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감시센터 칼럼(aw) 2004-03-15   659

<안국동 窓> 헌법재판소를 믿는다

현대 민주사회에는 크게 두 개의 ‘민주적 정당성’이 존재한다고 한다. 국민의 직접 선거로 뽑힌 국민 대표들이 갖게 되는 이 ‘민주적 정당성’은 대통령과 국회 두 기관이 공히 가지고 있는 막강한 권력의 절대적 근거다. 이 두 민주적 정당성 가운데 ‘국회’라는 민주적 정당성이 자신의 민주적 정당성만을 앞세우며 ‘대통령’이라는 또 다른 민주적 정당성을 부정하고 나왔다고 보는 것이 이번 탄핵정국에 대한 하나의 헌법학적 분석이자 해석일 수 있다.

이 시점에서 우리 헌정사상 사상초유의 대통령에 대한 탄핵이라 일컬어지는 이번 탄핵정국의 시작과 지금까지의 진행과정을 차분히 되새겨보자. 방송기자클럽초청 기자회견에서 대통령이 한 여당 지지발언이 직접적인 도화선이 되었다. 곧이어 이러한 대통령의 발언이 ‘공직선거 및 선거부정방지법(이하에서는 ‘선거법’으로 약칭)’ 제9조가 규정하고 있는 공무원의 선거중립의무 규정에 위배될 수 있다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결정이 있었고, 이를 대통령의 위법행위에 대한 공식적 인정이라 여긴 야당이 총선을 목전에 두고 ‘대통령 탄핵’이라는 극한적인 정치적 승부수를 꺼내들었다. 국회의장에 의해 경호권이 발동되어 여당의원들이 배제된 가운데 질의와 토론 등 국회법이 규정한 의결절차가 철저히 무시된 상태에서, 193명의 국회의원들이 탄핵소추 의결에 찬성표를 던졌다. 3.12 사태가 발발한 것이다. 이제 공은 헌법재판소로 넘어갔다.

탄핵제도를 통해 ‘정치적 책임’ 물을 수 없어

정치인들의 위험하고 소모적인 탄핵정치 싸움에 국민만 가여운 볼모가 되었다. 내팽개쳐진 민생만 끝없는 나락으로 곤두박질치고 있다. 국회가 탄핵소추시 내세운 탄핵소추의 이유는 세 가지이다. 앞의 선거법 제9조 위반, 측근 비리, 경제 파탄이 그것이다.

원래 탄핵제도라는 것은 일반사법절차에 의해서는 소추가 곤란한 고위직 공무원들에게 그 ‘법적 책임’을 묻기 위해 생겨난 제도이다. 대통령, 국무총리, 장관, 법관, 검사 등은 그들 자신이 일반사법절차에 간여하거나 직·간접적으로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지위에 있으므로, 이들의 직무집행에 중대한 위법행위가 발생했다면 특별히 별도의 절차를 통해 그 ‘법적 책임’을 묻겠다는 것이 탄핵제도인 것이다.

이런 취지에서 우리 헌법 제65조 1항도 이 고위직 공무원들이 “직무수행에 있어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한 때”로 탄핵사유를 한정하고 있다. 따라서, 탄핵제도를 통해 ‘정치적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 ‘실정 등으로 인한 경제파탄’과 같은 정치적 책임은 우리와 같은 대통령제 정부형태가 아니라 의원내각제 정부형태를 취하는 국가에서 의회가 ‘내각불신임권’을 행사할 때나 물을 수 있는 책임이다.

그런데, 국회가 내세운 ‘측근 비리’나 ‘경제 파탄’은 법적 책임이 아니라 정치적 책임 문책의 대상이 해당될 수 있는 것들이다. ‘측근 비리’나 ‘경제 파탄’과 관련하여 대통령이 중대한 법조항을 위반하였으면 모르되, 법 위반사실도 없는데 뜬구름 잡기 식으로 이러한 사유를 탄핵사유로 추가하는 것은 탄핵제도가 ‘정치적 책임’이 아니라 ‘법적 책임’을 묻기 위한 제도임을 간과한 데서 나오는 명백한 오류이다.

