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감시센터 칼럼(aw) 2005-12-01   735

<안국동窓> 되는 것 하나 없는 개혁 실종 국회

110건 처리로 ‘일일 법안처리 최대기록’ 갱신, 윤리특위는 ‘개점휴업’…갖가지 ‘진기록’ 남겨

올해도 어김없이 국회 앞에는 갖가지 구호가 내 걸린 농성 천막이 들어섰다. 해마다 찬바람 불 때쯤 하나둘 세워지는 국회 앞 농성 천막은 국민의 절박한 요구를 외면한 국회의 직무유기를 질타하는 상징이 되어버렸다. 벌써 한해가 지나가고 국회 정기회도 막바지에 다다르고 있다. 올 한해 국회는 또 어떠했나? 아무래도 국회는 올해도 좋은 점수를 받기 어려울 것 같다.

허울 좋은 ‘상생정치’에 집나간 ‘개혁’

17대 국회 1년 반, 그리 길지 않은 시간 동안 국회는 극적인 반전을 보여주었다. 국가보안법, 행정중심도시입법을 둘러싼 국회 안에서의 극한 대결이 반면교사가 되었을까?

국회는 4월 이후 무척 평온해졌다. 국민들에게 지탄받던 극한대결은 사라지고 ‘상생정치’가 최고의 덕목이 되었다. ‘여야합의’가 없으면 모든 사안을 한정 없이 미뤄버리는 손쉬운 평화가 찾아온 것이다.

이 과정에서 개혁은 실종되었다. 국가보안법, 사립학교법 처리는 손도 대지 못한 채 또다시 해를 넘길 듯 하다. 비정규직법, 8·31대책 후속입법, 임대주택법, 금산법 등 민생개혁입법은 표류하고 있다. 여야 모두 사회 양극화의 심각성을 지적하며 민생을 살리는 정책을 펼치겠다고 외쳤지만 어느 것 하나 서민들의 생활에 도움이 될만한 정책을 입법화했다는 소식을 듣지 못했다. 국민의 8할 이상이 지지하는 8·31 부동산대책의 후속입법조차 제대로 검토하지 못하고 차일피일 시간만 축내고 있다. 반면, 농민들의 피울음과 평화세력의 절규를 외면하고 쌀 비준안은 통과됐고 이라크 파병연장안은 바로 그 ‘상생정치’속에서 무사히 국회를 통과할 전망이다. 2005년 국회에서 그렇게 개혁은 실종되고 말았다. 희미해진 개혁에 관한 유일한 기억은 십수 년을 끌어온 호주제 폐지 정도?

17대 국회 시작과 동시에 만들어졌던 국회개혁특위와 정치개혁특위가 1년이 넘는 허송세월 끝에 알맹이 없는 결말을 짓고 만 것은 17대 국회의 본모습을 잘 보여주는 것이라 여겨진다. 자율적인 개혁을 이루겠다며 국회개혁특위를 구성하고 1년이라는 시간을 보냈지만 당리당략과 자신의 이해득실을 앞세워 구미에 맞는 법안만 일부 손보고 넘어갔다. 의원들의 특권 폐지니, 일하는 국회니, 투명성 강화니 하는 요란한 구호는 1년 만에 홀연히 자취를 감춰버리고 말았다. 아무리 초선의원들이 많다고 해도 국회에 발 디딘지 1년 만에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타성에 길들어져버리다니 너무 빠른 것 아닌가?

정치개혁특위도 사정이 다르지 않다. 정치개혁특위는 정치개혁협의회가 내놓은 정치개혁안 중 자신들의 기득권 유지에 해로운 안은 이름 좋은 ‘여야 합의정신’을 앞세워 변질시켰다. 정치자금 개혁에 있어서는 엄정한 조사활동은 피하되 자신들의 편의는 최대한 늘렸다. 선거법 개혁에 있어서도 선진적인 선거문화 도입 방안에 대한 논의 자체를 유보하면서 당리당략과 자신의 득표 전략이 일치하는 사안은 각계의 반대를 무릅쓰고 처리를 강행했다.

