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자 주

지난 8월, 검찰은 정당에 소액 후원을 했다는 이유로 1600명이 넘는 교사, 공무원을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습니다. 검찰의 무리한 기소에 대한 비판 여론과 함께 교사, 공무원의 정치적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한 법개정 요구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참여연대는 지난 8월 4일, 교사 공무원의 후원회 가입 허용과 중앙당 후원회 허용 등을 골자로 한 정치자금법 개정 의견을 국회에 제출한 바 있습니다. 또한 참여연대가 참여하고 있는 ‘표현의 자유를 위한 연대’에서는 시민들에게 교사, 공무원의 정치적 기본권 보장 필요성을 알리기 위해 3회에 걸쳐 경향신문을 통해 ‘정치 표현의 자유를 위한 연속기고’를 게시하였습니다.

 

이에 경향신문에 게시되었던 기고를 참여연대 홈페이지에도 동시 게재합니다. 참여연대는 향후 교사, 공무원의 정치 기본권 보장을 위한 운동에 적극적으로 나서도록 하겠습니다.

  

 
[정치 표현의 자유를 위한 연속기고③] 정치적 무지가 교육의 정치화보다 위험하다
“히틀러 치하의 독일에는 특별한 불문율이 널리 퍼져 있었다. 아는 사람은 말하지 않고, 모르는 사람은 질문하지 않으며, 질문한 사람에게 대답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런 식으로 독일인들은 자신들의 무지를 획득하고 방어했다.” 나치 강제수용소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은 프리모 레비는 평범한 독일 시민들이 거대한 학살공정에 대해 침묵하고 심지어 알지 못했다고 증언했던 이유를 이렇게 갈파했다. 전후 파시즘의 광풍이 휩쓸고 간 교육의 자리를 돌아본 독일교육 역시 ‘정치적 무지와 침묵’이야말로 ‘교육의 정치화’보다 더 위험할 수 있음을 발견했다. 그리고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을 해답을 ‘정치적으로 교육하기’와 ‘교육의 자유’에서 찾았다. 정치적 사유와 토론이 교육의 중심에 놓일 때 균형잡힌 교육이 가능하며, 국가의 간섭에 맞서 교육의 자유를 방어하기 위해서는 ‘중립의 의무’가 아니라 교사에게 ‘더 많은 권리’가 보장돼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 한국교육은 정반대의 길을 걸었다. ‘중립성’이란 신화에만 매달린 채 교사에게는 정치적 침묵과 복종이, 학생에게는 정치적 미성숙이 강요됐다. 그 결과 교육은 정치적 중립 지대가 아니라, 정권의 슬로건에 따라 좌지우지되는 종속 지대가 됐다. 정권이 새마을을 외치면 새마을교육이, 안보를 외치면 안보교육이, 녹색성장을 외치면 녹색성장교육이 일제히 전개되는 식이었다. 노동자의 권리를 다룬 사회수업은 반기업·반국가 정서를 유포한다며 검열당하고, 현대사에서 자행된 국가폭력을 다룬 교사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끌려가 치도곤을 당했던 사례도 여럿이다. 이 같은 편향 속에 학생들 역시 자기 삶과 정치와의 연관성을 이해하고 판단할 기회를 거세당해야 했다.
 
그럼에도 정치 교육이 학생들을 세뇌할 위험이 있고 그 때문에 교사의 정치적 권리가 제한되어야 한다는 논리에 붙들린 이들이 많다. 이 논리는 학생을 바라보는 ‘모욕적 시선’과 ‘착각’에 기초해 있다. 정치적 성숙은 나이에 비례하는가, 아니면 사유의 힘에 비례하는가. 교육이 아무리 정치에 종속돼 있을지라도 학교가 말하는 정답에 의문을 품은 학생들, 학교가 말해주지 않은 진실에 눈뜬 학생들이 늘 출현해 왔다는 역사적 사실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학생들이 교사의 정치적 신념을 고스란히 받아들이기만 한다면, 이는 학생의 미성숙 때문이 아니라 교육에서 질문과 사유가 허락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닌가. 정치가 그토록 ‘어린 학생들’에게 위험한 것이라면 교사보다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도 있는 부모와 성직자, 연예인들의 정치적 권리까지도 제한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정녕 학생을 정치적 세뇌로부터 보호하고 싶다면, 교사의 정치적 권리를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의 더 많은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학생이 사유하는 힘, 질문하는 힘, 자기 스스로 도출한 결론을 방어할 수 있는 힘을 가질 때, 교사의 생각이 일방적으로 지배하는 교육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정당가입은 물론 교사의 정치적 권리를 자유롭게 허용하고 있는 독일은 학교 단위의 민주주의와 학생자치, 표현의 자유를 비롯한 학생인권을 폭넓게 보장하고 있다. 16세부터 지방선거에 투표할 수 있고 더 이른 나이부터 정당 활동도 가능하다. 교사와 학생 모두의 정치적 사유와 활동을 금지하는 것이야말로 교육의 정치적 편향을 만드는 텃밭임을 인정하는 것이 우리의 새로운 출발점이 돼야 한다.
 
 
배경내 | 인권교육센터 ‘들’ 상임활동가
 

2011.08.30에 경향신문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