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감시센터 칼럼(aw) 2004-02-10   908

<안국동 窓> 낙천운동에 정당한 비판을 기대한다

지난 주 현역 의원들을 중심으로 한 1차 낙선운동 대상자 발표에 이어, 오늘 2차 낙천운동 대상자 명단이 공개됐다. 필요에 따라 추가 발표가 있을 수도 있지만, 이것으로 2004 총선 시민연대의 낙천운동 대상자는 사실 확정된 것이다. 이 명단을 토대로 각 정당에 대한 낙천운동이 전개될 것이며, 그 성과에 따라 낙선운동의 범위가 결정될 것이다.

그런데 한 가지 우려되는 바가 있다. 지난 1차 발표 직후에도 그랬듯이, 낙천운동 대상자 선정의 공정성 여부에 대한 논란이다. 어떤 행위든 다양한 가치관과 사고에 의한 비판과 검증은 필요하다. 그런 절차를 거부할 수 있는 절대 무류의 정치적 행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지난번의 예에 비추어 볼 때, 오늘 이후 예상되는 낙천운동 대상자 선정에 대한 비판은 역시 바른 궤도를 벗어난 무조건적 비난이 많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적절한 비판은 총선연대의 운동이나 각 정당의 공천 작업에 도움이 되겠지만, 그렇지 못한 비난은 국민적 열망에 근거한 낙천ㆍ낙선운동의 가치를 부당하게 훼손할 뿐만 아니라 이 땅의 정치 발전도 더디게 한다.

총선연대의 활동을 애당초 곱지 않게 여기는 시선은 크게 두 가지 문제를 제기한다. 낙천운동 대상자 선정의 객관적 기준이 무엇이냐가 첫 번째다. 그리고 다음에는, 누가 시민운동 단체에 그런 권한을 부여했느냐까지 따지고 든다. 이런 대전제의 물음에 답하기 전에, 조금 구체적인 부분을 먼저 살펴보기로 한다.

부패 정치인을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 무엇보다 추방의 목표가 되고 있는 것이 부정한 돈이다. 대부분 정치인들에게 불법 정치자금과 관련이 된 사실은 존재하겠지만, 현실로는 형식적 기준으로 먼저 선을 그을 수밖에 없다. 선거법 위반으로 처벌받은 전력은 나름대로 객관적 기준이 된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당선무효에 이르는 정도 이상의 형을 선고받은 경우로 할 것인가, 그 형이 확정된 경우에 한정할 것인가. 하급심에서 유죄였으나 상급심에서 무죄가 된 경우는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기소만 된 경우와 구속되면서 영장 심사 단계에서 행위의 반사회성이 확인된 사례의 판단은 어느 정도 가능한가. 100만 원의 벌금형과 벌금 500만 원에 선고유예가 된 형은 형법 교과서에 따라서만 비교할 것인가. 단순한 기준 한두 가지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무능한 정치인도 퇴출 대상이 된 지는 오래다. 그래서 자질이나 도덕성도 따지지 않을 수 없다. 수사나 재판의 대상이 되지 않은 보통의 언행은 사실 여부부터 확인이 쉽지 않다. 신문 기사만 믿었다간 큰코 다칠 수 있다. 본인이 해명하면서 스스로 자인할 경우에는 고맙기조차 할 때도 있다. 전과 기록은 10년 전이고 20년 전이고 똑같이 취급할 것인가. 이런 고민을 숱하게 할 수밖에 없다.

정책에 대한 정치인의 성향이나 소신 판단도 간단하지 않은 문제지만 불가능할 정도는 아니다. 혹자는 이렇게 항변한다. 어떤 행위나 의사표시도 정치인의 소신에 기한 것이다. 진보가 하나의 태도이듯이, 보수도 명백한 소신이다. 이에 관해서는 한 가지만 언급해 두기로 한다. 총선연대의 낙천ㆍ낙선운동은 시민운동의 하나고, 시민운동은 사회운동의 한 형태다. 따라서 현재 우리 사회의 정치적 갈등과 모순의 원인을 타파하고 해결하는 방향을 기준으로 바람직한 정책과 소신을 판단할 수밖에 없다. 총선연대가 선택한 방향에 반하는 행태는 소신이 아닌 것으로 판정할 권한이 총선연대에 있는 것이다. 시민운동의 기능은 정부나 정당의 활동을 거들어 주는 보조적 역할이 아니다.

