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감시센터 칼럼(aw) 2004-01-20   892

<안국동窓> 낙선운동, 헌법적으로도 정당하다

우리 헌법 제1조 2항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규정함으로써 국가의 최고법인 헌법의 서두에서부터 ‘국민주권의 원리’를 서둘러 선언해놓고 있다. 주권, 즉, 국가의사를 전반적 최종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힘은 대통령도 아니요 국회의원도 아닌 국민에게 있다는, 위정자들에 대한 엄숙한 경고다. 그런데, 인구수가 많아지고 국가가 지리적 확장을 맞게 되어 모든 국가의사를 국민들이 한날한시에 모여 일일이 결정하기 어렵게 되자, 근대이래로 대의제의 원리가 대두되고 세계 각국의 민주국가에서 실시되게 된다. 즉, 주권자인 국민이 여러 기술상의 제약 때문에 직접 국가의사나 국가정책을 결정하지 않고 대표를 뽑아 그 대표로 하여금 “대”신 국가의사나 국가정책을 “의”논해서 결정하라는 것이 대의제원리인 것이다.

이 대의제원리는 선거라는 대표선출의 절차가 제대로 작동하여 제대로 된 국민대표를 뽑게 되고, 그 대표들이 항상 주권자인 국민의 의중을 살피며, 우리 헌법 제46조 2항이 규정하듯이 국민대표들이 양심에 따라 국가이익을 우선하여 직무를 수행할 때 가장 크게 그 진가를 발휘할 수 있다. 그렇지 않고 왜곡되고 불공정해진 선거과정을 통해 함량미달의 대표들이 선출되고 그들이 국가이익, 국민전체의 이익보다는 소속정당의 꼼수 섞인 당리당략을 우선시하면서 ‘재선’이라는 자신의 정치적 이익만을 추구하게 될 때 대의제는 위기를 맞게 되는 것이다. 이 대의제의 위기현상은 정당정치의 왜곡된 발달이나 불공정한 선거절차를 갖게 된 세계의 여러 나라들에서 이미 나타났고 지금도 꽤 많은 나라들에서 진행 중이다. 대의제 위기의 보완책으로 국민투표, 국민발안, 국민소환 등 여러 직접민주제의 장치들이 세계 각국의 헌법에 가미되고 있고 국민의 정치참여 확대를 모토로 하는 참여민주주의가 고개를 드는 것이다.

지금 이 땅에서 대의제의 극한적 위기상황이 연출되고 있다는데 이의를 제기할 국민은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국민에게 모범이 되어야 할 국회의원들이 각종 부정부패에 연루되고 있고 전근대적인 지역주의 정치를 고착화시켜 자신의 재선에 이용하려 하고 있으며 국민을 외면하는 반민생(反民生)정치로 일관하고 있다면 지나친 말인가? “차떼기”로 상징되는 최근의 불법대선자금 수수의혹과 각종 대통령 측근비리는 ‘정치개혁’이라는 슬로건을 무색케 하고 있고, 결정적으로는 비리 연루 동료 국회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을 예외 없이 부결시키며 불체포특권을 악용하는 우리의 대표들을 지켜보면서, 우리 국민은 마지막 남은 일말의 희망까지 접어야 했다.

선거절차의 왜곡성도 도를 넘은지 오래다. 국회의원들 자신이 만든 선거법인 ‘공직선거 및 선거부정방지법’은 그들만의 기득권을 꼭 지켜나가겠다는 저의를 낯뜨거우리만치 만천하에 드러내놓고 있는 악법이다. 짧은 선거운동기간, 국회의원들에게만 허락된 의정보고회 등을 통해 그들은 정치신인들이 그 면면을 국민들에게 알리고 국회에 진출할 수 있는 길을 철저하게 봉쇄해놓고 있다. 공정해야할 ‘선거’라는 게임의 룰이 전혀 공정성을 갖추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선거운동은 원래 ‘자유’가 원칙이어야 하며 우리 헌법 제116조가 요구하는 선거에서의 “균등한 기회” 보장을 위해 필요부득이한 제한만 가해져야 한다. 그러나, 현행법은 후보자의 등록만료시부터 선거일 전일(前日)까지라는 그 짧은 선거기간 중에도 현수막게시, 신문광고, 방송광고, 유인물 배포, 집회, 서명 날인 운동 등에서 각종 제한을 가하면서, 자유로워야 할 선거운동을 철저하게 옥죄고 있다.