대통령의 여당지지 발언은 탄핵사유에 해당하기 어렵다

이제 국회가 주장한 탄핵소추의 세 가지 이유들 중 일단 살아남은 것은 선거법 제9조 위반뿐이다. 필자는 국회 측에 의해 선거법 제9조를 위반했다고 주장되고 있는 대통령의 여당지지 발언이 “직무수행에 있어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한 때”라는 탄핵사유에 해당하기 어렵다고 본다. 기자회견에서 지지정당에 대한 기자들의 집요하고 끈질긴 질문에 답하면서 “대통령이 뭘 잘해서 열린우리당에 표 줄 수 있는 일이 있으면 합법적인 모든 것을 다하고 싶습니다”라고 한 발언 등이, 우선 ‘직무수행행위’에 포함되느냐를 따져보면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대통령도 최고위직 공무원이기 이전에 한 명의 정치인이다. 기자간담회자리에서 기자의 두 차례에 걸친 끈질긴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국민들이 여당을 지지해주었으면 좋겠다고 밝힌 것은 ‘직무집행행위’의 하나라기보다는 정치인으로서의 대통령이 그 정치적 의사를 표현한 것에 불과하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를 과도하게 제약하면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 될 수도 있다.

또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6인 위원들에 의한 위법결정을 탄핵사유로서의 “법률” 위배여부를 확정한 법적 구속력이 있는 결정이라 보기도 어렵다. 선거관리위원회는 선거법 등에 대한 제1차적 법 해석기관일 뿐이지 법적 구속력이 있는 사법적 판단을 내리는 사법기관은 아니기 때문이다. 탄핵사유에 해당하는 위법행위인가의 여부는 선거관리위원회가 아니라 탄핵결정권을 가지고 있는 헌법재판소가 탄핵심판을 통해 원점에서부터 새로이 검토할 사항이다.

그 외에도 탄핵사유에 해당하는 직무집행상의 위법행위인가를 판단함에 있어 우리가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될 사항이 있다. 그것은 문제된 직무집행상의 행위가 ‘중대한’ 위법행위여야 한다는 점이다.

탄핵결정이 내려지면 첫째, 대통령이 파면된다. 국민들의 손으로 직접 선거를 통해 뽑으면서 5년의 임기를 보장해 준 대통령이 임기 전에 대통령직에서 내려와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탄핵결정은 대통령 선거에 나타난 국민들의 뜻을 거스르는 것일 수 있다는 측면을 가진다.

둘째, 탄핵결정으로 인한 대통령의 파면 후 60일 이내에 새로운 대통령이 뽑힐 때까지 대통령 자리가 비어있음으로 인해 엄청난 국정 공백과 그에 따른 국정 혼란이 뒤따른다. 탄핵결정이 가져오는 결과는 우리 국민들에게 너무나도 큰 희생을 요구하는 것이다. 탄핵을 위해서는 대통령의 직무집행상의 위법행위가 ‘중대한’ 위법행위여야 함이 바로 이 대목에서 논증된다. 대통령 선거에서 직접 표를 던진 주권자인 국민의 뜻을 거스르고라도, 갑작스러운 대통령의 파면으로 인한 엄청난 국정 공백과 국정 혼란을 모두 다 감내하고서라도, 그 대통령을 꼭 탄핵해야할 만큼 ‘중대한’ 직무상의 위법행위가 존재해야 탄핵사유에 해당하는 것이다. 대통령이 공무수행을 위해 차량이나 도보로 이동 중 도로교통법을 위반했다고 해서 탄핵사유가 되는 ‘위법한 직무집행행위’라 볼 수는 없지 않은가. 혹자는 도로교통법 위반이 어떻게 선거법 위반과 비교대상이 될 수 있느냐고 항변할지도 모른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대통령에게 완곡한 권고를 통해 위반가능성을 지적했고 국회가 탄핵소추의 한 이유로 삼은 이 선거법 제9조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위반이 중대한 위법행위에 이를 정도의 조문은 아니다.