이처럼 빠르게 ‘개혁국회’가 ‘개혁실종국회’로 변해버린 이유는 무엇일까? 여당인 열린우리당의 무능력 때문이라는 답을 얻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개혁하라고 뽑아준 국민들에게 무엇 하나 속 시원히 보여주는 것이 없으니 무능하다는 비난 이외에 달리 어울리는 말이 있을까? 열린우리당은 이제 개혁이라는 낱말을 들먹이는 것조차 부담스러워하는 것 같다. 보궐선거마다 이기고 있는 한나라당은 그 어렵다는 지지율 40%를 넘어서며 한결 여유 있는 기세로 개혁과제 전반에 제동을 걸고 있다. 한나라당은 ‘충분한 심의’와 ‘상생정치’를 내세워 웬만한 개혁입법은 모두 내년 지방선거 뒤로 미루자는 전략으로 일관하고 있다.

국민은 분명 2004년 총선에서 ‘개혁국회’를 만들어 주었으나 상생의 기치 아래 1년 반만에 ‘되는 것 하나 없는 국회’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한 해를 돌아보니 갖가지 ‘진기록’ 남아

2005년 국회는 되는 것 하나 없이도 여러 가지 진기록을 남겼다. 우선 의원들이 직접 입법안을 제출한 의원입법이 크게 늘었다. 16대 국회에서 의원입법발의 건수가 4년 통틀어 1,615건이었던 것에 비해 1년 반만에 2,600건을 넘겼으니 대단한 증가세라 하겠다. 이쯤 되면 국회가 싸움하는 곳이 아니라 법을 만드는 곳이었지 하는 생각이 새삼 든다. 법은 정부가 만들고 그것을 통과시키는 거수기 노릇이나 하던 국회가 이제 법을 생산해내는 곳으로 변모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그렇게 쏟아낸 법안들이 얼마나 충실한가 하는 문제는 별개다.

국회의 또 다른 기록은 지난 3월 2일 수립되었다. 일일 법안처리 최대기록을 갱신했던 것이다. 이날 오후 4시 21분에 시작된 본회의는 6시간 50분만에 110건의 법안을 일사천리로 처리했다. 4분에 한 개씩 법안을 찍어낸 셈이다. 확인할 수 없지만 아마도 이 부분의 세계신기록이 아닐까 싶다. 부실 졸속 심의로 양산해 낸 법안이 앞으로 어떤 문제를 일으킬지 참으로 걱정스럽다.

국회 윤리특위를 둘러싼 상황도 기록이라면 기록이다. 1년 반 동안 윤리위에 제출된 의원윤리심사나 징계안이 벌써 40건이고, 아직 처리되지 않은 의안이 28건이나 된다. 이대로 가면 지난 15대 국회에서 수립되었던 55건의 기록을 충분히 넘어설 수 있겠다. 골프장 경비원을 폭행한 의원, 지역유지들과 병 던지고 싸운 의원, 국감기간에 피감기관 직원들과 어울려 폭탄주를 돌리며 우의를 다진 의원들, 술집 주인에게 폭언을 퍼붓다가 망신당한 의원까지 자질이 의심스러운 의원들이 속출하고 있다.

문제는 이런 의원들에 대해서 엄정한 윤리심사나 징계를 해야 할 윤리특위가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6월, 김문수 의원의 징계안 처리 이후 한나라당 소속 의원들이 집단으로 윤리특위 위원직 사퇴의사를 밝혔고, 그 후 윤리특위는 ‘개점휴업’ 상태다. 윤리특위의 정상·실질화를 모든 당이 주장하고 있고 실제로 지난 6월 외부인사들로 윤리특위의 자문기구를 만들어 엄정한 심사를 할 수 있도록 법안까지 통과시켰으나 윤리특위가 정상화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새해엔 지방선거를 치러야 한다. 국회는 또다시 제자리를 잃고 표류할 가능성이 크다. 벌써부터 서울시장, 경기지사에 나가겠다는 의원들이 줄줄이 출사표를 던지고 있다. 선거를 앞두고 각 당은 득표를 위해 또다시 대립각을 세워 정쟁에 올인할 가능성이 크다. 멀리 갈 것 없이 지난 10·26 보궐선거를 앞두고 때아닌 색깔론에 국가정체성 공방이 벌어졌던 것을 떠올려 보라. 그러다 보면 국회에서 민생개혁은 증발해버릴 공산이 크다. 그럴수록 얼마 남지 않은 정기회를 그냥 넘길 수 없다는 조바심이 커진다. 아무쪼록 비정규입법, 부동산대책 등 민생개혁 현안들이 새해로 넘어가지 않고 올해 해결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 이 칼럼은 <아름다운 사람들이 만드는 참여사회> 12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김민영 (참여연대 시민감시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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