노대통령 자신도 검은 뒷돈을 받아 선거를 치뤘음을 시인한 것이다. 검찰수사결과는 대통령의 가이드라인에 따라 이회창 10 노무현 1로 결말이 났다. 가장 많은 돈을 제공한 이건희 회장은 소환조사 한번 없이 사건은 끝났다.

2005년 여름 8년 전 불법대선자금 사건의 일단이 X파일이라는 이름으로 국민들 눈 앞에 드러났다. 삼성이 대선후보들에게 쥐어주었던 불법자금의 규모나 전달방식, 그리고 그것을 통해 얻고자 했었던 바가 무엇이었는지 처음으로 생생하게 드러난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은 이 사건의 본질은 국가기관에 의한 불법도청이라고 못박고 당시 대선후보들에 대한 수사는 부적절하다고 했다. 누구에게나 이 말은 이건희 회장과 홍석현 전대사에 대한 사법처리를 반대한다는 말로 이해되었다. 검찰은 5개월여의 수사를 통해 이건희회장, 홍석현 전대사, 이학수 회장 등 삼성일가는 혐의가 없다고 했다. 대통령의 가이드라인이 고스란히 적용되었음은 물론이다. 이건희 회장은 또 한번 위기를 벗어난 것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국내 최대재벌의 총수가 반년가까이 해외도피중이고, 대통령은 그런 재벌총수의 사법처리가 행여나 이뤄질까 전전긍긍하고 검찰은 대통령과 재벌총수 눈치를 보며 자존심 다 내버리고 사법처리를 피해갈 논리를 짜내느라 골머리를 싸매는 모습은 아무래도 정상이 아니다.

대통령 선거에 수천억이 들어간다는 사실은 이미 공지의 사실이다. 본선 이전에 경선까지 치러야 한다. 수천억의 돈을 어디서 마련하겠는가? 자산을 수천억씩 쌓아놓은 정치인이 아니고서는 합법적으로 자금을 조달할 방도는 없다. 재벌에 손을 벌리는 것이 가장 손쉬운 방법이다. 과거에는 권력을 이용해 재벌총수들을 불러다 놓고 불법자금을 강요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러기 어렵다. 대선자금을 매개로 거래가 이뤄짐은 능히 짐작할 만하다. 정치권력이 아니라 돈을 쥐고 있는 자가 이 거래의 이니셔티브를 쥐고 있음도 자명하다. 97년에는 기아자동차 인수가 딜의 대상이었다. 2002년에는 무엇이 오고갔을까? 삼성그룹은 노정권 하에서 승승장구하고 있다. 장관과 대사, 정치인들도 여럿 배출했다. 그리고 검찰은 정치권력과 재벌권력과의 공생관계를 선택했다.

대통령과 검찰이 나서 지금 X파일 사건을 적당히 얼버무리고 넘어갈 수도 있을 것이다. 너무 오래전의 일이니 잊어버리자고, 이제 당할만큼 당했으니 다시는 불법자금을 매개로 한 검은 거래는 없을 것이라 믿으라 최면을 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수천억을 풀베팅하는 게임은 다시 시작될 것이고 거기에는 막강한 권력과 권력을 둘러싼 떡고물이 엄연히 존재하는데 그들의 반성과 선한 의지만을 믿으라 하는 것은 아무래도 눈가리고 아웅하기다. 재벌일가의 안위만을 걱정하는 정치권력, 불법행위를 눈감는 검찰이 바뀌지 않는 한 2007년 대선이 나는 두렵다. 악순환은 반복될 것이기 때문이다.

김민영 (참여연대 시민감시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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