백 번 양보하여 기자간담회에서 대통령의 여당지지발언이 선거에서 공무원의 중립의무를 규정한 선거법 제9조를 위반했다고 가정하자. 그래도 이 선거법 제9조는 처벌규정도 없이, “공무원 기타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하는 자”에게 “선거에 대한 부당한 영향력의 행사 기타 선거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하지 말 것을 훈시하고 있는 선언적 훈시규정에 불과하다. 처벌 등으로 그 이행을 강제하는 강행규정이 아니다. 추상적이고 원칙적인 공무원 등의 선거중립의무를 선언한 선언적 규정인 것이다. 심지어, 이 제9조의 “공무원”의 범위에 ‘대통령 등의 정무직 공무원’은 포함되지 않는다는 학설도 있다. 태생이 정치인이요, 정치활동을 주업으로 할 수밖에 없는 정무직 공무원들에게 정치활동의 꽃인 선거에 완벽하게 관련되지 말라고 하는 것은 그 자체가 실효성 없는 요구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추상적이고 선언적인 훈시규정을 위반했다고 해서 그것이 탄핵결정을 정당화할 만큼의 ‘중대한’ 위법행위에 해당할 수 있을까.

이번 탄핵 절차는 명백한 ‘위법’

절차상으로도 이번 탄핵은 문제가 많다. 탄핵소추 의결시 국회법이 규정한 절차규정들을 명백히 위반했기 때문이다. 대한변호사협회의 지적대로 이번 탄핵소추 결의는 국회법 제72조와 제93조를 위반한 위법한 것이었다. 국회법 제72조는 평일의 국회 본회의 개의시간을 오후 2시로 못박으면서, 개의시간의 변경을 위해서는 의장이 각 교섭단체 대표위원과 이를 협의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에 국회의장은 교섭단체 대표위원과의 협의절차 없이 개의시간을 일방적으로 12일 오전 10시로 정했다. 명백한 본조항 위반이다. 또한, 국회법 제93조는 본회의 안건심의의 절차로서, 그 안건을 심사한 위원장의 심사보고나 안건 제안자의 제안취지 설명을 듣고 질의·토론을 거쳐 표결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12일 본회의에서는 이런 질의·토론절차가 없었다. 쫓기듯 표결을 위한 표결만이 있었을 뿐이다. 명백한 절차상의 위법이다.

이러한 지적에 대해 국회는 “국회의 관행을 모르는 처사”라며 일축하고 있다는 전언이다. 국회 내 관행이 어떻게 국회법 위에 있을 수 있는가. 국회법에 위배되는 관행은 그 관행 자체가 위법이며 오히려 금지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국회법 위반을 정당화하는 방패막이는 더더욱 될 수 없다. 그리고, 그 국회법이라는 것도 국회의원들 자신이 만든 법이 아니던가. 법을 만든 국회의원들부터 ‘관행’을 이유로 법을 지키지 않는다면 감히 누구에게 법을 지키라 요구할 수 있겠는가.

헌법재판소는 총선 전에 탄핵 여부에 대한 최종 결정 내려야

탄핵발의와 탄핵소추는 정치인인 국회의원들의 재량에 맡겨진 국회의원들의 권한이요, 정치적 결정이지만, 헌법재판소의 최종적인 탄핵결정은 ‘법적 결정’이다. 탄핵제도의 묘미는 바로 ‘정치적 결정’과 ‘법적 결정’으로 나눠진 이 이원적 구조에 있다. 그리고 이 이원적 구조가, 국회의원들의 ‘정치적 결정’이 헌법재판소의 ‘법적 결정’으로 뒤집어질 수 있다는 점이, 국회의원들에 의한 탄핵소추라는 ‘정치적 결정’의 남용을 제어하고 있다.

선거 승리 등을 위한 눈앞의 정치적 이익이나 당리당략에 의해 국회의원들에 의한 정치적 탄핵소추 결정이 내려지고 이것이 헌법재판소의 법적 결정에 의해 탄핵사유에 해당되지 않는 것으로 뒤집어진다면, 그 동안의 국정 공백이나 국정 혼란으로 인한 국민들의 고통은 국회의원들 자신이 전적으로 책임져야 한다. 국회의원들이 탄핵을 정치적으로 악용하고 남용했음이 헌법재판소의 법적 결정으로 증명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라도 헌법재판소는 하루 빨리, 가급적 총선 전에 탄핵여부에 대한 최종적 결정을 국민 앞에 내놓아야 한다. 만약, 탄핵사유에 해당하지 않는 것이었다면 탄핵소추에 찬성표를 던진 국회의원들에게 그 책임을 물어야겠고, 부당한 탄핵소추에 대해 법적 책임을 물을 제도적 장치가 없는 현행 법체제 하에서 정치적 책임이라도 추궁해야 한다면, 가장 효율적으로 정치적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기회가 바로 총선이기 때문이다.

