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감시센터 칼럼(aw) 2004-04-22   818

<안국동 窓> 민주노동당에 바란다

이번 총선의 의미를 두고 여러 가지 평가들이 있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큰 의미를 두고 싶은 것은 바로 민주노동당의 원내진출이다. 그것도 첫 진출에서 10석이라는 의미있는 숫자의 의석을 얻었다. 이러한 결과는 그동안 온갖 어려움에도 묵묵히 밑바닥을 다져온 수많은 민주노동당의 활동가들과 당원들이 노력한 성과라고 생각한다. 필자는 민주노동당원은 아니지만, 지역에서 일하고 있는 민주노동당 활동가와 당원들의 눈물겨운 삶과 노력들을 접할 기회들이 있었다. 그래서 이번 총선을 통해서 그런 분들의 땀이 결실을 맺게 된 것에 대해 진심으로 축하하고 싶다.

그렇지만, 민주노동당에 거는 기대가 큰 만큼, 첫 원내진출 이후에 민주노동당이 어떻게 활동하는지가 참으로 중요하다고 본다. 언론의 관심도 쏠리고 있고, 민주노동당에 투표를 한 많은 시민들, 그리고 비록 민주노동당에 투표는 하지 않았지만 최초로 원내에 진출한 진보정당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있는 시민들이 민주노동당을 지켜보고 있다.

그래서 첫단추를 잘 꿰어야 한다. 그리고 진보정당의 정치는 기존 보수정당의 정치와 어떻게 다른 지를 실천으로 보여주었으면 한다. 그래서 필자의 개인적 의견임을 전제로, 원.내외에서의 민주노동당의 활동에 대해, 기대를 겸한 의견을 몇가지 제시해 보고자 한다.

우선 민주노동당은 공약으로 제시한 정책들을 구체화하고 현실화해야 한다. 구체화, 현실화과정에서 버릴 것은 버리면서 정책의 우선순위를 정해야 한다.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단지 의석이 작은 소수정당이라서가 아니다. 주장이 정당하고 시민사회의 지지를 받는다면, 소수정당이라고 하더라도 정책의 이니셔티브를 쥐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다.

특히 지금처럼 열린우리당이 과반을 약간 넘는 의석을 확보했을 뿐인 상황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문제는 오히려 민주노동당 스스로 어느 정도로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정책을 제시할 수 있는지에 달려있다. 특히 정책을 뒷받침하는 국가재정은 무한하지 않다. 재정문제에 대해, ‘부유세 등을 통해 세수를 늘리고 국방비를 줄이면 재원이 마련된다’는 정도의 추상적 주장만으로는 아무 것도 이룰 수 없다. 장기적으로 지향하는 것은 그러하다고 하더라도, 지금은 정책의 우선순위를 정해야 한다. 그리고 그 우선순위는 당내외의 다양한 의견들이 수렴되는 민주적 과정을 통해서 정해지는 것이 이상적일 것이다.

그리고 우선순위에는 ‘사회적 약자들의 인권보장’이 최우선적으로 반영되어야 한다. 예를 들면, 당장 장애인이나 빈곤층 등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의료정책을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한 대안이 법안과 예산이라는 구체적 정책수단으로 제시되어야 한다고 본다. 그리고 유엔 아동권리위원회가 권고하고 있는 대로 “어려운 처지에 있는 아동들에게 국가가 어떻게 하면 최우선적인 지원을 할 수 있을 지”가 민주노동당의 정책으로 제시되어야 한다고 본다. 민주노동당의 가장 성공한 공약으로 평가받을 수 있는 부유세도 이제는 구체화된 형태로 제시되어야 한다.

두 번째로 민주노동당은 국회개혁에 대해 핵심을 찌를 필요가 있다. 국민소환제도가 탄핵을 계기로 부각되었지만, 그것은 전체적인 민주주의의 틀내에서 보면 단편적인 제도일 뿐이다. 국민소환제도는 비례대표 국회의원에 대해서는 적용하기 어려운 제도이고(개념적으로 볼 때에, 비례대표는 전국민의 투표에 의해서만 소환이 가능하다), 매우 중대한 계기가 있을 때에나 행사될 수 있는 제도이다. 그리고 국민소환제도가 제대로 도입되기 위해서는 87년 헌법을 개정해야 한다. 보수정당간의 합의에 의해 탄생한 87년 헌법은 기본적으로 대의민주주의를 기본적 틀로 삼고 있다. 만약 국민발의,국민소환제 도입,배심제 도입 등을 통해 민주주의의 수준을 ‘참여민주주의’로 한단계 높이겠다면, 그것은 87년 헌법을 새롭게 손보는 것을 전제로 할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헌법개정은 오랜 준비와 논의가 필요한 작업이다. 그러면 헌법개정이라는 어려운 과제가 실현되기 이전에 민주노동당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불합리한 의원특권을 폐지하는 것은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국회의 의사결정과정이 투명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야만 국민의 감시가 가능해지고, 감시가 가능해야만 국민소환제도의 필요성도 더 공감을 얻을 수 있다. 지금은 중요한 법안들에 대해 비공개 소위원회에서 밀실합의가 이루어지고 공개된 상임위원회에서는 형식적인 통과의례만 밟고 있다. 국회의 예산심의과정이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아서 국가의 소중한 예산이 낭비되고 있다.

따라서 민주노동당이 원내에 진출해서 해야 하는 제1차적 과제중의 하나는 국회 소위원회를 공개하고, 이해관계자들을 관련 상임위에서 배제하는 등 국회법을 개정하는 것이다(도대체 언제까지 사학재단의 대변자들이 국회 교육위원회에 앉아 있는 것을 보아야 하는가). 특히 소위원회(법안심사소위, 계수조정소위 등)가 공개되어야만, 밀실에서 이루어지는 야합과 로비를 방지할 수 있고 예산심의과정이 투명하게 될 수 있다.

개인적으로, 민주노동당은 이번 총선에서 유일하게 정책정당으로서의 면모를 보여주었다고 평가한다. 그렇지만 분명한 것은 이번에 민주노동당에 투표한 유권자들중에는 민주노동당의 이미지를 보고 투표한 유권자들도 상당수 있다는 것이다. 만약 이미지를 보고 투표한 유권자들이 원내에 진출한 민주노동당의 활동을 보고 ‘민주노동당의 정책에 대한 지지’로 옮겨갈 수 있다면, 민주노동당은 계속 성장할 것이다. 그렇지만 그 반대의 경우에는 민주노동당의 성장은 정체될 수밖에 없다. 민주노동당이 지금까지 보여준 열정과 헌신성으로 명실상부한 수권세력으로 성장하기를 기대한다.

하승수(변호사,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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