시민단체 낙선운동 금지의 근거규정이 되었던 과거 ‘공직선거 및 선거부정방지법’ 제87조의 ‘단체의 선거운동 금지조항’ 등도 불공정한 선거룰의 한 예였다. 우리나라를 제외하면, 세계 어디에도 낙선운동 등의 유권자운동을 법률로 제한하는 나라는 없다. 더욱이 현행법 제87조 등을 통한 유권자운동의 과도한 규제도 뜨거운 여론에 밀린 법개정을 통해 이미 완화되었다. 일부 정당은 대변인 성명 등을 통해 “법원 판결로 실정법 위반으로 판명이 난 낙선운동”이라느니 “낙선운동은 초법적 발상”이라는 등 검증 안 된 말들을 쏟아내면서 낙선운동의 의미를 의도적으로 깎아내리려 하고 있다. 그러나, 법원은 판결을 통해 이미 낙선운동 자체는 원칙적으로 허용된다고 보았고, 다만 ‘방법’의 측면에서 선거기간 전에 이루어진 낙선운동은 사전선거운동금지조항으로 인해 위법이라든지, 거리 집회, 서명운동, 불법유인물 배포, 특정 후보자 비방 가두행진 등도 관련 선거법 규정 위반으로 위법이라고 하고 있을 뿐이다. 낙선운동 자체에 대해 유죄판결을 내린 것은 결코 아니다.

헌법재판소도 판결을 통해, 시민단체는 선거운동기간 중 공직선거 및 선거부정방지법 제106에 의해 도로, 시장, 점포, 다방, 대합실 등 다수인이 왕래하는 공개된 장소에서 선거운동을 할 수 있고, 같은 법 제82조의3 제1항에 의해 컴퓨터 통신의 게시판 자료실 등 정보저장장치에 선거운동을 위한 정보를 게시하여 선거구민이 열람하게 하거나 대화방 토론실에 참여하여 선거운동을 할 수 있다고 선언함으로써, 다른 선거법 규정을 위반하지 않는 시민단체의 낙선운동은 합법임을 천명한 바 있다.

기존의 국회의원들이 그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온통 불공정하게 만들어 놓은 선거게임의 룰이지만, 백번 양보하여 이 룰을 지키면서 이 룰(법률)의 테두리 안에서 낙선운동을 펼쳐나가겠다는 것이 낙선운동을 천명한 시민단체의 공식적인 입장이다. “악법도 법”이라며 죽음으로 준법의 중요성을 보여준 소크라테스의 심정으로, 선거운동의 자유를 지나치게 제한해 위헌의 소지가 있는 선거법이긴 하지만 그 법도 지켜가면서 낙선운동을 펼쳐나가겠다는 것인데 무엇이 문제란 말인가. 낙선운동에 본능적 거부감을 보이는 기존 정치인들은 시민단체의 낙선운동이 일부 정치세력과 은밀히 연결되어 있어 원래부터 심한 당파적 색채를 띠고 있다고 이 운동을 폄하하면서 불공정한 낙천대상자 선정기준이 그 증거라고 항변한다. 시민단체의 낙선대상자 선정기준이 ‘공정’한 것인가는 이를 지켜보는 국민들이 평가하고 심판할 사항이지 당장 낙선대상자가 될 수도 있는 국회의원 자신이 미리 왈가불가할 성격의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낙선운동은 헌법적으로 바람직한 것이다. 국민 각자에게 국회의원 후보들에 대한 면밀하고 객관적인 정보를 제공하여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시키고 유권자의 바람직한 대표선택을 도와줄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국민들의 정치적 무관심을 관심으로 돌려 15대 총선에서 63.9%로, 16대 총선에서 56.4%로 자꾸만 추락하고 있는 투표율을 끌어올릴 수 있다면 오히려 정치인들에 의해 폄하되는 대신 권장되어야 할 사항이 아닌가.

법률의 테두리 내에서 이루어지는 시민단체의 낙선운동은 얼마든지 합법적인 것이며, 특히 최고법인 헌법의 측면에서 보더라도 정당한 것이고 심지어 바람직한 것이라 믿는다. 2004년 초반 대한민국 땅에서 벌어지고 있는 대의제의 돌이키기 힘든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하나의 대안이 낙선운동이 될 수 있기 때문이며, 국민이 이 땅의 주권자임을 보여줌으로써 우리 헌법 맨 앞에 선언된 국민주권의 원리를 실질화시킬 수 있는 것이 이 운동이기 때문이다.

임지봉 (사법감시센터 실행위원, 건국대 교수, 헌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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