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감시센터 칼럼(aw) 2004-01-07   1029

<안국동 窓> 후안무치(厚顔無恥)의 진수를 보여주는 국회

2003년을 대표하는 키워드가 ‘우왕좌왕(右往左往)’이라는 발표가 있었다. 2003년 하반기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후안무치(厚顔無恥)’가 아닐까 싶다. ‘후안무치’란 얼굴이 두터워서 부끄러움을 모른다는 뜻이다. 서글프지만 이 말은 우리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와 국회의원들에게 딱 들어맞는 말인 것 같다.

대선자금수사와 각종 비리로 얼룩진 국회가 국민들을 절망과 분노로 몰아넣은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동료간의 ‘끈끈한 의리’ 였다. 지난해 말, 비리에 연루된 7인 국회의원들에 대한 체포동의안을 압도적인 표차로 부결시킨 입법기관의 단합된 모습에 국민들은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불체포특권의 남용은 오히려 국회의 기능을 약화시켜

물론, 불체포특권은 헌법에 보장된 국회와 국회의원의 특권이다. 우리 헌법은 제44조에서 ‘국회의원은 현행범인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회기중 국회의 동의없이 체포 또는 구금되지 아니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불체포특권은 역사적으로 보면 과거 영국에서 절대군주가 의회활동을 탄압하기 위해 의원에 대한 불법체포와 구금을 남용할 때 이에 대한 투쟁과정에서 탄생하였다. 그 후 미국연방헌법에 의해 최초로 성문화되었고, 절대군주의 횡포가 사라진 오늘날에도 의회의 기능을 강화하고, 의원의 신체적 자유를 보호하고 대의활동을 활성화하기 위해 많은 나라들이 이 제도를 헌법에 수용하고 있다.

이처럼 불체포특권은 어디까지나 의회가 제대로 기능하기 위해서 필요하다는 이유로 정당화되는 제도인 이상 그것이 남용 또는 악용되는 경우까지 정당화된다고 볼 수 없다. 불체포특권의 남용 또는 악용은 오히려 의회의 명예를 실추시켜 의회의 기능을 약화시키는 원인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불체포특권이 불법저지른 제 식구 감싸라는 권리인가

2003년 연말 국회가 보여준 ‘제식구 감싸기’에 대한 여론은 따갑기만 하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90% 가까운 수치가 국회의 체포동의안 부결에 대해 부정적이다. 이 기회에 헌법을 개정하여 불체포특권을 아예 폐지하자는 의견도 많다.

한편, 대한변호사협회에서는 국회의원의 면책특권을 제한하는 국회법 개정청원안을 준비중이라고 한다. 당장 헌법을 바꿀 수 없다면, 우선 국회법만이라도 개정하여 불체포 사유를 제한하고 표결방식을 기명투표로 하는 등 실체적이고 절차적인 제한을 두자는 취지이다.

헌법과 국회법을 개정하는 것도 입법권을 가지고 있는 국회의 권한이니, 국민들의 여론과 변호사협회의 청원조차 부질없는 일로 여겨지기도 한다. 그래서 터져나오는 또 다른 목소리는 현재의 국회에 무언가를 기대하지 말고 다가오는 총선에서 국민의 힘으로 심판하자는 것이다.

계속되는 국회의 딴짓

국회와 정치권 전체를 거부해버리자는 분노의 목소리가 비등한 가운데, 국회의 엉뚱한 짓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정치관계법과 선거법 등 정치개혁입법이 당리당략에 의해 표류하고 역대 최악으로 평가받는 부실한 입법활동은 별론으로 하고, 이미 2002년부터 5개년 계획으로 시행중이던 ‘친일인명사전’ 편찬예산 5억원을 삭감시킨 국회 예결위의 결정은 과연 그들이 어느 나라를 대표하는지 의심스럽게 한다.

총선을 앞두고 선심성 지역구 예산을 무분별하게 늘려 8000억원의 적자 예산을 편성한 국회가 뒤틀린 민족사를 바로잡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예산마저 삭감하는 걸 보면 그들의 역사인식이 무엇인지 납득할 수 없다. 국회 법사위에서 표류중인 일제하 친일 · 반민족 행위와 강제동원 등 4대 과거사 진상규명을 위한 통합특별법도 마찬가지 맥락이다.

절망적 국회, 그래도 정치를 내버려둘 수는 없다

후안무치하고 역사인식도 없는 국회와 정치권이지만 그렇다고 국민들이 무관심으로 일관한다면 더더욱 큰일이다. 정치에 대한 무관심과 냉소가 확산되면 사회는 활력을 잃고 노쇠화되어간다. 정치가 경제성장과 사회변화의 발목을 붙잡는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정치개혁을 이루어야 하는 것이지 내버려둘 일은 아니다.

정치권이 내부로부터 바뀔 수 없다면 외부로부터의 강력한 개혁의 힘이 작동해야 한다. 국민들이 참여하고 변화시켜야 한다. 이제 정치개혁은 정치권이 아니라, 국민들의 몫이다.

장유식 참여연대 협동처장,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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