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감시센터 칼럼(aw) 2006-09-25   796

<안국동窓> 한나라당과 쿠데타의 추억

2006년 9월 19일 밤, 태국군은 쿠데타를 일으켜 권력을 잡았다. 15년만의 무혈 쿠데타라고 한다. 며칠 뒤에 태국 국왕은 쿠데타를 정당한 것으로 승인했다. 이로써 엄청난 부패에 대한 국민들의 강력한 저항에도 꿈쩍하지 않던 철면피의 부패 정치인 탁신 총리는 망명자의 신세가 되었다. 아마도 그는 소환되어 재판을 받고 오랫동안 옥살이를 해야 할 것이다. 물론 그가 부정축재한 엄청난 재산도 환수되어 국민을 위해 사용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2006년 9월 20일 오후, 한나라당의 유기준 대변인(부산 서구, 초선)은 국회에서 이 태국 쿠데타를 인용하며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는 발언을 했다. 299석의 국회의원 중에서 126석을 차지하고 있는 제2당 대변인의 수준이 이 정도다. 이에 대해 강재섭 대표는 ‘말 조심하라’는 말로 ‘엄중경고’했다. 한나라당은 도대체 민주주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 단순히 박정희, 전두환 시대를 그리워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쿠데타를 그리워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언론이 전하는 주요 내용은 세가지이다. 먼저 유기준 대변인은 “태국의 군부 쿠데타를 남의 일로만 치부할 것이 아니라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타산지석’이란 “다른 산의 못난 돌멩이라도 내 구슬을 가는 숫돌이 됨직하다”(他山之石 可以爲錯)는 시경의 시구에서 유래된 말로서, 하찮아 보이는 것이라도 귀하게 여겨서 잘 쓰면 나의 발전에 크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뜻을 담고 있다. 그런데 어떻게 군부 쿠데타가 ‘타산지석’이 될 수 있는가? 유기준 대변인은 군부 쿠데타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서 의정활동을 하고 있는가? 그렇다면 유기준 대변인은 국회의원 자리에서 물러나야 할 것이다. 군부 쿠데타는 민주주의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어서 유기준 대변인은 “쿠데타의 주 이유는 부패한 권력이었다. 취임 초 탁신 태국 총리는 강력한 리더십으로 국제적 주목을 받았으나 측근들의 권력형 비리로 쿠데타를 초래했고 국민 지지마저 잃고 말았다”고 말했다. 이 말 자체는 틀리지 않았다. ‘권력형 비리’는 사회를 병들게 하고 민주주의를 위협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군부 쿠데타는 잘못된 것이다. ‘권력형 비리’를 들먹이며 군부 쿠데타를 정당화하는 것은 민주당의 민주화 정책을 비난하며 쿠데타를 일으켰던 박정희의 논리와 상통하는 것이다. 그리고 박정희의 쿠데타 논리는 1930년대 일본 제국주의 군대가 일으켰던 군부 쿠데타의 논리를 그대로 따른 것이다. 이런 점에서 유기준 대변인의 사고방식은 1930년대 일본 제국주의 군대의 쿠데타 논리에 머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권력형 비리’의 대명사인 ‘차떼기’당의 대변인이 ‘권력형 비리’ 운운하며 군부 쿠데타를 정당화하는 것은 그야말로 자가당착일 뿐이지만.

유기준 대변인은 끝으로 “탁신 총리의 통치 스타일은 여러 가지 면에서 노무현 대통령을 연상시킨다. 앞뒤를 가리지 않은 튀는 언행과 언론과의 전쟁에서 무척 닮았다”고 말했다. 이 발언으로 유기준 대변인의 의도가 완전히 드러나게 되었다. 그의 말을 풀어보자면, “태국군이 탁신 총리에 맞서서 쿠데타를 일으켰는데, 노무현 대통령은 탁신 총리와 무척 비슷하니, 한국군이 노무현 대통령에 맞서서 쿠데타를 일으킬 수도 있다”는 것이며, 그러니 “노무현, 조심하라!”는 것이다. 유기준 대변인은 국회에서 국민을 향한 발언을 통해 이렇듯 대통령을 협박하고 군대를 모욕했다. 이런 자가 국회의원이라는 사실, 그것도 거대야당의 대변인이라는 사실에 경악하지 않을 수 없다.

유기준 대변인의 발언을 접하고 혹시 그가 군인 출신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군인 중에서 쿠데타를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우리는 오랜 세월 어렵게 전개된 민주화운동의 결과로 대다수 구성원이 민주주의를 존중하는 사회에서 살게 되었다. 여전히 쿠데타 운운하는 자들이 있기는 하지만, 그들의 정체는 쿠데타 권력 시절에 마음껏 부패하며 권력을 전횡하고 영화를 누렸던 수구세력이다. 그런데 유기준 대변인은 서울대 법대 78학번이다. 쿠데타 권력은 육군사관학교 출신 군인들과 서울대 법대 출신 법사들이 주축이었다. 유기준 대변인의 마음 속에는 쿠데타 권력에 대한 추억이 짙게 자리잡고 있는 모양이다. 그는 자신의 발언에 대해 어떤 사과도 하지 않고 있다.

한나라당은 ‘차떼기’와 ‘떼쓰기’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것으로 널리 알려졌다. 그런데 여기서 한술 더 떠서 쿠데타의 추억에 사로잡혀 있는 자들도 버젓이 한나라당의 의원으로 행세하고 있다는 의혹까지 크게 일어나게 되었다. 이런 문제에 대해 ‘말 조심하라’는 말로 ‘엄중경고’한 강재섭 대표는 다음날인 9월 21일에 민주당과의 통합론을 제기했다. 쿠데타의 추억조차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는 한나라당이 아직도 쿠데타의 피해로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의 표를 얻고 싶다는 것이다. 그 철면피함이야말로 탁신을 떠올리게 한다.

홍성태 (상지대 교수, 정책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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