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감시센터 칼럼(aw) 2004-03-22   959

<안국동 窓> 촛불행사 불법시비 이제 끝내자

지난 20일 저녁 광화문은 ‘탄핵무효’ 함성과 수십만개의 촛불로 가득찼다. 위기에 처한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국민들은 월드컵과 효순이·미선이 이후 또다시 광장으로 몰려나왔다. ‘불법’시비로 인해 불상사가 생기지 않을까 우려도 있었지만 다행히 행사는 평화롭게 진행되었다.

‘불법’ 논란에 대한 정부의 입장은 애매하기 그지없다. 검찰과 경찰은 광화문 촛불행사에 대해 “신고되지 않은 야간옥외정치집회이므로 불법”이라고 규정하고 촛불행사의 주최자들에 대해 사법처리를 공언한바 있다. 그러는 한편 “불법이되 원천봉쇄는 하지 않는다”며 사실상 집회를 허용하는 이중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주말 촛불행사는 충돌 없이 진행되었지만, 정치권의 압력과 국민여론 사이에서 오락가락하고 있는 정부의 대응방침때문에 촛불시위의 불법 여부를 둘러싼 논란은 계속되고 있고, 경찰은 마음만 먹으면 행사 자체를 원천봉쇄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이제 그 논란을 종식시킬 때가 되었다.

촛불시위를 불법으로 규정하는 근거는 집회및시위에관한법률(집시법) 제10조다. “누구든지 일몰시간후에는 옥외집회 또는 시위를 하여서는 아니된다”고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같은 조문 단서는 “집회의 성격상 부득이하여 주최자가 질서유지인을 두고 미리 신고하는 경우에는 관할경찰관서장은….(중략)…일몰시간후에도 옥외집회를 허용할 수 있다”고 덧붙이고 있다. “허용할 수 있다”는 문구를 ‘재량권’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경찰의 주장이지만, 1994년 헌법재판소는 이를 ‘기속재량(羈束裁量)’이라고 하여 자유로운 재량행사와 명백히 구별한 바 있다.

다시 말해 경찰이 그동안 관행적으로 야간집회신고를 접수하지 않은 것이 잘못일 뿐, 야간옥외집회도 원칙적으로 금지될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현재 진행되고 있는 촛불시위의 성격이 ‘정치집회인지 순수한 문화행사인지’에 대한 최근의 논란은 부차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촛불시위는 불법이 아니며, 집회·시위에 대한 ‘사전허가제’를 엄격히 금지하고 대의민주주의하에서 집회시위의 가치를 온전히 인정하고 있는 우리 헌법정신에 절대적으로 부합하는 것이다.

광화문을 비롯해 전국 방방골골에서 자발적으로 모여드는 촛불시위를 보자. 수천, 수만명이 모이지만 질서정연하기만 하다. 질서유지를 위한 자원봉사자들의 노력과 집회참가자들의 자율성에 의해 광장의 밤은 흥겹기만 하다. 축제의 장이 곳곳에서 벌어진다. 촛불 하나를 손에 들고 남녀노소가 모여든다. 어린아이들의 손에는 풍선이 들려있고, 노인의 마스크에는 ‘희망’이 쓰여있다. 노래방이 열리고, 춤판이 벌어지고, 토론과 열정이 교차한다. 촛불은 자기 몸을 태워 주위를 밝힌다. 촛불이 상징하는 것은 부패와 국민무시로 일관하는 어둠의 세력으로부터 세상을 밝히는 것이다.

촛불시위는 화염병, 각목, 최루탄으로 상징되는 부정적 시위문화를 참여와 소통으로 전환시킨 일등공신이기도 하다. 그 어디에 폭력이 있는가. 그 어디에 혼란이 있는가. “정치적 목적이 있다”고 한다. 인정한다. 그러나, 그 정치적 목적은 특정 정치세력을 지원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수호하고자 하는 바로 그것이다. 대통령에 반대하고 비판적이었던 많은 사람들까지도 국회의 후안무치에 울분을 참지 못하고 광장으로 쏟아져 나왔음을 애써 모른채 해서는 안된다.

앞서 촛불시위가 불법이 아니라는 점에 대해 언급했지만, 그동안의 경찰행정 관행상으로는 받아들이기 힘든 점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한가지만 덧붙이고자 한다. 지난 3월 1일부터 새로 시행중인 현행 집시법은 졸속입법과 독소조항으로 인해 불복종운동마저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법치주의는 단순히 실정법을 지키고자 하는 형식적 완고함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다.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실정법이 당장 고쳐질 수 없다면 법집행자는 우선적으로 그 법률의 적용과 해석에 있어서 탄력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이 진정한 법치주의를 실현하고 사회적 통합력을 높여나가는 길이다. 검찰과 경찰이 이점을 명심하여 평화롭고 자유로운 촛불시위의 ‘정당한 보호자’가 되길 기대해 본다.

장유식 (변호사,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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