또한, 국회의 탄핵소추 결의로 인한 대통령의 권한행사 정지로 인해, 비록 국무총리의 권한 대행이 있기는 하지만, 실질적인 국정 공백과 이에 따른 국정 혼란이 발생할 소지가 크다. 대통령제 국가에서는 보통 대통령과 함께 국민의 직접 선거로 선출되는 부통령이 존재하며, 대통령 유고시 부통령이 권한을 대행해 국정 공백을 메운다. 부통령도 민주적 정당성을 가지기 때문에 이 ‘권한 대행 체제’에서 행사되는 권한도 넓은 것일 수 있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 권한 대행자인 국무총리는 선거로 뽑히지 않고 대통령에 의해 임명되어 민주적 정당성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또 대통령이 탄핵사유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결정을 받고 대통령 권한을 다시 행사할 수 있게 되었을 때를 감안해야 하기 때문에, 권한 대행자로서의 국무총리의 권한 행사의 범위는 ‘현상유지적인 권한 행사’에 국한될 수밖에 없다. 대통령의 기본정책을 바꿀 수 없고 새로운 대규모 국책사업을 시작할 수도 없으며 전면적인 개각과 같은 대규모 인사이동을 단행할 수도 없다.

국무총리 권한 대행의 이러한 권한 행사에 따른 명백한 한계가 실질적인 국정 공백과 그에 따른 국정 혼란으로 자연스레 연결될 위험을 항상 안고 있기 때문에 문제인 것이다. 헌법재판소의 정확하면서도 ‘신속한’ 법적 결정이 요구되는 또 다른 이유가 여기에 있다. 헌법재판소는 대통령 탄핵소추 결의와 국무총리 권한 대행으로 인한 국정 공백과 국정 혼란을 최단기화 해야 한다. ‘신중한 판단’을 이유로 사건 접수 후 ‘180일’ 이내라는 심판기간을 다 채우려할 것이 아니라, 자주 변론기일을 잡고 평의를 여는 등 이 사건을 집중적으로 심리하여 최단기간 내에 결정을 내려야 한다.

헌법재판소의 진가를 발휘하는 결정 내려질 것

세간에서는 헌법재판소 재판관들 중에 현 야당에 의해 추천을 받은 재판관들이 많다는 이유로 친야적인 결정이 내려질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이야기가 조심스레 흘러 다니는 것 같다. 우리 헌법재판소를 상당기간 지켜봐 온 필자로서는, 그러한 예단이 분명 잘못된 것이라 이야기할 수 있다.

국회 선출 몫의 헌법재판관들에 대해 정당들이 추천을 할 수는 있지만, 추천 후 재판관들에 대한 일체의 영향력 행사는 있을 수 없고 재판관들 자신도 이 점을 특히 조심하며 오직 헌법, 법률과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재판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헌법재판소 판례를 분석해 보면, 실제로 재판관이 자신을 추천해 준 정당의 입장과 반대되는 입장에 선 경우도 꽤 있고, 대통령에 의해 지명되고 임명된 재판관이 반(反)행정부적인 의견을 내놓은 사례도 많이 있다. 물론 몇몇 비판의 대상이 되는 결정들도 없지는 않지만, 대체로 우리 헌법재판소는 동성동본금혼규정에 대한 헌법불합치결정, 국회법상의 국회의원선거구획표에 대한 위헌결정 등 주옥같은 수많은 사법적극주의적 결정들을 통해 입법부와 행정부를 쉼없이 견제해 왔고 우리 사회의 변화를 발전적 방향으로 선도해왔다.

이번 탄핵과 관련한 결정에서도 이러한 우리 헌법재판소의 역량이 한껏 발휘되어 엄정하고 신속한 법적 결정이 내려지리라 필자는 믿는다. 1988년 이래 16년간 축적되어 온 우리 헌법재판소의 역량이 유감없이 그 진가를 발휘하는 결정이 나오리라 필자는 믿는다.

임지봉(건국대 법대 헌법학 교수, 사법감시센터 실행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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