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감시센터 칼럼(aw) 2004-03-26   731

<안국동 窓> 선관위의 세가지 오판

선관위, 왜 오버하나

요즘 탄핵정국의 핵심으로 떠오른 키워드는 ‘선관위’(선거관리위원회)다. 헌법재판소를 능가한다. 선관위는 이미 청와대와 민주당에 보낸 이중공문으로 탄핵정국의 빌미를 제공했다는 비난을 한몸에 받고 있었다. 헌법재판소의 의견서 제출요구에 대해서는 ‘의견없음’이라고 회신함으로써 모두를 어리둥절하게 하였다. 최근에는 인터넷상의 댓글 퍼나르기에 대해 선거법위반의 굴레를 씌웠고, 인터넷기자협회의 탄핵성명을 삭제하고 KT에 관련 통신자료를 요청해 네티즌들의 반발을 샀다. 23일에는 7개 방송사에 “총선개표 결과를 자체 집계할 경우 해당 방송사에 대해 선관위 개표관련 자료를 일체 제공하지 않겠다”는 상식밖의 공문을 보내기도 했다. 급기야 25일에는 “선거운동기간동안 선거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모든 집회는 금지된다”며 촛불시위 등 탄핵관련 집회의 전면금지를 선언했다. 선관위가 정치적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걸림돌을 자처하고 나선 것이다.

선관위를 탄핵하자(?)

이렇게 되자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선관위를 탄핵하자”는 주장이 튀어나오고, 정치권도 비난대열에 합류했다. 일부 언론에서는 시대에 역행하는 ‘선거감시권력’이라는 비판을 내놓고 있다. 총선을 코앞에 둔 시점에서 선관위가 공정성 시비에 휘말리는 것은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선관위는 1960년 3.15 부정선거 이후 생겨났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산하에 시도선관위 등 하부조직을 갖추고 있다. 정치적 중립성을 확보하기 위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대통령, 국회, 대법원이 각 3인씩을 추천해 9인으로 구성되며, 다른 나라에서는 입법례를 찾아보기 힘든 헌법상 독립위원회의 지위를 부여받고 있다. 이처럼, 중요한 지위와 역할을 가지고 있는 선관위가 ‘부정선거 감시 및 공정선거 유도’라는 국민적 기대를 저버리고 도리어 참정권을 제한하는 ‘규제권력’으로 부각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선관위의 오판

첫째, 선관위는 선거법개정의 취지를 왜곡하고 있다. 최근 개정된 선거법은 ‘돈안드는 선거’를 이루는 것이 최우선의 과제이다. 종래 선관위는 돈선거를 감시하는데 있어 인력과 장비, 권한과 예산의 부족을 하소연해왔다. 그래서 부족하나마 선거법이 개정되었다. 선거자금에 대한 상시조사권을 부여하고, 금융거래 자료제출요구권도 강화되었다. 선거범죄에 대한 조사권도 강화되었다. 돈선거가 규제되는 대신 미디어선거가 폭넓게 보장되는 것이 이번 선거법개정의 주요내용이다. 쉽게 말해서, 누군가 이야기했듯이 “입은 풀고, 돈은 묶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오히려 선관위는 ‘돈선거감시’에는 별 관심이 없고, 국민들의 ‘표현의 자유’, ‘정치적 자유’에 억압하는데 앞장서고 있다.

둘째, 선관위는 ‘정치권 눈치보기’의 어지러운 줄타기를 그만두어야 한다. 이중공문 파문에서 나타났듯이 선관위는 ‘정치권 눈치보기’에 열중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대통령에게는 “선거법위반이 아니나 앞으로 중립의무를 지켜달라”는 공문을 보내고, 민주당에는 “선거법 위반이다”는 공문을 보냄으로써 명백한 이중플레이를 벌였다. 대통령에 대한 예우 운운하지만, 두 공문의 내용이 전혀 다르다는 것은 유치원생도 알 수 있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선관위에 허위공문서작성의 죄책을 물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선관위가 대통령의 눈치를 본 것인지, 거대 야당의 눈치를 본 것인지는 불분명하지만, 그 처신에 심각한 문제가 있음은 분명하다.

셋째, 선관위는 스스로 헌법기관임을 망각하고 있다. 선관위는 헌법 제114조에 의해 수립된 ‘헌법기관’이다. 헌법에 명시된 대로 ‘선거와 국민투표의 공정한 관리 및 정당에 관한 사무를 처리’할 의무가 있다. 동시에 헌법기관이라면 업무수행과정에서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할 의무도 부여받고 있다. 선거법이 헌법에 우선할 수 없듯이 선거관리가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방향으로 나갈 수는 없는 것이다. 선관위는 법집행에 앞서 헌법상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일이 없는지 심사숙고해야 한다.

선관위에 바란다

공정성을 가져야 할 선관위가 고무줄 잣대를 갖고 있으면 혼란을 초래하고, 헌법기관으로서의 위상하락은 물론 선거관리에도 심대한 타격을 입게된다. 최근의 상황에 대해서 위원회의 정치적 위상을 높이기 위한 의도적 개입이 아닌가 하는 의혹도 제기된다. ‘관리’라는 것은 물흐르듯이 자연스러운 것이 좋은 것이다. 자연발생적으로 이루어지는 국민의 정치적 의사표현에 대해 딴죽을 거는 것은 거꾸로 ‘불순한 정치적 의도’를 드러내는 것이 될 수도 있다. 선관위는 정치권 눈치보기를 그만두고, 선거법개정의 취지와 헌법기관으로서의 지위를 자각하여 이제라도 국민적 기대에 부응한 ‘선거관리’에 충실해야 한다.

장유식 (참여연대 협동처장,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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