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감시센터 칼럼(aw) 2005-09-12   477

<안국동窓>참여정권의 과제와 문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의 거부로 노무현 대통령의 ‘대연정론’은 결국 불발탄이 되고 말았다. 사실 누구나 그렇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아마 노무현 대통령도 그렇게 생각했을 것 같다. 박근혜 대표가 뭐가 아쉬워서 노무현 대통령의 ‘연정’을 받아들이겠는가? 노무현 대통령이 궁극적으로 무엇을 노리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관측이 있으나, 적어도 두가지에 대해서는 대체로 일치하고 있는 것 같다.

첫째, 노무현 대통령이 진정으로 지역주의를 타파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것만은 의심해서는 안 되며 지역주의를 타파하고자 하는 노력에 동참해야 한다는 것이다. 임기단축까지도 약속했으니 그 진정성을 의심해서는 안 될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헌법으로 규정된 국민의 의지를 자기 마음대로 평가했다는 문제와 정권재창출을 위한 정략적 노력의 일환이라는 성격을 무시할 수는 없다. 지역주의에 대한 폭넓은 부정적 공감대를 빌미로 모든 것을 정당화하려는 것은 그 자체로 반민주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지역주의의 타파를 위해 선거구제의 개혁을 계속 시도하리라는 것이다. 현재의 선거구제는 분명히 지역주의를 온존할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다. 그러나 중대선거구제는 그야말로 나눠먹기 선거구제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중요한 것은 부족한 의원 수를 늘리고, 정당 지지도를 올바로 반영하도록 하고, 이 사회의 발전 정도를 제대로 반영하도록 하는 것이다. 소선거구제와 중대선거구제의 차이가 결코 논점일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선거구제에 대한 논의는 대단히 불순한 의도를 감추고 있는 것으로 읽힐 수 있다.

민주화는 독재의 문제를 바로잡는 과정이면서 민주사회를 이룩하는 과정이다. 참여정권은 민주화를 더욱 굳히고 넓히는 역사적 과제를 안고 있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해서 그것은 정치의 민주화를 심화하는 동시에 경제의 민주화를 추구하는 것으로 제시할 수 있다. 참여정권은 이런 민주화를 이뤄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정치의 민주화는 대체로 세 단계로 이루어진다. 첫째 단계는 정권의 민주화이다. 이른바 ‘반독재 민주화’는 바로 이것을 가리킨다. 독재정권을 민주정권으로 바꾸는 것이다. 이 과제는 대체로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더 어려운 것은 둘째 단계와 세째 단계의 과제이다. 둘째 단계는 정당의 민주화이다. 민주적 정당이 없는 곳에 대의민주주의는 없다. 이 과제는 ‘3김의 퇴장’과 함께 자연스럽게 참여정권의 핵심과제가 되었다. 그러나 열린우리당이 과연 제대로 된 민주적 정당이라고 할 수 있는가? 세째 단계는 정부의 민주화로서 이것은 사실 정당의 민주화와 함께 추진되어야 하는 것이다. 권력을 실행하는 국가기구인 정부는 정권의 의지를 얼마든지 왜곡할 수 있다. 낡은 정부를 그대로 두고 정치의 민주화를 이루었다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참여정권은 둘째 단계와 세째 단계로 나아가야 했으나, 이상하게도 첫째 단계에 머문 채 야당을 탓하고 국민을 탓하고 있다.

정치의 민주화가 수단이라면, 경제의 민주화는 목적이다. 정치는 삶을 위한 수단이요, 경제는 삶의 기본이기 때문이다. 경제의 민주화로 나아가지 못하는 정치의 민주화는 목적을 상실한 민주화이다. 이런 민주화는 우리의 삶에서 실질적인 가치를 가지지 못한다. 구체적으로 경제의 민주화는 무엇을 뜻하는가? 그것은 크게 두가지 과제로 줄일 수 있다. 첫째, 재벌의 개혁이다. ‘삼성공화국’ 논란에서 잘 알 수 있듯이, 또한 두산재벌의 ‘형제의 난’에서 잘 알 수 있듯이, 재벌은 각종 불법과 편법의 수단으로 엄청난 부를 쌓고는 다시 이 부를 이용해서 정치인들을 매수해서 더 많은 부를 쌓고자 한다. 이런 식으로 재벌은 국민의 부를 사실상 강탈할 뿐만 아니라 IMF사태에서 잘 알 수 있었듯이 나라의 경제 자체를 위기로 몰아넣는다. 둘째, 부동산투기의 개혁이다. 부동산투기는 이 나라의 발목에 채운 차꼬이며 목에 매달아 놓은 맷돌이다. 부동산투기를 그대로 두고 경제의 민주화를 이룰 수 있는 길은 없다. 1%도 안 되는 투기꾼이 50%가 넘는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는 현실은 그 자체로 극단적 불평등과 불안정을 시사한다. 투기꾼들은 재벌과 마찬가지로 엄청난 부를 소유하고 있으며, 그 부를 이용해서 많은 경제인들과 정치인들을 매수하고 있는 상태이다. 참여정권은 재벌은 물론이고 투기꾼에 대해서도 맥을 못추고 있다.

이제 참여정권이 자신에게 부여된 역사적 과제를 제대로 이루리라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는 것 같다. 참여정권은 정권재창출에 몰두해서 정치의 민주화를 심화하고 경제의 민주화를 추구한다는 과제를 사실상 방치했다. 그 결과 참여정권을 창출한 시민들 중에서 참여정권에 환멸과 분노를 느끼는 시민들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하라는 일은 제대로 하지 않고, 하지 말라는 것은 온갖 이유를 들이대며 열심히 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의 민주화에 대해서도, 경제의 민주화에 대해서도, 사실상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참여정권을 보면서 허탈감에 빠지는 시민들이 늘어나는 것은 당연하다.

노무현 대통령은 지역주의 때문에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것 같다. 확실히 전혀 그렇지 않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지역주의가 참여정권이 저지르는 모든 잘못의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또한 선거구제를 개편한다고 해서 지역주의가 해소된다는 보장도 없다. 나아가 지역주의가 해소된다고 해서 민주화가 이루어진다는 보장도 없다. 민주화를 통한 지역주의의 해소가 아니면 안 되는 것이다.

경제의 민주화를 통한 복지사회의 확충이라는 과제를 제대로 이루지 못한다면, 한국의 민주주의는 정체를 넘어서 퇴보할 위험을 안고 있다. 혹심한 자연의 파괴와 사회의 양극화는 이미 경고의 사이렌을 요란하게 울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도 정당이 정당으로서 제대로 구실하지 못하는 것은 참으로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무엇보다 열린우리당이 한나라당과 ‘보수화 경쟁’을 벌이는 한, 이런 상황은 결코 개선될 수 없을 것이다.

참여민주주의는 대의민주주의를 대신할 수 없다. 대의민주주의가 확립되지 못한다면, 참여민주주의도 활성화될 수 없다. 대의민주주의가 비틀거리는 곳에서 참여민주주의는 무엇보다 정권에 대한 직접적 저항으로 나타나게 된다. 참여민주주의의 활성화는 대의민주주의의 확립을 전제로 한다. 지역주의의 문제를 결코 폄하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그 해결책은 오직 민주화의 진척뿐이다.

홍성태 (상지대 교수, 정책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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