논란이 됐던 철새 정치인 논쟁을 보자. 지난번 발표된 명단에서 무분별한 당적 변경을 이유로, 말하자면 순전히 철새 정치인이란 이유로 낙천운동 대상자 명단에 오른 사람은 단 두 명뿐이다. 나머지는 다른 사유에 잦은 당적 이동이 추가된 경우에 불과하다. 그런데 일부 언론과 정당은 열거된 사유 중에서 ‘철새’만 골라내어 떠들었다. 물론 그것뿐만 아니다. 당적 변경의 회수가 철새를 규정하는 것은 아니다. 당을 벗어나거나 옮기게 된 정치적 상황과 동기도 판단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소신에 의한 결단인지 권력추수의 눈치보기인지는 또다른 판단의 결과일 것이다.

이런 복잡한 갈래의 기준 속에서 총선연대 실무 활동가들은 여러날 동안 밤잠을 설친다. 그 뿐이 아니다. 최종 명단을 확정하기까지는 적어도 네 단계는 거쳐야 한다. 활동가들이 개인에 대한 정보와 자료를 수집하여 사안을 정리하면서 토론한다. 그 판단 자료를 확정할 단계에서 실무 활동가와 관련 임원이 의견을 교환한다. 심사 대상자와 사안이 확정되면 각 단체의 대표자 회의에서 점검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유권자위원회에서 격렬한 논의 과정을 거쳐 낙천운동 대상자를 확정한다. 이런 과정을 두고 소홀하다거나 경솔하다고 막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 정도면 낙천운동에 대한 정당하지 못한 비판이나 무조건적 비난에 대한 어느 정도의 대답은 될 것이다. 그러면 다시 처음 제시된 의문으로 되돌아가 보자. 총선연대의 낙천운동 대상자 선정 작업에는 꽤 많고 복잡한 객관적 기준이 동원된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작업은 불가능하다. 구체적인 문제에 들어가면 어느 순간 주관적 판단이 불가피하다. 그때는 총선연대 운동의 목적과 취지가 일반적이고 추상적인 기준으로 작동한다. 이런 과정만이 진짜 객관성과 공정성을 담보할 수 있을 뿐이다. 정치적 문제의 결정에 있어 절대적인 객관성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객관적인 기준이라고 한 가지를 정한 다음 그것을 일률적으로 적용해 버리면 그 결과가 얼마나 무의미하게 될 것인가 상상해 보라.

총선연대에 낙천ㆍ낙선운동의 정당한 권한을 부여하는 주체는 국민이요 시민이다. 시민단체는 애당초 그 단체 활동의 시민적 정당성을 확보할 만큼의 시민적 지지를 기반으로 한다. 결코 대부분의 시민이나 과반수 국민의 지지가 활동의 필수조건이 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총선연대 낙천ㆍ낙선운동에 대한 지지도는 대단하다. 4년 전과 비교해도 별로 차이가 없다. 그래도 그 정당성에 의심이 간다면, 현 정부나 여당 또는 야당의 지지도와 총선연대의 지지율을 비교해 보면 될 것이다.

이제 낙천운동 대상자 선정 결과를 두고 정확하지 못한 비난만 일삼는 일은 그만두어야 한다. 총선연대는 낙천운동 대상자 명단의 확정과 함께 스스로 재검토하고 성찰하는 일을 반복한다. 제대로 된 구체적 분석에 의한 비판과 방향제시로 총선연대의 고민을 심화시켜 줄 수 있는 의견을 기다린다. 그리고 무엇보다, 각 정당들은 낙천운동 대상 명단을 신중하게 고려하고 적극적으로 참고하여 공천 심사를 치루어 내기를 기대한다.

차병직(참여연대 집행위원장,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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